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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으로

논어 태백 18장 — 외외불여(巍巍不與) — 순과 우는 천하를 지녔으되 사사로이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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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태백 18장 외외불여(巍巍不與) 대표 이미지

논어 태백(泰伯) 18장은 성인의 정치가 무엇으로 완성되는지를 아주 짧고 높게 압축한 문장이다. 공자(孔子)는 巍巍不與(외외불여)라는 표현으로 순임금과 우임금의 위대함을 말하면서도, 그 위대함이 천하를 쥐고 흔드는 적극적 과시가 아니라 천하를 소유하고도 거기에 사사롭게 끼어들지 않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이 장은 태백편의 여러 인물 평정 가운데서도 특별히 정치의 이상을 묻는다. 앞선 장들에서 덕, 예, 인물됨의 기준을 논했다면, 여기서는 제왕의 통치가 어디서 숭고해지는지를 보여 준다. 공자가 칭찬하는 것은 거대한 권력 자체가 아니라, 권력을 사유물처럼 붙들지 않는 마음의 자세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문장을 먼저 제왕의 역사적 위엄과 정치적 덕성으로 읽는다.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巍巍(외외)를 공덕과 위화가 높고 큰 모습으로 보고, 不與(불여)는 천하를 가지고도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자신을 섞지 않는 뜻으로 이해한다. 곧 다스림의 크기는 소유의 크기보다 사심의 부재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는 이 장이 더 내면적인 깊이를 얻는다.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순과 우의 정치를 무위와 무사의 경지에서 읽는다. 천하를 맡았지만 천하를 자기 것으로 삼지 않았기에, 그들의 정치는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질서를 이루는 성인의 정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백 18장은 단지 옛 성왕을 칭송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큰 권한을 가진 자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또 왜 최고의 권위가 가장 적은 사사로움과 연결되는지를 짧은 한 문장으로 보여 준다. 오늘의 독자에게도 이 장이 생생한 이유는, 권력과 책임이 커질수록 자기 개입을 줄이는 절제가 오히려 더 어려운 덕목이기 때문이다.

1절 — 자왈외외호순우(子曰巍巍乎舜禹) — 순과 우의 천하는 숭고했으나 사사로움이 없었다

원문

子曰巍巍乎舜禹之有天下也而不與焉이여

국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숭고하구나, 순 임금과 우 임금은 천하를 소유하고도 전혀 그것에 괘념치 않으셨으니.”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성왕 정치의 외적 위엄과 내적 절제를 함께 보여 주는 문장으로 읽는다. 巍巍(외외)는 그 공덕이 높고 넓어 백성이 우러를 만한 상태를 가리키고, 有天下而不與(유천하이불여)는 천하를 차지하고도 그것을 개인의 소유처럼 다루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독법에서 순과 우의 위대함은 권력의 보유 자체보다 권력을 사사로이 행사하지 않은 태도에 있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무사심의 정치로 더 깊이 읽는다. 성인은 천하를 맡았지만 그 천하에 마음을 붙들리지 않으므로, 정치가 억지 의지나 과장된 통제보다 마땅한 질서의 구현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不與(불여)는 무관심이 아니라, 사사로운 계산이 끼어들지 않는 청명한 통치 태도를 뜻하는 말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이 모든 일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할수록 오히려 조직이 경직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훌륭한 지도자는 결정권을 독점하기보다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고, 자신은 그 질서를 사유화하지 않는다. 有天下而不與(유천하이불여)는 권한을 내려놓는다는 뜻이 아니라, 권한을 사적인 욕망과 분리하는 고도의 절제를 뜻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문장은 자기 몫이 커질수록 자기중심성은 줄어야 한다는 역설을 보여 준다. 책임이 커졌다는 이유로 모든 관계를 통제하려 들면 삶은 무거워지고 주변은 숨 막히게 된다. 반대로 맡은 바를 다하되 그것을 자기 과시의 무대로 삼지 않는 사람은 더 큰 신뢰를 얻는다. 巍巍不與(외외불여)는 크게 맡을수록 더 가볍게 자신을 비우라는 권유처럼 읽힌다.


태백 18장은 성인의 정치가 왜 숭고한지에 대한 논어식 답변이다. 한대 훈고 전통은 순과 우가 천하를 맡고도 사사롭게 끼어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위엄을 읽고, 송대 성리학은 그 배후에 있는 무사심과 무위의 덕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두 독법은 결국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큰 권력일수록 큰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좋은 통치는 모든 것을 움켜쥐는 통치가 아니라 공적 질서가 제대로 서도록 자신을 비워 내는 통치다. 조직의 리더든 한 가정의 책임자든, 자신이 중심이 되려는 마음을 덜어 낼수록 공동체는 더 안정되고 넓어진다. 巍巍不與(외외불여)는 권위의 절정이 사사로움의 부재에서 나온다는 점을 일깨우는 문장이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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