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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왕하으로

맹자 양혜왕하 5장 — 왕정가문(王政可聞) — 왕도 정치의 출발점은 백성과 함께하는 공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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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양혜왕하 5장 왕정가문(王政可聞) 대표 이미지

양혜왕하 5장은 明堂(명당)을 헐어야 하느냐는 질문에서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건축물의 존폐보다 王政可聞(왕정가문), 곧 왕도 정치의 실제 내용을 묻는 장이다. 맹자는 명당이 천자의 전당이라고 짚으면서, 겉모양을 없앨지 말지보다 그 공간에 걸맞은 정치를 행할 뜻이 있는지가 먼저라고 밀어붙인다. 그래서 이 장은 상징의 정치가 아니라 내용의 정치로 독자를 곧장 데려간다.

이어지는 문답에서 맹자는 문왕의 사례를 들어 왕정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풀어 낸다. 세금은 어떻게 거두어야 하는지, 시장과 어장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형벌은 어디까지 미쳐야 하는지, 그리고 鰥寡孤獨(환과고독) 같은 가장 약한 사람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가 한꺼번에 나온다. 왕도는 거창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백성의 삶을 실제로 지탱하는 제도의 묶음이라는 점이 이 장에서 또렷해진다.

후반부는 더 흥미롭다. 제 선왕은 스스로 好貨(호화)와 好色(호색)을 병통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맹자는 욕망 자체를 도려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대목을 민생 운영의 문제로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욕망이 與百姓同之(여백성동지), 곧 백성과 함께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본다. 결국 이 장은 왕정의 출발점이 무욕이 아니라 공유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1절 — 제선왕문왈(齊宣王問曰) — 명당을 허물 것인가

원문

齊宣王이問曰人皆謂我毁明堂이라하나니毁諸아已乎잇가

국역

제 선왕이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더러 明堂(명당)을 허물라고 합니다. 정말 허물어야 합니까, 아니면 그만두어야 합니까?”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明堂(명당)은 단순한 전각이 아니라 왕자가 천하의 질서를 드러내는 상징적 공간으로 읽힌다.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첫 질문을 건물 보존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명당을 허물자는 말이 나온 배경에는, 그 공간에 어울리는 정치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의심이 함께 깔려 있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는 형식과 실질의 긴장을 더 선명하게 본다.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명당을 예의 형식으로 이해하되, 형식이 비어 있으면 공허하고 형식을 무시해도 도가 서지 않는다고 읽는다. 그래서 이 첫 절은 외형을 버릴지 말지가 아니라, 무엇이 외형을 정당화하는가를 묻는 문답의 입구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오늘의 조직과 공공기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자주 생긴다. 문제가 생기면 건물, 조직, 이름, 상징부터 없애자고 말하지만, 정작 무엇을 대신 세울지는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맹자는 그 조급한 폐기론 앞에서 먼저 내용부터 묻는다.

개인 차원에서도 역할이나 타이틀을 버리는 일 자체가 곧 변화는 아니다. 그 역할 안에 어떤 책임과 실제가 들어 있었는지 돌아보지 않으면, 외형을 없애도 문제는 다른 형태로 남는다. 첫 절은 개혁의 첫 질문을 정확히 잡아 준다.

2절 — 맹자대왈부(孟子對曰夫) — 명당보다 먼저 세워야 할 왕정

원문

孟子對曰夫明堂者는王者之堂也니王欲行王政則勿毁之矣소서

국역

맹자가 대답했다. “明堂(명당)은 천자의 전당입니다. 왕께서 王政(왕정)을 행하려 하신다면 허물지 마십시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이 절은 명당 보존론이 아니라 왕정 실현론으로 읽힌다.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명당을 왕이 정사를 펼치는 자리로 본다. 따라서 맹자의 말은 건축물을 아끼자는 뜻이 아니라, 왕정이 가능하다면 그 상징을 먼저 무너뜨리지 말라는 뜻이 된다.

송대 성리학은 이 구절을 도를 담는 그릇의 문제로 읽는다.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예의 형식이 인의 실질과 연결될 때 비로소 산다고 본다. 형식만 남으면 허위가 되지만, 형식을 너무 빨리 허물면 도를 담을 자리도 사라진다. 그래서 맹자의 “허물지 말라”는 말은 보수적 집착이 아니라 내용 회복의 선행 조건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이 절은 제도 개편에서 순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운영 원리와 책임 구조는 손대지 않은 채 간판부터 내리면, 겉으로는 개혁 같아도 실질은 비어 있을 수 있다. 맹자는 먼저 王政(왕정)을 세울 뜻이 있느냐고 묻는다.

조직에서도 헌장, 위원회, 본부 같은 형식은 쉽게 비판받는다. 하지만 그 형식이 담아야 할 공공성과 책임을 어떻게 복원할지 함께 말하지 않으면 폐지는 해결이 아니다. 둘째 절은 개혁이 내용의 언어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환기한다.

3절 — 왕왈왕정(王曰王政) — 문왕의 정치가 무엇인지 들려주다

원문

王曰王政을可得聞與잇가對曰昔者文王之治岐也에耕者를九一하며仕者를世祿하며關市를譏而不征하며澤梁을無禁하며罪人을不孥하더시니老而無妻曰鰥이오老而無夫曰寡오老而無子曰獨이오幼而無父曰孤니此四者는天下之窮民而無告者어늘文王이發政施仁하시되必先斯四者하시니詩云哿矣富人이어니와哀此煢獨이라하니이다

국역

왕이 말했다. “王政(왕정)에 대해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 文王(문왕)이 (기)를 다스릴 때에는 농사짓는 백성에게 九一(구일)의 세를 적용하고, 벼슬아치에게는 世祿(세록)을 주었으며, 關市(관시)는 살피기만 하고 세금을 거두지 않았고, 澤梁(택량)은 금하지 않았으며, 죄인을 벌하더라도 가족까지 연좌시키지 않았습니다. 늙어 아내가 없는 사람을 (환), 늙어 남편이 없는 사람을 (과), 늙어 자식이 없는 사람을 (독), 어려서 아버지가 없는 아이를 (고)라 합니다. 이 네 부류는 천하에서 가장 곤궁하고 하소연할 데 없는 백성들입니다. 문왕은 정사를 펴고 (인)을 베풀 때 반드시 이들을 먼저 살폈습니다. 그래서 시에서는 ‘부유한 사람은 괜찮다 하더라도, 이 외로운 이들은 가엾다’라고 한 것입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이 절은 왕정의 청사진으로 읽힌다.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發政施仁(발정시인)을 추상적 덕목이 아니라 세금, 시장, 어장, 형벌, 빈민 보호를 아우르는 행정 원리로 본다. 정치가 좋다는 평가는 군주의 수사가 아니라 백성의 생계가 실제로 안정되는가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송대 성리학은 이 정책 조항들을 仁心(인심)의 제도화로 읽는다.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문왕이 약한 사람의 고통을 먼저 느끼는 마음을 세제와 형벌, 구휼의 질서로 펼쳤다고 본다. 그래서 鰥寡孤獨(환과고독)을 먼저 살피는 일은 시혜가 아니라, 정치가 출발해야 할 도덕적 우선순위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맹자는 왕정이 무엇인지 묻는 왕에게 한마디 표어가 아니라 정책 묶음으로 답한다. 세금은 가볍게, 시장은 지나치게 짜내지 않게, 생업을 막지 않게, 형벌은 과도하게 넓히지 않게, 약자는 먼저 보호하게 만드는 일들이 모두 한 덩어리의 정치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조세 정의, 규제 절제, 안전망, 비례적 처벌의 문제를 함께 묻는 셈이다.

이 절은 좋은 정치의 기준도 분명히 세운다. 평균적인 다수만 겨우 버티게 하는 체제가 아니라, 가장 취약한 사람이 먼저 보호받는 체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가 鰥寡孤獨(환과고독)을 앞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4절 — 왕왈선재(王曰善哉) — 재물을 좋아해도 백성과 함께하면 된다

원문

王曰善哉라言乎여曰王如善之則何爲不行이니잇고王曰寡人이有疾하니寡人은好貨하노이다對曰昔者에公劉好貨하더시니詩云乃積乃倉이어늘乃裹餱糧을于橐于囊이오思戢用光하여弓矢斯張하며干戈戚揚으로爰方啓行이라하니故로居者有積倉하며行者有裹糧也然後에야可以爰方啓行이니王如好貨어시든與百姓同之하시면於王에何有리잇고

국역

왕이 말했다. “참 좋습니다, 그 말씀.” 맹자가 말했다. “좋게 여기신다면 어찌하여 행하지 않으십니까?” 왕이 말했다. “과인에게는 병통이 있습니다. 과인은 好貨(호화), 곧 재물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 公劉(공류)도 재물을 좋아했습니다. 시에 이르기를, 곡식을 쌓아 창고에 두고, 마른 양식을 자루와 주머니에 싸 두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나라를 빛내며, 활과 화살을 준비하고 방패와 창을 갖추어 비로소 길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머무는 사람에게 창고의 비축이 있고 떠나는 사람에게 싸 갈 양식이 있은 뒤에야 출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왕께서 재물을 좋아하시더라도 그것을 백성과 함께하신다면, 왕이 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好貨(호화)를 무조건 탐욕으로만 몰지 않는다.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공류의 사례에서 중요한 점을 비축과 이동의 조건을 백성과 함께 마련했다는 데서 찾는다. 재물은 군주 사치의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백성의 정착과 생존을 떠받치는 자원이 될 수도 있다. 그 갈림길을 가르는 말이 與百姓同之(여백성동지)다.

송대 성리학은 이 절을 욕망의 공공화 문제로 읽는다.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재물을 좋아하는 마음 자체보다, 그 마음이 私欲(사욕)에 갇히는지 아니면 백성의 삶을 넓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본다. 그래서 맹자의 대답은 금욕의 요구가 아니라 방향 전환의 요구다.

현대적 해석·함의

이 절은 경제를 중시하는 태도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조직도 국가도 자원을 모으고 축적해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자원이 누구를 위해 쓰이느냐이다. 소수의 사적 축적에 머무르면 원망이 생기고, 모두의 기반을 넓히는 데 쓰이면 정당성이 생긴다.

개인 차원에서도 돈을 좋아하는 마음을 무조건 숨길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돈이 나만의 과시로 흐르는지, 아니면 가족과 공동체의 안정과 미래를 넓히는 데 쓰이는지가 중요하다. 맹자는 욕망을 없애라고 하지 않고, 나누라고 요구한다.

5절 — 왕왈과인(王曰寡人) — 사랑 또한 백성과 함께 가야 한다

원문

王曰寡人이有疾하니寡人은好色하노이다對曰昔者에大王이好色하사愛厥妃하더시니詩云古公亶父來朝走馬하사率西水滸하여至于岐下하여爰及姜女로聿來胥宇라하니當是時也하여內無怨女하며外無曠夫하니王如好色이어시든與百姓同之하시면於王에何有리잇고

국역

왕이 말했다. “과인에게는 병통이 있습니다. 과인은 好色(호색)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 太王(태왕)도 여색을 좋아하여 자기 부인을 사랑했습니다. 시에 이르기를, 고공단보가 아침에 말을 달려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 아래에 이르러 강녀와 함께 집터를 살폈다고 했습니다. 그때에는 안으로 원망하는 처녀가 없었고, 밖으로 짝을 얻지 못한 남자도 없었습니다. 왕께서 여색을 좋아하시더라도 그것을 백성과 함께하신다면, 왕이 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好色(호색)을 방종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태왕의 사례를 통해 군주의 애정이 백성의 삶을 해치는 사치가 아니라, 혼인과 생활 질서가 안정된 사회와 함께 갈 수 있음을 본다. 內無怨女(내무원녀), 外無曠夫(외무광부)는 개인 감정이 공적 질서와 충돌하지 않는 상태를 보여 주는 표지다.

송대 성리학은 이 절에서 욕망을 다스리는 방향을 읽는다.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사랑의 감정이 사사로운 향락에 갇히지 않고 백성도 각자의 가정을 이루는 질서와 함께 갈 때 정당성을 얻는다고 본다. 그러므로 與百姓同之(여백성동지)는 군주의 욕망을 대중에게 흩뿌린다는 뜻이 아니라, 욕망이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게 만드는 정치 원리다.

현대적 해석·함의

사랑과 욕망은 가장 사적인 영역처럼 보이지만, 지도자의 경우에는 늘 공적 조건과 맞물린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 욕망을 위해 타인의 존엄과 기회를 훼손한다면 그것은 곧 정치 문제가 된다. 맹자는 바로 그 경계를 묻는다.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與百姓同之(여백성동지)는 모두가 관계를 맺고 삶을 꾸릴 최소한의 조건, 곧 주거와 생계, 돌봄과 존엄을 넓히는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 왕도는 욕망을 지운 상태가 아니라, 욕망이 공동체와 충돌하지 않게 만든 상태라는 점을 마지막 절이 선명하게 보여 준다.


양혜왕하 5장은 王政可聞(왕정가문)이라는 질문 하나로 왕도의 실체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맹자는 문왕의 사례를 통해 세금, 시장, 생업, 형벌, 약자 보호를 하나의 정치로 묶고, 왕정은 가장 약한 이들을 먼저 살피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한대 훈고가 이것을 민생 행정의 구체 조목으로 읽었다면, 송대 성리학은 그 조목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의 방향까지 함께 읽어 냈다.

후반의 好貨(호화)와 好色(호색) 문답은 이 장을 더 현실적으로 만든다. 맹자는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이 백성과 함께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느냐를 묻는다. 與百姓同之(여백성동지)라는 한마디는 재물과 사랑, 제도와 상징을 모두 관통하는 기준이 된다. 왕도 정치의 출발점은 금욕이 아니라 공유다.

오늘의 정치와 조직 운영에도 이 기준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도자의 취향과 욕망, 제도의 상징과 운영 원리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독점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조건으로 바꾸는 능력, 바로 거기서 왕정은 다시 들을 만한 말이 된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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