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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으로

논어 위정 18장 — 다문궐의(多聞闕疑) — 많이 듣고 의심스러운 것은 남겨 두어야 허물과 후회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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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위정 18장 다문궐의(多聞闕疑) 대표 이미지

위정 18장은 자장이 녹봉을 얻는 길을 묻는 데서 시작하지만, 공자의 답은 처세술이나 요령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많이 듣고도 의심스러운 것은 남겨 두며, 많이 보고도 위태로운 것은 덜어 내고, 말에는 허물을 적게 하고 행동에는 후회를 적게 하라는 것이다. 공자는 녹봉을 구하는 가장 현실적인 질문에 대해, 결국 사람을 지켜 주는 것은 신중한 언행과 분별 있는 앎이라고 답한다.

이 장에서 핵심은 多聞闕疑(다문궐의)와 多見闕殆(다견궐태)다. 많이 아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듣고 본 것 가운데 아직 확실하지 않거나 위태로운 것을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공자는 지식의 양보다 판단의 절제를 먼저 세우고, 그 결과로 言寡尤(언과우), 行寡悔(행과회)에 이르러야 비로소 녹봉도 그 안에 있게 된다고 말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이 장을 벼슬길에 나아가는 자의 실제 규범으로 읽는다. 널리 듣고 보되 미심쩍은 것은 말과 행동에서 제거해야 허물과 후회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程子) 어록의 맥락은 이를 더 깊이 읽어, 말과 행동의 절제가 단순한 처세가 아니라 자기 수양과 성실의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이 장은 간록의 방법을 묻는 질문을 통해 결국 군자의 공부를 설명하는 문장이 된다.

위정 편에서 이 장은 정치와 수양이 따로 떨어지지 않음을 잘 보여 준다. 세상에서 자리를 얻는 법을 묻는 질문에 공자가 먼저 자기 말과 행동을 정제하는 법을 말했기 때문이다. 祿在其中矣(녹재기중의)는 녹봉을 직접 좇기보다, 녹봉이 따라오게 만드는 사람의 태도를 가리킨다.

1절 — 자장이학간록한대(子張이學干祿한대) — 자장이 녹봉의 길을 묻다

원문

子張이學干祿한대子曰多聞闕疑오

국역

자장이 녹봉을 얻는 방도를 배우고 싶다고 묻자, 공자는 먼저 많이 듣되 의심스러운 것은 섣불리 단정하지 말라고 답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干祿을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세상에 나아가 직분을 얻는 현실적 문제로 읽는다. 그래서 공자의 답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관직을 구하는 자가 먼저 갖추어야 할 인식의 태도를 말한 것으로 본다. 많이 듣되 의심스러운 것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실제 허물을 줄이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闕疑를 지적 겸손의 태도로 읽는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을 분별하는 힘도 함께 자라야 하며, 성급한 확신은 수양이 부족한 상태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성리학은 이 절을 벼슬의 기술보다 군자의 판단 훈련으로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많이 아는 사람보다, 불확실한 것을 불확실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보고를 많이 받는다고 좋은 판단이 자동으로 나오지 않는다. 정보가 많을수록 의심스러운 부분을 분리하고 보류하는 습관이 있어야 조직의 큰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多聞闕疑(다문궐의)는 유효하다. 우리는 종종 조금 들은 것을 다 안 것처럼 말하고, 애매한 정보를 확신처럼 유통한다. 공자의 말은 많이 듣는 것보다 먼저, 무엇을 아직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배우라고 요구한다.

2절 — 신언기여즉과우(愼言其餘則寡尤) — 확실한 것만 신중히 말하면 허물이 적다

원문

愼言其餘則寡尤며多見闕殆오

국역

공자는 그 가운데 확실한 것만 가려 신중하게 말하면 허물이 적어지고, 또 많이 보되 위태롭거나 합당하지 않은 것은 덜어 내야 한다고 말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寡尤(과우)와 闕殆(궐태)를 현실적 행정 감각과 연결해 읽는다. 말은 한번 나가면 돌이키기 어렵고, 잘못된 판단은 큰 위태로움으로 이어지므로, 확실한 것만 말하고 위태로운 것은 미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공자의 답을 실무 윤리의 기준으로 이해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愼言을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마음의 성실이 바깥으로 드러난 결과로 읽는다. 보이는 것이 많을수록 더욱 분별해야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더욱 절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리학은 지식과 발언의 비례가 아니라, 지식과 자기 절제의 비례를 강조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말의 속도보다 판단의 정확도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회의와 보고에서 모든 정보를 즉시 해석하고 단정하려 들면, 허물은 늘어나고 신뢰는 줄어든다. 신중하게 말하는 사람은 답변이 느려 보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조직의 오류 비용을 줄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비슷하다. 많이 보고 들을수록 곧바로 의견을 덧붙이고 싶어지지만, 실제로는 보류가 더 지혜로운 순간이 많다. 寡尤(과우)는 말을 줄이라는 단순한 금언이 아니라, 내 말이 타인과 상황에 남길 흔적을 헤아리라는 요청이다.

3절 — 신행기여즉과회(愼行其餘則寡悔) — 확실한 것만 신중히 행하면 후회가 적다

원문

愼行其餘則寡悔니言寡尤하며行寡悔면

국역

공자는 마찬가지로 확실한 것만 신중하게 실천하면 후회가 적어지며,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어야 한다고 이어서 말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말을 넘어 행동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고 본다. 잘 모르는 일을 함부로 실행하지 않고, 위태로운 길을 피하며, 확실한 도리만 실천할 때 후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言寡尤 行寡悔는 벼슬길에 나아가는 자의 가장 실질적인 자기 관리 원칙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行寡悔(행과회)를 수양의 성패와 연결해 읽는다. 마음이 조급하면 행동이 앞서고, 행동이 앞서면 뒤늦은 후회가 따라온다. 따라서 성리학은 행동 이전의 숙고와 검증을 중시하며, 후회가 적은 삶이란 욕망을 잘 조절한 삶이라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성급한 실행이 언제나 미덕은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빠르게 움직인다는 명분 아래 검증되지 않은 일을 밀어붙이면, 실행력보다 후속 수습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 行寡悔(행과회)는 행동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후회를 줄일 만큼 충분히 분별한 뒤 실행하라는 뜻에 가깝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많은 후회는 사실 행동 그 자체보다 서두름에서 온다. 확실히 알지 못하는데도 뛰어들고, 마음이 흔들린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면 뒤늦게 자신을 탓하게 된다. 공자의 말은 삶을 지나치게 움츠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후회를 줄이는 방식으로 움직이라고 권한다.

4절 — 록재기중의(祿在其中矣) — 녹봉은 그 결과로 따라온다

원문

祿在其中矣니라

국역

공자는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은 삶을 살면, 녹봉은 바로 그런 태도 속에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고 말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祿在其中을 결과론적 표현으로 읽는다. 녹봉 자체를 직접 좇지 말고, 허물 적은 언행을 갖춘 사람으로 서면 세상은 자연히 그를 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독법은 도리와 현실 이익을 대립시키지 않고, 올바른 처신이 결국 현실적 성취로 이어진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말을 더욱 분명하게 해석한다. 군자는 녹봉을 목적으로 도를 굽히지 않고, 도를 바르게 세우는 과정 속에서 녹봉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구조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리학은 여기서 수단과 목적의 전도를 경계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자리와 보상을 직접 겨냥하는 사람보다, 신뢰할 수 있는 판단과 행동을 축적한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간다는 점을 보여 준다. 단기 성과를 위해 말을 과장하고 실행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잠깐 눈에 띌 수 있어도 오래가지 못한다. 반대로 허물과 후회를 줄이는 태도는 더딜 수 있어도 지속 가능한 평판을 만든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정과 성과를 너무 직접적으로 좇으면 오히려 기준을 잃기 쉽다. 공자는 원하는 결과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따라올 만한 삶의 질서를 먼저 세우라고 말한다. 祿在其中矣(녹재기중의)는 성취를 우회하라는 말이 아니라, 성취가 머물 수 있는 사람의 그릇을 만들라는 뜻이다.


위정 18장은 녹봉을 얻는 길을 묻는 질문에 대해, 결국 허물 적은 말과 후회 적은 행동이라는 원칙으로 답하는 장이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벼슬길의 현실 규범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자기 절제와 분별의 수양론으로 읽는다. 두 흐름 모두 많이 듣고 많이 보는 것보다, 의심과 위태로움을 가려 내는 힘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의 삶에서도 이 장은 정보 과잉의 시대에 더 절실하다. 많이 아는 것, 빨리 말하는 것, 즉시 실행하는 것이 곧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多聞闕疑(다문궐의)는 무지의 고백이 아니라 분별의 시작이며, 祿在其中矣(녹재기중의)는 성과가 기준 있는 언행의 결과로 따라와야 한다는 오래된 원칙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등장 인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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