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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상으로

맹자 이루상 27장 — 인지실(仁之實) — 인(仁)의 실은 어버이를 섬기고 의(義)의 실은 형을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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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이루상 27장 인지실(仁之實) 대표 이미지

이루상(離婁上) 27장은 (인)과 (의), (지), (예), (악)을 한꺼번에 다루지만, 추상 명목을 늘어놓는 장이 아니다. 오히려 맹자는 이 다섯 덕의 실제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말한다. 핵심 표현인 仁之實(인지실)은 덕의 이름이 아니라 그 덕이 삶 속에서 실제로 구현되는 자리, 곧 손에 잡히는 실질을 뜻한다.

첫 절에서 맹자는 仁之實(인지실)을 事親(사친), 곧 어버이를 섬기는 일이라 하고, 義之實(의지실)을 從兄(종형), 곧 형을 따르는 일이라 규정한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仁義(인의)를 멀리 있는 고상한 가치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먼저 확인되는 덕으로 돌려놓는다. 둘째 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는 이 두 가지를 알아 버리지 않는 것, (예)는 이 두 가지를 절차와 형식으로 다듬는 것, (악)은 이 두 가지를 즐기는 것이라 설명한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오륜과 예악의 근본이 친친과 장장의 실천에 있음을 밝히는 문장으로 읽는다. 조기의 孟子章句(맹자장구)와 손석의 孟子正義(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仁義(인의)가 먼저 가까운 친족 관계 안에서 실질을 얻고, 智禮樂(지예악)이 그 실질을 보존하고 펼치는 덕목으로 따라온다고 본다. 반면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孟子集註(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흐름을 성정의 자연스러운 발현과 수양의 단계로 읽어, 덕의 형식과 즐거움이 모두 근본적 애친과 경형에서 우러난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이루상 27장은 유가 윤리의 압축본처럼 보인다. 멀리 있는 천하의 도리를 말하는 대신, 가장 가까운 사람을 제대로 대하는 일에서 仁義禮智樂(인지예지악) 전체가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덕은 머리로 분류하는 목록이 아니라, 가까운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점차 몸 전체로 번져 가는 삶의 움직임이라는 점이 이 장의 핵심이다.

1절 — 맹자왈인지실은(孟子曰仁之實은) — 인(仁)과 의(義)의 실제는 가까운 자리에서 시작된다

원문

孟子曰仁之實은事親이是也오義之實은從兄이是也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의 실제는 어버이를 섬기는 일이고, (의)의 실제는 형을 따르는 일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孟子章句(맹자장구)와 손석의 孟子正義(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仁義(인의)의 근거를 친친과 장장의 윤리로 환원하는 대목으로 읽는다. (인)은 막연한 자애가 아니라 먼저 事親(사친)에서 실질을 얻고, (의)는 추상적 정의감이 아니라 從兄(종형)의 질서 안에서 구체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유가의 큰 덕목들이 결국 가정과 친족 관계 안에서 시험되고 드러난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孟子集註(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문장을 덕의 근본과 발현의 관계로 읽는다. 仁義(인의)는 천리의 보편적 덕이지만, 사람이 그것을 실제로 체득하는 자리는 가장 가까운 인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事親(사친)과 從兄(종형)은 좁은 가족 윤리에 그치지 않고, 모든 도덕 질서가 처음 뿌리내리는 현장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큰 가치를 말하는 사람일수록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존중과 공정을 말하면서도 바로 곁의 동료나 약한 위치의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면, 그가 말하는 仁義(인의)는 실질을 갖기 어렵다. 맹자는 덕의 진위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먼저 묻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절은 분명하다. 세상을 위한 선의나 거창한 정의를 말하기 전에, 부모와 형제, 가족과 가까운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가 먼저라는 뜻이다. 仁之實(인지실)과 義之實(의지실)은 높은 이상을 낮은 자리로 끌어내리며, 삶의 진실은 가까운 관계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2절 — 지지실은지사이자(智之實은知斯二者) — 앎과 예와 즐거움도 결국 이 두 가지에서 자란다

원문

智之實은知斯二者하여弗去是也오禮之實은節文斯二者是也오樂之實은樂斯二者니樂則生矣니生則惡可已也리오惡可已則不知足之蹈之하며手之舞之니라

국역

(지)의 실제는 이 두 가지를 알아 버리지 않는 것이고, (예)의 실제는 이 두 가지를 절차와 형식으로 다듬는 것이며, (악)의 실제는 이 두 가지를 즐기는 것이다. 즐기게 되면 그 마음이 저절로 살아나게 되는데, 살아나면 어찌 멈출 수 있겠는가.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로는 그 길을 밟고 손으로는 춤추듯 행하게 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孟子章句(맹자장구)와 손석의 孟子正義(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덕목들의 상호 연관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읽는다. (지)는 친친과 종형의 근본을 분별해 놓치지 않는 일이고, (예)는 그 근본을 사회적 질서와 형식으로 정돈하는 일이며, (악)은 그 실천이 마침내 마음의 즐거움으로 충만해진 상태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는 예악도 결국 인륜의 근본에서 파생된다고 이해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孟子集註(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특히 樂則生矣(낙즉생의) 이후를 중시한다. 덕이 억지 의무에 머물지 않고 참으로 즐거워지면, 그것은 밖에서 강제된 행위가 아니라 내면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기로운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不知足之蹈之 手之舞之(부지족지도지 수지무지)는 도덕 실천이 몸 전체의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스며든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원칙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다. (지)는 기준을 알고 버리지 않는 일이지만, 조직이 지속되려면 그 기준이 (예)처럼 제도와 문화로 정리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구성원들이 그것을 억지로가 아니라 (악)처럼 기꺼이 따르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맹자는 좋은 조직도 결국 근본 가치가 지식, 규범, 문화로 번져 가는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절은 유익하다. 좋은 것을 안다고 해서 늘 실천하는 것은 아니며, 습관과 형식이 갖추어져야 오래간다. 더 나아가 참으로 좋아하게 되면 더 이상 외부 압박 없이도 몸이 먼저 움직인다. 手之舞之(수지무지)의 비유는 덕의 완성이 딱딱한 의무감이 아니라 기쁨에 가까운 상태라는 점을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이루상 27장은 仁義禮智樂(인지예지악)을 따로따로 설명하지 않고, 하나의 살아 있는 흐름으로 묶어 보여 준다. (인)과 (의)는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실질을 얻고, (지)는 그것을 알아 버리지 않으며, (예)는 그것을 질서와 형식으로 다듬고, (악)은 마침내 그것을 기뻐하여 몸 전체의 움직임으로 만든다. 이 간결한 구도는 유가 윤리가 얼마나 생활의 실제를 중시하는지 잘 보여 준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친친과 장장의 질서에서 출발하는 인륜의 전개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본래의 덕이 앎과 예와 즐거움으로 발현되는 과정으로 더 깊게 읽는다. 두 흐름을 함께 보면, 덕은 머릿속 원칙이나 사회적 규범 어느 한쪽에만 머물지 않는다. 가까운 관계, 분별하는 앎, 정돈된 형식, 우러나는 기쁨이 모두 연결될 때 비로소 온전한 삶이 된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이 장은 가치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가까운 관계와 반복되는 습관, 그리고 기꺼이 움직이는 몸에서 확인하라고 말한다. 억지로 참는 도덕은 오래가기 어렵지만, 진심으로 즐기게 된 덕은 삶의 리듬이 된다. 仁之實(인지실)이 지금도 살아 있는 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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