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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일으로

논어 팔일 20장 — 관저낙이(關雎樂而) — 즐거움과 슬픔도 절도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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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팔일 20장 관저낙이(關雎樂而) 대표 이미지

논어 팔일 20장은 공자가 시경 關雎(관저)를 어떻게 읽었는지를 아주 짧게 보여 주는 장이다. 문장은 한 절뿐이지만, 그 안에는 유가가 감정과 형식을 어떤 관계로 이해했는지가 응축되어 있다. 공자는 關雎(관저)를 두고 樂而不淫(낙이불음), 哀而不傷(애이불상)이라고 평한다.

이 평가는 단순한 문학 감상이 아니다. 즐거움이 있으되 방탕으로 흐르지 않고, 슬픔이 있으되 몸과 마음의 조화를 무너뜨리지 않는 상태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장은 시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사실은 감정의 절도와 中和(중화)의 질서를 말하는 장으로 읽힌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구절을 시의 풍격과 정감이 지나침 없이 조화로운 사례로 본다. 송대 성리학은 여기에 더해, 인간의 감정이 본성을 해치지 않고 예의 질서 안에서 드러나는 바른 상태를 보여 준다고 읽는다. 같은 문장을 읽으면서도, 한쪽은 시의 품격에, 다른 한쪽은 마음 수양의 질서에 더 무게를 둔다.

팔일편의 맥락에서도 이 장은 중요한 자리에 놓인다. 팔일편이 예의 형식만을 말하는 편이 아니라, 그 형식 속에서 감정이 어떻게 절제되고 조화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보여 주기 때문이다. 關雎樂而(관저낙이)는 그래서 좋은 시에 대한 평이면서, 동시에 잘 다스려진 인간 마음에 대한 평이다.

1절 — 자왈관저는(子曰關雎는) — 즐거움도 슬픔도 지나치지 않는 시

원문

子曰關雎는樂而不淫하고哀而不傷이니라

국역

공자는 시경 關雎(관저)를 두고, 즐거워하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퍼하면서도 조화를 해치지 않는 시라고 말한다. 감정이 없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감정이 충분히 살아 있으면서도 방종과 파괴로 기울지 않는 상태가 가장 좋다는 뜻이다. 이 한마디는 유가가 이상적으로 보는 정서의 균형을 매우 간결하게 보여 준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논어집해』와 손석의 『논어정의』 계열 독법은 關雎(관저)를 정감은 충실하되 지나치지 않은 시의 전범으로 본다. 즐거움과 슬픔이 모두 들어 있지만 어느 쪽도 과도하게 치닫지 않기 때문에, 시의 품격이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진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는 樂而不淫(낙이불음)과 哀而不傷(애이불상)이 시의 성정이 바르게 표현된 상태를 가리킨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를 마음의 발현이 예와 본성을 해치지 않는 상태로 읽는다. 감정은 억눌러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바르게 드러나야 할 것이며, 바른 감정은 반드시 절도와 조화를 함께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關雎(관저)는 단지 좋은 연정의 노래가 아니라, 인간의 정이 中和(중화)의 질서를 잃지 않은 예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감정이 전혀 없는 차가운 운영보다 감정은 있으되 과잉 반응으로 흐르지 않는 태도가 더 건강하다. 기쁨은 들뜨지 않고, 실망과 슬픔은 조직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을 만큼 절제될 때 공동체의 리듬이 안정된다. 樂而不淫(낙이불음)과 哀而不傷(애이불상)은 감정을 없애라는 주문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리는 성숙함의 기준으로 읽을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문장은 매우 현실적이다.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쉽게 과시와 흥분으로 넘어가고, 슬픈 일이 생기면 금세 자기 자신을 해칠 만큼 깊이 가라앉기 쉽다. 공자의 평은 감정이 살아 있는 가운데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잘 산다는 것은 무감각해지는 일이 아니라, 충분히 느끼면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일에 가깝다.


논어 팔일 20장은 단 한 절이지만 유가의 정서관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 준다. 좋은 시는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사람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감동을 주면서도 방종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關雎(관저)에 대한 공자의 평은 문학 비평이면서 동시에 인간 수양의 기준이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시의 품격과 절도라는 면에서 읽고, 송대 성리학은 감정과 본성의 바른 조화라는 면에서 더 밀도 있게 읽는다. 두 흐름은 모두 감정의 충실함과 절제가 함께 있어야 아름다움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만난다.

오늘의 삶에서도 이 말은 그대로 유효하다. 기쁨과 슬픔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이 삶 전체를 흔들 정도로 넘치게 두지 않는 힘이 필요하다. 樂而不淫(낙이불음)과 哀而不傷(애이불상)은 감정을 억누르는 말이 아니라, 감정이 가장 아름답게 살아나는 균형의 이름이다.

등장 인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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