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추하(公孫丑下) 2장은 맹자(孟子)가 제선왕(齊宣王)의 부름을 병을 이유로 사양한 일에서 출발하지만, 곧바로 예(禮)의 표면을 넘어 군주와 선비가 서로를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지를 묻는 장으로 깊어진다. 짧게 보면 왕명을 거절한 일화지만, 길게 읽으면 권위와 덕(德)의 위계가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설명하는 한 편의 정치철학이다.
장 앞부분에서는 맹자(孟子)의 처신이 과연 예(禮)에 맞는가가 문제로 떠오른다. 공손추(公孫丑)는 병을 이유로 조회를 사양한 다음 날 조문을 간 일을 의아하게 여기고, 경자(景子)는 군신(君臣)의 공경을 앞세워 더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맹자는 이 비판을 피해 가지 않고, 오히려 참된 공경이란 임금을 낮은 기준으로 대하지 않는 일이라고 맞받아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예문(禮文)의 조항과 현실의 처신이 맞부딪히는 자리로 본다. 여기서는 조정(朝廷)에서의 작위, 향당(鄕黨)에서의 연령,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자리에서의 덕(德)이 각각 다른 기준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중요해진다. 즉 맹자의 불응은 무례의 문제가 아니라, 존귀함의 기준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을 不召之臣(불소지신)과 尊德樂道(존덕낙도)의 문제로 읽는다. 큰일을 하려는 군주라면 덕 있는 이를 함부로 부르는 대신 스스로 찾아가 배워야 하며, 그 태도가 없으면 함께 왕도 정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三達尊(삼달존)의 선언은 예론(禮論)의 결론이자, 정치의 출발점을 다시 세우는 말이 된다.
이 장이 공손추하(公孫丑下)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분명하다. 1장이 天時(천시)·地利(지리)보다 人和(인화)를 앞세워 정치의 기반을 말했다면, 2장은 그 人和(인화)가 성립하려면 군주 자신이 무엇을 존귀하게 여겨야 하는지 묻는다. 민심을 얻는 정치의 앞단에는 덕(德)을 알아보고 예(禮)의 형식을 넘어설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장은 왕도 정치의 인재론과 예론을 함께 여는 핵심 대목이다.
1절 — 맹자장조왕(孟子將朝王) — 맹자의 조회 사양
원문
孟子將朝王이러시니王이使人來曰寡人이如就見者也러니有寒疾이라不可以風일새朝將視朝하리니不識케이다可使寡人으로得見乎잇가對曰不幸而有疾이라不能造朝로소이다
국역
맹자께서 왕에게 조회하려 하셨는데, 왕이 사람을 보내 말했습니다. “과인이 직접 찾아가 뵈려 했으나 한질(寒疾)이 있어 바람을 쐴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 조회를 볼 터이니, 과인이 그때 선생을 뵐 수 있겠습니까?” 맹자께서는 “불행히도 병이 있어 조회에 나갈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축자 풀이
朝王(조왕)은 왕을 알현하러 나아감을 뜻한다.就見(취견)은 직접 가서 만남을 청하는 일이다.寒疾(한질)은 바람을 피해야 하는 병환을 가리킨다.視朝(시조)는 왕이 조회를 보는 공식 정무 자리다.造朝(조조)는 조정(朝廷)에 나아감을 말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첫 장면을 군신 사이의 예(禮)와 분수를 가늠하는 발단으로 본다. 왕이 먼저 就見(취견)을 말한 것은 존중의 표시처럼 보이지만, 끝내 조회 자리에서 보기를 청한 만큼 관계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군주 쪽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맹자의 사양은 단순한 병 핑계가 아니라, 만남의 형식이 덕(德)을 충분히 예우하는지 묻는 응답으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면을 선비가 권세 앞에서 자기 기준을 잃지 않는 자리로 읽는다. 병이 있다는 짧은 말 뒤에는, 도(道)를 전하는 자가 오직 권세의 호명만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응답은 무례가 아니라, 이후 三達尊(삼달존) 논의로 이어질 명분의 첫 단추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장면은 권한이 큰 사람이 먼저 예우를 보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 절차와 만남의 형식은 여전히 비대칭적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맹자(孟子)는 그 비대칭을 정면으로 뒤엎지는 않지만, 자기 기준 없이 끌려가지는 않는다. 禮(예)는 단지 빨리 응하는 태도가 아니라, 상대를 어떤 자리에서 만나느냐까지 포함하는 규범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개인과 일상에서는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자기 기준을 놓지 않는 거절의 방식으로 읽힌다. 모든 요청에 곧바로 응하는 것이 곧 예의는 아니며, 자신의 몸과 상황, 그리고 관계의 형식을 함께 살피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맹자의 한마디는 부드럽지만 분명한 경계의 언어다.
2절 — 명일출조어동곽씨(明日出弔於東郭氏) — 병이 나으면 조문은 간다
원문
明日에出弔於東郭氏러시니公孫丑曰昔者에辭以病하시고今日弔或者不可乎인저曰昔者疾이今日愈어니如之何不弔리오
국역
다음 날 맹자께서 동곽씨(東郭氏) 집에 조문하러 가시자, 공손추가 말했습니다. “어제는 병을 이유로 조회를 사절하시고 오늘 조문을 가시는 것은 아무래도 온당하지 않은 듯합니다.” 맹자께서는 “어제는 아팠고 오늘은 나았으니, 어찌 조문하지 않겠느냐”라고 답하셨습니다.
축자 풀이
出弔於東郭氏(출조어동곽씨)는 동곽씨(東郭氏)에게 가서 조문함을 말한다.辭以病(사이병)은 병을 이유로 사양했다는 뜻이다.今日弔(금일조)는 오늘 조문에 나섰다는 말이다.今日愈(금일유)는 오늘 병이 나았음을 가리킨다.如之何不弔(여지하불조)는 어찌 조문하지 않겠느냐는 반문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어제의 사양과 오늘의 조문을 한 덩어리의 모순으로 보지 않는다. 병이 있던 시점과 병이 나은 시점이 다르므로, 서로 다른 예(禮)의 실천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독법은 예(禮)가 기계적 일관성이 아니라 현실의 형편을 반영하는 판단임을 드러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문답을 성실함의 문제로 읽는다. 병이 있으면 억지로 나아가지 않고, 병이 나으면 조문이라는 마땅한 도리를 다시 행하는 것이 오히려 진실한 태도라는 뜻이다. 형식만 고집해 실제 사정을 외면하는 것은 성리학적 독법에서도 옳은 예(禮)가 아니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어제의 사유와 오늘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몸 상태나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과거의 말을 지키기 위해 현재의 도리를 미루는 것은 진정한 일관성이 아니다. 맹자의 답은 사실에 맞는 설명이 곧 책임 있는 행동의 전제임을 보여 준다.
개인의 삶에서도 회복 이후에는 다시 해야 할 일을 하는 편이 맞다. 쉬어야 할 때 쉬고,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이는 분별이 중요하다. 이 절은 억지 강행도, 무기한 회피도 아닌 현실적인 예(禮)를 말한다.
3절 — 왕사인문질(王使人問疾) — 맹중자의 난처한 방편
원문
王이使人問疾하시고醫來어늘孟仲子對曰昔者에有王命이어시늘有采薪之憂라不能造朝러시니今病少愈어시늘趨造於朝하더시니我는不識케라能至否乎아하고使數人으로要於路曰請必無歸而造於朝하소서
국역
왕이 사람을 보내 병을 묻고 의원까지 보내 오자, 맹중자가 대답했습니다. “어제 왕명이 있었으나 병환이 있어 조회에 나가지 못하셨는데, 오늘 병이 조금 나아 조정으로 서둘러 가셨습니다. 벌써 도착했는지는 저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몇 사람을 길목에 보내 “부디 돌아오지 마시고 조정으로 나아가시라”고 전하게 했습니다.
축자 풀이
問疾(문질)은 병문안을 하며 상태를 묻는 일이다.采薪之憂(채신지우)는 몸이 불편한 병환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病少愈(병소유)는 병이 조금 나았다는 뜻이다.趨造於朝(추조어조)는 서둘러 조정으로 나아감을 가리킨다.要於路(요어로)는 길목에서 기다리며 붙드는 일을 뜻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면을 제자 맹중자(孟仲子)의 임기응변으로 본다. 왕명(王命)과 실제 행적 사이의 긴장을 즉시 봉합해야 하는 처지에서, 그는 완곡한 병명과 모호한 설명으로 시간을 번다. 이 독법은 맹자의 고의보다, 주변 인물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 압박과 예제(禮制)의 무게를 함께 드러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맹중자의 대응을 높은 원칙 앞에서 흔들리는 주변의 심리로 읽는다. 도(道)를 지키는 스승의 태도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당장 불러올 마찰을 제자는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방편으로 메우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절은 원칙이 높을수록 중간에서 그 원칙을 설명하는 말 또한 더 어려워진다는 점을 보여 준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 원칙적 결정이 내려지면, 중간 실무자는 종종 그 결정을 끝까지 설명하지 못하고 우회적 해명을 택한다. 맹중자(孟仲子)의 말은 바로 그런 난처한 중간자의 언어처럼 들린다. 원칙과 관계 관리가 어긋날 때 현장은 쉽게 임시방편으로 흐른다.
일상에서도 비슷하다. 누군가의 분명한 기준을 대신 설명해야 할 때, 사람은 종종 충돌을 줄이려고 애매한 말을 고른다. 이 절은 그 방편 자체보다, 왜 그런 방편이 필요해지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4절 — 부득이이지경추씨(不得已而之景丑氏) — 군신의 큰 윤리
원문
不得已而之景丑氏하여宿焉이러시니景子曰內則父子오外則君臣이人之大倫也니父子는主恩하고君臣은主敬하니丑見王之敬子也오未見所以敬王也케이다
국역
맹자께서 부득이하게 경추씨(景丑氏)의 집에 가서 하룻밤 묵으셨습니다. 그러자 경자가 말했습니다. “집안에서는 부자(父子)가, 밖에서는 군신(君臣)이 사람의 큰 윤리입니다. 부자 사이는 은혜가 중심이고 군신 사이는 공경이 중심인데, 저는 왕이 선생을 공경하는 것은 보았으나 선생이 왕을 공경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축자 풀이
不得已(부득이)는 어쩔 수 없는 형편을 뜻한다.景丑氏(경추씨)는 맹자가 머문 집의 주인이다.人之大倫(인지대륜)은 사람 사이의 큰 윤리를 가리킨다.父子主恩(부자주은)은 부자 관계의 중심이 은혜에 있음을 말한다.君臣主敬(군신주경)은 군신 관계의 중심이 공경에 있음을 뜻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경자(景子)의 말을 예(禮)의 상식적 기준을 대표하는 반론으로 본다. 부자(父子)는 은혜, 군신(君臣)은 공경이라는 구별은 당시 윤리 질서의 기본 문법이었고, 그 기준에서 보면 맹자의 행위는 분명 의심을 살 만하다. 따라서 이 절은 맹자의 사양이 단순한 개인 취향이 아니라 공적 논쟁을 부르는 중대한 처신이었음을 보여 준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공경의 의미를 다시 묻는 질문으로 읽는다. 경자(景子)는 겉으로 드러난 응대와 순종을 공경으로 보지만, 맹자는 바로 다음 절에서 그 기준을 뒤집는다. 이런 맥락에서 이 절은 비판이면서 동시에 三達尊(삼달존) 논의를 준비하는 문턱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상사를 향한 공경을 곧바로 신속한 응답과 순응으로 환원하기 쉽다. 그러나 공경이 형식만으로 판단되면, 원칙 있는 거리 두기나 더 높은 기준의 조언은 쉽게 무례로 오해된다. 경자의 말은 위계 조직이 가진 이런 본능을 잘 보여 준다.
일상에서도 공경과 순종을 같은 말처럼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까운 관계의 정과 공적인 관계의 질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절은 관계의 윤리를 너무 단순한 행동 규칙으로만 읽을 때 생기는 오해를 드러낸다.
5절 — 오시하언야(惡是何言也) — 참된 공경은 인의(仁義)를 말하는 일
원문
曰惡라是何言也오齊人이無以仁義與王言者는豈以仁義로爲不美也리오其心에曰是何足與言仁義也云爾則不敬이莫大乎是하니我는非堯舜之道어든不敢以陳於王前하노니故로齊人이莫如我敬王也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오. 제나라 사람들 가운데 인의(仁義)로 왕과 말하는 이가 없는 것이, 어찌 인의(仁義)를 아름답지 않게 여겨서겠소. 속으로 ‘이 사람은 인의(仁義)를 함께 말할 만한 상대가 못 된다’고 여기기 때문일 뿐이니, 그것보다 더 큰 불경은 없소. 나는 요순(堯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왕 앞에 말씀드리지 않으니, 제나라 사람 가운데 나보다 왕을 더 공경하는 이는 없소.”
축자 풀이
仁義(인의)는 맹자가 왕 앞에서 내세우는 정치의 핵심 기준이다.爲不美(위불미)는 좋지 않다고 여김을 뜻한다.是何足與言仁義也(시하족여언인의야)는 인의(仁義)를 함께 논할 상대가 아니라 여기는 마음을 가리킨다.堯舜之道(요순지도)는 가장 바른 성왕의 정치 원리를 말한다.敬王(경왕)은 왕을 참되게 공경하는 태도를 뜻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대목을 불경의 기준을 뒤집는 반론으로 읽는다. 겉으로는 공손해 보여도 왕에게 인의(仁義)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왕을 그만한 말을 들을 자격이 없는 존재로 낮추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에서 맹자의 직언은 무례가 아니라, 왕을 도(道)의 자리에서 대우하는 가장 높은 형태의 공경이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공경을 덕의 기준과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군자를 공경한다는 것은 그의 기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마땅한 도리를 숨기지 않는 일이며, 군주를 공경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맹자의 말은 강하지만, 그 강함은 예(禮)를 무너뜨리기보다 예(禮)의 바탕인 의(義)를 회복하려는 강함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불편한 기준을 빼고 듣기 좋은 말만 고르는 문화가 종종 예의로 포장된다. 하지만 그런 문화는 결국 리더를 더 낮은 수준의 판단에 가두는 일일 수 있다. 맹자(孟子)는 仁義(인의)를 말할 수 있는 존재로 왕을 대하는 것 자체가 존중이라고 본다.
개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위한다며 꼭 해야 할 말을 피하는 것이 늘 배려는 아니다. 오히려 더 높은 기준으로 상대를 대하고, 그 기준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태도가 더 깊은 존중일 수 있다.
6절 — 경자왈부(景子曰否) — 예문(禮文)의 반박
원문
景子曰否라非此之謂也라禮예曰父召어시든無諾하며君이命召어시든不俟駕라하니固將朝也라가聞王命而遂不果하시니宜與夫禮로若不相似然하이다
국역
경자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린 뜻은 그게 아닙니다. 예(禮)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부르면 늦게 응하지 말고, 임금이 명하여 부르면 수레를 갖추기를 기다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선생께서는 본디 조회를 가려 하셨다가 왕명을 듣고는 결국 가지 않으셨으니, 아무래도 그 예의 말과는 서로 닮지 않은 듯합니다.”
축자 풀이
父召無諾(부소무낙)은 아버지가 부르면 지체하지 말라는 뜻이다.君命召不俟駕(군명소불사가)는 임금의 부름에는 수레도 기다리지 말고 응하라는 뜻이다.固將朝也(고장조야)는 본래 조회에 나아가려 했음을 가리킨다.聞王命而遂不果(문왕명이수불과)는 왕명을 듣고도 결국 실행하지 않았다는 말이다.若不相似然(약불상사연)은 예의 조문과 닮지 않아 보인다는 완곡한 비판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대목을 예문의 문자적 권위를 내세운 재반박으로 본다. 경자(景子)는 추상적 윤리 대신 즉시 적용 가능한 규범 문구를 가져와 맹자의 처신을 따진다. 따라서 이 절은 맹자의 논리가 단순한 자기 변호가 아니라, 실제 예서(禮書)의 문구와 맞서는 수준의 논변임을 보여 준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예(禮)의 형식과 의(義)의 분별이 갈린다고 본다. 예문을 따른다는 것만으로 항상 참된 예가 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자리에 어떤 존귀함이 우선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반박이 강할수록, 뒤에 이어지는 三達尊(삼달존)의 논리가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 규정 조항은 매우 강한 무기다. 문구만 놓고 보면 반박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맹자(孟子)의 장면은 규정의 문자와 그 규정이 지키려는 가치가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개인에게도 원칙의 문구를 외우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원칙이 작동하는 맥락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 절은 “규정상 맞다”는 말이 언제나 충분한 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7절 — 천하유달존삼(天下有達尊三) — 삼달존의 선언
원문
曰豈謂是與리오曾子曰晉楚之富는不可及也나彼以其富어든我以吾仁이요彼以其爵이어든我以吾義니吾何慊乎哉리오하시니夫豈不義를而曾子言之시리오是或一道也니라天下에有達尊이三이니爵一齒一德一이니朝廷엔莫如爵이오鄕黨엔莫如齒오輔世長民엔莫如德이니惡得有其一하여以慢其二哉리오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어찌 그런 뜻을 말했겠소. 증자(曾子)가 말씀하시기를, ‘진(晉)과 초(楚)의 부는 따라갈 수 없지만, 저들이 그 부를 내세우면 나는 내 인(仁)을 내세우고, 저들이 그 작위를 내세우면 나는 내 의(義)를 내세우니, 내가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하셨소. 어찌 의롭지 않은 말을 증자가 했겠소. 이것도 하나의 같은 이치요. 천하에는 두루 통하는 존귀함이 셋이 있으니, 작위가 하나요 나이가 하나요 덕이 하나요. 조정에서는 작위만 한 것이 없고, 향당에서는 나이만 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에는 덕만 한 것이 없는데, 어찌 그 하나를 가졌다고 나머지 둘을 업신여길 수 있겠소.”
축자 풀이
彼以其富我以吾仁(피이기부아이오인)은 남이 부를 내세우면 나는 인(仁)으로 선다는 뜻이다.彼以其爵我以吾義(피이기작아이오의)는 남이 작위를 내세우면 나는 의(義)로 선다는 말이다.達尊(달존)은 천하에 두루 통하는 존귀함을 가리킨다.爵一齒一德一(작일치일덕일)은 작위와 나이와 덕이 각각 하나의 존귀함임을 밝힌다.以慢其二(이만기이)은 하나를 믿고 둘을 업신여김을 뜻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대목을 장 전체의 핵심 결론으로 본다. 조정(朝廷)과 향당(鄕黨), 그리고 세상을 돕는 자리의 기준이 서로 다르므로, 작위만으로 모든 존귀함을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명분 질서를 무너뜨리기보다, 오히려 서로 다른 존귀함이 각 자리에서 제대로 분별될 때 질서가 온전히 선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德(덕)을 가장 깊은 기준으로 읽는다. 조정에서는 작위가 먼저 보일 수 있지만, 輔世長民(보세장민)의 차원에서는 결국 덕 있는 사람이 공동체를 움직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三達尊(삼달존)은 예의 예외 조항이 아니라, 정치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는 선언으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현대 조직에서도 직함 하나로 모든 권위를 설명할 수는 없다. 공식 회의에서는 직책이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신뢰나 장기적 방향을 이끄는 힘은 경험과 덕성에서 나오기도 한다. 三達尊(삼달존)은 서로 다른 권위의 원천을 혼동하지 말라는 통찰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나이에서 오는 삶의 무게나, 덕에서 오는 신뢰를 대신할 수는 없다.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평가하려는 습관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8절 — 장대유위지군(將大有爲之君) — 부르지 못하는 신하
원문
故로將大有爲之君은必有所不召之臣이라欲有謀焉則就之하나니其尊德樂道不如是면不足與有爲也니라
국역
그러므로 장차 큰일을 하려는 임금에게는 반드시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습니다. 함께 도모할 일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직접 나아가야 하니, 덕을 높이고 도를 즐기는 태도가 이 정도가 아니면 더불어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축자 풀이
大有爲之君(대유위지군)은 큰일을 이루려는 군주를 뜻한다.不召之臣(불소지신)은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다.欲有謀焉則就之(욕유모언즉취지)는 상의할 일이 있으면 직접 찾아감을 말한다.尊德(존덕)은 덕을 높여 존중하는 태도다.樂道(낙도)는 도(道)를 기꺼이 따르고 즐기는 자세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不召之臣(불소지신)을 군주 위의 권력자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덕 있는 선비를 예우하는 별도의 예법으로 이해한다. 작위가 낮더라도 덕의 무게 때문에 군주가 스스로 가서 묻는 자리가 생긴다는 뜻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군주의 자기 수양 문제로 읽는다. 큰일을 하려는 군주라면 먼저 자기보다 나은 도(道)를 알아보고, 그 앞에 몸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尊德樂道(존덕낙도)는 정치 기술이 아니라 군주의 인격 조건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 진짜 중요한 인재는 명령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배워야 할 기준을 가진 사람일 때가 많다. 그런 사람에게는 단순한 호출보다 진지한 방문과 경청이 필요하다. 맹자의 말은 리더가 무엇을 얼마나 높이 여기는지가 결국 조직의 수준을 정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개인에게도 배움은 자존심을 내려놓을 때 시작된다. 내게 필요한 사람을 함부로 소비하려 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 묻고 듣는 태도가 삶을 넓힌다. 이 절은 존중의 실질이 행동으로 드러나야 함을 말한다.
9절 — 탕지어이윤(湯之於伊尹) — 먼저 배우고 뒤에 쓴다
원문
故로湯之於伊尹에學焉而後에臣之故로不勞而王하시고桓公之於管仲에學焉而後에臣之故로不勞而霸하니라
국역
그래서 탕왕은 이윤(伊尹)에게 먼저 배우고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왕업을 이루었고, 환공은 관중(管仲)에게 먼저 배우고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축자 풀이
湯之於伊尹(탕지어이윤)은 탕왕과 이윤의 관계를 가리킨다.學焉而後臣之(학언이후신지)는 먼저 배우고 뒤에 신하로 삼음을 뜻한다.不勞而王(불로이왕)은 수고를 덜고 왕업을 이룸을 말한다.桓公之於管仲(환공지어관중)은 제환공과 관중의 사례다.不勞而霸(불로이패)는 힘을 덜 들이고 패업을 이룸을 뜻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고사를 不召之臣(불소지신)의 실례로 읽는다. 탕왕과 환공은 단지 유능한 관리 한 사람을 얻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움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서는 군주의 겸양이 곧 정치적 실효성으로 이어진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學(학)을 더 무겁게 본다. 군주가 먼저 배운다는 것은 지식을 얻는 수준을 넘어, 자신보다 높은 도(道)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절은 인재 등용론을 넘어 군주론으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현대 조직에서는 뛰어난 인재를 영입했다고 해서 곧 성과가 나는 것이 아니다. 리더가 그 사람에게서 실제로 배우고, 그의 판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단계까지 가야 조직이 달라진다. 탕왕과 환공의 사례는 채용보다 학습이 먼저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개인 차원에서도 비슷하다. 좋은 스승이나 동료를 곁에 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짜 변화는 그 앞에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생긴다. 이 절은 배움 없는 관계가 얼마나 쉽게 형식으로 끝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10절 — 금천하지추덕제(今天下地醜德齊) —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군주들
원문
今天下地醜德齊하여莫能相尙은無他라好臣其所敎而不好臣其所受敎니라 湯之於伊尹과桓公之於管仲에則不敢召하니管仲도且猶不可召온而況不爲管仲者乎아
국역
이제 천하를 보면 땅도 비슷하고 덕도 비슷하여 서로 낫다고 할 수 없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신하로 두기 좋아하고, 자기가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을 신하로 두기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탕왕이 이윤을, 환공이 관중을 감히 부르지 못했는데, 관중조차 함부로 부를 수 없거늘 하물며 관중의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어찌 가볍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축자 풀이
地醜德齊(지추덕제)는 땅의 형세와 군주의 덕이 서로 비슷함을 말한다.莫能相尙(막능상상)은 서로 더 낫다고 하기 어려움을 뜻한다.好臣其所敎(호신기소교)는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신하로 삼기 좋아함을 말한다.不好臣其所受敎(불호신기소수교)는 내가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을 쓰지 않으려 함을 뜻한다.不敢召(불감소)는 감히 함부로 부르지 못함을 가리킨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결말을 당시 군주들의 공통된 한계에 대한 총평으로 본다. 차이가 크지 않은 천하에서 결정적 우열이 갈리지 않는 까닭은, 더 나은 이를 높여 쓰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三達尊(삼달존)의 논리는 예외적 현자 한 사람을 위한 변명이 아니라, 천하 정치 전반의 실패 원인을 짚는 진단이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교만의 정치학 비판으로 읽는다. 가르칠 사람만 곁에 두고 가르침 받을 사람을 멀리하면, 군주는 끝내 자기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의 결론은 제선왕 개인을 넘어서, 왕도 정치가 왜 쉽게 열리지 않는가를 설명하는 일반론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이 비슷비슷한 수준에서 정체되는 이유도 흔히 여기에 있다. 리더가 자신을 편하게 해 주는 사람만 곁에 두고, 자신을 바꾸게 만들 사람은 멀리하면 성장의 문이 닫힌다. 맹자는 차이를 만드는 힘이 자원보다 학습 구조에 있다고 본다.
개인의 삶에서도 늘 내가 가르치는 자리만 택하면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춘다. 나를 불편하게 하지만 더 낫게 만드는 사람을 가까이 둘 줄 아는가가 중요하다. 이 장의 마지막은 예(禮)의 논쟁을 넘어, 배움 앞에서 몸을 낮출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끝난다.
공손추하(公孫丑下) 2장은 왕명을 사양한 한 장면을 붙들고 시작하지만, 끝내 존귀함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장으로 나아간다. 한대 훈고 전통은 작위와 나이와 덕이 쓰이는 자리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송대 성리학은 그 가운데 특히 덕을 높이는 군주의 자세를 더 강조한다. 두 독법은 모두 예(禮)가 형식의 빠른 복종만이 아니라, 무엇을 더 높이 둘 것인가를 가리는 질서라는 점에서 만난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三達尊(삼달존)은 권위의 원천이 하나가 아니라는 통찰이다. 직위와 연차와 인격적 무게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사람을 움직이고, 큰일을 이루려면 그 셋을 헷갈리지 않는 안목이 필요하다. 맹자가 제선왕과의 거리에서 끝까지 지키려 했던 것도 바로 그 안목이었다.
등장 인물
- 맹자: 제선왕의 부름을 사양한 뒤
三達尊(삼달존)과不召之臣(불소지신)의 논리로 참된 공경을 설명한다. - 제선왕: 맹자를 조회 자리에서 만나고자 했던 군주로, 장 전체의 긴장을 불러온 인물이다.
- 공손추: 맹자의 제자로, 스승의 처신이 예(禮)에 맞는지 첫 의문을 제기한다.
- 맹중자: 왕의 문병 앞에서 맹자를 대신해 난처한 방편의 말을 전한 인물이다.
- 경자: 군신(君臣)의 공경을 내세워 맹자의 불응을 비판한 논쟁 상대다.
- 증자: 부와 작위 앞에서도 인(仁)과 의(義)를 굽히지 않는 태도의 본보기로 인용된다.
- 이윤: 탕왕이 먼저 배우고 뒤에 신하로 삼은 현자로 제시된다.
- 관중: 제환공이 감히 함부로 부르지 못했던 인물로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