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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하으로

맹자 이루하 19장 — 유인의행(由仁義行) — 사람이 짐승과 다른 까닭은 매우 적으니 순(舜)은 인의(仁義)에서 말미암아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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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이루하 19장 유인의행(由仁義行) 대표 이미지

이루하(離婁下) 19장은 인간다움의 기준을 극도로 압축해 보여 주는 장이다. 첫 절에서 맹자는 사람이 禽獸(금수)와 다른 까닭이 幾希(기희), 곧 아주 미세한 차이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 차이는 거창한 지식이나 힘이 아니라, 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도덕적 단서를 보존하느냐의 문제다.

이어 둘째 절은 그 미세한 차이가 실제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순)의 사례로 보여 준다. 순은 明於庶物(명어서물)하고 察於人倫(찰어인륜)했기 때문에, 억지로 인의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由仁義行(유인의행), 곧 인의에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 장은 도덕이 겉으로 덧붙인 규범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질서임을 말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사람과 금수를 가르는 미세한 도덕 감각을 보존하는 문제로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에 더해, 순의 행위가 의식적인 덕목 연출이 아니라 본성의 발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두 독법 모두 인간다움은 밖에서 억지로 붙이는 장식이 아니라, 안에서 지켜 내고 길러 내야 할 무엇이라는 데서 만난다.

이루하 전체의 흐름 안에서도 19장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군자와 소인, 정치와 수양을 계속 분별해 온 맹자가 여기서는 그 모든 분별의 가장 깊은 바닥, 곧 사람이 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다시 확인하기 때문이다.

1절 — 맹자왈인지소이이어금수자(孟子曰人之所以異於禽獸者) — 사람과 짐승을 가르는 작은 차이

원문

孟子曰人之所以異於禽獸者幾希하니庶民은去之하고君子는存之니라

국역

맹자는 사람이 짐승과 다른 까닭이 사실은 아주 미세한 데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마저도 놓쳐 버리고, 군자는 그 차이를 끝내 보존한다는 것이다. 인간다움은 거대한 표식이 아니라, 작지만 결정적인 도덕의 단서를 잃지 않는 데 달려 있다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사람에게 본래 있는 도덕적 단서가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밝히는 대목으로 읽는다. 幾希(기희)라는 표현은 차이가 작다는 말이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며, 오히려 바로 그 작은 차이를 지키느냐 잃느냐가 인간과 금수를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는 것이다. 이 계열 독법에서 君子(군자)는 특별한 능력자가 아니라, 그 미세한 차이를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문장을 본심 보존의 공부와 연결해 읽는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단서를 지니지만 욕심과 습관 때문에 그것을 잃기 쉽고, 군자는 그 본래의 마음을 지켜 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存之(존지)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마음을 살피고 욕망을 절제하며 인간다움의 근본을 보전하는 수양의 작업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조직을 무너뜨리는 것이 대개 거창한 악의가 아니라 작은 기준의 반복된 훼손임을 떠올리게 한다. 사소한 거짓 보고, 약한 사람을 대하는 무심함, 눈앞의 성과를 위해 원칙을 조금씩 깎아 내리는 습관이 쌓이면 사람다운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차이가 갈린다. 군자는 큰 구호보다 작은 기준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맹자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인간다움은 대단한 사건보다 작은 습관에서 드러난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 타인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 편리하다고 해서 다 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감각이 바로 그 幾希(기희)다. 맹자는 우리가 흔히 사소하게 넘기는 이 작은 차이가 삶 전체를 가른다고 말한다.

2절 — 순명어서물(舜明於庶物) — 순은 인의를 억지로 하지 않았다

원문

舜은明於庶物하시며察於人倫하시니由仁義行이라非行仁義也시니라

국역

순 임금은 온갖 사물의 이치에 밝았고 사람 사이의 윤리에도 깊이 통달해 있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인의를 억지로 수행하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의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맹자는 가장 높은 도덕적 경지가 규범을 의식적으로 연기하는 상태가 아니라, 인의가 삶의 바탕이 되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상태라고 본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순의 성덕이 사물과 인륜에 대한 분명한 이해 위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즉 明於庶物(명어서물)과 察於人倫(찰어인륜)은 단순한 지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마땅함을 알고 관계의 질서를 어긋나지 않게 보는 능력이다. 그래서 순의 행위는 억지로 인의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추어진 덕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타난 것으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由仁義行(유인의행)과 行仁義(행인의) 사이의 차이를 더 예민하게 본다. 전자는 인의가 마음의 근원이 되어 거기서 행동이 흘러나오는 상태이고, 후자는 인의를 외적 규범처럼 붙들고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상태다. 성리학적 독법은 순의 경지가 바로 이 간극을 넘어선 자리, 곧 덕과 행위가 둘이 아닌 상태라고 이해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가치가 슬로건에 머무는 조직과 실제 판단의 기준이 되는 조직을 구분하게 만든다. 인의를 말하지만 실제 의사결정은 늘 이해관계와 체면만 따른다면, 그것은 行仁義(행인의)조차 되지 못한 껍데기일 수 있다. 반대로 기준이 몸에 밴 리더는 원칙을 굳이 과시하지 않아도 판단과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맹자가 순을 높이는 이유는 바로 그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구절은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나는 옳은 행동을 억지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삶의 방향이 이미 그쪽으로 기울어 있는가. 처음에는 누구나 의식적으로 仁義(인의)를 배워야 하지만, 맹자가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곳은 그것이 습관과 인격이 되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상태다. 由仁義行(유인의행)은 도덕의 가장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는 말이다.


이루하 19장은 인간다움의 본질을 두 단계로 보여 준다. 먼저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아주 작지만 결정적인 도덕적 단서에 있으며, 다음으로 그 단서를 끝내 보존하고 충분히 길러 낸 사람의 삶은 由仁義行(유인의행), 곧 인의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경지에 이른다. 작은 차이를 지키는 일이 결국 가장 큰 인격의 완성으로 이어진다는 구조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에서 인간과 금수를 가르는 미세한 도덕 감각과 순의 성덕을 함께 읽고, 송대 성리학은 본심의 보존과 덕의 자연스러운 발현이라는 수양론적 의미를 더 깊게 부각한다. 두 흐름을 함께 보면, 맹자의 관심은 단순히 착한 행동 몇 가지를 권하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일과, 그 인간다움이 인격 전체가 되는 일을 함께 말한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이 장은 작고 사소해 보이는 기준을 끝내 지킬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기준이 몸에 밸 정도로 길러졌을 때, 사람은 더 이상 옳음을 연기하지 않고 옳음에서 살아가게 된다. 맹자가 순을 통해 보여 준 길은 바로 그 변화의 완성이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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