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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으로

중용 26장 — 지성무식(至誠無息) — 지극한 성은 쉼이 없이 천지의 도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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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26장 지성무식(至誠無息) 대표 이미지

중용 26장은 至誠無息(지성무식)이라는 네 글자로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중용의 誠(성) 개념을 가장 거대한 규모까지 밀어 올리는 장이다. 지극한 성은 잠깐 뜨거운 마음이 아니라 쉬지 않는 덕이며, 그 쉼 없음이 오래감과 징험, 멀리 퍼지는 영향, 넓고 두터움과 높고 밝음과 길고 오래함으로 이어져 마침내 천지의 도와 상응한다고 말한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읽을 때 낱말의 단계적 전개를 매우 중시한다.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無息(무식)에서 久(구)徵(징)悠遠(유원)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덕의 실제 작용이 점차 넓어지는 과정으로 본다. 여기서 성은 가만한 내면 상태가 아니라, 오래 지속되어 마침내 사람과 세계에 징험을 남기는 실질적 힘이다.

송대 성리학의 독법은 같은 문장을 보다 원리적으로 읽는다.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지극한 성이란 하늘의 이치와 어긋남이 없는 순일한 상태이기에 스스로 쉬지 않고, 그 순일함이 곧 천지의 도와 상통한다고 본다. 한대가 성의 작용과 검증 가능성을 더 앞세운다면, 송대는 그 배후에 있는 순수한 이치와 체용의 구조를 더 정교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중용 26장은 수양론을 넘어서 우주론에 닿는 장이 된다. 성이란 결국 오래 이어질 때만 진짜가 되고, 오래 이어진 덕만이 만물을 싣고 덮고 이루는 큰 질서와 통한다는 것이다. 이 장은 성실이 왜 하루의 미덕이 아니라 평생의 공부이고, 왜 개인의 태도이면서 동시에 천지의 도와 닮은 법칙인지를 보여 준다.

1절 — 지성무식(至誠無息) — 지극한 성은 쉬지 않는다

원문

故로至誠은無息이니

국역

그러므로 지극히 진실한 분의 덕(德)은 잠시도 중단되는 일이 없으니,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無息(무식)을 성의 첫 표지로 본다. 참된 덕은 순간적인 분발이나 감정의 고양이 아니라,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지속성으로 판별된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至誠(지성)은 마음속의 순수함을 넘어 실제 행실과 덕의 연속성을 뜻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지극한 성이 쉬지 않는 이유를 천리와의 합치에서 찾는다. 사사로운 틈이 없으니 중단도 없고, 그 순일함이 바로 無息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한대가 덕의 지속이라는 바깥 표지를 더 강조한다면, 송대는 그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내면의 순일함을 더 깊이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에서 진짜 신뢰는 한 번의 결단보다 오래 같은 기준을 지키는 데서 생긴다. 잠깐 강한 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이 바뀌어도 원칙과 책임이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절은 좋은 지도자의 덕이 강도보다 지속성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개인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며칠의 열심은 누구나 낼 수 있지만, 성실은 멈추지 않는 반복에서만 검증된다. 至誠無息(지성무식)은 결국 재능보다 꾸준함, 결심보다 끊기지 않는 태도가 더 근본이라는 뜻이다.

2절 — 불식즉구(不息則久) — 쉬지 않으면 오래가고 오래가면 징험이 드러난다

원문

不息則久하고久則徵하고

국역

중단되지 않으면 오래가고, 오래가면 밖으로 징험이 나타나고,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徵(징)을 덕의 외적 징험으로 읽는다. 쉬지 않고 오래 이어진 성은 끝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을 수 없고, 사람과 세상 안에 분명한 표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대 독법은 성을 매우 현실적으로 본다. 참된지 아닌지는 결국 시간 속에서 확인된다는 뜻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오래 지속된 성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체가 용으로 발현되는 과정으로 읽는다. 내면의 충실이 깊을수록 외부 감응이 뒤따른다는 설명이다. 한대가 검증 가능성과 현실적 결과를 앞세운다면, 송대는 그 결과가 본래의 순일한 성에서 자연히 흘러나온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 문화는 선언으로 생기지 않는다. 원칙이 오래 반복될 때만 비로소 사람들이 그것을 실제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좋은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얼마나 오래 같은 방식으로 지켜지느냐다.

개인도 같다. 진심은 한두 번의 인상보다 긴 시간 속에서 드러난다. 久則徵(구즉징)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어떤 사람이 진짜인지, 어떤 노력이 진짜인지 표지가 남는다는 냉정한 말이다.

3절 — 징즉유원(徵則悠遠) — 징험은 멀리 퍼져 넓고 깊고 높고 밝아진다

원문

徵則悠遠하고悠遠則博厚하고博厚則高明이니라

국역

밖으로 징험이 나타나면 길고 멀리 퍼져가고, 길고 멀리 퍼져가면 넓고 깊게 쌓이고, 넓고 깊게 쌓이면 높고 밝게 빛나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덕의 확장 과정으로 읽는다. 徵(징)은 처음에는 외적 표지이지만, 그것이 계속되면 悠遠(유원)이 되어 영향이 멀리 미치고, 다시 博厚(박후)로 축적되어 넓고 두터운 바탕이 되며, 마침내 高明(고명)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곧 성의 작용은 점처럼 머물지 않고 층과 규모를 갖추어 간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이를 성의 체가 용으로 점차 드러나는 단계로 읽는다. 멀리 미치는 감응, 두터운 축적, 환히 드러나는 광명이 모두 한 순일한 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한대가 어휘의 단계성과 효과의 누적을 중시한다면, 송대는 그 배후의 일관된 원리를 더 정교하게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의 덕은 처음에는 작은 결정의 일관성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일관성이 조직 전체의 분위기와 신뢰 구조를 바꾼다. 처음엔 미세한 징험이던 것이 결국 조직의 기반이 되고, 나중에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기준이 된다.

개인의 삶에서도 작은 성실이 오래 쌓이면 품격이 된다. 博厚(박후)와 高明(고명)은 타고난 화려함이 아니라, 오래 검증된 태도가 만들어 내는 넓이와 밝음이라고 볼 수 있다.

4절 — 박후소이재물야(博厚所以載物也) — 넓고 두터움과 높고 밝음과 유구함의 쓰임

원문

博厚는所以載物也오高明은所以覆物也오悠久는所以成物也니라

국역

聖人의 넓고 깊은 德은 모든 것을 실어주고, 높고 밝게 빛나는 덕은 모든 것을 덮어 감싸며, 길고 멀리 퍼져간 덕은 모든 것을 이루어준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博厚(박후), 高明(고명), 悠久(유구)를 각각 기능적으로 읽는다. 넓고 두터운 덕은 받쳐 주는 힘이고, 높고 밝은 덕은 덮어 주고 비추는 힘이며, 길고 오래한 덕은 만물을 완성하게 하는 힘이다. 덕을 단지 추상적 성품이 아니라 실제 작용으로 푼다는 점이 한대 독법의 특징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이 세 가지를 천지의 덕과 성인의 덕이 서로 상응하는 구조로 읽는다. 한대가 기능과 작용의 차이를 또렷하게 드러낸다면, 송대는 그 차이가 결국 하나의 성에서 나온 다양한 발현임을 더 강조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좋은 조직은 사람을 받아 줄 두터움, 방향을 밝혀 줄 밝음, 끝까지 완수하게 만드는 지속성을 함께 가져야 한다. 셋 중 하나만 있어도 불안정하다. 받쳐 주기만 하고 기준이 없으면 흐려지고, 기준만 있고 두터움이 없으면 소모적이 되며, 둘 다 있어도 오래 가지 않으면 성과가 완성되지 않는다.

개인의 성숙도 비슷하다. 載物(재물), 覆物(부물), 成物(성물)은 결국 다른 사람과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에서 드러난다. 성실은 자기만 닦는 덕이 아니라, 주변을 떠받치고 완성하게 하는 힘이어야 한다.

5절 — 박후배지(博厚配地) — 박후는 땅과 짝하고 고명은 하늘과 짝한다

원문

博厚는配地하고高明은配天하고悠久는無疆이니라

국역

넓고 깊은 덕은 땅과 짝을 이루고, 높고 밝게 빛나는 덕은 하늘과 짝을 이루고, 길고 멀리 퍼져가는 덕은 천지(天地)의 운행처럼 끝이 없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博厚(박후)를 땅의 덕, 高明(고명)을 하늘의 덕과 대응시킨다. 땅이 넓고 두터워 만물을 싣고, 하늘이 높고 밝아 만물을 덮듯이, 지극한 성의 덕도 그만한 규모와 성질을 갖는다는 것이다. 悠久無疆(유구무강)은 이러한 덕의 지속성이 천지의 운행처럼 한계가 없음을 보여 준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이를 성인의 덕이 천지의 이치와 상응한다는 말로 읽는다. 한대가 대응 관계의 선명함을 더 강조한다면, 송대는 그 대응이 곧 하늘의 이치와 인간 덕의 합치라고 본다. 양쪽 모두 이 절을 통해 성의 규모를 인간적 차원에 가두지 않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큰 덕은 존재감을 과시하는 힘이 아니라, 하늘과 땅처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받쳐 주고 밝혀 주는 힘이다. 리더가 오래 신뢰받으려면 포용력과 기준, 그리고 지치지 않는 지속성을 함께 가져야 한다. 이 셋이 모이지 않으면 규모 있는 리더십은 성립하기 어렵다.

개인에게도 이 절은 중요하다. 넓게 품는 힘, 분명히 보는 힘, 오래 유지하는 힘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 한 사람의 깊이를 이루는 세 축이다. 無疆(무강)은 그 깊이가 일회성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해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하다.

6절 — 여차자불현이장(如此者不見而章) —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고 움직이지 않아도 변하게 한다

원문

如此者는不見而章하며不動而變하며無爲而成이니라

국역

이런 분은 (땅과 같아서) 자신의 덕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환히 드러나고, (하늘과 같아서) 남을 움직이려 하지 않아도 그들이 절로 변화되며, (무궁한 천지(天地)와 같아서) 애써 하는 일이 없어도 저절로 일이 이루어진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천지의 감응과 닮은 성인의 덕으로 읽는다. 하늘과 땅은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지만 만물을 변화시키고 이루어 내듯이, 지극한 성도 억지 조작 없이 사람과 일을 감화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無爲(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성이 아니라, 바른 덕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상태를 뜻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이를 성의 극치가 인위의 찌꺼기 없이 감화를 낳는 경지로 읽는다. 한대가 천지의 비유와 정치적 감화에 더 주목한다면, 송대는 체용이 원만하게 합한 성인의 경지를 더 또렷하게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가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고 과시해야만 영향력이 유지된다면, 아직 덕이 문화가 되지 못한 것이다. 가장 강한 영향력은 사람들이 억지로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기준을 받아들일 때 생긴다. 이 절은 진짜 권위가 강압보다 자연스러운 감화에 가깝다고 말한다.

개인의 삶에서도 같다. 좋은 습관이 자리 잡으면 매번 의지를 짜내지 않아도 삶이 그 방향으로 굴러간다. 無爲而成(무위이성)은 방임이 아니라, 오래 닦인 태도가 자연스러운 질서가 된 상태다.

7절 — 천지지도 가일언이진야(天地之道可一言而盡也) — 천지의 도는 한마디로 다할 수 있다

원문

天地之道는可一言而盡也니其爲物이不貳라則其生物이不測이니라

국역

천지의 도(道)는 한마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니, ‘천지라는 존재는 한결같고 변함이 없기 때문에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 오묘하여 헤아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천지의 도를 不貳(불이) 한마디로 잡는다. 하늘과 땅의 운행은 둘로 갈라져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만물을 생성하는 작용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결과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것이다. 이는 앞 절의 無息(무식)과 긴밀히 이어진다. 쉬지 않는다는 것은 곧 둘이 아니고 한결같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이를 천리의 순일성과 생성의 불측성으로 읽는다. 한대가 천지의 꾸준한 작용을 더 직접적으로 본다면, 송대는 그 꾸준함을 가능하게 하는 이치의 순일성을 더 강조한다. 그래도 결론은 같다. 깊은 힘은 복잡한 요령보다 한결같음에서 나온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이 강해지는 이유도 대개 복잡한 전략보다 흔들리지 않는 핵심 원칙에 있다. 기준이 자주 바뀌지 않을 때 사람들은 안심하고 움직일 수 있고, 그 안정성 위에서 더 큰 성과가 나온다. 不貳(불이)는 단순함이 아니라 깊은 일관성의 이름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그렇다. 방향이 자꾸 갈라지면 힘이 분산되지만, 한 기준을 오래 지키면 예상보다 큰 결과가 나온다. 헤아리기 어려운 성취는 대개 이런 순일함에서 시작된다.

8절 — 천지지도 박야후야(天地之道 博也厚也) — 하늘과 땅과 산과 물은 작은 데서 큰 덕을 이룬다

원문

天地之道는博也厚也高也明也悠也久也니라今夫天이斯昭昭之多니及其無窮也하여는日月星辰이繫焉하며萬物이覆焉이니라今夫地一撮土之多니及其廣厚하여는載華嶽而不重하며振河海而不洩하며萬物이載焉이니라今夫山이一卷石之多니及其廣大하여는草木이生之하며禽獸居之하며寶藏이興焉이니라今夫水一勺之多니及其不測하여는黿鼉蛟龍魚鼈이生焉하며貨財殖焉이니라

국역

천지의 도는 넓고 깊으며, 높고 밝으며, 길고 오래간다. 지금 저 하늘은 작은 빛이 많이 모인 것이지만, 무궁하기로 말하면 해와 달과 별들이 매달려 있으며 모든 만물을 덮고 있다. 지금 저 땅은 한 줌의 흙이 많이 모인 것이지만, 그 넓고 깊기로 말하면 화악(華嶽)을 싣고도 무겁지 않고 하해(河海)를 담고 있으면서도 새지 않으며, 만물이 모두 거기에 실려 있다. 지금 저 산(山)은 자잘한 돌이 많이 모인 것이지만, 그 넓고 크기로 말하면 초목이 거기에서 생장하고 짐승들이 거기에서 살며, 온갖 보물이 거기에서 나온다. 지금 저 물은 한 잔의 물이 많이 모인 것이지만, 오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것으로 말하면 큰 자라와 악어와 교룡과 물고기들이 생장하고 온갖 재화가 번식하고 있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이 긴 비유를 작은 축적이 끝내 큰 덕으로 자라는 과정의 설명으로 본다. 하늘도 처음에는 작은 밝음의 집적처럼 보이고, 땅도 한 줌 흙, 산도 한 덩이 돌, 물도 한 바가지 물처럼 보이지만, 그 극치에 이르면 만물을 싣고 덮고 길러 내는 거대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앞 절의 無息悠久가 어떻게 현실의 규모로 자라는지를 형상적으로 보여 준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이 비유를 성의 체가 작게 시작해도 끝내 천지와 같은 규모로 드러날 수 있다는 예증으로 읽는다. 한대가 비유의 축적성과 자연스러운 성장 논리를 더 중시한다면, 송대는 그 배후의 천리와 성의 합치를 더 정밀하게 해석한다. 두 전통 모두 작은 시작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큰 조직 문화나 큰 성과도 처음에는 대개 사소한 습관과 작은 기준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작은 약속, 작은 정직, 작은 반복을 무시하면 나중의 큰 구조도 세울 수 없다. 이 절은 거대한 힘이란 처음부터 거대한 형태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개인의 삶에서도 사소한 반복이 결국 인생의 규모를 결정한다. 오늘의 한 번이 작아 보여도, 그것이 쌓이면 어느 순간 해와 달과 별을 매단 하늘, 만물을 싣는 땅 같은 규모의 기반이 된다. 작은 시작을 우습게 보면 큰 완성을 놓친다.

9절 — 유천지명오목불이(維天之命於穆不已) — 하늘의 명도 문왕의 덕도 그침이 없다

원문

詩云維天之命이於穆不已라하니蓋曰天之所以爲天也오於乎不顯가文王之德之純이여하니蓋曰文王之所以爲文也니純亦不已니라右는第二十六章이라

국역

≪시경≫에 “하늘의 운행은 아, 깊고도 멀어서 잠깐의 멈춤도 없는 거라네.” 하였는데, 이는 하늘이 하늘이 되는 까닭을 말한 것이고, “아, 어찌 밝게 드러나지 않으랴. 문왕(文王)의 덕(德), 그 순수함이여.” 하였는데, 이는 문왕이 문(文)이란 시호(諡號)를 받은 이유가, 순수하면서도 잠시의 중단이 없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이 시경 인용을 장 전체의 결론으로 읽는다. 하늘의 명이 於穆不已(오목불이)한 것이 하늘이 하늘인 까닭이듯, 문왕의 덕도 純亦不已(순역불이)하기 때문에 문왕이 문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장의 첫머리 至誠無息(지성무식)과 마지막 시경 인용이 정확히 서로 호응하며, 성의 본질이 순수하고 끊이지 않는 데 있음을 다시 확인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하늘의 도와 문왕의 덕을 같은 순일성과 지속성 안에서 읽는다. 성인의 덕이 천도의 성질과 상응하기에 문왕의 순수함 역시 不已(불이)라고 보는 것이다. 한대가 경전의 언어와 역사적 성왕의 사례를 더 가까이 붙든다면, 송대는 천도와 성덕의 원리적 상응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의 마지막 기준은 화려한 성과보다도, 기준의 순수함이 얼마나 오래 흔들리지 않았는가에 있다. 사람들은 결국 오래 본다. 잠깐의 탁월함보다 오래 같은 태도를 지킨 사람이 더 깊은 신뢰를 얻는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純亦不已(순역불이)다. 순수한 기준을 오래 지키는 사람은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결국 드러난다. 이 절은 처음의 무식을 다시 붙잡아, 큰 덕의 끝이 결국 그침 없는 순수함임을 보여 준다.


중용 26장은 至誠無息(지성무식)에서 출발해, 쉬지 않는 성이 오래감과 징험을 낳고, 그 징험이 멀리 퍼져 넓고 두터움과 높고 밝음, 그리고 유구함으로 자라나 마침내 천지의 도와 상응함을 차례로 보여 준다. 중간의 하늘과 땅, 산과 물의 비유는 작은 시작이 어떻게 무궁한 규모로 확장되는지를 눈앞에 그려 주며, 마지막 시경 인용은 하늘의 명과 문왕의 덕이 모두 不已(불이)에 있음을 못 박는다.

한대 훈고 전통과 송대 성리학은 이 장을 읽는 길이 다르면서도 핵심에서는 만난다. 한대는 덕의 지속과 징험, 그리고 천지 비유의 현실적 구조를 더 강조하고, 송대는 그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천리와 성의 순일함을 더 정교하게 설명한다. 두 독법을 함께 놓으면, 성이란 결국 한순간의 진심이 아니라 오래 검증되어 세계와 상응하는 힘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오늘의 독자에게 이 장은 매우 현실적이다. 작은 성실을 가볍게 여기지 말 것, 오래 같은 기준을 지킬 것, 그리고 참된 영향력은 과시보다 지속성에서 나온다는 것. 중용 26장은 이런 사실을 가장 큰 스케일로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장의 至誠無息(지성무식)은 개인 수양의 표어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와 세계를 떠받치는 법칙의 이름이 된다.

등장 인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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