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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으로

논어 자로 21장 — 광견진퇴(狂狷進退) — 중도인을 얻지 못하면 광자와 견자가 차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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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자로 21장 광견진퇴(狂狷進退) 대표 이미지

자로편 21장은 완전한 사람을 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 어떤 사람과 함께할 것인가를 묻는 장이다. 孔子(공자)는 먼저 中行(중행), 곧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중도를 실천하는 사람을 가장 높은 기준으로 세운다. 그러나 곧 현실은 언제나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다음으로 함께할 만한 사람으로 狂者(광자)와 狷者(견자)를 든다.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놓치지 않는 공자의 인재 판단이 이 짧은 두 절에 압축돼 있다.

자로편 전체가 정치적 판단, 인물 감식, 행정의 실제를 다루는 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장은 매우 자로편답다. 공자는 완전무결한 사람만을 기다리며 아무도 쓰지 않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장점 없는 평균적 인물을 무난하다는 이유로 택하지도 않는다. 중도를 얻지 못할 때에는 차선이라도 분명한 방향성과 금지선을 가진 사람을 택하라는 판단이 여기에 담겨 있다.

한대 훈고 전통은 (광)과 (견)의 기질을 세밀하게 구분하면서, 둘 다 중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각각 뚜렷한 장점을 가진다고 본다.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狂者(광자)를 뜻이 높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으로, 狷者(견자)를 스스로 지키는 선이 있어 함부로 타협하지 않는 사람으로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도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현실 세계에서 완전한 인물이 드문 만큼, 적어도 진취성이나 절개 가운데 하나는 분명한 사람을 차선으로 취할 수 있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이 장은 타협의 미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에서 기준을 잃지 않는 선별의 지혜를 말한다. 완전한 중도를 얻지 못해도 아무 기준 없는 사람보다, 나아가려는 힘이 있거나 하지 않을 선이 분명한 사람이 낫다는 것이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이상형의 인재가 없을 때 무엇을 최소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고전적 답변이라 할 수 있다.

1절 — 자왈불득중행이여지(子曰不得中行而與之) — 중도를 행하는 사람을 얻지 못한다면

원문

子曰不得中行而與之인댄必也狂狷乎인저

국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도를 행하는 사람을 찾아 더불어 함께할 수 없다면, 아마도 광자나 견자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中行(중행)을 가장 온전한 덕의 기준으로 읽는다. 하지만 현실 정치와 인간 세계에서는 그런 인물을 늘 만날 수 없으므로, 공자는 이상을 포기하지 않되 차선의 사람을 가려 쓰는 판단을 말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독법에서 不得中行而與之(불득중행이여지)는 비관이 아니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기준을 유지하는 인재 감식의 출발점이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도를 보전하면서도 현실에 응하는 용인술로 읽는다. 완전한 중도를 갖춘 사람을 최고로 삼는 원칙은 분명하지만, 그 사람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아무와도 함께하지 않거나 무기력하게 물러서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狂狷(광견)을 다음 선택으로 드는 공자의 말은 원칙을 낮춘 것이 아니라, 원칙 아래에서 차선을 분별하는 실천적 지혜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이 절이 채용과 협업의 현실을 그대로 비춘다. 모든 역량과 인성을 고르게 갖춘 사람만 기다리면 조직은 결국 아무도 쓰지 못하고 정체되기 쉽다. 공자의 판단은 완전함을 최고 기준으로 유지하되,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방향성이 뚜렷한 사람을 분별해 함께하라는 쪽에 가깝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인간관계와 동료 선택은 늘 차선의 문제를 포함한다. 누구와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시간을 보낼지 결정할 때, 흠이 없느냐만 보는 태도는 쉽게 공허해진다. 오히려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무엇만큼은 하지 않으려는지 같은 분명한 기준이 사람을 더 신뢰하게 만든다.

2절 — 광자진취(狂者進取) — 광자는 나아가고 견자는 하지 않을 선이 있다

원문

狂者는進取오狷者는有所不爲也니라

국역

광자는 앞으로 나아가 취하려는 힘이 있고, 견자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狂者(광자)와 狷者(견자)를 모두 중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버릴 수 없는 장점이 있는 인물로 본다. 狂者(광자)는 지나칠 위험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이 있고, 狷者(견자)는 좁고 답답해 보일 수 있어도 타협하지 않는 절도가 있다. 따라서 공자는 완전한 군자를 얻지 못할 때 적어도 활력이나 절개 가운데 하나는 분명한 사람을 택한다고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분을 수양의 편차로 읽는다. 광자는 선을 향해 급히 나아가지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기질이 있고, 견자는 스스로를 지키는 힘은 있으나 넓게 포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둘은 아무 방향 없는 사람보다 낫다. 적어도 하나의 분명한 덕목이 살아 있기 때문에, 더 배우고 다듬을 여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進取(진취)와 有所不爲(유소불위)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추진력이 강해 일을 앞으로 밀고 가지만, 선을 넘을 위험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속도는 느려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히 구분해 조직의 기준을 지킨다. 공자의 말은 완벽한 균형 인물이 없을 때, 최소한 추진력이나 원칙 중 하나는 살아 있는 사람을 선택하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구절은 자기 점검의 기준이 된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이 있는가, 혹은 아무리 손해를 보더라도 하지 않을 선이 있는가. 둘 다 없다면 삶은 쉽게 무기력하거나 기회주의적으로 흐른다. 狂狷進退(광견진퇴)는 결국 사람을 평가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자기 안의 기개와 절도를 함께 돌아보게 만드는 물음이기도 하다.


자로편 21장은 완전한 사람을 찾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기준을 버리지는 않는 공자의 판단을 보여 준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의 기질을 구분해 각각의 장점을 살피고, 송대 성리학은 중도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라도 진취성이나 절개 같은 살아 있는 덕목이 있다면 함께할 만한 차선이 될 수 있다고 읽는다. 두 흐름은 모두 아무 특징 없는 평범함보다, 분명한 방향성과 금지선을 가진 불완전함이 더 낫다고 본다는 점에서 만난다.

오늘의 세계에서도 이 장은 현실적이다. 완벽한 동료, 완전한 리더, 결함 없는 공동체는 드물다. 중요한 것은 흠이 없느냐보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무엇은 끝내 하지 않으려 하는가이다. 狂者進取(광자진취)와 狷者有所不爲(견자유소불위)는 결국 불완전한 인간 세계에서 끝내 포기해서는 안 될 최소한의 기준을 보여 준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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