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하 14장은 군자가 언제 벼슬에 나아가고 언제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맹자의 기준을 매우 간결하게 제시한다. 질문은 단순하다. 옛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했는가. 맹자의 답도 짧다. 三就(삼취)와 三去(삼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말 속에는 예우, 말의 실행, 생계의 한계까지 아우르는 세밀한 출처관이 담겨 있다.
이 장에서 맹자는 벼슬을 무조건 높게 보지도 않고, 무조건 멀리하지도 않는다. 군자가 벼슬하는 첫째 경우는 군주가 예를 다해 맞이하고 그 말까지 실행하려 할 때다. 둘째 경우는 비록 정책이 바로 시행되지는 않더라도 예우가 온전할 때다. 셋째 경우는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는 최소한의 구휼을 받는 때인데, 이 경우에도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고 다만 죽음을 면할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군자의 출처 절도를 밝힌 대목으로 읽는다.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就(취)와 去(거)가 모두 도와 예를 중심으로 판단된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도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벼슬이 생계 수단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예우와 도의 실현 가능성, 그리고 곤궁 시의 최소 수용선을 분별하는 공부로 읽는다.
그래서 고자하 14장은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지식인의 태도를 묻는 장이기도 하다. 기회가 있다고 무조건 나아가는 것도 아니고, 순결을 지킨다며 언제나 물러나는 것도 아니다. 맹자는 참여와 철수를 모두 도의 기준 아래 두고, 그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분명하게 그린다.
1절 — 고지군자하여즉사(古之君子何如則仕) — 군자의 출사에는 세 가지 나아감과 세 가지 물러남이 있다
원문
陳子曰古之君子何如則仕니잇고孟子曰所就三이오所去三이니라
국역
진자(陳子(진자))가 말하였다. “옛날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벼슬하러 나아가는 경우가 세 가지 있고, 벼슬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세 가지 있다.”
축자 풀이
何如則仕(하여즉사)는 어떠한 경우에 벼슬하느냐는 뜻이다. 출사의 기준을 묻는 질문이다.所就三(소취삼)은 나아가는 경우가 세 가지라는 말이다.所去三(소거삼)은 떠나는 경우가 세 가지라는 뜻이다. 나아감만큼 떠남도 중요하다는 전제가 깔린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첫 절을 군자의 출처를 총괄하는 머리말로 읽는다. 군자는 벼슬을 얻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벼슬할 만한 경우와 떠나야 할 경우를 함께 세운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三就三去(삼취삼거)는 진퇴의 균형을 뜻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군자의 자주성을 본다. 출사는 군주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에 따라 군자 스스로 판단하는 문제이며, 따라서 물러날 기준까지 분명히 서 있어야 벼슬이 마음을 흔들지 않는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중요한 것은 입사나 합류의 조건만이 아니라, 언제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함께 갖는 일이다. 들어갈 이유는 많은데 나올 기준이 없으면 결국 사람은 조직에 끌려 다니게 된다. 맹자의 첫 문장은 그 균형을 아주 명확히 잡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어떤 관계나 자리든 시작의 조건과 종료의 조건이 함께 있어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나아갈 용기만큼 물러날 기준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절은 간단하지만 날카롭다.
2절 — 영지치경이유례(迎之致敬以有禮) — 예로 맞이하고 말을 실행하려 하면 나아간다
원문
迎之致敬以有禮하며言將行其言也則就之하고禮貌未衰나言弗行也則去之니라
국역
공경을 다하고 예우를 갖추어 맞이하며, 말한 대로 시행하겠다고 하면 나아가고, 예우하는 태도가 줄어들지는 않았으나 말이 시행되지 않으면 떠나는 경우이다.”
축자 풀이
迎之致敬以有禮(영지치경이유례)는 공경과 예를 다해 맞이한다는 뜻이다. 출사의 첫 문턱이다.言將行其言(언장행기언)은 군자의 말을 시행하려 한다는 뜻이다. 예우만이 아니라 도의 실현 의지가 있어야 한다.則就之(즉취지)는 그런 경우에 나아간다는 말이다.禮貌未衰(예모미쇠)는 겉 예우는 아직 줄지 않았다는 뜻이다.言弗行也則去之(언불행야즉거지)는 말이 시행되지 않으면 떠난다는 뜻이다. 형식만 남은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가장 높은 출사의 기준으로 본다. 군주가 예를 갖추고, 더 나아가 군자의 말을 실제 정치에 반영하려 할 때 비로소 군자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실행이 사라지면, 비록 겉 예우가 남아 있어도 더 머물 이유는 없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예와 도의 결합을 강조한다. 예우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외적 조건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말이 행해져 도가 현실에 구현되느냐는 점이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군자는 존중받기 위해 벼슬하는 것이 아니라, 도를 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벼슬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대우와 존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예우를 잘해도, 역할의 핵심 판단과 원칙이 계속 무시된다면 결국 그 자리는 껍데기만 남는다. 맹자는 존중과 실행을 분리해서 보고, 실행이 끊기면 떠나라고 말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관계의 말씨나 태도가 부드럽다고 해서 늘 건강한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실제 변화가 뒤따르는지가 더 중요하다. 예우는 필요하지만, 본질을 대신할 수는 없다.
3절 — 기차수미행기언야(其次雖未行其言也) — 아직 시행되지는 않아도 예우가 살아 있으면 나아갈 수 있다
원문
其次는雖未行其言也나迎之致敬以有禮則就之하고禮貌衰則去之니라
국역
그 다음은, 비록 말한 대로 시행하지는 않으나 공경을 다하고 예우를 갖추어 맞이하면 나아가고, 예우하는 태도가 줄어들면 떠나는 경우이다.”
축자 풀이
其次(기차)는 그 다음 단계라는 뜻이다. 첫 경우보다 한 단계 낮은 출사 기준이다.雖未行其言也(수미행기언야)는 아직 그 말을 시행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禮貌衰則去之(예모쇠즉거지)는 예우가 쇠하면 떠난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예가 마지막 기준선이 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차선의 출사로 읽는다. 아직 도가 실제 정치로 구현되지는 않았더라도, 군주가 진심으로 예우하며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다면 장차 도가 행해질 가능성을 기대하며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마저 사라지면 더 머무를 명분은 없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경우를 기다림과 시험의 국면으로 읽는다. 군자는 현실 정치의 속도를 고려해 당장 전면 실행이 아니더라도 참을 수 있지만, 예우가 무너지면 이미 도를 함께 논할 바탕도 사라진다고 본다. 이 독법에서 禮貌(예모)는 단순 형식이 아니라 함께 도를 논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처음부터 모든 제안이 바로 채택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존중과 신뢰가 유지된다면, 변화의 가능성을 보고 남을 수 있다. 맹자는 현실 감각 없이 완벽만 요구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존중이 무너지면 더 버티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상대가 아직 내 말을 다 수용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엄과 예가 살아 있다면 관계는 계속 자랄 수 있다. 하지만 예우가 사라지는 순간 관계는 빠르게 소모된다. 맹자의 구분은 그 미세한 차이를 놓치지 않는다.
4절 — 기하조불식(其下朝不食) —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구휼은 받을 수 있으나 거기까지다
원문
其下는朝不食하며夕不食하여饑餓不能出門戶어든君이聞之曰吾大者론不能行其道하고又不能從其言也하여使飢餓於我土地를吾恥之라하고周之인댄亦可受也어니와免死而已矣니라
국역
그 아래는, 아침도 못 먹고 저녁도 못 먹고 굶주려서 문밖을 나설 수도 없을 때, 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크게는 그의 道(도)를 행하지도 못하고 또 그 말을 따라주지도 못해서, 내 땅에서 굶주리게 하는 것을 내가 부끄럽게 여긴다.’ 하고 구휼해 주면 그것 또한 받을 수 있지만, 죽음을 면할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축자 풀이
朝不食 夕不食(조불식 석불식)은 아침저녁을 굶는 극심한 곤궁을 뜻한다.饑餓不能出門戶(기아불능출문호)는 굶주려 문밖도 나가지 못하는 상태다. 출사의 최저선이 놓이는 배경이다.周之(주지)는 구휼하고 돌본다는 뜻이다. 생계를 잠시 보태 주는 일이다.亦可受也(역가수야)는 이것도 받을 수는 있다는 말이다. 맹자의 현실 인식이 드러난다.免死而已矣(면사이이의)는 죽음을 면할 뿐이라는 뜻이다. 생계 보조를 벼슬의 명분으로 확장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마지막 절을 가장 낮은 층위의 수용으로 읽는다. 군주가 도를 행하지도, 말을 따르지도 못했지만 자기 땅에서 현자가 굶는 것을 부끄러워해 구휼한다면, 그것은 인도적 호의이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생명을 잇는 정도여야지, 이를 기회 삼아 오래 머무르거나 녹봉처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절의와 생존 사이의 미묘한 경계로 읽는다. 군자는 굶어 죽는 극단을 무조건 미화하지 않지만, 생계를 위해 도를 굽히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免死(면사)라는 한계를 분명히 두어, 수용의 현실성과 절의의 엄격함을 동시에 지키게 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때로는 가치가 완전히 맞지 않는 곳에서 최소한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이 있다. 맹자는 그런 현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도움을 삶의 근거로 삼아 스스로의 기준을 넘겨주지는 말라고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사람은 곤궁할 때 타인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그 지원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빚이 되느냐, 아니면 죽음을 면하는 최소한의 도움으로 머무느냐다. 맹자는 바로 그 경계를 선명하게 가르쳐 준다.
고자하 14장은 군자의 출처가 얼마나 정교한 분별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 준다. 예를 다해 맞이하고 말을 시행하려 하면 나아가고, 실행이 끊기면 떠난다. 아직 실행되지 않아도 예우가 살아 있으면 머물 수 있지만, 예우가 쇠하면 떠난다. 마지막으로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구휼은 받을 수 있으나, 오직 생명을 잇는 정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출사와 퇴거의 절도 있는 규범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예, 도, 생계의 경계를 분별하는 군자의 공부로 읽는다. 두 갈래 모두 군자가 벼슬에 나아가는 까닭은 이익이 아니라 도에 있으며, 떠나는 까닭 또한 감정이 아니라 기준에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이 장은 어떤 자리에 들어가고 언제 떠날지를 정하는 직업윤리의 고전이다. 존중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상만으로도 부족하다. 맹자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기준을 잃지 않는 법, 바로 그 미묘한 균형을 三就三去(삼취삼거)라는 말로 남겼다.
등장 인물
- 맹자: 전국시대 유가의 대표 사상가. 이 장에서 군자가 나아가고 떠나는 기준을
三就三去로 정리한다. - 진자(陳臻): 옛 군자가 어떤 경우에 벼슬했는지를 묻는 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