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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하으로

맹자 진심하 17장 — 지지오행(遲遲吾行) — 부모의 나라와 타국을 떠나는 도리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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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진심하 17장 지지오행(遲遲吾行) 대표 이미지

맹자 진심하 17장은 떠나는 방식에도 도리가 있다는 점을 공자의 사례로 보여 주는 장이다. 공자가 노(魯)나라를 떠날 때는 “더디고 더디다, 내 발걸음이여”라고 했고, 제(齊)나라를 떠날 때는 쌀을 씻어 두었던 일까지 접고 급히 떠났다고 말한다. 같은 떠남인데도 태도와 속도가 다른 이유는, 떠나는 대상이 부모의 나라냐 타국이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장의 핵심 사자성어인 遲遲吾行(지지오행)은 단순히 미련이나 우유부단함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떠나야 할 때에도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하는 마음, 곧 모국에 대한 깊은 정과 예의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반대로 接淅而行(접석이행)은 관계의 본질이 다른 곳에서는 머뭇거림 없이 떠나는 결단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친소와 의리의 질서를 분별하는 문장으로 읽는다. 부모의 나라를 떠날 때는 마음이 무겁고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며, 타국을 떠날 때는 그와 같은 정을 앞세우지 않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떠남의 형식보다 관계의 무게를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정과 의의 조화를 읽는다. 모국을 대하는 느린 발걸음은 사사로운 미련이 아니라 인륜적 정이 살아 있는 모습이며, 타국을 신속히 떠나는 태도는 그 정을 무분별하게 남용하지 않는 분별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성리학적 독법은 공자의 두 태도 모두 도의 한 표현으로 본다.

오늘의 시선으로 읽어도 이 장은 떠남과 거리 두기의 윤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관계를 같은 방식으로 정리할 수는 없고, 어떤 곳은 오래 몸담았고 깊은 빚이 있기에 쉽게 등을 돌릴 수 없다. 맹자는 바로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이 예를 안다고 말하는 듯하다.

1절 — 공자지거로에 왈지지(孔子之去魯에曰遲遲) — 떠나는 속도에도 관계의 도리가 있다

원문

孟子曰孔子之去魯에曰遲遲라吾行也여하시니去父母國之道也오去齊에接淅而行하시니去他國之道也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노나라를 떠나실 때에는 “더디고 더디다, 내 떠나는 발걸음이여”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도리이다. 반면 제나라를 떠나실 때에는 쌀을 씻어 두었던 일까지 접고 곧장 떠나셨으니, 이것이 다른 나라를 떠나는 도리라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나라에 대한 관계의 깊이를 분별하는 문장으로 읽는다. 노나라는 공자에게 부모의 나라와 같은 곳이므로 떠날 때조차 쉽사리 발길을 떼지 못하는 것이 마땅하고, 제나라는 타국이므로 사태가 맞지 않으면 지체 없이 물러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遲遲(지지)와 接淅(접석)의 대조를 통해 친소의 질서를 드러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면을 정과 의가 함께 드러나는 사례로 읽는다. 부모의 나라를 아끼는 마음은 인간적인 정이자 도리의 표현이지만, 타국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떠나는 것은 의리에 맞는 분별이라는 것이다. 성리학적 해석은 두 태도를 모순이 아니라, 각각 다른 관계에 대한 정당한 응답으로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모든 조직과 관계를 똑같이 떠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오래 함께한 공동체, 나를 길러 준 자리, 깊은 빚이 있는 곳에서는 떠남에도 더 큰 책임감과 신중함이 따른다. 반대로 일시적 관계나 본질적 연대가 없는 자리에 대해서는 필요할 때 단호히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맹자의 말은 감정적 잔류와 무정한 절연 사이에서 관계의 무게를 따지는 기준이 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는 각기 다른 관계를 떠날 때 서로 다른 속도를 갖는다. 어떤 곳은 미련이 아니라 존중 때문에 더 천천히 정리해야 하고, 어떤 곳은 괜한 머뭇거림이 오히려 자신을 해칠 수 있다. 遲遲吾行(지지오행)과 接淅而行(접석이행)은 결국, 떠나는 기술보다 떠남의 도리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맹자 진심하 17장은 공자의 떠남을 통해 친한 관계와 먼 관계를 대하는 도리가 같지 않음을 밝힌다. 노나라를 떠날 때의 느린 걸음은 부모의 나라를 향한 정과 예의 표현이고, 제나라를 떠날 때의 빠른 결단은 타국에 머무는 관계의 한계를 아는 태도다. 맹자는 이 둘을 대비시키며, 떠나는 방식에도 분명한 분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친소의 질서와 나라에 대한 의리의 차이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여기에 정과 의가 각각 제자리에서 드러난 사례로 해석한다. 두 독법은 모두, 느리게 떠나는 것과 빨리 떠나는 것이 각각 다른 자리의 도리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만난다. 그래서 遲遲吾行(지지오행)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관계의 무게를 아는 도덕적 태도로 읽혀야 한다.

오늘의 삶에서도 이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요한 것은 빨리 떠나느냐 늦게 떠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떠나는지, 그곳이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닌 자리였는지를 아는 일이다. 맹자는 바로 그 분별이 떠남의 품격을 만든다고 말한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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