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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추하으로

맹자 공손추하 10장 — 농단지구(壟斷之求) — 만종을 마다한 맹자가 사사로운 독점을 경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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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공손추하 10장 농단지구(壟斷之求) 대표 이미지

공손추하 10장은 맹자(孟子)가 제(齊)나라를 떠나려는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정치적 예우의 문제가 아니라 이익을 대하는 마음의 품격이 핵심이었음이 선명해진다. 왕은 맹자(孟子)를 머물게 하려 하고, 주변 인물들은 그 뜻을 전하려 하지만, 맹자(孟子)는 제안의 크기보다 그 제안이 겨누는 방향을 먼저 본다.

이 장을 따라가다 보면 앞부분의 萬鍾(만종) 제안과 뒷부분의 壟斷(용단) 비유가 따로 놀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높은 녹과 좋은 집, 공경받는 자리라는 말은 겉으로는 후대처럼 보이지만, 맹자(孟子)는 그것이 자칫 사람을 도(道)의 주체가 아니라 붙들어 두는 대상으로 바꾸는 방식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군주가 현자(賢者)를 대하는 법과 시장 질서의 폐단을 함께 밝히는 글로 본다. 곧 현자를 예우하는 정치가 진실한 것인지, 아니면 권력과 부를 앞세워 명망을 자기 편에 붙이려는 것인지가 중요한 갈림길이라는 뜻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와 (리), (공)과 (사)의 분별을 촘촘하게 읽는다. 겉으로는 나라를 위한 말처럼 보여도 실제 마음이 私龍斷(사용단), 곧 사사로운 독점 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그 사람은 이미 공적 언어를 사적 욕심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공손추하 전체 흐름에서 보아도 이 장은 맹자(孟子)가 떠남의 국면에서 무엇을 끝까지 놓지 않았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군주의 호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부귀(富貴)가 도덕적 판단을 대신하는 순간에는 단호해진다. 그래서 龍斷之求(용단지구)는 단지 시장의 독점만이 아니라, 정치와 관계, 조직과 일상 속에서 높은 자리를 먼저 점해 이익의 흐름을 가로채려는 마음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읽힌다.

1절 — 맹자치위신이귀(孟子致爲臣而歸) — 맹자의 떠남

원문

孟子致爲臣而歸하실새

국역

맹자(孟子)께서 客卿(객경)의 직임을 마치고 돌아가려 하셨다. 짧은 첫머리지만, 이미 장 전체의 긴장이 여기서 시작된다. 머무름보다 떠남이 먼저 제시된다는 점에서, 이 장은 맹자(孟子)를 붙드는 이야기이기 전에 왜 그가 떠나려 했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첫 문장을 매우 무겁게 읽는다. 현자(賢者)가 스스로 물러난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군주가 도(道)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정치적 한계를 드러내는 표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뒤이어 나오는 왕의 만류도 예우의 아름다움만으로 읽을 수 없고, 이미 놓쳐 버린 도의 자취를 붙들려는 시도로 함께 보게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의)의 기준이 祿(록)보다 앞선다는 실천으로 읽는다. 맹자(孟子)가 떠났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의 판단 기준이 부귀(富貴)가 아니라 도리였음을 보여 주며, 이후 어떤 후한 제안이 오더라도 그 판단의 뿌리는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핵심 인물이 떠나려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문제는 마지막 순간의 설득 기술이 아니라 그 전까지 무엇을 놓쳤는가에 있다. 맹자(孟子)의 떠남은 단순한 이직이나 이동이 아니라, 조직이 사람을 붙드는 기준을 이미 잘못 세웠을 가능성을 드러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而歸(이귀)의 장면은 중요하다. 사람은 흔히 더 많은 보상이나 명분을 제시하면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준이 한번 어긋난 관계를 계속 이어 가는 것이 더 어렵다. 떠남은 감정의 문제이기 전에 원칙의 문제일 때가 많다.

2절 — 왕이 취견맹자왈전일(王이就見孟子曰前日) — 왕의 아쉬움과 예우

원문

王이就見孟子曰前日에願見而不可得이라가得侍하여는同朝甚喜러니今又棄寡人而歸하시니不識케이다可以繼此而得見乎잇가對曰不敢請耳언정固所願也니이다

국역

왕이 맹자(孟子)를 찾아와 말하였다. 전에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는데 이제 한 조정에서 모실 수 있어 매우 기뻤다고, 그런데 이제 다시 과인을 버리고 돌아가시니 앞으로도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본래 자신도 바라는 바라고 답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왕이 몸소 찾아오는 장면을 존현(尊賢)의 태도로 본다. 군주가 현자를 높이는 마음이 없었다면 먼저 와서 아쉬움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 점에서 왕의 태도에는 분명 정치적 진정성이 담겨 있다고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왕의 진심을 인정하면서도, 맹자(孟子)의 응답 형식에 더 주목한다. 不敢請耳(불감청이)와 固所願也(고소원야)가 함께 놓인 것은 예(禮)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 기준을 흐리지 않는 답변이라는 것이다. 관계의 문을 닫지 않되, 원칙을 보상이나 정에 넘기지 않는 절제가 여기 있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중요한 사람을 붙들고 싶을 때 비로소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서는 일이 있다. 그것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이미 떠나는 사람이 느끼는 핵심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면 진심 어린 만류도 오래 가지 못한다. 맹자(孟子)는 예우를 받으면서도 그 예우에 끌려 판단을 바꾸지 않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절은 관계를 다루는 태도를 생각하게 만든다. 헤어짐의 국면에서 상대가 보이는 아쉬움은 진실할 수 있지만, 그 아쉬움이 곧바로 기준을 바꾸게 하지는 않는다. 固所願也(고소원야) 같은 응답은 마음을 닫지 않으면서도 자기 원칙을 흐리지 않는 방식이 가능함을 보여 준다.

3절 — 타일에 왕이 위시자왈(他日에王이謂時子曰) — 만종의 제안

원문

他日에王이謂時子曰我欲中國而授孟子室하고養弟子以萬鍾하여使諸大夫國人으로皆有所矜式하노니子盍爲我言之리오

국역

다른 날 왕이 시자(時子)에게 말하였다. 도성 안에 맹자(孟子)의 집을 마련해 주고, 萬鍾(만종)의 녹으로 제자들을 기르게 하여 여러 대부(大夫)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본보기로 삼고 싶으니, 자신을 대신해 이 뜻을 전해 달라는 말이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왕의 제안을 현자를 나라의 교화 중심에 두려는 시도로 읽는다. 집을 주고 제자를 기르게 하며 대부(大夫)와 백성이 모두 본받게 하려는 뜻은, 단순히 한 사람을 후대하는 차원을 넘어서 정치 전체의 기준을 높이고 싶어 한 것으로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지점에서 미묘한 긴장을 읽는다. 의도가 선해 보여도 萬鍾(만종)과 거처, 명망의 자리라는 수단이 앞세워질 때 현자는 도(道)의 주체가 아니라 국가 장식물처럼 소비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절은 예우와 유인의 경계가 어디에서 갈리는지를 묻는 대목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뛰어난 사람을 붙잡기 위해 연봉, 팀, 직함, 상징 자본을 한꺼번에 제시하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그런 제안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단지 조건이 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적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대가 아니라 포섭으로 읽힌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좋은 조건을 내미는 일이 언제나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내 곁에 붙들어 두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면, 제안은 곧 부담으로 바뀐다. 맹자(孟子)의 장면은 호의와 점유욕이 아주 비슷한 얼굴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4절 — 시자인진자이이고맹자(時子因陳子而以告孟子) — 간접 전달의 거리

원문

時子因陳子而以告孟子어늘陳子以時子之言으로告孟子한대

국역

시자(時子)가 진자(陳子)를 통하여 맹자(孟子)에게 이 뜻을 전하게 하였고, 진자(陳子)가 다시 시자(時子)의 말을 맹자(孟子)께 아뢰었다. 왕의 뜻이 전달되기는 했지만, 그 말은 직접 대면이 아니라 사람을 거쳐 전달되는 방식으로 한 겹씩 거리를 두고 흘러간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단순한 중계 문장으로 넘기지 않는다. 군주의 뜻이 현자에게 직접 닿지 않고 사람을 거쳐 전달된다는 것은, 존현(尊賢)의 진심이 있더라도 그 실천 방식은 이미 간접성과 정치적 계산을 띠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거리감에 더 예민하다. 도를 구하는 일은 결국 마음을 바르게 두는 일인데, 마음의 정직함이 약해질수록 사람은 직접 말하기보다 중간자를 세워 반응을 살피려 한다는 것이다. 이 절은 전달 방식 자체가 이미 관계의 진정성을 비추는 거울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중요한 제안일수록 당사자가 직접 말하지 않고 중간 관리자나 동료를 통해 탐색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하면 거절의 부담은 줄지만, 동시에 진정성도 약해진다. 맹자(孟子)의 장면은 조건의 크기보다 전달의 방식이 이미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점을 일깨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중요한 관계일수록 남을 통해 의중을 전하는 방식은 신중함이 될 수도 있고 회피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붙들고 싶은 마음이 진짜라면, 왜 직접 말하지 못하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이 절은 관계의 거리와 책임의 거리를 함께 보여 준다.

5절 — 맹자왈연하다(孟子曰然하다) — 부를 원한 것이 아니라면

원문

孟子曰然하다夫時子惡知其不可也리오如使予欲富인댄辭十萬而受萬이是爲欲富乎아

국역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겠지마는 시자(時子)가 어찌 그것이 불가한 줄 알겠느냐고, 만일 자신이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십만 종의 녹을 사양해 놓고 이제 와서 만 종을 받는 일이 어찌 부를 바라는 사람의 행동이겠느냐고 반문하신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대목을 맹자(孟子)의 자기 해명으로 본다. 그는 지금 제안을 거절하는 이유가 만종(萬鍾)이 적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부를 취하는 길이 자신의 기준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왕의 제안이 아무리 후해도 문제의 핵심은 액수가 아니라 뜻이라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반문을 (의)와 (리)의 분별을 밝히는 압축된 논변으로 읽는다. 맹자(孟子)는 재물 자체를 악으로 말하지 않지만, 도리를 저버리고 얻는 재물이나 도리를 대신하는 재물은 받을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辭十萬而受萬(사십만이수만)의 모순은 결국 마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가를 드러내는 시험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 누군가가 조건이 부족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맞지 않아 떠나는 경우, 조금 덜한 조건을 새로 제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맹자(孟子)의 반문은 보상의 크기를 조정하는 방식으로는 가치 충돌을 덮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비슷하다. 어떤 선택을 돈의 많고 적음으로 설명하는 순간 편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지키고 싶은 기준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 맹자(孟子)는 자신이 거절한 것이 만종(萬鍾)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기준 없는 수용이라는 태도였음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6절 — 계손이 왈이재라(季孫이曰異哉라) — 부귀 속의 사농단

원문

季孫이曰異哉라子叔疑여使己爲政하되不用則亦已矣어늘又使其子弟爲卿하니人亦孰不欲富貴리오마는而獨於富貴之中에有私龍斷焉이라하니라

국역

계손(季孫)이 말하였다. 참 이상하다고, 자숙의(子叔疑)는 자기에게 정사를 맡겼다가 뜻을 쓰지 않으면 그만두면 될 일인데 또 자기 자제(子弟)를 경(卿)의 자리에 앉히려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귀(富貴)를 바라지 않을 수 없지만, 유독 그는 부귀 가운데서도 사사로운 龍斷(용단), 곧 독점의 자리를 더 탐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옛 사례를 통해 맹자(孟子)의 의도를 더 분명히 읽는다. 문제는 부귀(富貴)를 바라는 마음 자체가 아니라, 공적 자리와 혈연 관계를 이용해 이익의 흐름을 사적으로 묶어 두려는 태도다. 자숙의(子叔疑)의 잘못은 부귀를 누린 데 있지 않고, 그 부귀 가운데서도 따로 私龍斷(사용단)을 찾았다는 데 있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사)라는 글자를 특히 무겁게 본다. 겉으로는 합당한 직책과 보상처럼 보여도, 실제 마음이 자기 집안과 자기 영향력만 확대하려는 데 머물면 이미 (공)의 자리에서 (사)의 자리로 기운 것이다. 이 절은 맹자(孟子)가 왕의 제안을 단순한 후대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 문제로 돌려 세운 이유를 뒷받침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 私龍斷(사용단)은 정보를 먼저 보고, 결정 권한을 움켜쥐고, 사람과 자원을 자기 네트워크 안으로만 흐르게 만드는 행태와 닮아 있다. 겉으로는 조직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좋은 자리와 이익의 흐름을 독점하려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공적 책임보다 사적 포획에 가까워진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富貴(부귀)를 원하는 마음 자체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맹자(孟子)는 무엇을 얻느냐보다 어떻게 얻느냐를 묻는다. 남보다 앞선 자리, 남의 기회를 미리 차단하는 자리, 늘 먼저 챙길 수 있는 자리를 은근히 탐한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의 私龍斷(사용단)일 수 있다.

7절 — 고지위시자이기소유(古之爲市者以其所有) — 용단의 비유와 독점의 시작

원문

古之爲市者以其所有로易其所無者어든有司者治之耳러니有賤丈夫焉하니必求龍斷而登之하여以左右望而罔市利어늘人皆以爲賤故로從而征之하니征商이自此賤丈夫始矣니라

국역

옛날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것을 자기에게 없는 것과 바꾸었고, 담당 관리는 그 질서를 살필 뿐이었다. 그런데 어떤 천한 사내가 꼭 높은 언덕 같은 龍斷(용단)을 찾아 올라가 좌우를 살피며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하듯 독점하자,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겨 결국 그에게 세금을 부과하게 되었다. 상인에게 세금을 거두기 시작한 일은 바로 이런 천박한 독점자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말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비유를 시장 제도의 기원 설명이자 탐욕 비판으로 읽는다. 본래 시장은 서로 필요한 것을 바꾸는 공간이었고 관리의 역할도 질서를 바로잡는 데 그쳤는데, 龍斷(용단)을 차지한 천장부(賤丈夫)가 나타나면서 사적 이익 포획이 생겼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과세가 생겨났다고 본다. 곧 제도는 탐욕을 막기 위해 뒤늦게 따라붙는 조치라는 뜻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龍斷(용단)을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욕심의 상징으로 읽는다. 높은 곳을 먼저 차지해 좌우를 살피고 흐름 전체를 자기 손에 넣으려는 마음이 바로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비유는 시장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정치에서도 학문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먼저 유리한 지점을 점한 뒤 이익을 거둬들이려는 모든 태도를 비판하는 말로 확장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龍斷(용단)은 플랫폼, 정보, 승인, 네트워크 같은 핵심 길목을 선점해 수익과 기회를 자기 쪽으로만 흐르게 만드는 구조와 닮아 있다. 공정한 교환과 협업이 목적이어야 할 공간이 누군가의 독점적 시야와 통제력에 의해 왜곡될 때, 조직은 곧 불신과 규제 비용을 함께 떠안게 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비유는 낯설지 않다. 사람은 종종 함께 나누는 장보다 먼저 보는 자리, 더 많이 챙길 수 있는 자리, 남의 움직임을 한눈에 읽고 선점할 수 있는 자리를 탐한다. 맹자(孟子)는 바로 그 마음을 賤丈夫(천장부)의 마음이라 부르며, 얻는 이익보다 그 이익을 얻는 방식이 사람을 천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공손추하 10장은 왕의 호의와 맹자(孟子)의 거절, 그리고 시장 비유가 하나의 논리로 이어지는 장이다. 앞부분에서는 만종(萬鍾)과 집, 명예로운 자리를 통해 사람을 머물게 하려는 시도가 나오고, 뒷부분에서는 높은 지점을 차지해 이익을 독점하는 龍斷(용단)의 비유가 등장한다. 맹자(孟子)는 이 둘 사이를 끊어 읽지 않고, 공적 언어가 사사로운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하나의 문제로 묶는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현자를 대하는 정치의 품격과 시장의 폐단을 함께 드러내는 글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여기에 (의)와 (리), (공)과 (사)의 분별을 더 촘촘히 겹쳐 읽는다. 오늘의 독자에게도 메시지는 선명하다. 좋은 말과 좋은 조건을 내세우더라도 마음이 높은 자리의 독점, 곧 龍斷之求(용단지구)로 기울어 있다면 그 선택은 이미 품격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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