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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하으로

맹자 이루하 32장 — 요순동인(堯舜同人) — 요와 순도 사람과 같을 뿐이니 무엇이 남들과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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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이루하 32장 요순동인(堯舜同人) 대표 이미지

이루하 32장은 아주 짧은 문답으로 성인에 대한 거리감을 무너뜨린다. 儲子(저자)는 왕이 맹자를 엿보게 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맹자가 보통 사람과 정말 다른 점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한 맹자의 대답은 뜻밖에도 자신을 높이지 않고, 더 멀리 (요)와 (순)까지 끌어와 설명하는 방식으로 주어진다.

핵심은 堯舜同人(요순동인)이다. 요와 순 같은 성왕도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이 말은 성인을 신비한 천재나 초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맹자는 성인의 위대함을 출생의 특권이나 본질적 차이에서 찾지 않고, 같은 인간으로서 도를 끝까지 실현한 데서 찾는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성인과 범인의 종자를 달리 보지 않는 말로 읽는다. 요와 순도 본래 사람과 같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수양과 성취의 길이 인간 일반에게 열려 있음을 드러낸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 역시 이를 본성의 보편성과 공부의 가능성을 밝히는 문장으로 읽으며, 성인이 멀리 있는 우상이 아니라 인간 안의 도리가 충분히 실현된 모습이라고 이해한다.

이루하 전체 흐름에서 이 장은 매우 중요하다. 앞선 여러 장이 마음, 수양, 정치의 기준을 말해 왔다면, 32장은 그 기준을 감당할 주체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답은 분명하다. 성인은 다른 종류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맹자의 가르침은 경탄으로 끝나지 않고 실천의 요청으로 돌아온다.

1절 — 저자왈왕이사인(儲子曰王이使人) — 요와 순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원문

儲子曰王이使人瞯夫子하시나니果有以異於人乎잇가孟子曰何以異於人哉리오堯舜도與人同耳시니라

국역

儲子(저자)가 말하길, 왕이 사람을 시켜 선생을 몰래 살펴보게 했는데 정말 남들과 다른 점이 있느냐고 묻자, 맹자는 어찌 다를 것이 있겠느냐고 답한다. 그리고 그 대답을 한층 더 밀어붙여, (요)와 (순) 같은 성왕도 결국 사람과 같을 뿐이라고 말한다. 특별함을 신비화하지 않고 인간 안의 가능성으로 되돌리는 대목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孟子章句(맹자장구)와 손석의 孟子正義(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문장을 성인과 범인을 본질적으로 다른 종으로 보지 않는 말로 읽는다. 堯舜(요순)이 사람과 같다는 것은 성왕의 덕을 깎아내리는 말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도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임을 밝히는 말이다. 따라서 성인의 높음은 타고난 별종성에 있지 않고, 같은 인간으로서 도리를 온전히 실현한 데 있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孟子集註(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를 인간 본성의 보편성과 연결해 읽는다. 사람마다 지닌 본성의 근본은 다르지 않으며, 차이는 그 본성을 보존하고 확충하는 공부의 깊이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서 堯舜同人(요순동인)은 성인을 끌어내리는 말이 아니라, 보통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말이 된다. 우리 안에도 같은 도리의 싹이 있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장은 탁월한 인물을 영웅화하는 습관을 경계하게 한다. 뛰어난 리더를 다른 종족처럼 떠받들기 시작하면, 구성원은 스스로 책임질 가능성을 포기하고 관객이 되기 쉽다. 맹자의 말은 위대한 사람도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통해, 조직 안의 성장 기준을 몇몇 천재가 아니라 모두의 수양 가능성 위에 세우라고 요구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문장은 강한 자극이 된다. 우리는 종종 훌륭한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은 원래 다르다고 말하면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접는다. 그러나 堯舜與人同耳(요순여인동이)는 그런 핑계를 허물어 버린다. 성인은 멀리 있는 전설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 끝내 도리를 실현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감탄이 아니라, 나 역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닮아 갈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이루하 32장은 성인의 높이를 말하면서도 그 거리를 좁힌다. 맹자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요)와 (순)까지도 사람과 같다고 말한다. 이 한마디는 성인을 우상화하는 시선을 거두고, 인간 일반의 가능성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를 향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본성의 보편성과 수양의 가능성을 밝히는 말로 읽는다. 두 해석은 모두 성인의 위대함이 타고난 별종성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만난다. 결국 堯舜同人(요순동인)은 성인을 낮추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높이는 말이다.

오늘에도 이 가르침은 유효하다. 누군가를 지나치게 특별한 존재로 만들수록 우리는 배움과 책임의 자리에서 멀어진다. 맹자 이루하 32장은 가장 높은 기준을 가장 가까운 자리로 끌어와,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로를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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