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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문공상으로

맹자 등문공상 4장 — 노심노력(勞心勞力) — 대인과 소인의 분업은 천하지통의(天下之通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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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등문공상 4장 노심노력(勞心勞力) 대표 이미지

등문공상 4장은 맹자(孟子)가 허행(許行)의 병경론을 정면으로 논박하는 장이다. 허행은 신농(神農)의 이름을 내세우며, 어진 군주라면 백성과 함께 밭을 갈고 스스로 먹을 것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겉으로 보면 소박하고 평등한 주장처럼 보이지만, 맹자는 그 주장이 실제 생활과 정치의 구조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본다.

이 장의 중심에는 勞心勞力(노심노력)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쓰는 수고와 몸을 쓰는 수고는 서로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맹자는 두 수고가 모두 천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분업은 특권의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를 떠받치는 질서라는 점이 이 장의 한가운데 놓인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허행의 주장을 농가적 평등론으로 보고, 맹자의 문답을 그 자기모순을 벗겨 내는 논변으로 읽는다. 허행 자신도 이미 옷과 관과 기구를 교환으로 얻어 쓰고 있으니, 만민이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노심자치인 노력자치어인)을 天下之通義(천하지통의)로 읽는다. 맡은 바 일은 달라도 모두가 공동체를 이루는 데 참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장은 평등과 분업, 민생과 정치, 실무와 책임의 관계를 함께 묻는 장으로 읽힌다.

1절 — 유위신농지언(有爲神農之言) — 허행이 등나라에 들어오다

원문

有爲神農之言者許行이自楚之滕하여踵門而告文公曰遠方之人이聞君의行仁政하고願受一廛而爲氓하노이다文公이與之處하시니其徒數十人이皆衣褐하고捆屨織席하여以爲食하더라

국역

허행이라는 사람이 초나라에서 등나라로 와 문공에게 말했다. 먼 곳에서 왔지만 임금이 仁政(인정)을 편다는 말을 듣고, 한 집터를 받아 이 나라 백성이 되고 싶다는 뜻이었다. 문공이 거처를 내주자 허행의 무리 수십 명은 모두 갈옷을 입고, 신을 삼고 자리를 짜며 생계를 꾸렸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허행의 등장을 신농의 이름을 빌린 농본 사상의 유입으로 본다. 맹자의 비판은 농업 자체를 낮추기보다, 농업만으로 정치 전체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겨눈다고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허행 집단의 검박한 생활을 겉모습의 엄정함으로만 보지 않는다. 삶의 실천이 단정해 보여도, 그것이 곧 선왕의 도와 같은 것은 아니라는 분별이 먼저 필요하다고 읽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생활 방식이 단순하고 일관된 집단은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운영 원리까지 타당한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상징이 강하다고 해서 제도와 책임의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비슷하다. 실천이 선명한 사람을 보면 쉽게 감화되지만, 그 실천이 내 삶 전체를 떠받칠 수 있는지까지는 차분히 따져야 한다. 이 절은 감탄보다 분별이 먼저라고 말한다.

2절 — 진량지도진상(陳良之徒陳相) — 진상이 허행에게 기울다

원문

陳良之徒陳相이與其弟辛으로負耒耜而自宋之滕하여曰聞君의行聖人之政하니是亦聖人也시니願爲聖人氓하노이다

국역

진량의 제자 진상이 아우 신과 함께 쟁기를 메고 송나라에서 등나라로 왔다. 그는 문공이 성인의 정치를 행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렇다면 역시 성인이라 여겨 그 백성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진상이 처음부터 이단의 사람이 아니라, 유가의 배움 안에 있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중시한다. 그래서 이후의 전향은 단순한 취향 변화가 아니라 학문의 귀속이 흔들리는 사건으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은 여기서 진상의 열망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성인의 정치를 사모하는 마음이 참되려면, 정치의 본질을 생업의 동일화로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에서는 이상을 좇아 사람을 모으는 힘이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이상어를 쓰더라도 실제 뜻은 다를 수 있다. 진상이 성인을 말해도, 그가 이해한 성인은 맹자가 이해한 성인과 같지 않았다.

일상에서도 내가 같은 단어에 얼마나 다른 뜻을 넣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의, 평등, 실천 같은 말은 늘 매력적이지만, 그 의미를 확인하지 않으면 쉽게 다른 길로 간다.

3절 — 진상견허행이(陳相見許行而) — 병경론이 맹자에게 전해지다

원문

陳相이見許行而大悅하여盡棄其學而學焉이러니陳相이見孟子하여道許行之言曰滕君則誠賢君也어니와雖然이나未聞道也로다賢者는與民並耕而食하며饔飧而治하나니今也에滕有倉廩府庫하니則是厲民而以自養也니惡得賢이리오

국역

진상은 허행을 만나 크게 기뻐하여 자기 학문을 버리고 그를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맹자를 찾아와 허행의 말을 전했다. 등나라 임금은 어진 군주이지만 아직 (도)를 듣지 못했으며, 현자는 백성과 함께 농사짓고 스스로 밥을 지어 먹으면서 다스려야 하는데, 지금처럼 창고와 재물 창고를 두는 것은 백성을 수고롭게 하여 자기를 기르는 일이니 어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허행의 논지가 가장 선명하게 제시되는 자리로 본다. 정치적 정당성을 오직 생산노동의 동일성에서 찾는 관점이 드러나며, 맹자의 반박은 여기서 출발한다.

송대 성리학은 與民並耕(여민병경)이 덕치의 상징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이 정치의 본령을 다 말해 주지는 않는다고 본다. 백성과 더불어 산다는 말과 백성과 같은 일만 해야 한다는 말은 다르다는 것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오늘의 조직에서도 현장 경험이 있는 지도자가 신뢰를 얻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도자의 정당성을 현장 업무의 완전한 동일 수행으로만 판단하면, 조정과 계획과 책임의 기능은 설명되지 않는다.

개인의 눈으로 보면 공정함을 동일한 행동으로만 이해하려는 유혹이 있다. 그러나 공정은 같은 일을 하는 데만 있지 않고, 각자의 책임이 제대로 배치되는 데도 있다.

4절 — 맹자왈허자필(孟子曰許子必) — 허행도 곡식은 직접 심는가

원문

孟子曰許子는必種粟而後에食乎아曰然하다許子는必織布而後에衣乎아曰否라許子는衣褐이니라許子는冠乎아曰冠이니라曰奚冠고曰冠素니라曰自織之與아曰否라以粟易之니라曰許子는奚爲不自織고曰害於耕이니라曰許子는以釜甑爨하며以鐵耕乎아曰然하다自爲之與아曰否라以粟易之니라

국역

맹자가 물었다. 허자는 반드시 곡식을 직접 심은 뒤에 먹는가.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반드시 베를 직접 짜서 입는가 하니 아니라고 했다. 허자는 갈옷을 입고 관도 쓰는데, 그 관은 흰 비단으로 만든 것이며 직접 짠 것이 아니라 곡식과 바꾸어 얻은 것이라 했다. 또 솥과 시루로 밥을 짓고 쇠 농기구로 밭을 갈지만, 그것 역시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곡식으로 바꾼 것이라 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문답을 맹자의 반박이 실제 생활의 사실에서 출발한다는 증거로 본다. 허행의 주장이 추상적 이상처럼 보이지만, 정작 허행 자신도 의복과 기구에서는 이미 교환 질서 안에 들어와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고 읽는다.

송대 성리학은 여기서 분업이 탐욕의 산물이 아니라 생활의 자연한 귀결이라는 점을 본다. 농사에 전념하려면 다른 생산을 타인과의 교환에 맡길 수밖에 없고, 그 자체가 공동체의 질서라는 것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 모든 일을 직접 해야만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곧 한계에 부딪힌다. 핵심 역할에 집중하려면 다른 기능은 협업과 위임, 교환으로 풀어야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립은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혼자 떠맡는 것이 성숙은 아니다. 무엇을 직접 하고 무엇을 교환과 도움으로 해결할지 아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5절 — 이속역계기자(以粟易械器者) — 백공과의 교환은 해악이 아니다

원문

以粟易械器者不爲厲陶冶니陶冶亦以其械器易粟者豈爲厲農夫哉리오且許子는何不爲陶冶하여舍皆取諸其宮中而用之하고何爲紛紛然與百工交易고何許子之不憚煩고曰百工之事는固不可耕且爲也니라

국역

맹자는 곡식으로 기구를 바꾸어 얻는 것이 도공과 야공을 해치는 일이 아니며, 도공과 야공이 기구로 곡식을 얻는 것도 농부를 해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허자는 왜 모든 그릇과 쇠붙이를 자기 집에서 직접 만들지 않고 여러 장인과 번거롭게 거래하는가. 대답은 분명했다. 百工(백공)의 일은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대목을 허행 논리의 자기붕괴로 본다. 실제 삶은 이미 기술과 생산의 분화 위에 서 있는데, 그것을 부정하는 말은 자기 일상과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은 각자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곧 의리의 실현이라고 읽는다. 농부는 농부의 일을, 장인은 장인의 일을 맡고, 그 사이의 교환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통로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은 전문성의 분화를 죄악처럼 보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공정한 협업 구조를 만들고, 서로 다른 역량이 충돌하지 않고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개인의 생활에서도 교환은 약함의 표시가 아니다. 필요한 도움과 기술을 정당하게 주고받는 것이 사회적 삶의 정상적 형태다.

6절 — 연즉치천하(然則治天下)는 — 대인과 소인의 일이 따로 있다

원문

然則治天下는獨可耕且爲與아有大人之事하며有小人之事하니且一人之身而百工之所爲備하니如必自爲而後에用之면是는率天下而路也니라故로曰或勞心하며或勞力이니勞心者는治人하고勞力者는治於人이라하니治於人者는食人하고治人者는食於人이天下之通義也니라

국역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까지 농사와 생산을 함께 하며 해낼 수 있겠느냐고 맹자는 되묻는다. 큰사람의 일이 있고 작은사람의 일이 있으며, 한 사람의 몸에도 이미 수많은 장인의 생산물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 만일 무엇이든 반드시 스스로 만든 뒤에야 써야 한다면 천하 사람들을 모두 고된 노동 속에 몰아넣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어떤 이는 힘을 수고롭게 하며, 마음을 쓰는 자는 사람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다스림을 받는다고 한 것이다. 이는 천하에 통하는 일반 원칙이라고 맹자는 말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大人(대인)과 小人(소인)을 도덕적 우열만으로 읽지 않고, 맡은 바 기능의 차이로 읽는다. 이 장의 핵심은 정치와 생산이 나뉘어야 천하가 유지된다는 점을 밝히는 데 있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은 勞心者治人(노심자치인)을 특권의 논리로 읽지 않는다. 더 넓은 관계와 질서를 책임지는 쪽에 더 큰 마음의 수고가 따른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일해야 공정하다고 보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략, 조정, 실행, 유지가 나뉘어야 조직이 움직인다. 분업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책임의 구조다.

개인도 삶의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들면 정작 큰 방향을 놓친다. 무엇에 마음을 쓰고 무엇에 힘을 쓸지 구분하는 것이 삶의 질서를 세운다.

7절 — 당요지시(當堯之時)하여 — 요임금 때의 재난과 치수

원문

當堯之時하여天下猶未平하여洪水橫流하여氾濫於天下하여草木暢茂하며禽獸繁殖이라五穀不登하며禽獸偪人하여獸蹄鳥跡之道交於中國이어늘堯獨憂之하사擧舜而敷治焉이어시늘舜이使益掌火하신대益이烈山澤而焚之하니禽獸逃匿이어늘禹疏九河하며瀹濟漯而注諸海하시며決汝漢하며排淮泗而注之江하시니然後에中國이可得而食也하니當是時也하여禹八年於外에三過其門而不入하시니雖欲耕이나得乎아

국역

맹자는 요임금 때를 끌어온다. 그때는 홍수가 천하에 넘치고 초목과 금수가 무성해 오곡이 익지 못했으며, 짐승의 발자국이 나라 안에 가득했다. 요는 이를 근심하여 순을 등용했고, 순은 익에게 불을 맡겨 산택을 정리하게 하고, 우에게 물길을 터서 마침내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땅을 만들게 했다. 우는 여덟 해 동안 밖에서 지내며 세 번 집 앞을 지나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직접 농사까지 지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 맹자의 물음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성왕의 정치가 생산 이전에 생산 조건을 마련하는 일임을 보여 주는 사례로 읽는다. 농사를 직접 짓느냐보다, 농사를 가능하게 하는 질서를 세우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은 요·순·우의 마음 씀이 곧 勞心(노심)의 본보기라고 본다. 큰 재난을 제거하고 백성이 살 공간을 마련하는 책임이 정치의 앞자리에 놓인다고 읽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실무자의 일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실무가 가능하도록 장애를 치우고 기반을 세우는 일이다. 큰 위험을 정리하는 책임은 별도의 수고를 요구한다.

개인의 삶에서도 당장 눈앞의 일만 처리하다 보면 삶의 물길을 트는 근본 작업을 놓치기 쉽다. 어떤 때는 생산보다 환경 정비가 먼저다.

8절 — 후직(后稷)이 교민가색(敎民稼穡) — 생업과 인륜을 함께 세우다

원문

后稷이敎民稼穡하여樹藝五穀한대五穀이熟而民人이育하니人之有道也에飽食煖衣하여逸居而無敎면則近於禽獸일새聖人이有憂之하사使契爲司徒하여敎以人倫하시니父子有親이며君臣有義며夫婦有別이며長幼有序며朋友有信이니라放勳이曰勞之來之하며匡之直之하며輔之翼之하여使自得之하고又從而振德之라하시니聖人之憂民이如此하시니而暇耕乎아

국역

후직은 백성에게 농사를 가르쳐 오곡을 기르게 했고, 그 결과 백성이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맹자는 인간에게는 생업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히 살더라도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은 설을 사도로 삼아 人倫(인륜)을 가르치게 했고, 부자와 군신, 부부와 장유와 붕우의 질서를 세웠다. 성인이 백성을 걱정하는 일이 이처럼 크니, 어찌 그 틈에 직접 농사만 지을 수 있겠느냐고 맹자는 말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후직과 설의 역할을 연결해 읽는다. 먹고사는 바탕과 사람답게 사는 규범이 함께 갖추어져야 문명이 선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은 이 절에서 생업과 교화의 선후를 함께 본다. 물질 기반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 사회가 완성되지 않으므로 人倫(인륜)의 교육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읽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은 보상과 복지로만 끝나지 않는다. 조직이 오래 가려면 함께 일하는 규범과 관계의 문법도 세워야 한다.

개인의 삶에서도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어떤 관계 질서를 세울지 고민해야 한다. 안정은 생계와 규범이 함께 설 때 길어진다.

9절 — 요이부득순(堯以不得舜)으로 — 성왕의 근심은 인재에 있다

원문

堯以不得舜으로爲己憂하시고舜이以不得禹皐陶로爲己憂하시니夫以百畝之不易로爲己憂者는農夫也니라

국역

요는 순을 얻지 못할까 근심했고, 순은 우와 고요를 얻지 못할까 근심했다. 반면 백 묘의 밭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 일을 근심하는 것은 농부의 일이다. 맹자는 정치의 근심과 농부의 근심이 다르다고 분명히 말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근심의 범위를 나누는 문장으로 본다. 농부는 농토를, 군주는 천하를 맡을 인재를 근심한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은 인재를 얻는 일이 곧 정치의 핵심이라고 읽는다. 천하를 다스리는 마음의 수고는 결국 사람을 알아보고 세우는 책임으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 최고 책임자의 일은 모든 실무를 직접 챙기는 것이 아니다. 함께 책임질 사람을 찾아 세우는 일이 더 크고 어렵다.

개인에게도 누구와 함께 갈지, 누구를 배우고 세울지가 삶의 규모를 바꾼다. 일 자체만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안목이 중요하다.

10절 — 분인이재(分人以財)를 — 혜와 충과 인의 차이

원문

分人以財를謂之惠오敎人以善을謂之忠이오爲天下得人者를謂之仁이니是故로以天下與人은易하고爲天下得人은難하니라

국역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을 (혜)라 하고, 사람에게 선을 가르치는 것을 (충)이라 하며, 천하를 위해 사람을 얻는 것을 (인)이라 한다. 그러므로 천하를 남에게 맡기는 일은 쉬워도, 천하를 위해 참된 인재를 얻는 일은 어렵다고 맹자는 말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혜)·(충)·(인)을 서로 다른 차원의 선으로 읽는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은 천하를 맡길 사람을 얻는 일이라고 본다.

송대 성리학은 여기서 (인)을 감정의 따뜻함만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을 알아보고 제자리에 놓는 정치적 식견까지 포함하는 큰 덕으로 읽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은 좋은 의도나 후한 보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적합한 사람을 뽑고 키우고 배치하는 일이 더 본질적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베풂과 조언은 중요하지만, 결국 누구와 함께 세상을 감당할지를 분별하는 능력이 더 큰 차이를 만든다.

11절 — 공자왈대재(孔子曰大哉)라 — 요순은 마음을 다른 곳에 썼다

원문

孔子曰大哉라堯之爲君이여惟天이爲大어늘惟堯則之하시니蕩蕩乎民無能名焉이로다君哉라舜也여巍巍乎有天下而不與焉이라하시니堯舜之治天下豈無所用其心哉시리오마는亦不用於耕耳시니라

국역

공자는 요임금의 위대함과 순임금의 높음을 찬탄했다. 맹자는 그 말을 끌어와, 요와 순이 천하를 다스리면서 마음을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그 마음이 직접 농사짓는 데 쓰인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들의 마음은 천하 전체를 다스리는 일에 쓰였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요순이 농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게으름이 아니라 책무의 차이로 해석한다. 마음을 쓰는 자의 일이 따로 있다는 설명의 근거가 된다.

송대 성리학은 用其心(용기심)을 공적 책임으로 읽는다. 마음의 수고는 곧 천하를 위한 배려와 질서의 설계라는 것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 큰 책임을 진 사람은 겉으로 눈에 띄는 노동보다 보이지 않는 판단과 조정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것을 단순히 편함으로 보면 구조를 놓치게 된다.

개인도 누군가의 수고를 눈에 보이는 몸의 일만으로 재단하기 쉽다. 하지만 어떤 수고는 판단과 근심의 형태로 존재한다.

12절 — 오문용하변이자(吾聞用夏變夷者) — 진량의 학통을 떠난 진상을 꾸짖다

원문

吾聞用夏變夷者오未聞變於夷者也케라陳良은楚産也니悅周公仲尼之道하여北學於中國이어늘北方之學者未能或之先也하니彼所謂豪傑之士也라子之兄弟事之數十年이라가師死而遂倍之온여

국역

맹자는 중화의 문명으로 변하게 했다는 말은 들어 보았어도, 거꾸로 변질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한다. 진량은 초나라 사람인데도 주공과 공자의 도를 기뻐해 북쪽에서 배워, 북방 학자들도 앞서지 못할 만큼 뛰어난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진상 형제는 그런 스승을 수십 년 섬기다가 스승이 죽자 곧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학문의 정통을 논하는 자리로 본다. 출신은 중요하지 않고, 어떤 도를 따라 배웠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은 진상의 전향을 단순한 취향 변화가 아니라 도통을 저버린 사건으로 읽는다. 배움은 마음이 향하는 곳을 정하는 일이며, 그 향배가 인간을 규정한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화려한 새 주장에 끌려 오래 배운 기준을 쉽게 버리면, 축적된 판단의 힘이 약해진다. 변화는 필요하지만 아무 변화나 성숙은 아니다.

개인도 새로운 사상과 방법을 만날 때,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버리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오래 배운 기준을 버리는 일은 늘 큰 일이다.

13절 — 석자(昔者)에 공자몰(孔子沒)커시늘 — 스승 사후의 의리

원문

昔者에孔子沒커시늘三年之外에門人이治任將歸할새入揖於子貢하고相嚮而哭하여皆失聲然後에歸어늘子貢은反築室於場하여獨居三年然後에歸하니라他日에子夏子張子游以有若似聖人이라하여欲以所事孔子로事之하여彊曾子한대曾子曰不可하니江漢以濯之며秋陽以暴之라皜皜乎不可尙已라하시니라

국역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문인들은 삼년상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자공에게 절하고 서로 마주 울었다. 자공은 다시 무덤가에 집을 짓고 혼자 삼 년을 더 머물렀다. 뒤에 자하와 자장과 자유가 유약이 성인과 비슷하다며 공자 섬기던 예로 그를 섬기려 했지만, 증자는 그것은 안 된다고 했다. 공자의 덕은 강한 물에 씻고 가을 햇볕에 말린 듯 맑아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고사를 통해 스승을 섬기는 예와 도통의 분별을 드러낸다고 본다.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같은 자리에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은 증자의 거절을 의리의 분명함으로 읽는다. 사람을 높이는 마음도 기준 없이 흐르면 도를 잃게 된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창업자나 스승 같은 인물이 떠난 뒤 대체 불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제도는 이어 가야 한다. 비슷하다고 같은 자리에 억지로 올리면 오히려 기준이 흔들린다.

개인의 삶에서도 누군가를 본받는 것과 누군가를 대신 세우는 것은 다르다. 존경의 감정도 분별을 잃으면 쉽게 혼선이 된다.

14절 — 금야(今也)에 남만격설지인(南蠻鴃舌之人) — 허행의 배움은 증자와 다르다

원문

今也에南蠻鴃舌之人이非先王之道어늘子倍子之師而學之하니亦異於曾子矣로다

국역

지금 그대는 선왕의 도가 아닌 남방의 말을 따르는 사람을 배우기 위해 자기 스승을 배반하고 있으니, 이는 증자와는 참으로 다르다고 맹자는 말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표현을 문명과 야속의 대비로 읽는다. 맹자의 핵심은 지역 혐오보다, 선왕의 도와 다른 가르침을 무비판적으로 좇는 태도에 있다.

송대 성리학은 학문의 방향이 사람의 마음을 결정한다고 본다. 스승을 버리고 잘못된 길로 옮겨 가는 일은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라 의리의 문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에서는 새 방법을 받아들이는 일도 기준 위에서 해야 한다. 다름 자체가 가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게도 낯설고 급진적인 말이 늘 더 깊은 진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오래 검증된 기준이 더 무겁다.

15절 — 오문출어유곡(吾聞出於幽谷) — 높은 데서 낮은 데로 갈 수는 없다

원문

吾聞出於幽谷하여遷于喬木者오未聞下喬木而入於幽谷者케라

국역

맹자는 어두운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 간다는 말은 들어도, 높은 나무에서 내려와 다시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간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학문과 삶의 방향은 본래 더 밝고 높은 쪽을 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비유를 학문의 고하를 드러내는 직설적 비판으로 읽는다. 진상이 더 나은 배움에서 덜한 배움으로 내려갔다고 보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은 이 말을 도덕적 퇴행의 비유로 본다. 배움은 마음을 더 맑게 하고 더 크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좁히고 낮추면 잘못된 변화라는 것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변화가 늘 전진은 아니다. 단순하고 강한 구호가 정교한 원칙보다 못한 자리로 끌고 갈 때가 있다.

개인도 더 어렵지만 더 깊은 길에서, 더 쉬우나 얕은 길로 내려가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16절 — 노송(魯頌)에 왈융적(曰戎狄) — 주공의 길과 반대되는 배움

원문

魯頌에曰戎狄是膺하니荊舒是懲이라하니周公이方且膺之어시늘子是之學하니亦爲不善變矣로다

국역

맹자는 魯頌(노송)의 말을 끌어와, 주공이 융적과 형서를 징치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진상은 바로 그 주공이 막으려 했던 쪽의 학설을 배우고 있으니, 그것은 좋은 쪽으로의 변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詩經(시경) 인용으로 뒷받침된 정통론으로 읽는다. 주공의 정치적 방향과 허행의 사상적 방향이 어긋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송대 성리학은 여기서 역사 인용의 기능을 중시한다. 맹자는 개인 취향이 아니라 선왕의 기준으로 지금의 배움을 재단하고 있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새 실험이 기존 핵심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이탈일 수 있다. 방향 감각 없는 변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개인에게도 무엇을 바꾸는가보다 어떤 기준 위에서 바꾸는가가 중요하다. 변화는 늘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17절 — 종허자지도즉(從許子之道則) — 균일 가격의 이상

원문

從許子之道則市賈不貳하여國中이無僞하여雖使五尺之童으로適市라도莫之或欺니布帛長短이同則賈相若하며麻縷絲絮輕重이同則賈相若하며五穀多寡同則賈相若하며屨大小同則賈相若이니라

국역

진상은 허행의 도를 따르면 시장의 값이 둘이 아니게 되어 나라 안에 거짓이 없어질 것이라 말한다. 어린아이를 시장에 보내도 속임을 당하지 않고, 베와 비단의 길이가 같으면 값이 같고, 삼실과 솜의 무게가 같으면 값이 같고, 곡식의 양이 같으면 값이 같고, 신발의 크기가 같으면 값이 같게 된다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허행 사상의 경제적 귀결로 본다. 속임을 줄이려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사물의 실제 차이를 지우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고 읽는다.

송대 성리학은 여기서 명목상 평등과 실제 공정의 차이를 본다. 겉으로 같게 만드는 일이 반드시 바른 질서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 모두를 같은 기준으로만 평가하면 공정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역할과 난이도와 품질 차이를 무시하면 오히려 왜곡이 생긴다.

개인의 삶에서도 단순한 동일 기준은 편하지만 현실을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공정은 차이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차이를 바르게 읽는 일에 더 가깝다.

18절 — 왈부물지부제(曰夫物之不齊) — 물건의 차이는 현실의 이치다

원문

曰夫物之不齊는物之情也니或相倍蓰하며或相什伯하며或相千萬이어늘子比而同之하니是는亂天下也로다巨屨小屨同賈면人豈爲之哉리오從許子之道면相率而爲僞者也니惡能治國家리오

국역

맹자는 사물이 고르지 않은 것이 바로 사물의 실상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은 값 차이가 두 배나 다섯 배가 되기도 하고, 열 배와 백 배, 천 배와 만 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을 억지로 한데 묶어 같게 만들려 하면 천하를 어지럽히게 된다. 큰 신과 작은 신이 같은 값이라면 누가 큰 신을 제대로 만들겠느냐는 것이다. 허행의 도를 따르면 사람들은 서로 이끌려 거짓을 만들게 될 뿐,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고 맹자는 결론짓는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物之情(물지정)을 현실 사물의 실제 모습으로 읽는다. 가격 차이는 탐욕의 결과만이 아니라 품질과 크기와 수량 차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은 사물의 차등을 천리의 한 표현으로 본다. 억지 평준화는 공평이 아니라 질서 파괴이며, 끝내 거짓과 왜곡을 낳는다고 읽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에서는 모든 차이를 불의로만 읽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차이를 인정하되 그것이 남용되지 않게 다스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상에서도 사람과 일과 물건은 저마다 다르다. 그 차이를 모조리 없애려 하면 오히려 더 큰 왜곡이 생긴다. 맹자의 결론은 평등의 이름으로 현실의 결을 지우지 말라는 데 있다.


등문공상 4장은 허행의 병경론을 단순히 비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맹자는 문답을 통해, 허행 자신도 이미 교환과 분업의 질서 안에서 살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장의 핵심은 농업의 가치 부정이 아니라, 생산과 정치, 실무와 판단, 몸의 수고와 마음의 수고가 함께 있어야 공동체가 유지된다는 설명에 있다.

한대 훈고는 이 장을 허행 학설의 자기모순을 밝히는 논변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天下之通義(천하지통의)를 통해 분업의 질서를 더 보편적으로 읽는다. 두 계열 모두, 분업은 불의의 장치가 아니라 천하를 오래 붙드는 구조라는 점에서 만난다. 그래서 勞心勞力(노심노력)은 누가 더 높으냐의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수고가 함께 나라와 삶을 떠받친다는 뜻으로 읽는 편이 더 가깝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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