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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문공하으로

맹자 등문공하 6장 — 설거주(薛居州) — 한 사람의 선만으로는 임금을 바로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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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등문공하 6장 설거주(薛居州) 대표 이미지

맹자 등문공하 6장은 임금을 바로 세우는 일이 왜 한 사람의 충정만으로는 되지 않는지를 아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앞절에서 맹자는 戴不勝(대불승)에게, 왕을 선하게 만들고 싶다면 먼저 그 왕이 매일 듣고 따르는 말과 사람의 흐름부터 보아야 한다고 일깨운다. 언어를 배우는 비유를 끌어와 정치도 결국 환경 속에서 길들여진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薛居州(설거주) 대목은 그 논지를 더 노골적으로 밀어붙인다. 설거주라는 善士(선사) 한 사람을 왕 곁에 둔다고 해서 곧바로 송왕의 정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맹자의 시선은 개인의 고결함을 칭송하는 데 있지 않고, 왕을 둘러싼 王所(왕소)의 인적 구성 전체가 어떤 방향을 띠는지에 있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이 장을 군주 측근의 배치와 궁정 분위기가 정치를 좌우하는 사례로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에 더해, 사람이 늘 가까이하는 무리와 습관이 마음의 방향을 굳힌다고 읽는다. 두 독법은 다르지만, 선은 고립된 개인 하나로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결론에서 만난다.

그래서 이 장은 인재 한 명을 영입하면 조직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냉정하게 다시 묻게 한다. 좋은 사람의 존재는 분명 중요하지만, 그 선이 작동할 자리와 반복될 관계가 함께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상징에 머무르기 쉽다. 맹자는 바로 그 구조의 문제를 薛居州(설거주)라는 이름에 실어 말하고 있다.

1절 — 맹자위대불승왈(孟子謂戴不勝曰) — 제나라 말을 배우려면 제나라 속에 두어야 한다

원문

孟子謂戴不勝曰子欲子之王之善與아我明告子호리라有楚大夫於此하니欲其子之齊語也則使齊人傅諸아使楚人傅諸아曰使齊人傅之니라曰一齊人이傅之어든衆楚人이咻之면雖日撻而求其齊也라도不可得矣어니와引而置之莊嶽之間數年이면雖日撻而求其楚라도亦不可得矣리라

국역

맹자께서 戴不勝(대불승)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대의 왕이 선해지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내 분명히 그대에게 말하겠다. 여기에 초 나라 대부가 있는데, 그의 아들이 제 나라 말을 하기를 원한다면 제 나라 사람에게 아들을 가르치게 하겠는가, 초 나라 사람에게 가르치게 하겠는가?” 대불승이 말하였다. “제 나라 사람에게 아들을 가르치게 할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한 명의 제 나라 사람이 가르치는데 여러 초 나라 사람들이 떠들어댄다면 비록 날마다 종아리를 치면서 제 나라 말을 하기를 요구해도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데려다가 제 나라의 莊嶽之間(장악지간) 거리에 몇 년 동안 놓아둔다면 비록 날마다 종아리를 치면서 초 나라 말을 하기를 요구해도 역시 될 수 없을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군주 교화의 현실 조건을 밝히는 비유로 본다. 왕에게 선을 권하는 말이 옳더라도 궁정 안팎의 다수가 다른 말을 쏟아 내면 그 권면은 힘을 얻기 어렵다. 그래서 이 비유의 핵심은 말 그 자체보다, 누구와 더불어 살며 무엇을 반복해서 듣는가에 있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수양론으로도 넓혀 읽는다. 사람은 가까이하는 벗과 익숙한 습관을 따라 마음이 굳어지므로, (선)을 세우고 싶다면 옳은 말 한마디보다 옳은 삶의 자리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서 정치 교화와 개인 수양은 같은 원리로 이어진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문화가 교육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찌른다. 윤리 규정과 교육 자료가 잘 마련되어 있어도, 실제 회의와 보고와 평가가 다른 신호를 보내면 사람들은 결국 그 비공식 규칙을 배운다. (선)을 원한다면 먼저 사람들이 매일 부딪히는 언어와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결심을 세워도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관계와 리듬이 그 결심과 반대 방향이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맹자의 비유는 의지가 약하다고 꾸짖기보다, 무엇을 배우고 싶은 사람인가에 따라 스스로를 어떤 자리에 두고 있는지 점검하라고 요구한다.

2절 — 자위설거주(子謂薛居州) — 설거주 한 사람만으로는 송왕을 바꿀 수 없다

원문

子謂薛居州를善士也라하여使之居於王所하나니在於王所者長幼卑尊이皆薛居州也면王誰與爲不善이며在王所者長幼卑尊이皆非薛居州也면王誰與爲善이리오一薛居州獨如宋王에何리오

국역

그대는 薛居州(설거주)를 훌륭한 선비라 하여 왕의 측근에 있게 한 바 있다. 그런데 왕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지위가 낮거나 높거나 모두 설거주와 같은 사람이라면 왕이 누구와 불선한 짓을 하겠는가. 그러나 왕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지위가 낮거나 높거나 모두 설거주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왕이 누구와 선한 일을 하겠는가. 한 명의 설거주가 혼자 송나라 왕에게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하안의 『논어집해』와 황간의 『논어의소』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군주 측근 정치의 구조적 한계를 짚는 말로 본다. 설거주를 가까이에 두는 일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왕 곁의 다수가 다른 욕망과 계산으로 움직인다면 그 한 사람의 바름은 궁정의 기류를 바꾸지 못한다. 초점은 설거주의 부족함이 아니라, 선을 지지하지 못하는 주변 배치 전체에 있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논어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문장을 벗과 습관의 문제로 다시 읽는다. 사람이 늘 함께하는 무리가 바르지 않으면, 한 사람의 충직함은 쉽게 고립되고 가장 많이 들리는 목소리가 결국 마음을 끌고 간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薛居州(설거주)를 칭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선이 지속되려면 가까운 관계망이 함께 정돈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상징적 인사 한 번으로 구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개혁 성향의 리더나 윤리 책임자 한 명을 세우는 일은 신호가 될 수 있지만, 실제 의사결정권과 보상 체계와 비공식 네트워크가 그대로라면 그 사람은 곧 고립된다. 不善(불선)을 막고 (선)을 세우려면 사람 한 명이 아니라 주변의 기준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한 명의 좋은 조언자만으로 삶 전체가 바뀌기를 기대하기 쉽다. 그러나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관계와 습관이 달라지지 않으면 그 조언은 감탄으로 끝나고, 생활은 다시 익숙한 자리로 돌아간다. 맹자의 결론은 비관이 아니라 현실 인식이다. 선한 사람을 가까이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 선이 반복될 환경을 함께 만들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맹자 등문공하 6장은 薛居州(설거주)라는 한 사람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사람보다 구조를 더 깊게 묻는 장이다. 첫 절의 비유는 언어 습득조차 환경을 이기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 주고, 둘째 절의 결론은 선한 신하 한 사람만으로는 군주의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한대 훈고의 독법은 궁정의 인적 구성과 정치적 분위기에 무게를 두고, 송대 성리의 독법은 가까운 벗과 생활 습관이 마음을 형성한다는 점을 더 강하게 읽는다. 그러나 두 흐름 모두 (선)은 개인의 결심만이 아니라 그 결심을 받쳐 주는 자리와 무리 속에서 자란다고 본다.

오늘 이 장은 좋은 사람 한 명이 조직과 공동체를 구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변화는 분명 사람에게서 시작되지만, 지속성은 결국 환경이 결정한다. 薛居州(설거주)를 둘러싼 맹자의 물음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 우리는 정말 선한 사람을 세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선이 살아남을 자리를 함께 만들고 있는가.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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