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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추하으로

맹자 공손추하 5장 — 관수언책(官守言責) — 직책의 책무와 떠남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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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공손추하 5장 관수언책(官守言責) 대표 이미지

공손추하 5장은 길지 않지만, 벼슬과 말의 책임을 어디까지 져야 하는지 아주 또렷하게 드러낸다. 앞의 여러 장이 맹자(孟子)의 진퇴와 제(齊)나라 조정의 분위기를 둘러싼 논평을 다루었다면, 이 장은 그 논의를 한층 압축해 직책의 본질로 모은다. 핵심은 官守言責(관수언책)이다. 맡은 일이 있는 사람과 말할 책임이 있는 사람은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 짧은 문답 속에 정리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직분의 실질을 따지는 글로 본다. 영지(領地)나 녹봉보다 먼저, 그 자리가 실제로 무엇을 하도록 마련된 자리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래서 士師(사사)를 택한 까닭도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통로가 있느냐의 문제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진퇴의 절도를 더 강하게 본다. 자기 자리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무턱대고 버티지 않고, 또 감정적으로 떠나지도 않는다. 官守(관수)가 막히면 그 직을 떠나고, 言責(언책)이 막히면 그 말의 자리를 떠난다는 구분은, 책임을 핑계 삼아 집착하지도 않고 자유를 핑계 삼아 회피하지도 않는 균형의 언어다.

이 장이 공손추하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맹자(孟子) 자신을 둘러싼 비평과 타인의 거취를 둘러싼 판단이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그는 사람마다 감당하는 책임의 결이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官守言責(관수언책)은 단순한 퇴진론이 아니라, 어떤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와 떠나야 하는 이유를 동시에 묻는 기준이다.

1절 — 맹자위지와(孟子謂蚳鼃) — 말할 자리를 택한 까닭

원문

孟子謂蚳鼃曰子之辭靈丘而請士師似也는爲其可以言也니今旣數月矣로되未可以言與아

국역

맹자께서 지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영구(靈丘)의 수령을 사양하고 사사(士師)가 되기를 청한 것이 일리가 있음은 그 자리가 임금에게 간언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대가 그 자리를 맡은 지도 몇 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말할 기회가 없었단 말인가.”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첫마디를 직책 선택의 명분을 밝히는 대목으로 본다. 靈丘(영구)를 버리고 士師(사사)를 택한 까닭은 이익이 아니라 可以言(가이언)의 가능성에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시간이 흘렀는데도 말하지 못했다면, 자리의 이름은 남아 있어도 직분의 실질은 흔들린 것으로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자기 위치를 따지는 엄정함을 본다. 말할 수 있으리라 여겨 자리를 옮겼다면, 그 뒤에는 반드시 그 기대가 실제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의 질문은 단순한 질책이 아니라, 직분이 살아 있는지를 묻는 점검으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과 리더십의 장면으로 옮기면, 사람은 더 좋은 자리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더 분명한 책임을 고르는 셈일 때가 많다. 士師(사사) 같은 자리를 맡았다면,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직무 정지에 가깝다. 직함보다 기능, 보상보다 발언의 실효성을 먼저 봐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의 일상에서도 비슷하다. 어떤 역할을 맡은 이유가 분명했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이유가 실제로 살아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可以言(가이언)을 보고 들어간 자리에서 끝내 말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용기의 부족만이 아니라 처음 선택한 구조 자체에 있을 수 있다.

2절 — 지와간어왕(蚳鼃諫於王) — 간언이 막힐 때의 결단

원문

蚳鼃諫於王而不用이어늘致爲臣而去한대

국역

지와가 왕에게 간했으나 그 말을 들어주지 않자, 벼슬 자리를 내놓고 떠나갔는데,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言責(언책)의 실제 행사와 그 한계를 보여 주는 장면으로 본다. 간언은 했으나 채택되지 않았고, 그 순간 더 머무는 일은 말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채 자리만 붙드는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떠남은 변덕이 아니라 직분 윤리의 연장으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행동을 의리의 보존으로 본다. 말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끝내 말했고, 그 말이 전혀 서지 않았다면 거취를 바꾸는 것은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자기 직분을 더럽히지 않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진퇴는 감정이 아니라 명분에 의해 정리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 안에서도 의견 제시가 허용되는 것과 실제로 반영되는 것은 다르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반복해서 문제를 말했는데도 구조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면, 남아 있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떠남은 때로 회피가 아니라 구조의 막힘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행동이 된다.

개인 차원에서도 而不用(이불용)의 경험은 낯설지 않다. 충분히 말했고 할 만큼 했는데 아무 변화가 없을 때, 사람은 남을지 떠날지를 다시 따져야 한다. 이 절은 끝까지 버티는 것이 늘 미덕은 아니며, 때로는 떠나는 쪽이 자기 말의 책임을 더 분명히 하는 길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3절 — 제인왈소이(齊人曰所以) — 세속의 계산과 의리의 판단

원문

齊人이曰所以爲蚳鼃則善矣어니와所以自爲則吾不知也케라

국역

제(齊)나라 사람들이 말하였다. “지와를 위해 말해 준 것은 옳으나 자신을 위한 처신이 옳은지는 내 모르겠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구절을 세상 사람들의 통속적 반응으로 본다. 지와(蚳鼃)를 위해 말한 일 자체는 (선)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자기 몸을 위해서는 손해로운 처신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곧 의리와 이해가 갈라질 때 대중은 대개 이해 쪽으로 기운다는 점을 드러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의)와 (이)의 긴장을 읽는다. 자기 보전을 우선하는 시선에서는 떠남이 어리석게 보일 수 있지만, 직분을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머무는 쪽이 더 흐릿해질 수 있다. 이 절은 맹자(孟子)가 왜 후반에서 책임의 종류를 다시 구분하는지 이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오늘의 조직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자주 나온다. 누군가 원칙을 지키며 문제를 제기하고 떠나면, 사람들은 공적인 명분은 인정하면서도 개인 경력의 관점에서는 손해라고 말한다. 所以自爲(소이자위)의 시선은 늘 현실적이지만, 그 현실감각이 곧바로 옳음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일상에서도 타인을 위해 한 행동은 칭찬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절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원칙과 이익을 분리해서 판단하는지 보여 준다. 맹자(孟子)의 논의는 바로 그 틈에서, 처세의 유불리보다 먼저 직분의 옳고 그름을 보라고 요구한다.

4절 — 공도자이고(公都子以告) — 비평이 맹자에게 전해지다

원문

公都子以告한대

국역

公都子가 이 말을 맹자에게 아뢰자,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짧은 절도 함부로 넘기지 않는다. 제자 공도자(公都子)가 세간의 비평을 가져온 것은, 단순한 소문 전달이 아니라 스승의 분별을 묻는 행위로 읽힌다. 앞 절의 통속적 평가가 여기서 본격적인 철학적 판단의 문제로 넘어간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학문적 문답의 전환점으로 본다. 세상은 대개 이해득실로 말하지만, 제자는 그 판단을 스승에게 가져와 도리의 언어로 다시 따져 묻는다. 그래서 짧은 한마디지만, 뒤의 官守(관수)와 言責(언책) 구분을 열어 주는 문맥상 고리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주변의 평판을 그대로 삼키지 않고 상위 원칙으로 다시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도자(公都子)의 역할은 여론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판단 기준을 확인하는 데 있다. 이 절은 건강한 조직일수록 풍문을 원칙의 언어로 번역하는 절차가 필요함을 보여 준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선택을 놓고 주변의 평가를 먼저 듣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그 평가가 어떤 기준 위에 서 있는지 따져 보는 일이다. 以告(이고)는 사실 전달이면서 동시에 기준을 묻는 행위라는 점에서, 성급한 동조를 멈추게 한다.

5절 — 왈오문지야(曰吾聞之也) — 관수언책과 진퇴의 여유

원문

曰吾聞之也하니有官守者不得其職則去하고有言責者不得其言則去라하니我無官守하며我無言責也則吾進退豈不綽綽然有餘裕哉리오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듣기로는 ‘관직을 맡고 있는 자가 그 직책을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떠나야 하고, 諫言의 책임이 있는 자는 그 말이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경우 떠나야 한다.’ 하였다. 나는 관직을 맡고 있지도 않고 나는 간언의 책임도 없으니, 내가 나아가고 물러나는 데에 어찌 느긋하게 여유가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대목을 직분 분류의 핵심으로 본다. 官守(관수)는 일을 성사시켜야 하는 자리이고, 言責(언책)은 말로 바르게 해야 하는 자리다. 따라서 不得其職(부득기직)과 不得其言(부득기언)은 서로 다른 방식의 막힘이지만, 둘 다 직분의 실질이 끊어진 상태라는 점에서 떠남의 근거가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맹자(孟子)의 마지막 말을 책임 회피가 아니라 정확한 자기 규정으로 읽는다. 자신은 지금 官守(관수)도 言責(언책)도 맡고 있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과 같은 잣대로 진퇴를 따질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綽綽然有餘裕(작작연유여유)는 느슨함이 아니라, 역할을 넘겨짚지 않는 분별에서 오는 여유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관점에서 이 구분은 매우 실용적이다. 실무 책임자, 자문자, 외부 비판자, 내부 결정권자를 한 기준으로 묶어 버리면 책임이 흐려진다. 官守(관수)와 言責(언책)을 나누어 보아야 누가 어떤 실패를 책임져야 하는지, 또 어떤 순간에 거취 변화가 정당한지 선명해진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말은 불필요한 죄책감과 과장된 자기중심성을 함께 경계하게 한다. 내가 정말 맡은 책임이 무엇인지 모르면, 남의 몫까지 떠안거나 반대로 내 몫을 비켜 가기 쉽다. 맹자(孟子)는 자기 직분을 정확히 알 때 비로소 進退(진퇴)가 바르게 선다고 말한다.


공손추하 5장은 짧은 문답 속에 참여와 철수의 기준을 단단하게 세운다. 한대 훈고의 맥락에서는 직분의 실질이 살아 있느냐가 핵심이고, 송대 성리학의 맥락에서는 그 직분에 맞는 진퇴의 절도가 강조된다. 두 흐름은 서로 다르게 말하는 듯하지만, 이름만 붙든 채 기능을 잃은 자리에 머무는 것을 경계한다는 점에서는 만난다.

오늘의 조직과 삶에서도 이 장은 여전히 날카롭다. 해야 할 일이 있는 자리인지, 말해야 할 책임이 있는 자리인지, 혹은 둘 다 아닌 자리인지를 먼저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남아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혼동하지 않는다. 官守言責(관수언책)은 직업 윤리의 말이면서 동시에 자기 위치를 분별하는 삶의 언어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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