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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상으로

맹자 이루상 9장 — 걸주실민(桀紂失民) — 걸과 주가 천하를 잃은 것은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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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이루상 9장 걸주실민(桀紂失民) 대표 이미지

맹자 이루상 9장은 桀紂失民(걸주실민)이라는 네 글자로 오래 기억되는 장이다. 폭군 걸왕과 주왕이 왜 무너졌는지를 묻는 데서 출발하지만, 맹자의 설명은 단순한 왕조 교체론에 머물지 않는다. 천하를 얻고 잃는 문제를 결국 백성과 민심의 문제로 돌려놓으면서, 정치의 성패가 어디에서 갈리는지를 매우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이 장은 앞부분에서 민심을 얻는 도리를 제시하고, 이어서 民之歸仁(민지귀인), 爲湯武敺民(위탕무구민), 七年之病(칠년지병) 같은 비유를 차례로 펼쳐 보인다. 그래서 1절이 핵심 명제라면 2절부터 6절까지는 그 명제가 역사와 비유 속에서 어떻게 증명되는지를 보여 주는 전개라고 할 수 있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백성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왕도 정치의 명확한 공식으로 읽는 경향이 강하다. 민심은 추상적 호감이 아니라 생업과 안정을 보장받는 삶의 감각이며, 걸·주 같은 폭정은 그 감각을 스스로 끊어 낸 결과라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에 더해, 得其心(득기심)을 사람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인에 귀의하는 질서로 읽는다. 억지로 복종시키는 정치가 아니라 백성이 스스로 따르게 되는 정치가 참된 왕도라는 점에서, 이 장은 바깥 제도와 안쪽 마음을 함께 다루는 장으로 읽힌다.

그래서 오늘 이 장은 권력을 유지하는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을 잃지 않는 통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조직이든 공동체든, 겉으로는 버티는 것처럼 보여도 구성원의 마음이 떠나기 시작하면 이미 무너짐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맹자는 아주 오래전에 짚고 있다.

1절 — 맹자왈걸주(孟子曰桀紂) — 천하를 잃는 까닭

원문

孟子曰桀紂之失天下也는失其民也니失其民者는失其心也라得天下有道하니得其民이면斯得天下矣리라得其民이有道하니得其心이면斯得民矣리라得其心이有道하니所欲을與之聚之오所惡를勿施爾也니라

국역

맹자는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잃은 까닭을 먼저 분명하게 말한다. 그들이 망한 것은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고, 백성을 잃었다는 말은 결국 민심을 잃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천하를 얻는 길도 분명하니 백성을 얻으면 천하를 얻게 되고, 백성을 얻는 길은 그 마음을 얻는 데 있으며, 그 마음을 얻는 길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모아 주고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행하지 않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왕도 정치의 요체를 밝히는 정식 문장으로 본다. 나라의 존망은 무력이나 세금 규모보다 백성이 정사를 자기 삶의 편으로 느끼는가에 달려 있으며, 폭군의 실패는 바로 그 감각을 잃은 데서 비롯된다고 읽는다. 이 맥락에서 失民(실민)과 失心(실심)은 따로 떨어진 두 단계가 아니라 같은 현실의 다른 표현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得其心(득기심)에 더 무게를 둔다. 백성의 마음은 억지로 붙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을 좋아하고 해를 싫어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결을 따라 움직인다고 본다. 그래서 이 절은 정치 기술의 처방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응답하는지를 보여 주는 원리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성과를 내는 것과 사람을 붙드는 것은 별개가 아니다. 단기적으로 숫자를 만들 수는 있어도 구성원이 계속 소모되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조직은 이미 민심을 잃고 있는 셈이다. 결국 오래 가는 리더십은 사람들이 원하는 조건을 갖추고, 모두가 싫어하는 방식의 압박을 줄이는 데서 나온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살피고, 분명히 괴로워하는 방식을 반복하지 않는 태도가 관계를 지탱한다. 맹자는 천하의 원리를 말하면서도 사실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원리를 함께 짚는다.

2절 — 민지귀인야(民之歸仁也) — 백성이 인으로 돌아가는 길

원문

民之歸仁也猶水之就下며獸之走壙也니라

국역

백성이 어진 정치로 돌아가는 일은 억지로 끌어당겨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맹자는 말한다. 그것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고 짐승이 넓은 들로 달려가듯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을 실천하는 정치가 자리하면 백성은 계산 끝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마땅한 곳을 찾아가듯 그쪽으로 모이게 된다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비유를 백성의 귀부가 강압의 산물이 아님을 보여 주는 말로 읽는다. 생업을 안정시키고 해로운 정사를 줄이는 정치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이익 계산을 넘어서 자연히 그쪽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백성의 이동은 군주의 선전 때문이 아니라 삶의 질서가 어디에서 보장되는가에 대한 분명한 반응으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인간 마음이 본래 인을 향해 기울어 있다는 점을 함께 읽는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마음도 바른 정치에 응답한다는 해석이다. 이 독법에서는 歸仁(귀인)이 정치적 귀속이면서 동시에 인간 본성이 마땅한 자리를 찾는 운동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사람을 붙잡기 위한 과도한 구호나 통제가 자주 동원되지만, 실제로 사람은 자신이 안전하고 존중받는 쪽으로 움직인다. 좋은 조직문화는 억지 결속보다 자연스러운 귀속감을 만든다. 맹자의 비유는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한 힘이 강요가 아니라 방향의 정당성임을 보여 준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나를 더 나은 쪽으로 이끄는 사람과 환경에는 억지 없이 마음이 간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반복해서 찾게 되는 관계와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는 대개 삶을 편안하게 하는 어떤 인의가 있다. 반대로 늘 자신을 거슬러 버텨야 하는 자리라면 이미 어딘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3절 — 고위연구어자(故爲淵敺魚者) — 폭군은 스스로 백성을 몰아낸다

원문

故로爲淵敺魚者는獺也오爲叢敺爵者는鸇也오爲湯武敺民者는桀與紂也니라

국역

그래서 맹자는 더 강한 비유를 든다. 연못을 위해 물고기를 몰아주는 것은 수달이고, 숲을 위해 참새를 몰아주는 것은 매이며, 탕왕과 무왕을 위해 백성을 몰아준 자는 바로 걸왕과 주왕이라는 것이다. 폭군은 경쟁자를 누르는 데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손으로 백성을 다른 곳으로 떠밀어 주는 셈이라는 뜻이 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폭정의 자기파괴성을 보여 주는 비유로 읽는다. 걸·주의 잔혹함은 단지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결과적으로 성왕이 일어날 토대를 마련해 준다. 이 독법에서 탕왕과 무왕의 승리는 무력의 우세보다 백성이 이미 마음으로 떠난 뒤에 나타난 귀결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불인한 정치가 스스로 사람을 밀어내는 도리의 역작용에 주목한다. 사람의 마음이 인을 향한다면, 폭정은 그 반대 방향으로 사람을 떠나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래서 이 비유는 역사 판단인 동시에 도덕 질서의 반발 작용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 구성원을 함부로 대하는 관리자는 흔히 경쟁 조직을 탓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인재를 밀어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불공정한 평가, 모욕적인 의사소통, 무의미한 소모를 반복하면 사람들은 결국 더 나은 곳으로 옮겨 간다. 그때 경쟁자는 사람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떠밀어 준 결과를 받아 든 것에 가깝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관계를 깨뜨리는 방식은 대개 바깥 적보다 안쪽 태도에서 나온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반복해서 마음을 다치게 하면 결국 다른 안전한 자리로 떠나게 만든다. 맹자는 떠나는 사람보다 떠나게 만든 사람의 책임을 먼저 본다.

4절 — 금천하지군(今天下之君) — 인을 좋아하면 왕이 되지 않으려 해도

원문

今天下之君이有好仁者면則諸侯皆爲之敺矣리니雖欲無王이나不可得已니라

국역

지금 천하의 군주들 가운데 참으로 인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다른 제후들이 도리어 그를 위해 백성을 몰아주게 될 것이라고 맹자는 말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비록 스스로 왕이 되지 않으려 해도 결국 왕이 되고 만다. 왕도는 스스로 세력을 과시해서 얻는 자리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실패가 그쪽으로 사람을 몰아가는 자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왕업의 성립을 인심의 귀속으로 설명하는 대표 구절로 본다. 패도처럼 외부를 억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제후들의 실정이 스스로 백성을 흩어지게 만들 때 인을 좋아하는 군주에게 천하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왕은 스스로 쟁취하는 직함이라기보다 백성의 향배가 결정하는 자리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好仁(호인)의 진실성에 주목한다. 형식적인 선행이나 명분 쌓기가 아니라, 인을 좋아하는 마음이 실제 정치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이 응답한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왕도가 외부 확장의 기술이 아니라 내면과 정사의 일치에서 나온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좋은 리더는 억지로 사람을 끌어모으기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오고 싶어 하는 환경을 만든다. 다른 조직이 사람을 소모할수록, 사람을 제대로 대하는 곳은 더 강해진다. 채용 경쟁이나 시장 경쟁에서도 결국 오래 가는 힘은 사람을 존중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억지로 인정받으려 애쓰기보다, 실제로 믿을 만한 사람이 되는 편이 훨씬 강하다. 주변의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일이 모이고 관계가 모이는 경우가 많다. 맹자는 그런 모임의 힘을 왕도라는 말로 설명한다.

5절 — 금지욕왕자(今之欲王者) — 오래된 병과 약쑥의 비유

원문

今之欲王者는猶七年之病에求三年之艾也니苟爲不畜이면終身不得하리니苟不志於仁이면終身憂辱하여以陷於死亡하리라

국역

지금 왕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마치 오래 앓은 병을 고치려고 하면서도 정작 오래 묵은 약쑥을 미리 준비하지 않은 사람과 같다고 맹자는 말한다. 평소에 쌓아 두지 않으면 끝내 그 약쑥을 얻지 못하듯, 인에 뜻을 두지 않은 채 왕업만 바라면 평생 근심과 치욕 속에 살다가 끝내 죽음과 멸망의 자리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왕도 준비의 누적성을 강조하는 비유로 읽는다. 왕업은 위기 때 갑자기 꾸며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소 백성을 살피고 인정을 베풀어 온 축적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三年之艾(삼년지애)는 갑작스러운 묘책이 아닌 오랜 준비의 상징이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志於仁(지어인)에 더 큰 뜻을 둔다. 마음이 처음부터 인을 향하지 않으면, 바깥 목표가 아무리 커도 결국 근심과 치욕만 남는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는 정치 실패의 원인이 준비 부족만이 아니라 뜻의 방향이 잘못된 데 있다는 점이 더 분명해진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위기가 닥쳤을 때 갑자기 신뢰를 만들 수 없다. 평소에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어떤 원칙을 지켰는지가 위기 국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급한 순간에 문화와 신뢰를 사후 조달하려는 시도는 오래된 병에 당장 약쑥을 찾는 일과 비슷하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큰 기회를 맞았을 때 필요한 역량과 품성은 대부분 그 이전의 축적으로 결정된다. 평소에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다가 중요한 순간에만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태도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맹자는 뜻을 어디에 두고 살아왔는지가 결국 마지막 결과를 만든다고 본다.

6절 — 시운기하능숙(詩云其何能淑) — 함께 빠져드는 몰락의 경고

원문

詩云其何能淑이리오載胥及溺이라하니此之謂也니라

국역

맹자는 마지막에 시경의 구절을 끌어와, 이런 상황을 두고 어찌 좋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결국 서로 끌어당기며 함께 물에 빠지듯 망하는 형세라는 것이다. 인에 뜻을 두지 않는 정치가 개인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 나라와 백성을 함께 침몰시키는 일임을 이 한 구절로 매듭짓는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앞선 경고의 귀결로 읽는다. 임금이 인을 잃고 백성을 잃으면 해악은 군주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지 않고, 온 나라가 함께 곤궁에 빠진다는 것이다. 시경 구절을 끌어온 것은 이런 몰락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이미 고전이 경계해 온 보편적 패턴임을 드러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함께 빠져드는 모습에서 마음과 정치의 연쇄를 읽는다. 한 사람의 사욕과 불인이 위로부터 아래로 번지면, 마침내 공동체 전체가 그 결과를 함께 감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는 胥及溺(서급닉)이 정치적 파국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타락의 집단화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잘못된 리더십은 결국 구성원 전체를 소진시킨다. 위에서 시작된 오판이 현장을 흔들고, 현장의 불신이 다시 더 큰 실패를 부르면서 모두가 함께 가라앉는다. 문제를 개인의 무능으로만 보지 말고 구조적 파급을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자기 한 사람의 선택이 주변 사람에게 번져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책임한 태도, 반복되는 거짓말,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습관은 결국 관계 전체를 함께 힘들게 만든다. 맹자는 마지막 시구로 공동체적 책임의 무게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맹자 이루상 9장은 천하의 흥망을 민심이라는 한 축으로 꿰어 낸다. 걸왕과 주왕의 멸망은 역사 속 폭군 이야기이지만, 맹자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권력의 수명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잃었을 때 일어나는 구조적 붕괴다. 백성이 인으로 돌아가는 일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폭정은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슬러 스스로 사람을 밀어낸다.

한대 훈고 독법은 이 장에서 백성을 얻는 정치가 곧 천하를 얻는 정치라는 왕도론의 분명한 공식을 읽어 낸다. 송대 성리 독법은 거기에 더해, 백성의 마음이 왜 인에 응답하는가를 인간 마음의 자연한 결로 설명한다. 두 흐름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결론에 이른다. 사람을 살리고 편안하게 하는 정치는 스스로 사람을 모으고, 사람을 괴롭히는 정치는 스스로 몰락을 준비한다는 점이다.

오늘의 현실에서도 桀紂失民(걸주실민)은 정치만의 말이 아니다. 조직이 구성원을 잃고, 공동체가 신뢰를 잃고, 개인이 관계의 마음을 잃는 모든 장면에서 이 네 글자는 여전히 살아 있다. 오래 가는 힘은 억누르는 힘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둘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힘이라는 점을 이 장은 단단하게 일러 준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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