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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추하으로

맹자 공손추하 7장 — 관곽지제(棺槨之制) — 어머니 장례의 예와 효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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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공손추하 7장 관곽지제(棺槨之制) 대표 이미지

공손추하 7장은 孟子(맹자)가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시작한다. 분량은 짧지만, 상례의 격식이 어디에서 정당성을 얻는지 또 자식의 마음은 어디에서 끝내 물러서지 않는지를 함께 묻는 장이다. 그래서 棺槨之制(관곽지제)는 단순한 장례 기술이 아니라 (예)와 (효)의 경계가 맞물리는 주제로 떠오른다.

문답의 출발은 充虞(충우)의 조심스러운 질문이다. 좋은 목재를 써서 만든 (관)과 (곽)이 혹시 지나친 것은 아니냐는 물음은, 검소와 정성의 한계를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孟子(맹자)는 여기에 대해 장례의 제도는 겉보기의 觀美(관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人心(인심)을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상장례의 법도와 인정의 마땅함을 함께 밝히는 글로 본다. 관곽의 두께와 짝은 사치를 허용하려는 장치가 아니라, 부모를 보내는 자식의 마음이 지나치게 깎이지 않도록 절도를 세우는 장치라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문답을 효심의 본연함이 형식 속에 머무는 방식으로 읽는다. 부모의 몸에 흙이 바로 닿지 않게 하려는 마음, 곧 無使土親膚(무사토친부)의 마음이야말로 (예)를 낳는 바탕이라는 것이다. 이 장이 공손추하에서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정치와 명분을 다루는 여러 장 사이에서, 인간의 가장 깊은 마음이 어떻게 제도로 드러나는지를 압축해 보여 주기 때문이다.

1절 — 맹자자제장어로(孟子自齊葬於魯) — 장례 뒤 길 위의 질문

원문

孟子自齊葬於魯하시고反於齊하실새止於嬴이러시니充虞請曰前日에不知虞之不肖하사使虞敦匠事어시늘嚴하여虞不敢請하니今願竊有請也하노니木若以美然하더이다

국역

맹자께서 제 나라에서 노 나라로 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신 뒤 다시 제 나라로 돌아오다가 영 땅에 머무르셨다. 그때 充虞(충우)가 나아와, 지난 상사 때 자신이 장례 목공 일을 맡았으나 분위기가 너무 엄숙해 감히 묻지 못했고, 이제야 장례에 쓴 목재가 너무 아름다운 듯했던 까닭을 여쭙고 싶다고 말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대목을 비난의 발단이 아니라 제도의 경계를 묻는 신중한 질문으로 본다. 충우의 말은 좋은 재목을 쓴 사실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상장례에서 후함과 과함이 갈리는 선을 확인하려는 물음이라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충우가 바로 묻지 못했다는 사실을 더 중시한다. 상중의 (엄)함은 단지 분위기의 무거움이 아니라, 부모를 보내는 자리에서 말 한마디조차 가볍게 할 수 없게 만드는 도덕적 긴장으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충우의 질문은 뒤늦은 시비가 아니라 기준을 확인하려는 책임 있는 태도에 가깝다. 민감한 일을 집행한 뒤에도 “우리가 정성을 다한 것인가, 아니면 넘친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 있어야 공동체의 판단 기준이 선명해진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큰일을 치른 뒤 마음에 남는 질문은 종종 비용의 크기보다 마음의 적절함에 관한 것이다. 이 절은 그런 망설임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정직하게 묻는 태도에서 성숙한 (예)가 시작된다고 보여 준다.

2절 — 고자관곽무도(古者棺槨無度) — 관곽의 제도와 사람의 마음

원문

曰古者에棺槨이無度하더니中古에棺이七寸이오槨을稱之하여自天子達於庶人하니非直爲觀美也라然後에盡於人心이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관)과 (곽)에 일정한 제도가 없었지만, 중고 시대에 이르러서는 관을 일곱 치로 하고 곽도 거기에 맞추어 천자에서 서인에 이르기까지 두루 쓰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보기 좋게 하려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다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棺槨之制(관곽지제)를 신분 질서와 인정의 조화로 읽는다. 중고 이후의 제도는 화려함을 경쟁하게 하려는 장치가 아니라, 지나친 박함과 무질서한 후함을 함께 막으면서 부모의 장례를 마땅하게 치르게 하는 절도라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盡於人心(진어인심)을 핵심으로 본다. 형식은 마음을 가리는 껍데기가 아니라, 부모를 보내는 슬픔과 공경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그릇이며, 그래서 觀美(관미)를 넘어서는 (예)의 근거가 된다고 읽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제도는 사람의 마음과 분리되어 있으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규정은 차갑게만 남고, 마음은 기준 없는 선의로 흩어진다. 맹자의 설명은 좋은 제도란 결국 인간의 절실한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완성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의미 있는 의식과 관계에는 형식이 필요하다. 형식은 허영의 장식이 아니라 마음이 머물 자리를 마련하는 장치일 수 있으며, 盡於人心(진어인심)은 바로 그 이유를 설명하는 말로 읽힌다.

3절 — 부득불가이위열(不得不可以爲悅) — 할 수 없어도 마음은 편치 않다

원문

不得이란不可以爲悅이며無財란不可以爲悅이니得之爲有財하여는古之人이皆用之하니吾何爲獨不然이리오

국역

맹자는 이어, 제도상 허락되지 않아 하지 못해도 마음은 흡족할 수 없고, 재물이 없어 하지 못해도 역시 마음은 흡족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도상으로도 할 수 있고 재력도 있다면 옛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했으니, 자신만 홀로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답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상례의 정당성을 밝히는 중심 문장으로 본다. 할 수 없어서 못한 경우와,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줄이는 경우는 다르며, 후자는 검소가 아니라 부모를 대하는 인정의 결핍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효심의 자연스러운 발로와 연결한다. 자식의 마음은 계산으로 완전히 접히지 않으며, 여건이 허락하는데도 정성을 덜어 내는 일은 마음의 본래 방향을 거스르는 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자원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줄이는 일과 충분히 가능하면서도 핵심 가치를 의도적으로 깎는 일은 구별되어야 한다. 모두를 같은 이름의 효율로 묶어 버리면, 실제로는 공동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스스로 흐리게 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절은 무엇을 아껴야 하고 무엇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지 묻는다. 능력이 닿지 않아 줄이는 것과, 능력이 되는데도 마음을 먼저 접어 버리는 것은 같은 검소가 아니다.

4절 — 무사토친부(無使土親膚) — 흙이 살갗에 닿지 않게 하려는 마음

원문

且比化者하여無使土親膚면於人心에獨無恔乎아

국역

또 맹자는, 막 썩어 가는 이를 위해 흙이 그 살갗에 가까이 닿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자식의 마음에 어찌 흡족함이 없겠느냐고 되묻는다. 여기에는 장례의 형식이 단지 외형의 장식이 아니라, 부모의 몸을 끝까지 보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無使土親膚(무사토친부)를 상례의 실질적 이유로 본다. 관곽의 기능은 꾸밈보다 보호에 있고, 그 보호는 부모를 보내는 자식의 인정에서 나온다는 해석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에서 효심의 감각적 절박함을 읽어 낸다. 부모의 몸이 흙과 바로 맞닿는 일을 차마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먼저 있고, (예)는 그 마음이 방종으로 흐르지 않도록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도 사람의 존엄을 다루는 일에는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기준이 있다. 애도, 돌봄, 마지막 배웅 같은 장면에서 공동체가 어떤 세심함을 보이는가는 그 조직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드러낸다.

개인과 일상에서는 사랑이 가장 절실할 때 오히려 몸의 감각에 가까운 표현으로 드러난다. 이 절은 효가 추상적 미덕이 아니라, 부모를 끝까지 거칠게 다루지 않으려는 아주 구체적인 마음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5절 — 군자불이천하검기친(君子不以天下儉其親) — 군자는 부모에게 박하지 않다

원문

吾는聞之也하니君子는不以天下儉其親이니라

국역

맹자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듣기로 군자는 천하를 이유로 삼아 자기 부모에게 박하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장례의 논의는 여기서 끝내 효의 원칙으로 수렴되며, 손익 계산보다 부모를 향한 마땅한 정성이 먼저라는 결론이 또렷해진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문장을 상례 논의의 귀결로 본다. 부모를 대하는 자리에서 지나친 절약을 덕으로 착각해서는 안 되며, 군자의 검소는 부모에게 박한 태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말을 효의 근본 원칙으로 읽는다. 천하라는 큰 명분조차 부모를 향한 마땅한 정성을 무너뜨리는 핑계가 될 수 없으며, 진정한 (의)는 가까운 근본을 해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핵심 가치 앞에서 무엇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모든 것을 효율로만 판단하면 공동체는 결국 가장 보호해야 할 대상을 먼저 잃는다. 맹자의 결론은 비용 절감보다 앞서는 인간적 기준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을 환기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사랑과 책임의 자리는 언제나 계산보다 앞선다. 이 문장은 무조건 비싸게 하라는 뜻이 아니라, 부모를 대하는 자리만큼은 값과 체면이 아니라 마음의 온전함을 마지막 기준으로 삼으라는 요청으로 읽을 수 있다.


공손추하 7장은 장례의 형식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마음이 어디에서 멈추지 못하는가를 묻는 장이다. 棺槨之制(관곽지제)는 사치의 정당화가 아니라 盡於人心(진어인심)을 위한 형식이며, 無使土親膚(무사토친부)는 그 형식이 왜 필요한가를 가장 절실하게 보여 준다.

한대 훈고는 이 장을 상장례의 절도와 인정의 조화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효심의 본연함이 (예)로 드러나는 과정으로 읽는다. 두 흐름은 모두 부모를 대하는 자리에서 검소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먼저 깎아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만난다. 그래서 마지막의 不以天下儉其親(불이천하검기친)은 오늘에도 오래 남는 문장이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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