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글자 이상 입력하세요
위령공으로

논어 위령공 22장 — 불폐인언(不廢人言) — 말만 보고 사람을 들지 않고 사람 때문에 말을 버리지 않는다

10 min 읽기
논어 위령공 22장 불폐인언(不廢人言) 대표 이미지

위령공편 22장은 짧지만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과 말을 취사하는 기준을 함께 바로잡는 장이다. 공자는 여기서 사람을 뽑을 때 말솜씨만 보고 올리지 말라고 하고, 반대로 어떤 사람을 미워하거나 낮게 본다고 해서 그가 한 옳은 말까지 버리지는 말라고 말한다. 이 두 절반이 맞물리면서 군자의 공정한 판단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핵심은 不廢人言(불폐인언)이다. 사람에 대한 호오가 말의 옳고 그름을 덮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앞의 不以言擧人(불이언거인)을 함께 놓음으로써, 말이 번드르르하다고 해서 곧바로 그 사람 전체를 신임하는 오류도 경계한다. 결국 이 장은 사람과 말을 뒤섞지 않되, 그렇다고 완전히 떼어 놓지도 않는 정교한 분별을 요구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논어주』와 손석의 『논어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인사와 간언의 실제 문제에 가까이 붙여 읽는다. 말이 좋다고 곧바로 등용하면 외식과 구변에 속기 쉽고, 사람을 미워해 그 말까지 버리면 정론이 묻히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은 군자의 공평한 청취와 신중한 인사 원칙으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마음의 사사로움을 경계하는 공부로 읽는다. 사람이 좋아 보이면 그 말까지 과장해 받아들이고, 사람이 미워 보이면 사실인 말까지 밀쳐 내는 것은 결국 마음이 사정에 끌려가는 탓이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군자의 분별은 제도적 원칙이면서 동시에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는 수양론이 된다.

오늘의 현실에서도 이 장은 매우 직접적이다. 조직에서는 프레젠테이션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실질을 검증하지 않은 채 사람을 올리기 쉽고, 반대로 평소 관계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필요한 경고와 비판을 흘려버리기 쉽다. 위령공편의 이 한 장은, 공정함이 중립적인 척하는 태도가 아니라 사람과 말을 각각의 기준으로 끝까지 분별해 내는 능력임을 보여 준다.

1절 — 자왈군자는불이언(子曰君子는不以言) — 말만으로 사람을 올리지 않고 사람 때문에 말을 버리지 않는다

원문

子曰君子는不以言擧人하며不以人廢言이니라

국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등용하지 않으며, 사람이 나쁘다고 그의 좋은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논어주』와 손석의 『논어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인사와 간언의 기준을 함께 세우는 말로 읽는다. 不以言擧人(불이언거인)은 말의 화려함과 변설의 능숙함만 보고 사람을 발탁하지 말라는 뜻이며, 不以人廢言(불이인폐언)은 비록 그 사람이 결함이 있더라도 그가 한 말이 옳다면 취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관점에서 군자는 사람을 볼 때와 말을 들을 때 각기 다른 판단의 자리를 지킨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마음의 공정함을 시험하는 문장으로 읽는다. 사람을 좋아하면 말까지 옳게 여기고, 사람을 미워하면 말까지 틀렸다고 여기는 경향은 사심이 판단을 흐리는 전형적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은 단순한 행정 원칙을 넘어서, 시비를 사사로운 감정과 분리해 내는 군자의 공부를 드러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채용, 평가, 회의 문화 전반에 적용된다. 발표를 잘하고 언어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서 곧바로 책임 있는 자리에 올리면 실행력과 성품, 지속 가능성을 놓치기 쉽다. 반대로 평판이 좋지 않거나 관계가 불편한 사람이 제기한 문제라고 해서 내용을 검토하지 않으면, 조직은 필요한 경고를 스스로 차단하게 된다. 不以言擧人(불이언거인)과 不以人廢言(불이인폐언)은 결국 사람 평가와 주장 평가를 분리하는 조직의 기본 기술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원칙은 매우 날카롭다. 우리는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 쉽게 감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하면 맞는 말도 괜히 틀린 것처럼 느끼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하면 사람 보는 눈과 말 듣는 귀가 함께 흐려진다. 이 절은 누가 말했는가와 무엇을 말했는가를 구분하되, 어느 한쪽도 대충 넘기지 않는 성숙한 분별을 요구한다.


위령공편 22장은 한 문장으로 인사와 청언의 원칙을 동시에 세운다. 말만 보고 사람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화려한 언설보다 실제 사람됨을 보라는 뜻이고, 사람 때문에 말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호오와 편견이 시비 판단을 대신하게 두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장은 공정함을 두 개의 다른 오류를 함께 막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구절에서 실제 정치와 행정의 분별을 읽고, 송대 성리학은 그 분별이 가능하려면 마음이 먼저 사사로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두 흐름을 합치면 不廢人言(불폐인언)은 단순히 열린 자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선입견과 말의 타당성을 끝까지 갈라 보는 훈련을 뜻한다. 오늘에도 이 문장이 유효한 이유는, 대부분의 판단 오류가 사실 부족보다 편애와 편견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

참조


이전 글

논어 위령공 21장 — 긍이불쟁(矜而不爭) — 꿋꿋하되 다투지 않고 어울리되 편당 짓지 않는다

다음 글

논어 위령공 23장 — 종신행서(終身行恕) — 평생을 관통하는 한 글자 서(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