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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으로

중용 28장 — 우이자용(愚而自用) — 어리석은 자가 제 의견을 쓰는 폐단 — 예악과 제도는 아무나 세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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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28장 우이자용(愚而自用) 대표 이미지

중용 28장은 중용의 문제가 개인 수양에만 머물지 않고, 예악과 제도와 문자 같은 공적 질서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강하게 드러낸다. 공자는 어리석고도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 그리고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제멋대로 결단하려는 사람을 함께 경계한다.

이 장의 핵심은 아무나 예를 논하고 제도를 만들 수 없다는 데 있다. 공적인 기준은 천하 전체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이므로, 개인의 총명함이나 취향으로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은 중용이 단지 마음의 균형이 아니라 권위와 책임의 절도라는 사실도 보여 준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이 장을 공적 질서의 정당성에 관한 경전적 설명으로 읽는다. 議禮(의례)와 制度(제도), 考文(고문)은 흩어진 기술이 아니라 천하를 하나의 법도 안에 묶는 표준이라는 뜻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이 장을 자리와 덕, 현실과 전통의 균형 문제로 읽는다. 예를 만든다는 것은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학식이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끝내 吾從周(오종주)라 말하며, 실증과 현실 시행이 함께 갖추어진 질서를 따른다.

1절 — 자왈우이호자용(子曰愚而好自用) — 어리석고도 제 생각을 고집하면 화가 닥친다

원문

子曰愚而好自用하며賤而好自專이오生乎今之世하여反古之道면如此者는烖及其身者也니라

국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으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하기를 좋아하고, 낮은 처지에 있으면서도 제멋대로 결정하기를 좋아하며, 지금 세상에 살면서 옛 제도를 거슬러 억지로 되돌리려 한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재앙이 그 몸에 미치게 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단순한 신분 질서의 옹호로 보지 않는다. 핵심은 사사로운 독단이다. 自用自專은 공적 검증과 합의 없이 자기 생각만을 기준으로 삼는 태도이며, 옛 제도를 들먹이는 일마저 그런 독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사욕과 혈기의 문제로 읽는다. 자기 분수를 잊고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바를 밀어붙이면, 외형상 고전을 따른다 해도 실제로는 도를 거스르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앙은 단지 정치적 처벌이 아니라 도를 잃은 결과이기도 하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권한도 검증도 없이 큰 원칙을 자기 식으로 바꾸려는 사람은 대개 문제를 만든다. 본인은 혁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조직의 기준과 신뢰를 먼저 무너뜨린다. 공자는 새로움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질서를 사적 확신으로 대체하는 일을 경계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비슷하다. 경험이 부족하면서 자기 확신만 강하면, 조언을 듣지 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쉽다. 이 절은 자신감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분별과 자기 위치에 대한 자각임을 말한다.

2절 — 비천자불의례(非天子不議禮) — 예와 제도와 문자는 아무나 정할 수 없다

원문

非天子면不議禮하며不制度하며不考文이니라

국역

천자가 아니라면 예를 의논하여 정할 수 없고, 제도를 만들 수 없으며, 문자의 기준을 살펴 정할 수도 없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制度, (문)을 모두 천하의 공통 기준으로 본다. 예는 몸가짐의 규범이고, 제도는 정치 질서의 틀이며, 문자는 소통과 기록의 표준이다. 그러니 이 셋은 개인의 학식이나 지방의 편의만으로 정할 수 없고, 전체를 책임지는 권위 아래에서만 성립한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이를 권위주의적 제한이라기보다 책임의 귀속으로 읽는다. 큰 기준을 세우는 일은 그 결과를 공동체 전체가 짊어지게 되므로, 높은 자리와 공적 책임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권위는 특권이 아니라 부담의 무게와 연결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회사 전체 규정이나 제품 표준, 데이터 체계 같은 것을 아무 팀이나 임의로 바꿀 수 없다. 기준을 크게 바꾸는 일일수록 더 넓은 책임과 정당한 절차가 필요하다. 이 절은 권한 없는 혁신이 얼마나 쉽게 혼란으로 바뀌는지를 경고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약속이나 규칙은 혼자 정해서는 안 된다. 가족이나 공동체 안에서도 중요한 기준일수록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자리와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

3절 — 금천하거동궤(今天下車同軌) — 천하의 질서는 통일된 기준 위에 선다

원문

今天下車同軌하며書同文하며行同倫이니라

국역

지금 천하는 수레의 궤도가 같고, 글자는 같은 문자를 쓰며, 사람들의 행실은 같은 윤리와 법도를 따른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앞 절의 근거 설명으로 읽는다. 왜 천자가 아니면 예와 제도를 논하지 못하는가. 이미 천하는 수레와 문자와 행륜에서 하나의 공통 기준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통일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의 문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을 겉모양의 획일화로 보지 않는다. 각자의 삶이 하나의 도리 아래 정돈되어 있다는 뜻으로 읽는다. 기준이 통일되어야 백성의 생활과 국가의 운영도 어지러워지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공통 기준은 창의성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팀이 커질수록 동일한 문서 형식, 공통 언어, 같은 운영 원칙이 있어야 서로 협업할 수 있다. 기준이 제각각이면 노력은 많아도 조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삶의 기준이 자주 바뀌면 쉽게 흔들린다. 상황마다 다른 원칙을 적용하면 결국 스스로도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모르게 된다. 이 절은 통일된 기준이 안정과 지속의 토대임을 보여 준다.

4절 — 수유기위구무기덕(雖有其位苟無其德) — 자리만으로도 덕만으로도 예악을 만들 수 없다

원문

雖有其位나苟無其德이면不敢作禮樂焉이며雖有其德이나苟無其位면亦不敢作禮樂焉이니라

국역

비록 그 자리에 올랐더라도 그에 걸맞은 덕이 없으면 감히 예악을 만들 수 없고, 비록 그만한 덕이 있더라도 그 자리가 없으면 또한 감히 예악을 만들 수 없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이 절을 28장의 핵심 판단으로 본다. (덕)은 서로를 보완하는 조건이다. 자리만 있고 덕이 없으면 사람을 감화시킬 수 없고, 덕만 있고 자리가 없으면 공적 시행의 정당성이 부족하다. 예악은 이 둘이 함께 설 때만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도 같은 결론을 유지하지만, 더 나아가 안과 밖의 일치라는 문제로 읽는다. 마음의 덕과 외적 권위가 합치되지 않으면 큰 질서를 세우는 일은 언제나 무리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악은 사상과 권력의 결합이 아니라, 도리와 책임의 일치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직함만 있다고 해서 문화를 만들 수 없고, 반대로 좋은 생각만 있다고 해서 큰 규칙을 바꿀 수도 없다. 권한과 자격, 책임과 역량이 함께 있어야 변화가 설득력을 얻는다. 이 절은 좋은 제도 설계가 결국 사람과 구조를 동시에 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말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실천 없이 조언만 많거나, 반대로 진심은 있어도 책임을 지지 못하면 주변을 흔들 뿐이다. 삶의 기준을 세우는 일에도 자리와 덕의 균형이 필요하다.

5절 — 자왈오설하례(子曰吾說夏禮) — 옛 제도를 말하되 지금 쓰이는 질서를 따른다

원문

子曰吾說夏禮나杞不足徵也오吾學殷禮호니有宋이存焉이어니와吾學周禮호니今用之라吾從周호리라右는第二十八章이라

국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하나라의 예를 말할 수는 있지만, 그 후예인 기나라에서는 그것을 충분히 증명해 내기 어렵다. 내가 은나라의 예도 배웠고, 그 후예인 송나라에 그것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내가 배운 주나라의 예가 지금 세상에서 실제로 쓰이고 있으니 나는 주나라의 예를 따르겠다. 이상이 제28장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정현(鄭玄)의 『예기주』와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 중용편 계열 독법은 이 절에서 을 중요하게 본다. 옛 제도는 문헌과 후예 국가를 통해 증거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지금 현실에서 시행되는 힘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가 주례를 따른 것은 단지 익숙해서가 아니라, 실증과 현실 적용의 조건이 함께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朱熹)의 『중용장구』와 정자(程顥·程頤) 어록의 맥락은 이를 고전 숭상의 올바른 방식으로 읽는다. 옛것을 아낀다고 해서 무조건 복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도를 살리고 현실을 다스릴 수 있는지 살펴 가장 타당한 전통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吾從周(오종주)는 보수적 고집이 아니라 신중한 판단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전통을 존중한다는 것은 과거를 낭만화하는 일이 아니다. 좋은 규범은 역사적 근거가 있고, 지금도 공동체 전체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래된 제도든 새로운 제도든, 증거와 실행 가능성이 함께 있어야 의미가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의 조언이나 옛 방식을 따를 때는 그 말이 정말 검증되었는지, 지금 내 삶에서도 작동하는지 살펴야 한다.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의 삶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기준을 선택하는 일이다. 공자의 吾從周(오종주)는 바로 그 현실적 지혜를 보여 준다.


중용 28장은 공적 질서를 사적인 독단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어리석으면서 자기 판단을 고집하는 태도, 권한 없이 제멋대로 전단하는 태도, 실증 없이 옛 제도를 끌어오는 태도는 모두 화를 부른다. 그래서 예와 제도와 문자 같은 큰 기준은 천하의 책임을 지는 자리에서만 논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질서의 정당성에 관한 문장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자리와 덕, 전통과 현실을 함께 따지는 수양의 지혜로 읽는다. 두 해석을 함께 보면, 중용 28장은 결국 무엇이든 함부로 정하지 않는 절도, 그리고 공적인 기준을 세울 때 요구되는 책임의 무게를 가르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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