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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상으로

맹자 고자상 4장 — 인내의외(仁內義外) — 고자의 주장과 맹자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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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고자상 4장 인내의외(仁內義外) 대표 이미지

맹자 고자상 4장은 인간의 도덕 감정이 마음 안에서 생겨나는가, 아니면 바깥 대상을 인식한 뒤 따라붙는가를 정면으로 다투는 장이다. 고자는 仁內義外(인내의외), 곧 (인)은 안에 있고 (의)는 밖에 있다고 주장한다. 맹자는 이 구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비유를 겹겹이 사용해 (의) 역시 인간 안에서 발하는 마음이라고 논박한다.

이 장의 특징은 추상적 철학 논쟁을 매우 구체적인 사례로 풀어 간다는 데 있다. 흰 말과 흰 사람을 구별하는 문제, 늙은 말과 어른을 대하는 태도, 내 아우와 남의 아우를 사랑하는 방식, 그리고 불고기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모두 끌어와서, 도덕 판단이 단순한 외물 인식과 같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맹자는 (의)를 대상을 따라 붙는 외적 반응으로 보면 도덕의 본체가 무너진다고 본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인)과 (의)의 소재를 분변하는 정밀한 문답으로 읽는다. 고자의 주장은 대상을 보는 사실과 대상을 섬기는 마음을 같은 층위에 놓는 데 오류가 있고, 맹자의 반박은 바로 그 층위 차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를 더욱 깊게 읽어, (의) 역시 마음의 본연한 발현이지 외부에서 강요된 규범이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이 장은 단순한 말재주 대결이 아니라, 성선과 도덕 감정의 내재성을 옹호하는 논증이 된다.

고자상 전체에서 이 장은 인간 본성 논쟁의 핵심 고비에 놓여 있다. 食色(식색)을 본성이라 보는 고자의 관점이 왜 (의)를 바깥으로 밀어내는지, 그리고 맹자가 왜 그것을 끝까지 받아들일 수 없는지 아래 다섯 절이 차례로 보여 준다.

1절 — 고자왈식색이성야(告子曰食色이性也) — 고자는 의를 밖에 둔다

원문

告子曰食色이性也니仁은內也라非外也오義는外也라非內也니라

국역

고자가 말하였다. “食慾(식욕)과 色慾(색욕)이 본성이니, (인)은 인간의 내부에 있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의)는 외부에 있고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고자의 입장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으로 본다. 고자는 食色(식색)을 본성의 기준으로 삼아 자연적 욕구를 인간 내부의 본바탕으로 이해하고, (인)은 친애의 감정이므로 안에 있으나 (의)는 외부 관계를 따라 생긴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뒤의 문답이 모두 이 첫 가정의 타당성을 깨뜨리는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성선설과 가장 직접적으로 맞서는 주장으로 읽는다. (의)를 밖에 둔다는 것은 도덕 판단의 근원을 마음이 아니라 외부 사물과 관계에 두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도덕은 자발성이 아니라 후천적 부착물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절은 고자와 맹자의 갈림길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윤리가 내적 기준인지 외적 규정인지 묻는 질문으로 읽을 수 있다. 규칙이 있으니 따르는 것과, 옳다는 감각이 안에서 움직여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르다. 맹자가 고자의 주장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바로 도덕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가 공동체의 수준을 가르기 때문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는 종종 착함은 마음의 문제지만 정의는 사회 규칙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자의 말은 얼핏 상식처럼 들리지만, 그렇게 나누는 순간 의로움은 내 삶의 중심이 아니라 외부 압력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 절은 그 익숙한 분리를 다시 의심하게 만든다.

2절 — 맹자왈하이위인내의외야(孟子曰何以謂仁內義外也) — 고자의 근거를 묻다

원문

孟子曰何以謂仁內義外也오曰彼長而我長之라非有長於我也니猶彼白而我白之라從其白於外也라故로謂之外也라하노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슨 근거로 (인)은 인간의 내부에 있고 義는 외부에 있다고 하는가?” 고자가 말하였다. “어떤 어른이 어른이라서 내가 그를 어른으로 섬기는 것이지, 나의 내부에 그를 어른으로 섬기려는 존경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어떤 흰 물건이 흰색이라서 내가 희다고 여기는 것이니, 따라서 그 흰 것이 외부로부터 온 것이라고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義가 외부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고자의 핵심 논변이 제시되는 자리로 읽는다. 어른을 공경하는 일은 어른이라는 외적 조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대상의 속성을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독법은 맹자가 이후에 흰색 인식과 어른 공경을 같은 범주에 둘 수 없음을 보이려 한다고 해석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고자의 오류를 인식과 도덕 감응의 혼동으로 본다. 흰색을 아는 일은 사물의 성질을 아는 것이지만, 어른을 공경하는 일은 마음의 마땅함이 함께 움직이는 행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비유는 외형상 비슷해 보여도 본질을 잘못 연결한 유비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직급이 높으니 존중한다는 말은 맞으면서도 불충분하다. 단지 바깥의 직함만 보고 반응한다면 그것은 복종일 수는 있어도 의로움은 아니다. 맹자의 문제 제기는 존중이 제도적 표식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를 묻는 셈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예우하는 일이 단순히 나이나 위치 같은 외적 조건의 반응이라고 생각하면, 예의는 곧 기계적 습관이 된다. 맹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왜 우리는 어른을 다르게 대하는지를 더 깊이 묻기 시작한다.

3절 — 왈이어백마지백야(曰異於白馬之白也) — 흰색 인식과 어른 공경은 다르다

원문

曰異於白馬之白也는無以異於白人之白也어니와不識케라長馬之長也無以異於長人之長與아且謂長者義乎아長之者義乎아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의 털빛깔이 흰 것을 희다고 여기는 것이나 사람의 피부색이 흰 것을 희다고 여기는 것이나 차이가 없지만, 잘 모르겠구나, 늙은 말을 늙었다고 하는 것과 나이든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는 것이 차이가 없는지는. 그리고 그대는 어른 그 자체를 義라고 생각하는가, 어른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의라고 생각하는가?”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고자의 비유가 깨지는 분기점으로 본다. 흰 말과 흰 사람을 희다고 하는 것은 단순한 속성 인식이므로 같지만, 늙은 말과 어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감정과 도리가 개입되므로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특히 長者(장자)와 長之者(장지자)의 구분을 통해, (의)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주체의 마음과 행위에 있음을 밝힌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에서 (의)의 내재성을 더욱 선명하게 읽는다. 만약 어른이라는 외적 사실만으로 의가 결정된다면, 누구나 똑같이 자동 반응해야 하지만 실제 의는 마음이 마땅함을 느끼고 응답할 때 성립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맹자의 질문은 도덕 판단이 사물 인식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논증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직책을 인식하는 것과 그 사람을 정당하게 존중하는 것이 다르다. 명함을 보고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가능해도, 그를 왜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적 납득이 없다면 진짜 권위는 생기지 않는다. 이 절은 정보 인식과 가치 판단이 같은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의 나이, 경력, 위치를 아는 것과 그를 진심으로 예우하는 것은 다르다. 맹자는 바로 그 틈에서 (의)가 시작된다고 본다.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도덕이 되지 않고, 마음이 응답해야 비로소 의로움이 된다.

4절 — 왈오제즉애지(曰吾弟則愛之) — 고자는 인은 안에, 의는 밖에 있다고 다시 말한다

원문

曰吾弟則愛之하고秦人之弟則不愛也하나니是는以我爲悅者也라故로謂之內오長楚人之長하며亦長吾之長하나니是는以長爲悅者也라故로謂之外也라하노라

국역

고자가 말하였다. “내 아우이면 사랑하고 (진) 나라 사람의 아우이면 사랑하지 않는데, 이는 내 마음이 좋아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므로 仁이 내부에 있다고 한 것이다. (초) 나라의 나이든 어른도 어른으로 섬기고 내 집안의 어른도 어른으로 섬기는데, 이는 어른이라는 사실을 위주로 생각한 것이므로 義가 외부에 있다고 한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고자가 자기 입장을 다시 정리하는 자리로 본다. (인)은 친소의 정에서 나오므로 내면의 감정이고, (의)는 대상의 조건을 보고 반응하는 것이므로 외면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 독법은 맹자가 다음 절에서 바로 이 구분이 끝내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 주려 한다고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고자의 분류가 감정과 의를 기계적으로 쪼갠다고 본다. 친애가 마음에서 나온다고 해서 의가 밖에서 온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으며, 어른을 공경하는 일 역시 마음의 마땅함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절은 고자의 논리가 마지막으로 정리되는 동시에, 무너질 준비를 마친 자리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친밀감은 개인 감정이고 공정성은 제도 문제라고 쉽게 나누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정성도 내적 양심과 판단이 없으면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맹자가 고자의 구분을 밀어붙여 묻게 만드는 이유도, 그 분리가 현실에서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내 사람을 아끼는 마음은 안에서 나오고, 남을 예우하는 것은 사회 규범이 시켜서 하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예의는 쉽게 공허한 연기로 바뀐다. 이 절은 우리가 의를 얼마나 바깥 규칙처럼 오해하는지 보여 준다.

5절 — 왈기진인지자(曰耆秦人之炙) — 식욕도 그렇다면 밖에 있는가

원문

曰耆秦人之炙無以異於耆吾炙하니夫物이則亦有然者也니然則耆炙도亦有外與아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진 나라 사람이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이나 내가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 다른 사물 역시 다 그런 것이니, 그렇다면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식욕)도 역시 외부에 있다는 말인가. (불고기를 좋아하는 마음이나 어른을 섬기는 마음이 모두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맹자의 반박이 마침내 귀류법으로 완성되는 자리로 본다. 만약 외적 대상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이유만으로 (의)를 외부에 둔다면, 불고기를 좋아하는 식욕 역시 외부에 있다고 해야 하는데, 이는 고자 자신의 출발점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맹자가 고자의 논리를 그대로 밀어붙여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마음의 발현 일반을 설명하는 말로 읽는다. 어떤 대상이 계기가 된다고 해서 그에 대한 좋아함이나 마땅함의 근원이 바깥으로 옮겨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의) 역시 외물을 보고 일어나더라도, 그 근본은 마음 안의 이치와 감응에 있다는 결론이 더 또렷해진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도 기준이 외부 상황에 의해 촉발된다고 해서 그 판단의 근거까지 외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규정 위반을 보고 분노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보고 옳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은 사건이 계기일 뿐 판단의 뿌리는 내 안의 감각에 있다. 이 절은 그 점을 아주 날카롭게 짚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느끼는 일은 늘 바깥 대상을 통해 일어난다. 그러나 그 감응이 모두 밖에서 주입되는 것은 아니다. 맹자는 결국 의로움도 사랑처럼, 식욕처럼, 인간 안에서 움직이는 생생한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맹자 고자상 4장은 仁內義外(인내의외)라는 고자의 유명한 주장을 짧지만 정교하게 무너뜨린다. 고자는 (의)를 외적 대상에 대한 반응으로 보았지만, 맹자는 흰색 인식과 어른 공경의 차이, 친애와 존중의 차이, 그리고 마지막 불고기 비유까지 동원해 도덕 판단이 단순한 외물 인식과 같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의)는 대상 때문에 촉발될 수는 있어도, 그 뿌리는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에서 고자의 유비가 무너지는 논리 구조를 읽고, 송대 성리학은 이를 마음 안의 도덕 이치가 발현되는 과정으로 더 깊게 해석한다. 두 흐름은 모두 (의)를 외부 규칙으로만 이해하면 인간의 도덕성은 피상적 습관으로 남게 된다는 점에서 만난다.

오늘 이 장은 윤리가 규정 준수인지 내면의 감각인지 묻는 질문으로 다시 읽힌다. 맹자의 대답은 분명하다. 바깥 세계는 계기일 뿐이고, 옳다고 느끼고 마땅히 응답하는 힘은 결국 내 안에서 나온다. 仁內義外(인내의외)를 둘러싼 이 오래된 논쟁은, 지금도 우리가 왜 옳은 일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자리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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