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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추상으로

맹자 공손추상 4장 — 인즉영(仁則榮) — 인이면 영화롭고 불인이면 욕되니 스스로 복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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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공손추상 4장 인즉영(仁則榮) 대표 이미지

공손추상 4장은 짧지만, 맹자의 정치론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아주 또렷하게 보여 준다. 첫 구절의 仁則榮(인즉영)과 不仁則辱(불인즉욕)은 영화와 치욕이 외부 환경보다 통치자의 마음과 선택에서 갈린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이 장은 위기 대응법을 말하는 글이기 전에, 먼저 자리를 바로잡으라는 경계로 읽힌다.

장 전체의 전개도 정밀하다. 1절에서 영욕의 근본을 밝힌 뒤, 2절에서는 貴德(귀덕)과 尊士(존사), 賢者在位(현자재위)와 能者在職(능자재직)으로 정치의 순서를 제시한다. 이어 3절과 4절은 나라가 한가할 때야말로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5절과 6절은 결국 화와 복이 모두 스스로 부른 결과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치국의 실제 조목으로 읽는다.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군주가 불인의 자리에 머무르면서 치욕만 피하려는 모순을 강하게 지적하고, 안정기일수록 인재와 제도를 먼저 정비해야 한다고 본다. 이 독법에서 핵심은 영욕의 감정이 아니라, 정치의 뿌리를 어디에 두느냐다.

송대 성리학은 같은 문장을 더 안쪽으로 끌어들인다.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居不仁(거불인)을 마음이 바르지 못한 자리로 읽고, 自求多福(자구다복)을 천명에 맞게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과 연결한다. 그래서 공손추상 4장은 정치 철학이면서 동시에 수양론으로도 깊게 읽힌다.

1절 — 맹자왈인즉영(孟子曰仁則榮) — 영욕의 근본은 인에 있다

원문

孟子曰仁則榮하고不仁則辱하나니今에惡辱而居不仁이是猶惡濕而居下也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이 인(仁)을 행하면 영화를 누리고 불인(不仁)을 행하면 치욕을 당하게 되어 있는데, 오늘날의 임금들은 치욕을 싫어하면서도 불인한 데에 머물고 있으니, 이는 습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낮은 곳에 머무는 것과 같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군주 비판의 핵심으로 본다. 치욕은 외부의 공격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군주가 스스로 不仁(불인)의 자리에 머무를 때 이미 시작된다고 읽는다. 그래서 (영)과 (욕)은 단순한 명예감정이 아니라 정치 질서의 성패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居不仁(거불인)을 마음의 자리 문제로 읽는다. 마음이 사사로운 욕심과 안일에 머물면 바깥에서 욕됨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영욕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마음이 어디에 머무르는가의 필연적 귀결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는 평판 하락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기준을 무너뜨리는 조직의 모습과 겹친다. 욕됨을 피하려면 홍보나 수습보다 먼저 운영 원리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이 절이 분명하게 말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결과만 미워하고 원인을 붙든 채 사는 경우가 많다. 맹자는 그런 태도를 낮은 곳에 살며 습기를 원망하는 일에 비유한다. 바뀌어야 할 것은 감정이 아니라 자리와 습관이라는 뜻이다.

2절 — 여오지인댄막여(如惡之인댄莫如) — 치욕이 싫다면 덕과 사람을 세워라

원문

如惡之인댄莫如貴德而尊士니賢者在位하며能者在職하여國家閒暇어든及是時하여明其政刑이면雖大國이라도必畏之矣리라

국역

만일 치욕을 당하는 것이 싫다면 덕(德)이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유능한 선비를 존중하는 것이 상책이다. 덕이 있는 사람이 걸맞는 지위에 있고 유능한 사람이 걸맞는 직책에 있어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별일이 없게 되거든 그때 가서 행정과 형벌 제도를 잘 정비한다면 비록 강대국이라도 반드시 그 나라를 두려워할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치국의 실제 순서로 읽는다. 먼저 사람을 바로 세우고, 그 다음에 政刑(정형)을 밝히며, 그 결과 외부 강국도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하게 된다고 본다. 즉 억지로 두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쪽 질서가 바로 설 때 바깥의 경외가 따라온다는 이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덕이 제도의 뿌리라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덕과 사람을 세우지 않은 채 형벌과 규정만 앞세우면 패도에 가까워지고, 덕 있는 사람을 세운 뒤 제도를 밝히면 왕도의 질서가 살아난다고 읽는다. 그래서 貴德(귀덕)은 도덕 수사가 아니라 제도 운용의 선행 조건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 운영으로 보면, 위기 이후에 규정만 덧붙이는 방식보다 누가 핵심 자리에 있는지를 먼저 바로잡는 방식이 훨씬 근본적이다. 사람을 바로 세운 뒤 제도를 다듬어야 외부 경쟁자도 그 조직을 가볍게 보지 못한다.

개인의 삶에서도 안정기가 오면 바로 그때 원칙을 세우고 생활 구조를 손봐야 한다. 여유가 있을 때 기준을 정리하지 않으면, 한가함이 곧 방심으로 바뀌기 쉽다. 맹자는 태평할 때가 오히려 준비의 시간이라고 본다.

3절 — 시운태천지미음(詩云迨天之未陰) — 비 오기 전에 문을 얽어매다

원문

詩云迨天之未陰雨하여徹彼桑土하여綢繆牖戶면今此下民이或敢侮予아하여늘孔子曰爲此詩者其知道乎인저能治其國家면誰敢侮之리오하시니라

국역

≪시경≫에 ‘장마비 오기 전에 뽕나무뿌리 껍질 벗겨, 둥지 창문 얽어매면 저 아래 인간들이 감히 나를 깔보겠나.’ 하였는데, 공자께서는 ‘이 시(詩)를 지은 자는 아마도 도(道)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자기 나라를 잘 다스린다면 누가 감히 깔볼 수 있겠는가.’ 하셨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평상시 대비의 정치론으로 읽는다. 牖戶(유호)를 미리 얽어매듯 나라가 한가할 때 질서를 정비해야 이후의 모욕을 피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업신여김을 막는 힘은 무력 과시가 아니라 준비된 질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도를 안다는 것을 조짐을 미리 읽고 먼저 바로잡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마음이 풀어지기 전에 스스로를 단속하고, 일이 터지기 전에 질서를 세우는 것이 진짜 앎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절은 정치적 대비이면서 동시에 수양의 경계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관점에서는 위기관리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 구절이다. 문제가 드러난 뒤 해명과 수습에 매달리는 조직보다, 평온할 때 구조를 정비하고 취약한 연결부를 보강하는 조직이 더 강하다.

개인의 삶에서도 건강할 때 생활을 다듬고, 관계가 좋을 때 약속과 경계를 분명히 하는 일이 바로 綢繆牖戶(주무유호)다. 큰 위기를 피하는 힘은 대개 작은 준비에서 나온다.

4절 — 금국가한가어든급시시(今國家閒暇어든及是時) — 태평한 때의 방심은 스스로 화를 부른다

원문

今國家閒暇어든及是時하여般樂怠敖하나니是는自求禍也니라

국역

오늘날에는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별일이 없게 되면, 이때 와서 향락에 빠지거나 나태하고 거만한 짓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은 화를 자초하는 짓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안정기일수록 경계가 느슨해지기 쉽다는 점에 주목한다. 태평한 시기를 향락과 자만으로 허비하면, 바로 그 안일이 이후의 재앙이 된다고 본다. 그래서 國家閒暇(국가한가)는 쉬어도 되는 시간이 아니라 더 정밀하게 손볼 수 있는 시간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怠敖(태오)를 마음의 병으로 읽는다. 바깥 환경이 편안해질수록 안쪽에서 경계가 풀리고, 그 풀어진 마음이 교만과 태만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성리학이 태평한 때의 공부를 특히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은 위기 속에서보다 성과가 좋을 때 더 쉽게 무너진다. 매출이 오르고 외부 평가가 좋아질수록 점검을 줄이고, 내부 경고를 가볍게 여기며, 리더가 자신을 과신하는 일이 잦아진다. 맹자는 그런 순간이 바로 화의 입구라고 본다.

개인도 일이 풀릴 때 생활 리듬과 관계의 예의를 쉽게 놓친다. 편안한 시기의 작은 방심이 나중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안정은 휴식의 이유이면서 동시에 경계의 이유가 된다.

5절 — 화복이무불자기(禍福이無不自己) — 화와 복은 모두 스스로 구한다

원문

禍福이無不自己求之者니라

국역

그렇다면 화(禍)와 복(福)은 결국 모두 자기로 인해 생겨나지 않는 것이 없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한 구절을 앞선 모든 논의의 결론으로 읽는다. 영예와 치욕, 강함과 모욕, 안정과 재앙이 모두 결국 자기 쪽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짧지만 정치론 전체를 묶는 마무리 문장으로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자기 책임의 윤리로 더 깊게 읽는다. 외부 조건이 아무리 복잡해도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어떤 선택을 반복하는지가 결국 화복을 가른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운명론보다 자기 수양을 더 무겁게 만든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의 언어로 옮기면, 외부 위협보다 내부 결정이 더 큰 결과를 만든다는 뜻이다. 경쟁사나 경기 변동은 통제하기 어렵지만, 사람을 잃고 기준을 무너뜨리며 경고를 무시하는 일은 조직 스스로 만드는 화다.

개인의 삶에서도 예기치 못한 사건은 피하기 어려워도, 반복되는 습관과 선택은 분명히 자기 몫이다. 맹자는 그 지점을 외면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결과를 바꾸려면 먼저 선택의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6절 — 시운영언배명(詩云永言配命) — 천명에 맞추어 스스로 복을 구하라

원문

詩云永言配命이自求多福이라하며太甲에曰天作孼은猶可違어니와自作孼은不可活이라하니此之謂也니라

국역

≪시경≫에 ‘천명에 부합하기 언제나 생각하여 스스로 많은 복을 불러 들이셨네.’ 하였고, ≪서경≫ 태갑편(太甲篇)에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에는 살 길이 없다.’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太甲의 인용을 통해 앞선 결론을 경전으로 다시 확증한다고 본다. 복도 스스로 구하고 화도 스스로 만든다는 논리를, 서로 다른 고전의 권위로 거듭 밝히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공손추상 4장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경전적 원칙으로 마무리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配命(배명)을 천명과 마음의 바름이 서로 어긋나지 않는 상태로 읽는다. 복은 밖에서 떨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도리에 맞는 마음과 실천에서 자라고, 재앙 역시 방심과 욕심이 길러 낸 결과로 본다. 그래서 이 절은 천명을 핑계로 삼지 말고, 오히려 천명에 맞게 자신을 다스리라는 요청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의 차원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충격보다, 내부에서 이미 알고도 고치지 않은 문제가 더 치명적이라는 경고로 읽힌다. 시스템 결함, 왜곡된 인사, 방치된 문화 문제는 대부분 自作孼(자작얼)에 가깝다.

개인의 삶에서도 큰 불운보다 스스로 반복해 만든 무너짐이 더 아프다. 복을 바란다면 막연한 운을 기다리기보다 지금의 선택을 천명에 맞게 다듬어야 한다. 맹자의 결론은 늘 바깥보다 안쪽을 먼저 고치라는 데 있다.


공손추상 4장은 仁則榮(인즉영)에서 시작해 自求多福(자구다복)으로 끝난다. 처음에는 영욕의 원인을 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인재 등용, 제도 정비, 위기 대비, 자기 책임까지 한 줄로 꿰어 내는 장이다. 짧은 분량 안에 정치의 시작과 끝이 모두 들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한대 훈고가 이 장을 치국의 순서로 읽고, 송대 성리학이 마음의 자리와 수양의 문제로 읽더라도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치욕을 미워한다면 불인의 자리를 떠나야 하고, 복을 원한다면 지금의 마음과 선택을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독자에게도 이 장은 여전히 날카롭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위기는 대개 밖에서 갑자기 떨어지기보다 안에서 오래 길러진다. 맹자는 그 점을 외면하지 말고, 안정할 때 더 깊이 자신을 돌아보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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