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추하 13장은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는 길에서 자신의 감정과 시대 인식을 함께 드러내는 장이다. 겉으로 보면 스승의 얼굴빛이 편치 않아 보이는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문답은 곧 군자의 평정, 역사적 시기, 천하를 맡을 사람의 책임으로 빠르게 확장된다. 그래서 이 장은 단순한 실의의 고백이 아니라, 왜 어떤 때에는 물러서고 어떤 때에는 스스로 나서야 하는가를 밝히는 정치적 선언으로 읽힌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王道(왕도) 정치가 다시 열릴 시기를 판단하는 말로 읽는 경향이 강하다.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五百年(오백년)과 王者興(왕자흥)을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시대의 가능성을 재는 기준으로 본다. 맹자의 말은 허황한 자부심이 아니라, 시세가 무르익었는지를 보는 냉정한 판단이라는 뜻이다.
송대 성리학은 같은 문장을 天命(천명)과 擔當(담당)의 언어로 더 강하게 읽는다.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에서는, 하늘이 천하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면 道(도)를 배운 사람은 자기 책임을 미룰 수 없다. 이때 舍我其誰(사아기수)는 남보다 낫다고 과시하는 말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몫을 피하지 않겠다는 자임으로 이해된다.
공손추하 전체 흐름에서 이 장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맹자는 앞선 여러 장에서 직분의 경계, 말의 절도, 물러남의 기준을 말했는데, 여기서는 그 반대로 물러설 수 없는 순간을 말한다. 舍我其誰(사아기수)는 오만의 언어가 아니라, 충분히 기다리고 충분히 살핀 끝에 더는 책임을 미루지 않는 사람의 언어다.
1절 — 맹자거제(孟子去齊) — 스승의 불편한 얼굴빛을 묻다
원문
孟子去齊하실새充虞路問曰夫子若有不豫色然하시이다前日에虞聞諸夫子하니曰君子는不怨天하며不尤人이라호이다
국역
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실 때 충우가 길에서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기뻐하지 않는 듯한 기색이 있으십니다. 전에 제가 선생님께 듣기로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축자 풀이
去齊(거제)는 제나라를 떠난다는 뜻으로, 맹자의 정치적 행보가 한 고비를 넘는 장면을 보여 준다.充虞(충우)는 길에서 스승에게 질문을 던지는 제자다.不豫色(불예색)은 마음이 펴지지 않은 얼굴빛을 가리키며, 근심 어린 표정을 뜻한다.不怨天(불원천)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不尤人(불우인)은 사람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군자의 기본 태도를 드러낸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제나라에서 뜻을 다 펴지 못한 뒤의 정황 설명으로 본다. 不豫色(불예색)은 사적인 울분이 아니라 王道(왕도)가 아직 쓰이지 못한 데 대한 걱정이며, 충우의 질문은 스승의 가르침과 현재 표정이 어긋나 보이는 이유를 묻는 자연스러운 반문으로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면을 감정의 절제와 시대 인식이 함께 드러나는 대목으로 본다. 君子(군자)는 天(천)을 원망하지 않지만, 道(도)가 행해지지 않는 현실을 무심하게 넘기지도 않는다. 따라서 맹자의 무거운 표정은 원칙을 잃은 흔들림이 아니라, 원칙이 아직 세상에서 실현되지 못한 데 대한 근심으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은 실패 뒤에도 남 탓으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감정도 없는 척하는 태도가 성숙함은 아니다. 진지하게 책임을 졌다면 좌절 앞에서 표정이 무거워질 수 있고,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원망으로 풀지 않고 다음 판단의 재료로 삼는 데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不怨天(불원천)과 不尤人(불우인)은 체념의 말이 아니라 태도의 기준이 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하늘과 사람을 탓하는 일은 쉽지만, 내 마음을 지키면서도 왜 실패했는지 차분히 살피는 일은 어렵다. 충우의 질문은 바로 그 어려운 균형을 향해 들어가는 문답의 시작점이 된다.
2절 — 피일시차일시(彼一時此一時) —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원문
曰彼一時며此一時也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축자 풀이
彼一時(피일시)는 그때는 하나의 다른 시기였다는 뜻이다.此一時(차일시)는 지금 또한 별도의 시기라는 뜻이다.一時(일시)는 단순한 한순간이 아니라 역사적 국면을 가리킨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짧은 구절을 시세 판단의 전환점으로 본다. 군자의 원칙은 같더라도 정치 현실의 조건은 달라지므로, 이전에 말한 不怨天(불원천)과 不尤人(불우인)이 지금의 판단을 곧장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시대가 달라지면 그 시대에 맞는 판단도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常道(상도)와 權宜(권의)의 조화로 읽는다. 지켜야 할 道(도)는 하나이지만, 그 도가 현실에서 발현되는 방식은 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맹자는 스스로의 가르침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도리를 시대에 맞게 적용하고 있음을 밝힌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일수록 상황 변화에 둔감해지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彼一時 此一時(피일시 차일시)는 원칙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같은 원칙이라도 지금 무엇을 요구하는지 다시 판단하라는 요청이다. 어제의 성공 공식이 오늘의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예전에 참고 견딘 방식이 지금도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에는 버티는 것이 옳았어도, 다른 때에는 결단하고 나서야 할 수 있다. 맹자의 짧은 답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판단이 언제나 변절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정확한 책임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3절 — 오백년필유왕자흥(五百年必有王者興) — 오백 년의 역사 주기
원문
五百年에必有王者興하나니其間에必有名世者니라
국역
500년마다 반드시 왕업을 이루는 자가 나오는데, 그때에는 반드시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자가 있다.
축자 풀이
五百年(오백년)은 역사적 주기를 가리키는 수다.必有王者興(필유왕자흥)은 반드시王者(왕자)가 일어난다는 뜻이다.其間(기간)은 그 사이 시기를 말한다.名世者(명세자)는 시대에 이름을 남기는 인물을 가리킨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성왕 출현의 주기를 말한 문장으로 본다. 五百年(오백년)은 엄밀한 점술이라기보다 王道(왕도)가 다시 일어날 만한 역사적 간격을 드러내는 상징적 수이며, 名世者(명세자)는 그 사이 시대를 이끌며 준비하는 인물로 해석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名世者(명세자)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성왕이 직접 나타나지 않는 시대에도 道(도)를 붙들고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인물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맹자는 자신을 바로 그런 역할의 후보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역사 예언이라기보다 도를 맡은 사람의 사명 의식을 밝히는 말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언제나 완성된 영웅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큰 변화가 오기 전 긴 시간 동안 방향을 세우고 기준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전환도 가능해진다. 名世者(명세자)는 결과를 독차지하는 인물이 아니라, 다음 시대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의 사람으로 읽을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삶은 단번에 뒤집히지 않는다. 긴 준비와 축적의 시간이 있고, 그 사이를 버티는 사람이 있다. 五百年(오백년)과 名世者(명세자)의 언어는 조급한 성취보다, 긴 호흡 속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운다.
4절 — 유주이래(由周而來) — 수와 시세를 함께 따지다
원문
由周而來로七百有餘歲矣니以其數則過矣오以其時考之則可矣니라
국역
주 나라 문왕과 무왕 이래로 지금까지 700여 년이 지났으니, 연수로 따져보면 그 때가 지났고, 시세로 보면 지금이 가능한 시기다.
축자 풀이
由周而來(유주이래)는 주나라 이래로 지금까지라는 뜻이다.七百有餘歲(칠백유여세)는 칠백여 년이 흘렀다는 말이다.以其數則過矣(이기수즉과의)는 수로 계산하면 이미 시기가 지났다는 뜻이다.以其時考之則可矣(이기시고지즉가의)는 시세로 살피면 지금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단순한 연대 계산이 아니라 역사적 조건 판단으로 본다. 數(수)는 누적된 시간의 길이를 말하고, 時(시)는 실제 정치 상황의 성숙을 가리킨다. 따라서 맹자는 숫자와 현실을 함께 검토해 지금이 王道(왕도)를 다시 말할 수 있는 시기라고 본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時中(시중)의 감각을 읽는다. 아무리 도가 옳아도 때가 아니면 억지로 펴기 어렵고, 반대로 때가 오면 물러남만 고집하는 것도 바르지 않다. 以其時考之則可矣(이기시고지즉가의)는 바로 그런 시기 판별의 감각을 압축한 말로 해석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 좋은 전략은 이상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역사와 사실, 분위기와 타이밍을 함께 읽어야 실제 실행 가능성이 생긴다. 數(수)와 時(시)를 함께 본다는 맹자의 태도는, 원칙과 현실을 적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판단 안에서 묶는 방식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때를 읽는 능력은 중요하다. 준비가 충분해도 시기가 이르지 않으면 성급해지고, 반대로 조건이 무르익었는데도 계속 미루면 기회를 놓친다. 맹자의 말은 결단이란 감정의 충동이 아니라, 오래 축적된 조건과 현재의 흐름을 함께 읽어 내는 작업임을 보여 준다.
5절 — 부천미욕평치천하야(夫天未欲平治天下也) — 나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원문
夫天이未欲平治天下也시니如欲平治天下인댄當今之世하여舍我오其誰也리오吾何爲不豫哉리오
국역
그러나 하늘이 아직은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려고 하지 않는 것이니, 만약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려고 한다면 지금 세상에 나 말고 그 누가 있겠느냐. 내 무엇 때문에 기뻐하지 않겠느냐.”
축자 풀이
天(천)은 시대의 큰 흐름과 명을 가리킨다.平治天下(평치천하)는 천하를 안정되고 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이다.當今之世(당금지세)는 바로 지금의 세상을 가리킨다.舍我其誰(사아기수)는 나를 두고 그 누가 있겠느냐는 말로, 책임의 자임을 드러낸다.吾何爲不豫哉(오하위불예재)는 내가 어찌 기뻐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무거운 책임과 기쁨이 함께 있음을 보여 준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舍我其誰(사아기수)를 시세 판단 위에서 나온 정치적 자기 인식으로 본다. 하늘이 아직 천하를 바로 세우려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만약 그 뜻이 현실로 드러난다면 그 일을 감당할 자는 지금의 세상에서 맹자 자신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지나친 자찬이 아니라 王道(왕도)를 담당할 적임자를 자각한 말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天命(천명)을 맡는 사람의 담대한 책임 언어로 읽는다. 舍我其誰(사아기수)는 남보다 뛰어나다는 과시가 아니라, 道(도)를 알면서도 물러설 수 없는 자의 결의라는 것이다. 그래서 不豫(불예)는 낙심의 반대말이 아니라, 시대의 부름을 들은 사람이 품는 무거운 기쁨으로 해석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결정적 순간마다 책임을 서로 미루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때 舍我其誰(사아기수)라는 태도는 독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살핀 뒤 아무도 맡지 않는 몫을 내가 감당하겠다고 나서는 자세다. 진짜 책임자는 권한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어떤 문제는 결국 누군가 먼저 떠안아야 풀린다. 가족의 갈등을 정리하는 일, 공동체의 무너진 약속을 세우는 일, 오래 미뤄 둔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일은 모두 그렇다. 맹자의 말은 준비된 사람이 자기 몫을 인정하는 순간, 두려움과 함께 이상한 기쁨도 따라온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보여 준다.
공손추하 13장은 원망하지 않는 군자의 태도에서 출발해, 마침내 시대를 맡겠다는 결의로 나아간다. 한대 훈고가 이 장을 王道(왕도)의 가능 시기를 판단하는 문장으로 읽는다면, 송대 성리학은 天命(천명)을 감당하는 사람의 자기 자각으로 더 짙게 읽는다. 두 독법은 방향은 달라도, 맹자의 마지막 말이 허세가 아니라 오래 준비된 책임의 언어라는 점에서는 같다.
오늘의 삶에서도 이 장은 여전히 날카롭다. 하늘과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 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때가 오면 누군가는 스스로 “내가 맡겠다”라고 말해야 한다. 舍我其誰(사아기수)는 남을 누르는 말이 아니라, 시대와 자리 앞에서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윤리적 선언이다.
등장 인물
- 맹자: 제나라를 떠나는 길에서 시대의 책임과
舍我其誰(사아기수)의 뜻을 밝히는 전국시대 유가의 대표 사상가다. - 충우: 스승의
不豫色(불예색)을 보고 그 까닭을 묻는 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