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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하으로

맹자 고자하 2장 — 인개요순(人皆堯舜) — 사람은 누구나 요순(堯舜)이 될 수 있으니 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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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고자하 2장 인개요순(人皆堯舜) 대표 이미지

고자하 2장은 맹자의 인간 가능성에 대한 가장 대담한 선언 가운데 하나를 담고 있다. 조교가 “사람은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느냐”고 묻자, 맹자는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한다. 이 짧은 대답 뒤에 이어지는 설명은 성인 됨을 신비한 혈통이나 특이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도를 실천하느냐의 문제로 돌려놓는다.

이 장에서 조교는 먼저 문왕과 탕의 큰 키를 떠올리며 자신도 키는 충분한데 왜 성인이 되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맹자는 곧바로 성인 됨이 체격이나 재능에 달린 일이 아니라, (위), 곧 실제로 행하느냐에 달렸다고 답한다. 이어 요순의 도를 孝弟(효제)라고 풀고, 옷을 입고 말을 외우고 행동을 본받는 일까지 매우 실천적인 언어로 끌어내린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성인 가능성의 보편성을 밝힌 대목으로 읽는다.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성인의 도가 멀고 괴상한 비법이 아니라, 일상에서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를 섬기는 도리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도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人皆堯舜(인개요순)을 본연지성의 보편성과 실천 의지의 문제로 읽으며, 하지 못함보다 하지 않음의 병을 더 무겁게 본다.

그래서 고자하 2장은 낙관적 격려문이 아니라, 가능성을 핑계로 삼지 못하게 만드는 준엄한 문답이다. 요순의 길이 열린 길이라면, 문제는 길이 없는 데 있지 않고 찾지 않는 데 있다. 맹자는 바로 그 점을 조교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끝까지 밀어붙인다.

1절 — 조교문왈(曹交問曰) — 사람은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는가

원문

曹交問曰人皆可以爲堯舜이라하나니有諸잇가孟子曰然하다

국역

조교(曹交)가 물었다. “사람은 모두 요순(堯舜) 같은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럴 수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然).”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첫 절을 성인 가능성의 보편 선언으로 읽는다. 요순은 태어나면서부터 완전히 다른 종족 같은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받아 도달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맹자의 “然”은 인간 본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담은 응답이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可以(가이)에 특히 주목한다. 이미 다 요순이라는 뜻이 아니라, 누구나 그 길에 이를 수 있는 본연의 근거와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가능성의 유무가 아니라, 그 가능성을 현실의 공부와 실천으로 이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좋은 리더나 훌륭한 동료가 소수의 특별한 천재에게만 허락된다고 믿을 때 성장의 문이 닫힌다. 맹자의 말은 기준을 낮추는 위로가 아니라, 높은 기준을 모두의 과제로 돌려세우는 선언이다. 누구나 될 수 있다면, 핑계는 줄어든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한마디는 무겁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지만, 맹자는 먼저 가능성을 부정하지 말라고 한다.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책임도 시작된다.

2절 — 교문문왕십척(交聞文王十尺) — 키가 크다고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원문

交는聞文王은十尺이오湯은九尺이라호니今交는九尺四寸以長이로되食粟而已로니如何則可잇고

국역

조교가 말하였다. “제가 들으니, 문왕(文王)은 신장이 10척이고 탕(湯) 임금은 9척이라 하는데, 지금 저는 9척 4촌이나 되면서도 양식이나 축내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조교의 오해를 드러내는 질문으로 본다. 조교는 아직 성인의 위대함을 몸집이나 비범한 외형 같은 데서 찾고 있으며, 그래서 자기 조건을 성왕과 비교하는 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바로 이 오해를 깨뜨리기 위해 이후 논의를 실천의 문제로 돌린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사람들이 성인을 멀리 밀어 두는 심리를 읽는다. 성인을 특별한 신체나 기이한 재능의 소유자로 상상하면, 자기 수양의 책임을 쉽게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독법은 조교의 질문을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 도를 회피하는 전형적 방식으로 해석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우리는 종종 탁월함을 타고난 카리스마나 특별한 배경 탓으로 돌린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에게 남는 것은 구경뿐이다. 조교의 질문은 바로 그런 심리를 드러내고, 맹자는 곧 그것을 깨 버린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나는 재능이 없어서”, “나는 환경이 달라서”라는 말은 때로 책임을 미루는 좋은 변명이 된다. 맹자는 성인됨을 몸과 배경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 바꾸면서 그 변명을 잘라 낸다.

3절 — 해유어시(奚有於是) — 문제는 하지 못함이 아니라 하지 않음이다

원문

曰奚有於是리오亦爲之而已矣니라有人於此하니力不能勝一匹雛면則爲無力人矣오今曰擧百鈞이면則爲有力人矣니然則擧烏獲之任이면是亦爲烏獲而已矣니夫人은豈以不勝爲患哉리오弗爲耳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요순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이 어찌 여기(신장)에 달려 있겠는가.(요순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또한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의 힘이 한 마리의 오리새끼도 들 수 없다고 한다면 힘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고, 이제 100균(3000근)을 든다고 한다면 힘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오확(烏獲)이 들던 짐을 들어 올릴 경우, 이 사람 역시 오확이 되는 것이니, 사람들은 어찌 감당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가. 하면 되는데 하지 않을 뿐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능력 판단의 기준을 바꾸는 대목으로 읽는다. 힘이 있는지 없는지는 실제로 들어 올리느냐에서 드러나듯, 성인의 길도 실천하느냐에 따라 판별된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맹자는 사람의 가능성을 막연한 자질이 아니라 (위), 곧 행함의 문제로 전환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弗爲耳(불위이)를 인간 수양의 가장 큰 병으로 읽는다. 본연의 가능성은 있는데, 욕심과 게으름과 두려움 때문에 실제로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독법은 성인과 범인의 거리를 본질 차이가 아니라 공부와 실천의 차이로 설명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많은 사람이 “할 수는 있는데 지금은 여건이 안 된다”는 말로 책임을 미룬다. 물론 조건의 차이는 있지만, 맹자의 말은 그 차이를 핑계 삼아 전혀 시작하지 않는 태도를 겨눈다. 기준은 결국 실행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 맹자는 바로 그 간격을 정직하게 보라고 한다. 많은 경우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능력 부족만이 아니라, 시작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4절 — 서행후장자(徐行後長者) — 요순의 도는 멀지 않고 효제에 있다

원문

徐行後長者를謂之弟오疾行先長者를謂之不弟니夫徐行者는豈人所不能哉리오所不爲也니堯舜之道는孝弟而已矣니라

국역

천천히 걸어서 어른 뒤에 가는 것을 ‘공손하다’고 하고, 빨리 걸어서 어른을 앞서가는 것을 ‘공손하지 못하다’고 하는데,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어찌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이겠는가. 하지 않는 것이니, 요순의 도(道)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경을 다하는 것일 뿐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요순의 도를 가장 현실적인 자리로 내리는 대목으로 본다. 성인은 멀고 장엄한 존재가 아니라, 어른 앞에서 어떻게 걷고 어떻게 섬기느냐에서부터 갈린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孝弟(효제)를 모든 덕의 근본으로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徐行(서행)을 단순한 보행 습관이 아니라 마음의 공경이 밖으로 드러난 형식으로 읽는다. 요순의 도가 효제라는 말은 도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큰 도가 작은 일상 예절 속에 이미 구현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큰 비전만 말하고 가까운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리더가 많다. 맹자의 말은 고상한 원칙이 가까운 자리의 태도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 원칙은 공허하다고 말한다. 요순의 도는 멀리 있는 표어가 아니라 눈앞 사람을 대하는 몸가짐에서 시작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가까운 관계에서 공경과 배려를 실천하는 일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맹자는 성인의 길을 신비화하지 않고, 일상 속 작은 실천으로 되돌려 준다.

5절 — 자복요지복(子服堯之服) — 누구를 본받아 입고 말하고 행하느냐가 곧 그 사람이다

원문

子服堯之服하며誦堯之言하며行堯之行이면是堯而已矣오子服桀之服하며誦桀之言하며行桀之行이면是桀而已矣니라

국역

그대가 요 임금이 입던 옷을 입고, 요 임금의 말씀을 외우고, 요 임금의 행동을 하면 요 임금이 되는 것이며, 그대가 걸왕(桀王)이 입던 옷을 입고, 걸왕의 말을 외우고, 걸왕의 행동을 하면 걸왕이 되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모범의 효력에 대한 설명으로 읽는다. 사람은 누구를 배우고 어떤 말을 익히고 어떤 행동을 반복하느냐에 따라 점점 그 사람을 닮아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를 본받으면 요에 가까워지고, 걸을 본받으면 걸에 가까워진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습관과 공부의 누적을 본다. 성인의 도는 한 번의 결심으로 완성되지 않고, 말과 몸짓과 행실을 반복해 몸에 배게 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복)과 (송)과 (행)은 외형과 언어와 실천의 전면적 수양을 뜻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결국 사람은 자주 곁에 두는 기준과 닮아 간다. 어떤 리더를 모범으로 삼고 어떤 언어를 조직 안에 반복시키느냐가 문화가 된다. 맹자의 말은 롤모델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 존재 방식을 빚는 힘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구의 말을 반복해 듣고, 누구의 태도를 흉내 내며, 어떤 행동을 습관화하는지가 나를 만든다. 요순의 길도, 걸의 길도 멀리 있는 전설이 아니라 일상의 반복 속에서 점점 현실이 된다.

6절 — 원류이수업어문(願留而受業於門) — 조교는 문하에 머물러 배우고 싶다고 한다

원문

曰交得見於鄒君이면可以假館이니願留而受業於門하노이다

국역

조교가 말하였다. “제가 추(鄒) 나라 임금을 뵈면 관사(館舍)를 빌릴 수 있을 것이니, 여기에 머물며 문하에서 수학하기를 원합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조교의 이 반응을 선한 뜻의 발동으로 본다. 요순의 길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문하에 머물러 배우려는 뜻을 낸 것은 이미 도에 감응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외부 의존의 흔적도 함께 읽는다. 배우려는 뜻은 귀하지만, 아직 도를 자기 삶의 자리에서 찾기보다 스승 곁에만 머물려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절에서 맹자는 다시 도를 찾는 책임을 조교 자신에게 돌려 보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좋은 말을 들으면 곧장 유명한 사람 밑에 들어가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그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배움이 언제나 특정 인물 곁에 붙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맹자는 다음 답에서 그 의존을 한 번 더 걷어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는 종종 환경만 바뀌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좋은 스승과 공동체는 중요하지만, 길을 찾는 일은 결국 자기 삶의 자리에서 이어져야 한다. 조교의 열심은 귀하지만 아직 미완의 열심이다.

7절 — 부도약대로연(夫道若大路然) — 도는 큰길 같아 찾으려 하면 스승이 넉넉하다

원문

曰夫道若大路然하니豈難知哉리오人病不求耳니子歸而求之면有餘師리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도(道)는 대로(大路)와 같으니, 어찌 알기 어렵겠는가. 사람들이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대가 돌아가 그 길을 찾는다면 스승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전 장의 결론으로 읽는다. 요순의 길은 은밀한 비전이 아니라 큰길처럼 열려 있으며, 문제는 세상이 도를 감춘 데 있지 않고 사람들이 구하려 하지 않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승도 드물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찾는 자에게는 곳곳에 있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大路(대로)를 천리의 공공성과 연결해 읽는다. 참된 도는 사사로운 비밀 전승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며, 바르게 찾는다면 일상과 사물 속에서도 배움의 스승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배움의 주체성을 강하게 요구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좋은 원칙은 소수만 아는 비밀 노하우가 아니라, 공개되고 반복 가능한 큰길이어야 한다. 길이 지나치게 개인화되어 있으면 결국 공동체는 성장하지 못한다. 맹자의 말은 도와 배움을 공공재처럼 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스승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정말 찾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책, 사람, 사건, 습관, 실패까지도 길을 찾는 사람에게는 스승이 될 수 있다. 맹자는 도가 숨은 것이 아니라 찾는 마음이 드문 것이라고 말한다.


고자하 2장은 人皆堯舜(인개요순)이라는 가장 대담한 가능성 선언으로 시작해, 그 가능성을 아주 일상적 실천의 자리까지 끌어내린다. 성인은 큰 키나 특별한 혈통의 문제가 아니고, 하지 못함보다 하지 않음의 문제다. 어른 뒤를 천천히 걷는 공손함, 효제의 실천, 요의 말을 외우고 행동을 따르는 반복이 결국 성인의 길을 이룬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성인 가능성의 보편성과 효제의 근본성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본연의 가능성과 구하지 않는 마음의 병으로 읽는다. 두 갈래 모두 요순의 길이 멀고 신비한 데 있지 않으며, 사람마다 열린 큰길 위에 있다는 점에서는 뜻을 같이한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이 장은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낙관보다 더 엄한 요구를 담고 있다. 될 수 있는데 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결단과 추구에 있다. 맹자는 바로 그 책임을 조교에게, 그리고 오늘의 독자에게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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