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만장하 9장은 신하를 모두 같은 자리로 보지 않고, 그 관계의 성격에 따라 책임의 무게가 다르다고 말하는 장이다. 齊宣王(제선왕)이 卿(경)에 대해 묻자 맹자는 곧바로 貴戚之卿(귀척지경)과 異姓之卿(이성지경)을 구분한다. 그리고 임금이 큰 잘못을 범했을 때 종실의 경은 자리 자체를 바꿀 수 있고, 이성의 경은 끝내 듣지 않으면 떠난다고 답한다.
이 장이 날카로운 까닭은 군신 관계를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맹자에게 중요한 것은 신하의 직함이 아니라 그가 어떤 명분과 어떤 관계 속에서 임금 곁에 서 있는가이다. 같은 諫(간)이라도 누구는 끝까지 안에서 책임을 지고, 누구는 더는 함께할 수 없을 때 물러난다. 그래서 이 장은 충성과 책임, 제도와 도덕의 경계를 매우 짧고 분명하게 정리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주나라 봉건 질서와 종실 정치의 문맥 속에서 읽는다. 貴戚(귀척)은 단순히 가까운 친족이 아니라 종묘사직을 함께 책임지는 존재이므로, 군주가 큰 허물을 범하면 그 자리를 바로잡을 권한과 의무가 더 크다는 것이다. 반면 異姓(이성)의 경은 공적 관계 속에서 끝까지 간한 뒤 떠나는 것이 바른 한계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차이를 제도 설명에만 머물지 않고 의리의 분별로 읽는다. 가까운 친족의 경은 집안과 나라를 함께 지키는 안쪽 책임을 지니므로 더 무거운 개입이 가능하고, 이성의 경은 끝까지 바른말을 다한 뒤 스스로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두 태도를 모두 충성의 다른 형식으로 이해한다.
오늘의 감각으로 보면 이 장은 리더를 대하는 책임의 선을 묻는 글처럼 읽힌다. 모든 참모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관계와 역할에 따라 감당해야 할 책임도 다르다. 맹자는 그래서 누가 더 충성스러운가보다, 누가 자기 자리에 맞는 방식으로 끝까지 바르게 행동하는가를 보라고 말한다.
1절 — 제선왕문경(齊宣王問卿) — 경은 모두 같지 않다
원문
齊宣王이問卿한대孟子曰王은何卿之問也시니잇고王曰卿이不同乎잇가曰不同하니有貴戚之卿하며有異姓之卿하니이다王曰請問貴戚之卿하노이다曰君이有大過則諫하고反覆之而不聽則易位니이다
국역
제선왕이 경에 대해 물으니,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왕께서는 어떤 경을 물으시는 것입니까?” 왕이 말하였다. “경이 다 같은 것이 아닙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같지 않습니다. 종실의 경이 있고 이성의 경이 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종실의 경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종실의 경은 임금이 큰 잘못을 범하면 간하고, 반복해서 간해도 듣지 않으면 임금의 자리를 바꾸어 버립니다.”
축자 풀이
何卿之問也(하경지문야)는 어떤 종류의 경을 묻는가를 되묻는 말로, 논의의 전제를 가른다.貴戚之卿(귀척지경)은 왕실과 혈연으로 이어진 종실의 경을 뜻한다.異姓之卿(이성지경)은 성씨가 다른, 곧 혈연 밖의 경을 말한다.有大過則諫(유대과즉간)은 임금에게 큰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간해야 함을 뜻한다.反覆之而不聽則易位(반복지이불청즉역위)는 거듭 간해도 듣지 않으면 자리를 바꾼다는 뜻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봉건 종법 질서의 핵심 규정을 밝히는 문장으로 읽는다. 貴戚之卿(귀척지경)은 단순히 가까운 친척이 아니라 종묘와 사직을 함께 책임지는 존재이므로, 군주가 나라를 무너뜨릴 정도의 큰 허물을 범할 때는 보통의 간언을 넘어 자리 자체를 바로잡을 책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易位(역위)는 무질서를 조장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종실 책임으로 해석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의리의 층위를 더 분명히 본다. 피로 맺어진 가까운 관계일수록 사사로운 편들기가 아니라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며, 군주의 허물을 보고도 덮어 두는 것이 오히려 불의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실의 경이 易位(역위)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을 탐해서가 아니라, 도를 지키는 안쪽 책임이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라고 읽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모든 참모가 같은 권한과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창업 멤버나 공동 책임자처럼 조직의 뿌리를 함께 지는 사람은 단순한 조언을 넘어, 리더가 조직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때 구조 자체를 바로잡아야 할 책무를 질 수 있다. 맹자의 말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부드럽게 감싸야 한다는 통념을 뒤집고, 오히려 더 무겁게 책임져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가장 가까운 관계가 언제나 무조건 두둔의 자리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가족이든 오래 함께한 동료든, 진짜 가까운 사람이라면 큰 잘못 앞에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더 무거운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맹자는 그 무게를 피하지 말라고 말한다.
2절 — 왕발연변호색(王勃然變乎色) — 왕은 왜 안색이 변했는가
원문
王이勃然變乎色하신대
국역
왕이 크게 안색이 변하자,
축자 풀이
勃然(발연)은 갑자기 격해지고 불쾌해지는 기색을 뜻한다.變乎色(변호색)은 얼굴빛이 달라졌다는 뜻으로, 감정의 동요가 겉으로 드러난 상태다.王(왕)은 여기서 제선왕을 가리키며, 맹자의 답에 즉각 반응하는 인물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한 절을 매우 중요하게 읽는다. 제선왕이 안색을 바꾸었다는 짧은 기록은, 易位(역위)라는 답변이 단지 추상적 원리가 아니라 군주에게 실제 위협으로 들렸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왕의 반응은 인간적 분노이면서 동시에, 군주가 권력을 자기 자리로만 느끼고 공동체의 자리로는 아직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를 드러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군주가 도의 말을 들을 때 겪는 자연스러운 저항으로 읽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권한과 자리를 직접 겨누는 말을 들으면 먼저 색이 변하기 쉽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도를 들을 수 있는가가 군주의 기량을 가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짧은 반응은 단지 분노의 기록이 아니라, 이후 대화가 어떻게 이어질지를 가르는 시험 장면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리더는 자신의 자리를 겨누는 피드백 앞에서 본색이 드러난다. 원칙적으로는 열린 태도를 말해도, 실제로 자기 권한을 제한하거나 교정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즉각 방어적으로 반응하기 쉽다. 勃然變乎色(발연변호색)은 그런 순간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는 듣기 좋은 충고보다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더 힘들어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순간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배우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듣기 편한 말만 원했는지를 드러낸다. 맹자는 왕의 표정을 통해, 불편한 진실 앞의 인간 반응을 숨기지 않고 보여 준다.
3절 — 왈왕물이야(曰王勿異也) — 바르게 묻는 말에는 바르게 답해야 한다
원문
曰王은勿異也하소서王이問臣하실새臣이不敢不以正對호이다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왕께서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왕께서 신에게 물으시기에 신이 감히 바르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축자 풀이
勿異也(물이야)는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뜻으로, 왕의 감정적 반응을 누그러뜨리는 말이다.問臣(문신)은 왕이 신하인 맹자에게 물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不敢不以正對(불감불이정대)는 감히 바르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正對(정대)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바른 원칙으로 응답하는 일을 뜻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신하의 말하는 자세를 밝히는 핵심으로 읽는다. 왕이 물었기 때문에 신하는 사사로운 눈치보다 공적인 바름을 앞세워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미 신하의 직분을 잃는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正對(정대)는 단지 솔직한 답변이 아니라, 군주 앞에서도 기울지 않는 공적 언어를 뜻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맹자의 태도에서 군자의 두 덕을 함께 본다. 하나는 왕의 감정을 더 자극하지 않도록 勿異也(물이야)라고 완충하는 온화함이고, 다른 하나는 그 온화함 속에서도 正(정)을 굽히지 않는 강직함이다. 그래서 이 절은 직언이 거친 공격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넘어서, 예와 의를 함께 세운 답변의 모범으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진짜 조언자는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진실을 빼는 사람이 아니라, 불편한 내용도 전달 방식은 정중하게 다루는 사람이다. 맹자의 말은 리더를 세워 주기 위해 원칙을 접는 것이 아니라, 리더가 물은 이상 조직에 필요한 바른 답을 해야 한다는 뜻을 보여 준다. 이것이 없으면 회의와 자문은 형식만 남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 진심으로 의견을 묻는다면, 관계를 이유로 바른 판단을 끝내 숨겨 버리는 것이 꼭 배려는 아니다. 말의 어조는 부드러울 수 있지만, 내용까지 비틀 필요는 없다. 不敢不以正對(불감불이정대)는 정직함과 예의를 동시에 요구하는 말이다.
4절 — 왕색정연후(王色定然後) — 이성의 경은 끝내 떠난다
원문
王이色定然後에請問異姓之卿하신대曰君이有過則諫하고反覆之而不聽則去니이다
국역
왕이 안색을 진정시키고 나서 이성의 경에 대해 물으니,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성의 경은 임금이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반복해서 간해도 듣지 않으면 떠나갑니다.”
축자 풀이
色定然後(색정연후)는 감정이 가라앉은 뒤에야 다시 묻는 상태를 뜻한다.異姓之卿(이성지경)은 왕실과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경을 가리킨다.有過則諫(유과즉간)은 임금에게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간한다는 뜻이다.反覆之而不聽則去(반복지이불청즉거)는 거듭 간해도 듣지 않으면 그 자리를 떠난다는 뜻이다.去(거)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도덕적 결단을 뜻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이성의 경이 지켜야 할 분명한 한계로 읽는다. 혈연과 종법의 안쪽 책임을 지닌 귀척의 경과 달리, 이성의 경은 끝까지 간언을 다한 뒤 더는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떠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去(거)는 무책임한 이탈이 아니라, 신하가 도를 보존하면서도 군주의 허물에 동조하지 않는 마지막 방식으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선비의 자존과 의리 보존을 읽는다. 끝까지 바른말을 다했는데도 군주가 듣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남아 함께 허물을 나누는 것이 오히려 불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떠남은 패배가 아니라, 더는 의가 실현될 수 없는 자리에서 자기 몸과 도를 지키는 마지막 행위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외부 영입 리더나 전문 경영자, 독립적인 참모는 창업자 가족이나 공동 설립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진다. 그들은 끝까지 직언하고 개선을 시도해야 하지만, 그 말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아 조직이 구조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떠나는 것 역시 책임 있는 선택일 수 있다. 맹자는 충성의 형태가 하나뿐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모든 관계를 끝까지 같은 방식으로 붙들 수는 없다. 해야 할 말을 충분히 했고, 상대가 계속해서 듣지 않으며 함께 있는 것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일이 된다면 떠나는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다. 去(거)는 쉽게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끝까지 할 일을 다한 뒤에도 남아서는 안 되는 자리가 있음을 인정하라는 말로 읽을 수 있다.
맹자 만장하 9장은 경을 한 덩어리로 보지 않고, 관계의 성격에 따라 책임과 한계를 다르게 그린다. 종실의 경은 공동체의 안쪽 책임을 지닌 자리이기에 군주의 큰 허물 앞에서 易位(역위)까지 말할 수 있고, 이성의 경은 끝까지 바르게 간한 뒤에도 듣지 않으면 去(거)해야 한다. 둘은 서로 우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리에서 끝까지 도를 지키는 방식이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에서 종법 질서와 공적 책임의 차이를 읽고, 송대 성리학은 그 차이를 의리의 분별로 더 깊게 해석한다. 두 흐름은 모두 한 가지 점에서 만난다. 충성은 맹목적 잔류가 아니라, 자기 자리에 맞는 방식으로 군주의 허물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라는 점이다.
오늘의 조직과 공동체에서도 이 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누가 더 충성스러운가를 단순히 남아 있는가 떠나는가로 판단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자리, 감당해야 할 책임, 그리고 끝까지 바른말을 했는가이다. 貴戚異姓(귀척이성)은 그래서 정치 제도의 옛 구분을 넘어, 책임 있는 조언과 책임 있는 결별의 기준을 함께 묻는 말로 남는다.
등장 인물
- 맹자: 제선왕의 질문에 답하며 종실의 경과 이성의 경이 임금의 허물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름을 설명한다.
- 제선왕: 경의 역할을 묻고,
易位(역위)라는 답을 듣고 안색이 변한 뒤 다시 이성의 경에 대해 묻는 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