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글자 이상 입력하세요
술이으로

논어 술이 27장 — 다문다견(多聞多見) — 많이 듣고 가려 익히며 많이 보고 새겨라

12 min 읽기
논어 술이 27장 다문다견(多聞多見) 대표 이미지

술이 27장은 공자(孔子)가 앎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짧고 단단하게 보여 주는 장이다. 핵심은 많이 안다는 자부심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억지로 꾸며 내지 않는 태도에 있다. 공자는 먼저 不知而作(부지이작)을 부정하고, 이어 多聞多見(다문다견)의 길을 제시한다.

이 장의 흐름은 분명하다. 섣불리 지어내는 대신 많이 듣고, 그 가운데 선한 것을 골라 따르며, 많이 보고 기억해 두라는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앎은 비록 가장 높은 차원의 깨달음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분별과 학습의 견실한 토대가 된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학문의 절차와 신중한 언어의 규범으로 읽는다.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不知而作(부지이작)을 경계하고, 多聞擇善(다문택선)과 多見而識(다견이지)을 경험과 전승을 통해 앎을 쌓는 정공법으로 본다. 이 독법에서는 성급한 창작보다 검증된 선례와 바른 분별이 앞선다.

송대 성리학은 여기에 공부의 층위를 더 분명하게 얹는다.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많이 듣고 보는 일이 단순한 정보 축적이 아니라, 선한 것을 취사선택하고 마음에 새겨 실제 삶에 연결하는 과정이라고 읽는다. 그래서 知之次也(지지차야)는 낮잡아 말하는 표현이 아니라, 참된 앎으로 가기 위한 정직한 다음 단계로 이해된다.

1절 — 자왈개유부지이작(子曰蓋有不知而作) — 모르면서 함부로 지어내지 말라

원문

子曰蓋有不知而作之者아我無是也로라多聞하여

국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치를 모르면서 함부로 행하는 자가 있는데, 나는 이런 일이 없다. 많이 들어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不知而作(부지이작)을 학문과 정치 모두에서 위험한 태도로 본다. 충분히 듣고 살피지 않은 채 자기 판단만으로 말을 만들고 일을 벌이면, 겉보기 재능은 있어 보여도 실제로는 큰 오류를 낳기 쉽다는 것이다. 공자의 我無是也(아무시야)는 겸손한 자기 과시가 아니라, 군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학문 윤리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성실한 공부의 출발점을 읽는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꾸미지 않고, 먼저 널리 듣는 자리로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있어야 이후의 분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절은 단순한 지식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허명보다 실질을 따르는가를 묻는 경계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일시적으로는 유능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는 결국 팀 전체의 판단 비용을 키우고, 잘못된 실행을 낳는다. 공자의 말은 전문성의 시작이 전능한 척하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비슷하다. 아는 척은 자존심을 잠시 지켜 줄 수 있지만, 배우는 속도를 늦춘다. 不知而作(부지이작)을 피하고 먼저 듣는 태도는, 겸손을 넘어 실제 성장의 조건이 된다.

2절 — 택기선자이종지(擇其善者而從之) — 선한 것을 골라 따르고 많이 보아 익혀라

원문

擇其善者而從之하며多見而識之知之次也니라

국역

그 중에 선한 것을 가려 따르고, 많이 보아 마음속에 기억해 둔다면, 이치를 환히 아는 사람의 다음은 되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경험과 전승을 통해 앎을 다지는 실제 방법으로 읽는다. 많이 듣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고, 그 가운데 선한 것을 분별해 취해야 하며, 또 많이 보되 흘려보내지 말고 기억 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앎은 우연한 영감보다 축적과 선택의 결과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知之次也(지지차야)에 특별한 의미를 둔다. 최고 수준의 자득적 통찰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널리 듣고 보고 선을 취하는 과정은 결코 하찮은 단계가 아니라 실천 가능한 공부의 정로라는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바깥의 경험을 통해 안의 분별을 기르고, 마침내 더 깊은 앎으로 나아간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독창적으로 만들겠다는 태도보다, 이미 축적된 좋은 사례를 폭넓게 살피고 그중 맞는 것을 골라 적용하는 능력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多聞多見(다문다견)은 모방의 권유가 아니라, 분별 있는 학습의 원칙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많이 접하는 것 자체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따라갈지가 중요하다. 좋은 문장, 좋은 사람, 좋은 습관을 반복해 보고 기억에 새겨 두면 삶의 판단력이 조금씩 달라진다. 많이 듣고 많이 보는 일은 결국 삶의 선택지를 정교하게 만든다.


술이 27장은 앎의 태도를 둘로 나눠 보여 준다. 하나는 모르면서도 억지로 만들어 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널리 듣고 보고 그중 선한 것을 취해 차근차근 쌓아 가는 길이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학문과 언행의 신중함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참된 앎으로 가는 공부의 단계로 읽는다.

핵심은 多聞多見(다문다견) 자체보다, 그 안에 깃든 분별과 성실이다. 공자는 모든 것을 스스로 창안하는 천재성을 자랑하지 않았고, 오히려 모르는 것을 꾸미지 않는 태도와 많이 듣고 보고 익히는 질서를 강조했다. 그래서 이 장은 배움의 깊이만이 아니라 배움의 자세를 가르친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이 장은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더 절실하다. 많이 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좋은 것을 가려 취하며, 모르는 것을 함부로 아는 척하지 않는 정직함이 필요하다. 多聞多見(다문다견)은 결국 겸손과 분별이 결합된 공부의 이름이다.

등장 인물

참조


이전 글

논어 술이 26장 — 조이불강(釣而不綱) — 취하되 쓸어 담지 않고 무방비를 노리지 않는다

다음 글

논어 술이 28장 — 여기진야(與其進也) — 나아오려는 마음을 보고 받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