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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하으로

맹자 고자하 1장 — 불췌본말(不揣本末) — 예(禮)·식(食)·색(色) 가운데 무엇이 중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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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고자하 1장 불췌본말(不揣本末) 대표 이미지

고자하(告子下(고자하)) 1장은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묻는 질문이 어떻게 잘못된 비교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본문이다. 한 임나라 사람이 옥려자(屋廬子(옥려자))에게 (예)와 먹는 것, 예와 아내를 얻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중하냐고 묻는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우선순위 문제 같지만, 맹자는 이 질문이 처음부터 (본)과 (말), 경중이 다른 층위를 뒤섞어 놓았다고 본다.

이 장의 핵심은 예가 언제나 밥보다 중요하다고 기계적으로 말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맹자는 비교 자체가 정당하려면 같은 층위의 것을 놓고 비교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무거운 식욕의 경우와 가장 가벼운 예의 경우를 일부러 골라 비교하면 당연히 먹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이고, 가장 절박한 욕망과 가장 약한 규범을 맞붙이면 결론은 이미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질문의 편벽됨을 교정하는 문답으로 읽는다. 옥려자가 대답하지 못한 까닭은 예가 약해서가 아니라, 질문이 애초에 동등한 비교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不揣其本而齊其末(불췌기본이제기말)은 사물의 뿌리와 가지를 헤아리지 않고 끝의 모양만 맞추려는 잘못된 논법을 가리킨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을 도덕 판단의 분별법으로 읽는다. 예와 식과 색은 모두 인간 삶에 실제로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들을 판단할 때는 절박성, 정당성, 본말의 질서를 함께 따져야지 단순히 표면적 강도만으로 우열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독법에서 맹자의 대답은 윤리학이자 논리학이다.

고자하 첫 장에 이 대목이 놓인 것도 의미가 크다. 고자상에서 인간 본성과 덕의 관계를 두고 벌어지던 논쟁이 여기서는 판단 기준의 문제로 옮겨 온다. 곧 이 장은 무엇을 중하다고 말하기 전에, 과연 제대로 비교하고 있는가를 먼저 묻는 본문이다.

1절 — 임인이유문옥려자왈(任人이有問屋廬子曰) — 예와 먹는 것, 무엇이 더 무거운가

원문

任人이有問屋廬子曰禮與食이孰重고曰禮重이니라

국역

어떤 임나라 사람이 맹자의 제자 옥려자(屋廬子(옥려자))에게 예(禮)와 먹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고 묻자, 옥려자는 예가 더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첫머리를 의도적으로 함정을 파는 질문의 시작으로 본다. 옥려자(屋廬子(옥려자))의 대답은 유가의 일반 원칙으로는 자연스럽지만, 질문자는 바로 그 답을 극단 상황으로 몰아가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절은 옥려자의 실수보다, 논쟁의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으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원칙 진술과 상황 적용의 차이를 보여 주는 발단으로 읽는다. 예가 중하다는 말은 삶의 질서를 세우는 일반 명제이지만, 상대는 곧바로 생존의 극단 사례를 끌고 들어와 그 원칙을 흔든다. 이 독법은 이후 맹자의 대답이 왜 단순한 재강조가 아니라 비교 틀 자체를 바꾸는 논증이 되는지를 예고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원칙 질문이 자주 프레임 싸움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누군가 “공정이 중요합니까, 성과가 중요합니까”처럼 묻는 순간, 이미 답을 궁지로 몰아넣을 준비를 하고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성급히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어떤 조건을 숨기고 있는지 보는 일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런 질문은 많다. 예의냐 실리냐, 원칙이냐 생존이냐 같은 구도는 매력적이지만, 대개 너무 거칠다. 옥려자의 짧은 답은 정직했지만, 맹자는 곧 그보다 더 깊은 분별이 필요하다고 보여 준다.

2절 — 색여예숙중고(色與禮孰重고) — 이번에는 아내와 예를 겨룬다

원문

色與禮孰重고

국역

임나라 사람은 질문을 더 밀어붙여, 아내를 얻는 일과 예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다시 묻는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짧은 절을 질문자의 논법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으로 읽는다. 먹는 일에 이어 이번에는 혼인과 성적 욕망을 끌어와, 인간의 가장 절박한 요구와 예를 맞붙이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질문자는 예의 일반 원칙을 반례로 무너뜨리려는 방식으로 논쟁을 이끈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색)을 단순한 쾌락보다 혼인 욕구와 인간의 자연적 요구 전체를 아우르는 것으로 읽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후 맹자의 답은 욕망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이 아니라, 욕망을 비교하는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는 논의를 불리하게 만드는 질문이 종종 주제를 조금씩 바꿔 가며 반복된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에는 먹는 문제, 다음에는 혼인 문제로 옮겨 가면서도 겉으로는 같은 질문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래서 좋은 판단자는 질문 내용뿐 아니라 질문이 이동하는 궤적을 봐야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사람은 자주 논점을 옮기며 상대를 흔든다. 하나의 원칙을 말하면 생존 사례를 들고 오고, 거기에 답하면 또 다른 욕망 사례를 끌어온다. 맹자의 논법은 이런 흔들림에 휘둘리지 않고 기준 자체를 붙드는 법을 보여 준다.

3절 — 왈예중이니라왈이예식즉(曰禮重이니라曰以禮食則) — 옥려자는 말문이 막히고 맹자에게 간다

원문

曰禮重이니라曰以禮食則飢而死하고不以禮食則得食이라도必以禮乎아親迎則不得妻하고不親迎則得妻라도必親迎乎아屋廬子不能對하여明日에之鄒하여以告孟子한대孟子曰於答是也에何有리오

국역

옥려자(屋廬子(옥려자))가 다시 예가 중요하다고 답하자, 임나라 사람은 예를 갖추면 굶어 죽고 예를 갖추지 않으면 먹을 수 있는 경우에도 반드시 예를 지켜야 하느냐고, 또 예를 갖춘 친영을 하면 아내를 얻지 못하고 그렇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경우에도 반드시 예를 지켜야 하느냐고 따져 묻는다. 옥려자는 대답하지 못하고 이튿날 추나라로 가서 맹자(孟子(맹자))에게 이 일을 알리자, 맹자는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옥려자(屋廬子(옥려자))의 침묵을 예의 약점으로 보지 않는다. 상대가 극단 상황과 예외 사례를 들어 일반 원칙을 무너뜨리려 했기 때문에, 대답은 원칙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구조를 바로잡는 방향이어야 했다는 것이다. 맹자의 자신감은 그 점을 이미 간파했기 때문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면을 교육적 순간으로 읽는다. 제자가 원칙은 알지만 논변의 함정을 꿰뚫어 보지 못했을 때, 스승은 더 깊은 분별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의 다음 답은 바로 그 분별법, 곧 본말과 경중을 올바르게 맞추는 논리로 이어진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누군가 극단 사례를 가져와 원칙을 무너뜨리려 할 때 즉답이 막히는 경험은 흔하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원칙을 더 큰 소리로 외치는 일이 아니라, 질문이 정말 공정한 비교인지 따져 보는 일이다. 맹자는 바로 그 전환을 보여 준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억지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힐 수 있다. 하지만 막히는 이유가 틀려서가 아니라, 상대가 비교 자체를 비틀어 놓았기 때문일 수 있다. 맹자의 태도는 당황보다 구조를 보라고 말한다.

4절 — 불췌기본이제기말이면(不揣其本而齊其末이면) — 밑동을 따지지 않고 끝만 맞추면 비교는 왜곡된다

원문

不揣其本而齊其末이면方寸之木을可使高於岑樓니라

국역

맹자(孟子(맹자))는 나무의 밑부분은 따지지 않고 끝부분만 맞추어 재면, 한 치밖에 안 되는 작은 나무도 높은 누각보다 더 높아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곧 본과 말, 시작과 끝을 함께 헤아리지 않으면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비유를 논변의 핵심 전환점으로 읽는다. 사물의 뿌리와 끝을 함께 재지 않고 일부만 떼어 맞추면, 본래 작고 큰 것도 거꾸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나라 사람의 질문 역시 같은 층위의 예와 식, 예와 색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 극단 상황의 일부만 끌어온 잘못된 비교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本末(본말)의 질서를 도덕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읽는다. 본을 보지 않고 말만 고르면 눈앞의 결과에 쉽게 끌리게 되고, 그러면 원칙과 예외가 뒤섞인다. 이 독법에서 맹자의 비유는 단순한 수사 이상의 논리 규칙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지표를 고를 때 무엇을 분모로 삼는지, 무엇을 제외하고 있는지 보라는 경고로 읽힌다. 숫자나 사례를 일부만 떼어 보면 작은 성과가 큰 전략보다 좋아 보일 수도 있고, 단기 효율이 장기 원칙보다 우월해 보일 수도 있다. 비교의 기준 자체를 점검하지 않으면 판단은 쉽게 왜곡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사람은 자주 일부만 비교한다. 남의 결과만 보고 내 출발점을 잊거나, 한 장면만 떼어 전체 관계를 재단하는 식이다. 不揣本末(불췌본말)은 삶을 바르게 보려면 언제나 밑동과 끝을 함께 봐야 한다는 말이다.

5절 — 금중어우자는(金重於羽者는) — 작은 쇠 하나와 수레 가득 깃털을 비교하는가

원문

金重於羽者는豈謂一鉤金與一輿羽之謂哉리오

국역

맹자(孟子(맹자))는 쇠가 깃털보다 무겁다고 할 때, 설마 작은 쇠고리 하나와 수레에 가득 실은 깃털을 비교해 한 말이겠느냐고 되묻는다. 무게를 말하려면 같은 조건에서 비교해야지, 분량을 일부러 비틀어 놓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잘못된 비중 비교를 명확히 드러내는 비유로 읽는다. 질이 다른 일반 명제를 양의 극단 사례로 뒤집어 버리면, 어떤 진술이든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이를 통해 상대의 질문이 바로 그런 식의 억지 비교였음을 밝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도덕 판단과 논리 판단이 하나로 묶인다고 본다. 예가 중하다는 말은 본래 질적 질서를 말한 것인데, 상대는 양적 극단 사례를 끌고 와 그것을 무너뜨리려 했다. 맹자의 반박은 질과 양, 일반과 특수의 구분을 바로 세우는 데 있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흔한 숫자 착시를 떠올리게 한다. 작은 손실 하나와 대량의 사소한 이익을 의도적으로 배치해 무엇이 더 중요해 보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판단자는 결론보다 먼저 비교 단위가 공정한지 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비슷하다. 어떤 원칙을 비웃기 위해 극단 사례 하나를 가져오거나, 작은 장점과 큰 약점을 섞어 비교하는 일은 흔하다. 맹자의 질문은 그런 비교를 한 번 멈추고, 정말 같은 무게끼리 재고 있는지 보라고 말한다.

6절 — 취식지중자와여예지경자이비지면(取食之重者와與禮之輕者而比之면) — 무거운 식과 가벼운 예를 붙이면 당연히 결론은 비틀린다

원문

取食之重者와與禮之輕者而比之면奚翅食重이며取色之重者와與禮之輕者而比之면奚翅色重이리오

국역

맹자(孟子(맹자))는 먹는 것 가운데 가장 절박한 경우와 예 가운데 가장 가벼운 경우를 골라 비교하면 당연히 먹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일 수밖에 없고, 아내를 얻는 욕망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경우와 예의 가벼운 경우를 붙여 놓으면 역시 색이 더 중요해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결론이 아니라 비교 방식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논변의 허점을 직접 해부하는 대목으로 읽는다. 상대는 일반적인 예와 일반적인 식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 식의 가장 무거운 경우와 예의 가장 가벼운 경우를 가져와 질문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그것으로 일반 원칙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논리를 본말과 경중의 분별법으로 읽는다. 어떤 판단이든 맥락, 층위, 조건을 함께 살피지 않으면 쉽게 극단에 끌려가며, 그때 윤리는 감정적 선택으로 무너진다. 맹자의 말은 예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외를 일반 원칙의 자리에 올려놓지 말라는 경고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정책 반대나 원칙 비판이 자주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 준다. 가장 불리한 상황의 사례 하나와 가장 약한 규정 하나를 붙여 놓고 전체 원칙을 무용하다고 말하는 식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판단은 평균적 구조와 극단적 예외를 구분할 줄 아는 데서 시작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현실이 더 중요하지”라는 말은 자주 맞지만,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무엇을 현실이라 부르고 무엇을 원칙이라 부르는지, 그리고 그 둘의 가장 무거운 부분과 가장 가벼운 부분만 떼어 비교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맹자는 바로 그 지점을 찌른다.

7절 — 왕응지왈진형지비(往應之曰紾兄之臂) — 정말 먹고 아내를 얻고 싶다면 형의 팔을 비틀고 처녀를 끌고 오겠는가

원문

往應之曰紾兄之臂而奪之食則得食하고不紾則不得食이라도則將紾之乎아踰東家墻而摟其處子則得妻하고不摟則不得妻라도則將摟之乎아하라

국역

맹자(孟子(맹자))는 옥려자(屋廬子(옥려자))에게 돌아가 이렇게 대답하라고 한다. 형의 팔을 비틀어 음식을 빼앗아야만 먹을 수 있다면 정말 그렇게 하겠느냐고, 또 동쪽 집 담을 넘어 처녀를 억지로 끌고 와야만 아내를 얻을 수 있다면 정말 그렇게 하겠느냐고 말하라는 것이다. 생존과 욕망이 중요하다는 말이 곧 모든 예와 의를 무너뜨려도 된다는 뜻은 아님을, 가장 선명한 역질문으로 드러낸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맹자의 마지막 답을 잘못된 극단 사례에 더 분명한 극단 사례로 응수한 것으로 읽는다. 먹는 것과 아내를 얻는 일이 중요하더라도, 그것이 곧 형제의 윤리와 혼인의 예를 짓밟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맹자의 예시는 욕망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욕망에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음을 보여 준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본말 분별의 실제 적용으로 본다. 생존과 혼인은 인간 삶의 큰 문제이지만, 그것을 이루는 방식이 의를 해치면 이미 본을 잃은 것이므로 더 이상 중함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맹자의 답은 단순한 말막기가 아니라, 욕망을 도리 안에 두는 질서의 회복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목표가 중요하다는 말이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오래된 원칙을 다시 세운다. 성과를 위해 동료를 짓밟고, 채용이나 계약을 위해 기본 규범을 깨뜨리는 일을 “현실적 선택”이라 부를 수는 있어도, 그것이 옳은 선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맹자는 바로 그 착각을 가장 거친 예시로 끊어 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대목은 선명하다. 배고픔과 사랑, 결혼과 생존은 모두 절실하지만, 절실함이 곧 모든 행동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맹자는 욕망 자체보다 욕망을 이루는 방식의 정당성을 묻고, 본을 잃은 채 말만 맞추는 삶을 경계한다.


고자하 1장은 예와 식, 색의 우열을 단순히 정리하는 장이 아니다. 맹자는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 자체가 본말과 경중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장의 핵심은 “예가 더 중요하다”는 한 문장보다, 어떻게 비교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不揣本末(불췌본말)의 분별에 있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질문의 편벽됨을 바로잡는 논증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욕망과 예를 도리의 질서 안에서 다시 배치하는 작업으로 읽는다. 두 독법은 모두, 가장 절박한 사례와 가장 가벼운 규범만 붙여 놓고 전체 질서를 판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만난다.

오늘의 삶에서도 이 가르침은 그대로 유효하다. 무엇이 더 현실적이고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은 늘 매력적이지만, 비교의 조건이 비뚤어져 있으면 결론 역시 쉽게 비뚤어진다. 맹자는 그래서 먼저 본을 재고 끝을 가지런히 하라고, 다시 말해 제대로 비교하고 그다음에 판단하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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