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하(告子下(고자하)) 13장은 위정자의 재능보다 더 근본적인 자질이 무엇인지를 묻는 장이다. 노나라가 악정자(樂正子(악정자))에게 정사를 맡기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맹자(孟子(맹자))는 기뻐서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공손추(公孫丑(공손추))가 악정자가 강건한가, 지려(知慮)가 있는가, 견문이 넓은가를 묻자 맹자는 모두 아니라고 답한다. 그럼에도 기뻐하는 까닭은 오직 하나, 그가 好善(호선), 곧 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 장의 묘미는 여기서 시작된다. 보통 정치를 맡길 사람이라면 강단, 판단력, 정보력 같은 능력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맹자는 그런 능력보다 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선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 혼자 다 아는 척하지 않고, 천리 밖의 선비들이 기꺼이 찾아와 좋은 말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오만한 기색으로 진짜 선비를 멀리하고, 결국 참소와 아첨만 불러들이게 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임용의 핵심 조건을 밝히는 말로 읽는다. 악정자(樂正子(악정자))의 개인적 재능이 두드러지지 않아도, 선을 좋아하는 한 가지 덕목만으로도 나라를 다스릴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優於天下(우어천하)는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도 넉넉하다는 뜻으로, 好善(호선)의 정치적 위력을 과장 없이 극대화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好善(호선)을 겸허한 수용성과 도덕적 개방성으로 읽는다. 성인은 모든 것을 혼자 완비한 존재가 아니라, 선을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선한 말과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이런 독법에서 訑訑(이이), 곧 잘난 체하고 스스로 다 안다고 여기는 태도는 정치 실패의 씨앗이 된다.
고자하 끝부분에 이 장이 놓인 것도 의미가 있다. 앞선 장들이 본말과 의리, 수양의 기준을 가르쳤다면, 이 장은 그것이 실제 정치 운영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좋은 정치는 모든 능력을 혼자 갖춘 영웅보다, 선을 좋아하여 좋은 말이 모여들게 하는 사람에게서 시작된다는 점이 이 장의 중심이다.
1절 — 노욕사악정자로(魯欲使樂正子로) — 악정자가 정사를 맡는다는 소식
원문
魯欲使樂正子로爲政이러니孟子曰吾聞之하고喜而不寐호라
국역
노나라가 악정자(樂正子(악정자))에게 정사를 맡기려 한다는 소식을 듣자, 맹자(孟子(맹자))는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한다.
축자 풀이
魯欲使樂正子(노욕사악정자)는 노나라가 악정자에게 정치를 맡기려 한다는 뜻이다.爲政(위정)은 정사를 맡아 다스린다는 말이다.喜而不寐(희이불매)는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맹자의 이 반응을 악정자 개인에 대한 사사로운 호감이 아니라,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정치적 기대의 표현으로 읽는다. 정사를 맡는 사람의 한 가지 덕목이 천하의 분위기까지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맹자의 喜(희)를 선한 정사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감응으로 읽는다. 위정자의 한 마음이 나라 전체의 기운을 바꿀 수 있으므로, 선을 좋아하는 이가 정치의 자리에 간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뻐할 만하다는 것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사람 하나의 임용이 얼마나 큰 신호가 되는지를 보여 준다. 어떤 사람이 책임자가 되느냐는 단지 자리 배분 문제가 아니라, 그 조직이 무엇을 중하게 여기는지 드러내는 선언이기도 하다. 좋은 인사 하나가 공동체 전체에 희망을 줄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는 누가 중심 자리에 서는가에 민감하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 진짜로 선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앞에 나설 때, 주변 분위기는 생각보다 크게 달라진다. 맹자의 기쁨은 바로 그 가능성에 대한 반응이다.
2절 — 공손추왈악정자는(公孫丑曰樂正子는) — 강한가, 지려가 있는가, 많이 아는가
원문
公孫丑曰樂正子는强乎잇가曰否라有知慮乎잇가曰否라多聞識乎잇가曰否라
국역
공손추(公孫丑(공손추))가 악정자(樂正子(악정자))는 강인하냐고 묻자 맹자(孟子(맹자))는 아니라고 답하고, 지려가 있느냐고 물어도 아니라고, 견문과 식견이 많으냐고 물어도 역시 아니라고 답한다.
축자 풀이
强乎(강호)는 강건하고 결단력이 있는가를 묻는 말이다.知慮(지려)는 지혜로운 판단과 사려를 뜻한다.多聞識(다문식)은 많이 듣고 널리 아는 식견을 가리킨다.曰否(왈부)는 아니라는 단호한 부정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공손추의 질문을 당시 일반적 인재 기준의 압축으로 읽는다. 곧 강단, 지혜, 견문은 누구나 위정자에게 기대하는 자질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의 연속된 否(부)는 더 큰 기준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대비가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재능과 덕의 선후를 가르는 장치로 읽는다. 재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치의 첫 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세 번의 부정이 놓였다고 본다. 이 독법에서 공손추의 질문은 상식이고, 맹자의 답은 그 상식을 넘어서는 통찰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는 능력 중심 인사의 익숙한 기준을 떠올리게 한다. 강한가, 똑똑한가, 많이 아는가 같은 질문은 오늘도 반복된다. 그러나 맹자는 그런 체크리스트만으로는 좋은 리더를 고를 수 없다고 말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사람을 평가할 때 화려함과 순발력, 정보량에 먼저 눈이 간다. 하지만 이 절은 정말 중요한 기준이 그 바깥에 있을 수 있음을 예고한다. 많은 것을 아는 사람보다, 좋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3절 — 연즉해위희이불매시니잇고(然則奚爲喜而不寐시니잇고) — 그럼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기쁜가
원문
然則奚爲喜而不寐시니잇고
국역
공손추(公孫丑(공손추))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기뻐 잠을 이루지 못하셨느냐고 다시 묻는다.
축자 풀이
然則(연즉)은 그렇다면, 그렇다고 하면이라는 전환 표현이다.奚爲(해위)는 무엇 때문에 그런가를 묻는 말이다.喜而不寐(희이불매)는 기뻐서 잠들지 못하는 상태를 다시 가리킨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물음을 논지 전환의 관문으로 읽는다. 앞에서 일반적 자질을 모두 부정했으니, 이제 남는 한 가지가 무엇인지 밝혀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공손추의 의문은 독자의 의문을 대신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짧은 문장을 교육적 긴장으로 읽는다. 제자가 묻고 스승이 핵심을 드러내는 형식 속에서, 가치 판단의 기준이 재정렬될 준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는 “그 정도 능력도 없는데 왜 뽑는가”라는 질문과 닮아 있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그 답이 곧 조직의 깊은 인재관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맹자는 바로 여기서 일반적 역량보다 더 중요한 기준을 꺼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는 상대의 장점이 눈에 띄지 않을 때 왜 이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지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 순간 정말 보는 눈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드러난다. 공손추의 질문은 그 기준을 분명히 하게 만든다.
4절 — 왈기위인야호선이니라(曰其爲人也好善이니라) — 그 사람됨은 선을 좋아한다
원문
曰其爲人也好善이니라好善이足乎잇가
국역
맹자(孟子(맹자))는 그 사람됨이 선을 좋아한다고 답한다. 그러자 공손추(公孫丑(공손추))는 선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정말 정사를 맡기에 충분하냐고 되묻는다.
축자 풀이
其爲人也(기위인야)는 그 사람됨을 말한다는 뜻이다.好善(호선)은 선을 좋아하고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말이다.足乎(족호)는 그것만으로 충분한가를 묻는 말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好善(호선)을 악정자의 결정적 자질로 읽는다. 이는 단순히 선한 행동을 좋아한다는 감상적 표현이 아니라, 좋은 말과 올바른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통치자의 기본 자세를 뜻한다. 이 독법에서 공손추의 반문은 상식적이지만, 바로 그래서 맹자의 답이 더 선명해진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好善(호선)을 겸허한 수양의 마음으로 읽는다. 좋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 다 아는 척하지 않으며, 선한 말이 들어왔을 때 그것을 방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好善(호선)은 재능을 움직이게 하는 중심축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好善(호선)은 피드백을 좋아하고 더 나은 기준을 환영하는 태도와 가깝다. 모든 역량이 완비되지 않았더라도, 정말 좋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변의 좋은 사람과 좋은 조언을 불러 모을 수 있다. 반대로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좋은 말을 싫어하면 조직은 곧 막힌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선한 조언과 더 나은 기준을 들으면 기뻐하는가, 아니면 방어적으로 굳어지는가. 맹자는 바로 그 마음의 방향이 사람의 장래를 크게 갈라놓는다고 본다.
5절 — 왈호선이우어천하온이황노국호아(曰好善이優於天下온而況魯國乎아) — 선을 좋아하면 천하에도 넉넉하다
원문
曰好善이優於天下온而況魯國乎아
국역
맹자(孟子(맹자))는 선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천하를 다스리기에 넉넉하거늘, 하물며 노나라 정도의 나라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고 말한다.
축자 풀이
好善優於天下(호선우어천하)는 선을 좋아하면 천하에도 넉넉하다는 뜻이다.而況魯國乎(이황노국호)는 하물며 노나라 정도야 어떻겠느냐는 반문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好善(호선)의 정치적 위력을 최대치로 평가한 문장으로 읽는다. 좋은 것을 좋아하는 한 가지가 왜 천하에도 충분한가 하면, 그것이 모든 선한 인재와 말이 들어오는 문을 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優(우)는 남고도 넉넉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를 덕의 근원성으로 읽는다. 정치는 한 사람이 모든 기능을 독점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선 사람의 덕이 올바르면 그 주위 질서가 스스로 정돈된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好善(호선)은 통치의 기술보다 앞서는 마음의 기초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최고의 리더가 모든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좋은 답이 모이게 하는 사람임을 말한다. 진짜 강한 조직은 리더 한 사람의 총명에 의존하지 않고, 선한 기준과 좋은 피드백이 자유롭게 모이는 구조 위에 선다. 好善優於天下(호선우어천하)는 바로 그런 구조의 핵심을 찌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말은 큰 위로가 된다. 내가 모든 역량을 한꺼번에 갖추지 못해도, 좋은 것을 좋아하고 배우려는 마음이 있다면 성장의 길은 열려 있다는 뜻이다. 맹자는 능력의 총량보다 마음의 방향을 먼저 본다.
6절 — 부구호선즉사해지내(夫苟好善則四海之內) — 선을 좋아하면 천하의 선비가 천리를 가볍게 여긴다
원문
夫苟好善則四海之內皆將輕千里而來하여告之以善하고
국역
맹자(孟子(맹자))는 진실로 위정자가 선을 좋아하면 사해 안의 사람들이 천리 길도 가볍게 여기고 찾아와 선한 말을 들려주게 된다고 말한다.
축자 풀이
苟好善(구호선)은 진실로 선을 좋아하면이라는 뜻이다.四海之內(사해지내)는 천하, 온 세상을 가리킨다.輕千里而來(경천리이래)는 천리 먼 길도 가볍게 여기고 온다는 말이다.告之以善(고지이선)은 선한 것으로 일러 준다는 뜻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인재가 모이는 원리를 설명하는 대목으로 읽는다. 선비는 단순히 보상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말을 진지하게 들을 사람을 찾아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好善(호선)은 곧 인재를 부르는 정치적 자력으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덕의 감응으로 읽는다. 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은 겉으로 꾸미지 않아도 사람을 끌어당기며, 특히 바른 말을 하고 싶은 선비의 마음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정치가 결국 도덕적 신뢰의 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좋은 인재가 어디로 모이는지를 설명한다. 연봉과 직함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좋은 의견이 환영받는 분위기가 있는가이다. 정말 좋은 조직에는 먼 곳의 사람도 기꺼이 와서 기여하고 싶어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 곁에는 진심 어린 충고와 배움이 모인다. 반대로 조언을 귀찮아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생각 안에 갇히게 된다. 맹자는 선을 좋아하는 태도가 사람을 부르고 길을 여는 힘이라고 말한다.
7절 — 부구불호선즉인장왈이이(夫苟不好善則人將曰訑訑) — 선을 좋아하지 않으면 아첨하는 자들만 남는다
원문
夫苟不好善則人將曰訑訑를予旣已知之矣로라하리니訑訑之聲音顔色이距人於千里之外하나니士止於千里之外則讒諂面諛之人이至矣리니與讒諂面諛之人으로居면國欲治인들可得乎아
국역
그러나 위정자가 선을 좋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저 사람이 분명 잘난 체하고 스스로 다 안다고 여긴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태도와 얼굴빛은 사람을 천리 밖에서 밀어내고, 결국 바른 선비들은 멀리서 발길을 멈추며, 참소하고 아첨하고 면전에서 비위만 맞추는 사람들이 대신 모여들게 된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나라가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맹자(孟子(맹자))는 단언한다.
축자 풀이
不好善(불호선)은 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訑訑(이이)는 스스로 잘난 체하고 만족해하는 거만한 태도를 가리킨다.距人於千里之外(거인어천리지외)는 사람을 천리 밖에서 밀어낸다는 뜻이다.讒諂面諛之人(참첨면유지인)은 참소하고 아첨하며 면전에서 비위 맞추는 사람들이다.國欲治可得乎(국욕치가득호)는 그런 상태에서 나라가 잘 다스려질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好善(호선)의 반대편 결과를 설명하는 대목으로 읽는다. 위정자가 스스로 다 안다고 여기는 기색을 보이면 선비는 멀리하고, 그 빈자리를 참언과 아첨이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訑訑(이이)는 단순한 자만이 아니라, 선한 말이 들어올 통로를 막는 표정과 기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통치 실패의 심리적 원인으로 읽는다. 선을 싫어하는 마음은 곧 잘못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며, 그런 마음은 비판 가능한 구조를 닫아 버린다. 그 결과 도덕적 신뢰는 사라지고, 입에 발린 말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매우 현실적이다. 리더가 이미 답을 다 안다는 표정을 짓는 순간, 좋은 인재는 더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조직에는 솔직한 피드백 대신 눈치와 아첨, 정치적 언어만 남는다. 맹자는 나라를 망치는 시작이 종종 정책 실패보다 이런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선한 조언을 싫어하면 결국 듣기 좋은 말만 남는다. 비판을 멀리할수록 관계는 얕아지고, 배움은 멈춘다. 好善優天(호선우천)의 반대편에는 바로 이 고립이 놓여 있다.
고자하 13장은 훌륭한 정치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매우 단순하게 말한다. 강함과 지혜, 견문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들보다 앞서 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좋은 사람과 좋은 말이 모이고, 그 위에서 나라가 비로소 제대로 다스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맹자가 악정자(樂正子(악정자))의 임용 소식을 듣고 잠 못 이룰 만큼 기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대 훈고 전통은 好善(호선)을 인재를 불러 모으는 정치적 자력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그것을 겸허하게 선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기초로 읽는다. 두 독법은 모두, 나라를 살리는 첫 조건이 만능의 재주가 아니라 선한 말을 반기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만난다.
오늘의 삶에서도 이 가르침은 그대로 적용된다. 좋은 조직, 좋은 관계, 좋은 배움의 장에는 언제나 좋은 것을 좋아하는 중심이 있다. 반대로 스스로 다 안다고 여기는 태도는 사람을 멀어지게 하고, 끝내 아첨만 남긴다. 맹자는 그래서 한 사람의 好善(호선)이 천하에도 넉넉하다고 말한다.
등장 인물
- 맹자: 전국시대 유가의 대표 사상가. 이 장에서 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정치의 가장 중요한 기초라고 밝힌다.
- 악정자: 노나라에서 정사를 맡기려 한 인물로, 강함이나 지려보다
好善(호선)의 사람으로 높이 평가된다. - 공손추: 맹자의 제자로, 악정자의 자질을 묻고 맹자로부터
好善(호선)의 뜻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