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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고자하 11장 — 이린위학(以鄰爲壑) — 백규가 자기 치수(治水)를 우(禹)보다 낫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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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고자하 11장 이린위학(以鄰爲壑) 대표 이미지

맹자 고자하 11장은 치수(治水) 이야기를 빌려 정치와 윤리의 기준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장이다. 표면적으로는 백규(白圭(백규))가 자신의 치수 방법을 우((우))보다 낫다고 자부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맹자는 곧 기술의 우열을 넘어선 문제를 제기한다. 물을 다스린다는 명목으로 그 피해를 다른 곳으로 떠넘기는 방식은, 설령 눈앞의 땅을 지키는 데 성공하더라도 결코 바른 정치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장의 중심어는 以鄰爲壑(이린위학)이다. 이웃 나라를 물이 빠져나가는 도랑처럼 삼는다는 말은, 자기 문제를 해결한다며 비용과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뜻한다. 맹자는 우 임금의 치수가 水之道(수지도), 곧 물의 본성을 따라 바다로 흐르게 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하며, 백규의 방식은 그와 정반대라고 판단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치수의 기술론이 아니라 정치적 공정성의 문제로 읽는다. 우의 방식은 사방의 물길을 열어 마침내 四海(사해)로 귀착하게 하는 공공의 질서였고, 백규의 방식은 자기 경계 밖으로 재난을 밀어내는 편의적 조처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以鄰爲壑(이린위학)은 소국·이웃·타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부당한 정치의 비유가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인)의 감각을 더 또렷하게 읽어 낸다. 물을 다스린다는 일조차 사람을 살리는 방향이어야 하며, 내 편의만을 위해 남의 고통을 계산에 넣지 않는 것은 仁人(인인)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맹자의 비판은 단순한 정책 비교가 아니라, 다스림이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를 묻는 도덕적 판정이 된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이 장은 외부화의 정치, 전가의 윤리를 비판하는 글처럼 읽힌다. 문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곳으로 밀려났을 뿐이라면,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이전이다. 맹자는 바로 그런 방식이 왜 옳지 않은지를, 우와 백규를 대비시키는 짧은 문답으로 선명하게 보여 준다.

1절 — 백규왈단지치수야(白圭曰丹之治水也) — 백규의 자부심

원문

白圭曰丹之治水也愈於禹호이다

국역

백규가 말하였다. “제가 행한 治水(치수) 방식이 우(禹) 임금보다 낫습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첫 절을 백규의 자부가 이미 문제의 실마리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본다. 우((우))는 성왕의 치수를 대표하는 이름인데, 자신이 그보다 낫다고 곧바로 말하는 태도에는 기술적 성과를 도덕적 기준 위에 놓는 성급함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마음의 교만과 공적 판단의 왜곡으로 읽는다. 어떤 방법이 당장 눈에 띄는 효과를 냈다고 해서 그 정당성까지 확보되는 것은 아닌데, 백규는 그 차이를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높인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첫 절은 뒤이은 맹자의 반박을 준비하는 도입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성과 지표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방법까지 정당화하는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단기 성과에 취하면 그 성과가 누구의 비용 위에 세워졌는지 묻지 않게 된다. 백규의 자부는 바로 그런 판단의 위험을 보여 준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는 결과가 좋았다는 이유로 과정 전체를 옳다고 쉽게 결론 내린다. 그러나 어떤 결과는 남에게 미룬 부담 위에서 얻어진 것일 수 있다. 이 절은 성공의 속도보다 그 성공의 구조를 먼저 따져 보라고 요구한다.

2절 — 맹자왈자과의(孟子曰子過矣) — 우의 치수는 물의 도를 따랐다

원문

孟子曰子過矣로다禹之治水는水之道也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지나치구나. 우 임금의 치수 방식은 물의 본성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우의 치수가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공정한 다스림이었다는 뜻으로 읽는다. 물을 인위적으로 막아 다른 곳에 재앙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본래 흘러갈 자리를 열어 주는 것이 우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水之道(수지도)는 자연의 성질을 거스르지 않는 정치의 비유이기도 하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도(道)를 따르는 정치의 원리를 읽는다. 다스림은 억지로 누르고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람의 마땅한 방향을 열어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백규의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지 거칠어서가 아니라, 도를 따르지 않고 편의만 좇기 때문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좋은 운영은 억지로 숫자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시스템이 건강하게 흐르도록 길을 여는 일에 가깝다. 문제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몰아넣는 방식은 일시적 통제처럼 보여도 결국 더 큰 반동을 부른다. 水之道(수지도)는 사람과 제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리더십의 상징처럼 읽을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문제를 다룰 때 억누르기만 하면 다른 형태로 터져 나오기 쉽다. 감정이든 관계든 생활의 압박이든, 무작정 밀어내기보다 어디로 흘러야 하는지를 보는 편이 더 근본적이다. 맹자는 우의 치수를 통해 그런 분별을 말한다.

3절 — 시고우이사해위학(是故禹以四海爲壑) — 우는 사해를 도랑으로 삼았고 너는 이웃을 도랑으로 삼는다

원문

是故로禹는以四海爲壑이어시늘今에吾子는以隣國爲壑이로다

국역

따라서 우 임금은 四海(사해)를 물이 모이는 곳으로 삼으셨는데, 이에 비해 지금 그대는 이웃 나라를 물이 모이는 곳으로 삼았구나.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우와 백규의 차이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으로 본다. 우는 천하 전체의 질서 속에서 물길을 정리했지만, 백규는 자기 경계의 안정을 위해 이웃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四海(사해)와 隣國(인국)의 대비는 공공성과 사사로움의 대비이기도 하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정치적 도량의 문제로 읽는다. 참된 정치라면 내 안의 안정을 위해 남을 해치는 계산에 머물 수 없고, 더 넓은 공동체 전체의 안녕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以鄰爲壑(이린위학)은 작은 이익을 위해 큰 관계를 무너뜨리는 협소한 정치를 뜻하게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비용을 외주화하고 손실을 다른 팀이나 다른 공동체에 떠넘기는 운영 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내 부서의 지표만 좋아지고 다른 부서가 무너지면, 그것은 전체 시스템의 성공이 아니다. 以鄰爲壑(이린위학)은 현대 조직에서도 아주 익숙한 실패 방식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문제를 자기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은 자주 등장한다. 내 편안함을 위해 가까운 사람에게 감정과 책임을 넘기면, 당장은 가벼워 보여도 관계 전체는 손상된다. 이 절은 해결과 전가를 구별하라고 요구한다.

4절 — 수역행위지강수(水逆行謂之洚水) — 역류와 홍수는 인자가 미워한다

원문

水逆行을謂之洚水니洚水者는洪水也라仁人之所惡也니吾子過矣로다

국역

물이 역류하는 것을 범람이라고 하는데, 범람의 피해는 홍수와 같은 것이다. 이런 것을 仁者(인자)는 미워하는데 이런 식으로 처리하였으니, 그대가 지나쳤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백규의 방식이 결국 홍수와 다를 바 없는 피해를 낳는다고 본다. 내 지역의 피해를 줄였다 해도 물길을 거슬러 다른 곳을 침수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치수가 아니라 재난의 이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仁人之所惡(인인지소오)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백성을 해치는 정책에 대한 윤리적 부정으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인)의 핵심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으로 읽는다. 진정한 인자는 자기 이익을 위해 남에게 재앙을 돌리는 방식을 택할 수 없고, 설령 효율적이어 보여도 그런 방식은 도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정책 평가의 최종 기준을 사람을 살리는 마음에 둔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어떤 정책이 진짜 해결인지 아니면 피해의 위치만 바꾼 것인지 끝까지 물으라고 말한다. 외형상 문제를 정리했더라도 약한 곳, 먼 곳,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피해가 집중된다면 그것은 홍수를 다른 지도로 다시 그린 것에 불과하다. 仁人之所惡(인인지소오)는 성과보다 피해 분배의 정의를 먼저 보게 만든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불편을 견디지 않으려는 마음이 자주 타인에게 부담을 넘기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내가 피한 고통을 누군가 대신 감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현명함이 아니라 관계의 역류일 수 있다. 맹자는 바로 그런 삶의 방식까지도 이 장면 속에서 비추고 있다.


맹자 고자하 11장은 치수의 이야기를 통해 정치의 윤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우의 치수는 水之道(수지도)를 따라 사해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었지만, 백규의 방식은 이웃 나라를 도랑처럼 삼아 피해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맹자는 그것을 以鄰爲壑(이린위학)이라 부르고, 인자가 미워하는 바라고 단언한다.

한대 훈고 계열 독법은 이를 공공의 질서를 깨는 피해 전가로 읽고, 송대 성리 계열 독법은 자기 편의보다 타인의 고통을 먼저 보는 (인)의 문제로 더 깊게 풀어 낸다. 두 흐름은 모두, 참된 다스림은 문제를 숨기거나 옮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바른 흐름을 여는 일이라는 결론에서 만난다.

오늘의 정치와 조직, 개인의 삶에서도 이 장은 그대로 살아 있다. 내 문제를 남의 문제로 바꾸는 방식은 쉽게 성과처럼 보이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맹자가 말하는 바른 다스림은, 결국 가장 약한 쪽에 떠넘겨진 고통까지 계산에 넣는 책임의 윤리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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