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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왕하으로

맹자 양혜왕하 16장 — 후상유전(後喪踰前) — 상례 비난을 넘어 하늘의 뜻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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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양혜왕하 16장 후상유전(後喪踰前) 대표 이미지

양혜왕하 16장은 군주와 현자의 만남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짧고도 예리한 장이다. 魯平公(노평공)은 맹자를 만나려 하지만, 총애받는 측근 臧倉(장창)이 後喪踰前(후상유전)이라는 상례 비난을 내세워 그 만남을 가로막는다. 예를 중시하는 정치 세계에서 이 비난은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 장의 중심은 단순한 참언 폭로에 있지 않다. 악정자는 문제의 핵심이 상례 등급의 파괴가 아니라 貧富不同(빈부부동), 곧 형편 차이였음을 짚어 낸다. 예가 외형의 균일함만을 요구하는지, 아니면 현실 조건 속에서 본뜻을 지키는지를 묻는 문답이 여기서 펼쳐진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참언과 정명, 그리고 상례 기준의 문제로 읽는다. 겉으로는 예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현자를 막는 총신의 술수가 드러나고, 동시에 상례 판단은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제도적 등급의 적합성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을 더 넓게 읽는다. 예의 실질을 놓치지 않는 안목과, 이루어지지 않은 만남 앞에서도 天也(천야)라고 말할 수 있는 군자의 평정이 함께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혜왕하 16장은 양혜왕하 끝부분에서 예와 정치, 운명을 함께 다루는 인상적인 장으로 놓인다.

1절 — 노평공이장출할새(魯平公이將出할새) — 장창의 참언이 만남을 막다

원문

魯平公이將出할새嬖人臧倉者請曰他日에君이出則必命有司所之러시니今에乘輿已駕矣로되有司未知所之하니敢請하노이다公曰將見孟子하리라曰何哉잇고君所爲輕身하여以先於匹夫者는以爲賢乎잇가禮義는由賢者出이어늘而孟子之後喪이踰前喪하니君無見焉하소서公曰諾다

국역

노평공(魯平公)이 외출을 하려고 하는데,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는 장창(臧倉)이란 자가 아뢰었다. “전에는 임금께서 외출하시게 되면 반드시 담당자에게 가시는 곳을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수레에 이미 멍에를 매고 대기하고 있는데도 담당자가 갈 곳을 모르고 있습니다. 말씀해 주시기를 감히 청하옵니다.” 평공이 말하였다. “맹자를 만나 보려고 한다.” 장창이 말하였다. “임금께서 몸을 낮추시어 필부를 먼저 찾아가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어질다고 여겨서입니까? 예의라는 것은 현자에게서 나오는 법인데, 맹자는 나중에 치른 어미의 초상이 앞서 치른 아비의 초상에 비해 훨씬 도를 넘었습니다. 임금께서는 그를 찾아가지 마십시오.” 평공이 말하였다. “알았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대목을 총신의 참언이 군주의 판단을 흐리는 사례로 읽는다. 장창은 예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군주와 현자의 만남을 끊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문제의 핵심은 맹자의 상례 자체보다, 예의 언어가 정치적 방해의 수단으로 사용된 데 있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군주가 현자를 향해 몸을 낮추는 일이 덕 있는 정치의 일부라고 본다. 그런데 장창은 그 겸손을 도리어 체면 손상처럼 바꾸어 해석한다. 이 절은 예의 이름을 빌린 비난이 얼마나 쉽게 정치적 판단을 왜곡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중요한 만남이나 채용, 협업은 종종 당사자보다 주변 사람의 해석을 통해 먼저 좌우된다. 특히 측근이 절차와 규범의 언어를 앞세우기 시작하면, 리더는 실제 판단보다 전달된 인상에 끌려가기 쉽다.

개인과 일상의 차원에서도 누군가를 평가할 때 직접 확인보다 전해 들은 평판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이 절은 그럴수록 한 사람의 말이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는지, 또 그 말이 정말 규범을 지키려는 것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2절 — 악정자입견왈(樂正子入見曰) — 지나침이 아니라 형편의 차이다

원문

樂正子入見曰君이奚爲不見孟軻也잇고曰或이告寡人曰孟子之後喪이踰前喪이라할새是以로不往見也호라曰何哉잇고君所謂踰者는前以士오後以大夫며前以三鼎而後以五鼎與잇가曰否라謂棺槨衣衾之美也니라曰非所謂踰也라貧富不同也니이다

국역

악정자가 들어가 평공을 뵙고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어째서 맹가(孟軻)를 만나보지 않으셨습니까?” 평공이 말하였다. “어떤 이가 과인에게 ‘맹자가 나중에 치른 어미의 초상이 먼저 치른 아비의 초상에 비해 훨씬 도를 넘었다.’고 하기에, 이 때문에 가서 만나보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임금께서 말씀하신 이른바 도를 넘었다는 것은. 앞서는 사(士)의 예(禮)로 하고 뒤에는 대부(大夫)의 예로 하였으며, 앞서는 삼정(三鼎)의 제기를 쓰고 뒤에는 오정(五鼎)의 제기를 쓴 일을 말씀하십니까?” “아니다. 내관(內棺)과 덧널, 수의(壽衣)와 이불이 너무 좋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이른바 도를 넘은 것이 아니라 경제 형편이 달랐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예의 판단 기준이 등급과 제도에 있지, 물질의 많고 적음 그 자체에 있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상례의 공식적 등급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형편이 달라 더 좋은 물건을 썼다고 해서 곧바로 踰禮(유례)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예의 본뜻을 밝히는 문장으로 읽는다. 예는 사람의 정과 형편을 절도 있게 이끄는 규범이지, 현실 차이를 무시한 채 모든 외형을 억지로 같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다. 그래서 貧富不同(빈부부동)은 예의 약화가 아니라 예의 실제 운용 원리를 보여 주는 설명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제도 운영의 차원에서 보면, 어떤 행위를 비판할 때는 정말 규정 위반인지 아니면 형편 차이에서 나온 외형 차이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이 구분이 흐려지면 공정성의 언어는 쉽게 질투나 인상비평의 도구가 된다.

개인과 일상의 차원에서도 같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검소함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함으로 읽힐 수 있다. 이 절은 그런 판단 앞에서 먼저 기준을 되묻는다. 정말 예의 본질을 어긴 것인지, 아니면 단지 처지와 자원이 달랐을 뿐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3절 — 악정자견맹자왈(樂正子見孟子曰) — 만나지 못함도 하늘의 일이다

원문

樂正子見孟子曰克이告於君하니君이爲來見也러시니嬖人有臧倉者沮君이라君이是以로不果來也하시니이다曰行或使之며止或尼之나行止는非人의所能也라吾之不遇魯侯는天也니臧氏之子焉能使予로不遇哉리오

국역

악정자가 맹자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임금께 아뢰자, 임금께서 선생님을 한번 찾아 뵐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총애를 받고 있는 장창이라는 자가 임금을 막는 바람에, 임금께서 이 때문에 결국 오시지 않은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시켜서 가기도 하고 만류하여 멈추기도 하지만, 결국 가거나 멈추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노 나라 임금을 만나지 못한건 하늘의 뜻인 것이다. 장씨의 아들이 어찌 나로 하여금 임금을 못 만나게 할 수 있겠느냐.”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군자의 처세 태도로 읽는다. 소인의 방해와 참언이 현실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군자는 모든 결과를 눈앞의 인물 하나에게만 돌리지 않는다. 인간의 계기와 하늘의 시기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 군자의 넓은 시야라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天也(천야)를 체념의 말이 아니라 도를 지키는 평정의 말로 읽는다. 해야 할 말을 하고 만나야 할 사람을 향해 나아가되,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일 앞에서 자신의 뜻과 품격까지 흔들리게 하지 않는 태도가 여기 담겨 있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과 리더십의 차원에서 보면, 중요한 기회가 무산될 때 누가 막았는지 파악하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모든 실패를 특정 개인 하나의 술수로만 환원하면 문제를 과장되게 단순화하게 되고, 스스로의 판단력도 그 사람에게 종속되기 쉽다.

개인과 일상의 차원에서 天也(천야)는 포기가 아니라 시야를 지키는 말로 읽을 수 있다. 누군가가 길을 막았더라도 자기 삶의 의미 전체를 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는 태도, 이루어지지 않은 일 앞에서도 도리와 평정을 잃지 않는 태도가 이 마지막 절의 핵심이다.


양혜왕하 16장은 예를 둘러싼 비난과 정치적 참언이 어떻게 군주의 판단을 흔드는지 보여 주면서도,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상례 판단의 기준과 총신의 방해라는 문제로 읽었고, 송대 성리학은 여기에 더해 예의 실질과 군자의 평정이라는 층위를 분명히 드러냈다. 두 갈래는 모두 외형만 붙들면 본뜻을 놓친다는 점에서 만난다.

그래서 이 장의 핵심은 後喪踰前(후상유전)이라는 비난 자체보다, 그 비난을 어떻게 판별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있다. 악정자는 貧富不同(빈부부동)으로 예의 본뜻을 복원했고, 맹자는 天也(천야)로 인간의 모함을 넘어서는 넓은 시야를 보였다. 예와 정치, 운명에 대한 맹자의 균형감각이 짧은 문답 안에 압축되어 있다.

오늘의 조직과 개인 삶에서도 이 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규범의 언어가 누군가를 배제하는 구실로 쓰이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한 번의 좌절을 특정 인물 하나에게만 묶어 자신의 중심까지 흔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양혜왕하 16장은 그런 점에서 매우 현실적인 장이다.

등장 인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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