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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하으로

맹자 진심하 2장 — 춘추무의(春秋無義) — 춘추(春秋)에는 의로운 전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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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진심하 2장 춘추무의(春秋無義) 대표 이미지

진심하 2장은 맹자가 춘추 시대의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아주 단호하게 말하는 장이다. 첫 문장은 특히 강하다. 春秋無義戰(춘추무의전), 곧 춘추 시대에는 의로운 전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저것이 이것보다 나은 경우”는 있을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모든 싸움을 똑같이 보지는 않되 그렇다고 어느 쪽도 쉽게 의로운 전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맹자의 이 판단은 단순한 염세가 아니다. 그는 곧바로 (정), 곧 정벌의 본래 뜻을 설명한다. 정벌이란 본래 위에 있는 자가 아래에 있는 자를 치는 것이며, 대등한 나라끼리는 서로를 “정벌”한다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춘추 시대의 제후국 전쟁은 이름부터 이미 바르게 서 있지 않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전쟁 명분의 붕괴를 지적한 말로 읽는다.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주 왕실의 권위가 무너진 뒤 제후들이 서로 군사를 일으킨 상황에서는 본래의 (정)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도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명분과 질서의 붕괴로 읽으며, 상대적으로 나은 쪽은 있을 수 있어도 왕도적 의미의 義戰(의전)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진심하 2장은 전쟁을 평가할 때 “누가 더 명분 있어 보이는가”보다 먼저, 그 전쟁이 본래 어떤 질서 안에서 가능한 것인지부터 묻는다. 맹자는 폭력의 상대적 선악을 인정하면서도, 그 상대적 나음을 곧바로 의로움으로 올려 세우지 않는다.

1절 — 춘추무의전(春秋無義戰) — 춘추 시대에는 의로운 전쟁이 없고 다만 덜 나쁜 전쟁이 있을 뿐이다

원문

孟子曰春秋에無義戰하니彼善於此則有之矣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춘추(春秋)≫에는 의로운 전쟁은 없고, 저것이 이것보다 나은 경우는 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춘추 시대 전쟁 명분의 총평으로 읽는다. 주 왕실의 정당한 질서가 무너진 뒤, 제후들 사이의 전쟁은 저마다 이유를 내세워도 본래의 의로운 정벌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다만 약탈이 덜하고 폭정이 덜한 경우처럼, 서로 비교해 더 나은 쪽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彼善於此(피선어차)에 주목한다. 세상일을 평가할 때 상대적 우열을 전혀 무시하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낫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곧장 (의)라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도덕 판단에서 상대적 개선과 절대적 정당성을 분명히 구별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어떤 갈등이나 경쟁에서도 “저쪽보다 우리가 낫다”는 말이 쉽게 나온다. 맹자의 말은 그 비교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보다 낫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정의를 독점하지 말라고 한다. 덜 나쁜 것과 바른 것은 다를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는 자주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누군가보다 낫다는 사실이 곧 내 선택의 의로움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彼善於此(피선어차)는 자기 위안의 문장이 아니라, 오히려 평가의 엄격함을 유지하는 문장에 가깝다.

2절 — 정자상벌하야(征者上伐下也) — 정벌은 본래 위가 아래를 치는 것이지 대등한 나라끼리의 싸움이 아니다

원문

征者는上이伐下也니敵國은不相征也니라

국역

정벌이란 본래 윗사람(천자)이 아랫사람(제후)을 치는 것이니, 대등한 나라끼리는 서로 정벌할 수 없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정)의 본뜻 풀이로 읽는다. 정벌은 천자나 정당한 상위 권위가 질서를 어지럽힌 아래를 바로잡는 군사 행위이지, 대등한 제후가 서로의 욕망과 이익을 두고 싸우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춘추 시대 전쟁이 무의전인 이유는 바로 이름부터 그릇되었기 때문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명분 정치의 붕괴를 본다. 上伐下(상벌하)의 위계 질서가 사라진 시대에 제후들이 서로를 정벌이라 부른다면, 이미 언어와 현실 모두가 어긋난 상태라는 것이다. 이 독법은 전쟁의 정당성 판단에 앞서 질서와 명칭의 정당성을 먼저 묻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어떤 조치가 “시정”인지 “보복”인지는 누가 어떤 정당한 권한 아래 그것을 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등한 경쟁자끼리의 싸움을 원칙 집행처럼 포장하면 곧 신뢰가 무너진다. 맹자는 힘의 행사만이 아니라, 그 힘이 놓인 구조와 이름까지 따져 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공격을 종종 정의 구현이라 부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맹자의 기준에 따르면, 정당한 질서와 책임 없이 행해지는 공격은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도 결국 사적인 싸움에 머무를 수 있다. 이름을 바로 쓰는 일은 곧 판단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진심하 2장은 춘추 시대의 전쟁을 바라보는 맹자의 시선을 짧고 단호하게 드러낸다. 춘추에는 의로운 전쟁이 없고, 다만 저것이 이것보다 나은 경우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정)의 본래 뜻이 위가 아래를 바로잡는 데 있는데, 대등한 제후국 사이의 싸움은 애초에 그 이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전쟁 명분의 붕괴에 대한 총평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상대적 우열과 절대적 의로움의 구분으로 더 날카롭게 읽는다. 두 갈래 모두 “덜 나쁜 전쟁”과 “의로운 전쟁”은 다르며, 혼란한 시대일수록 그 차이를 더 엄격하게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만난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이 장은 비교 우위의 도덕에 대한 경계다. 상대보다 조금 낫다고 해서 스스로 정의의 편이라고 선언하지 말라는 뜻이다. 맹자는 혼란한 시대일수록 이름과 명분을 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고 말한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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