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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하으로

맹자 이루하 7장 — 중양부중(中養不中) — 중도 있는 자가 중도 없는 자를 기르고 재능 있는 자가 재능 없는 자를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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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이루하 7장 중양부중(中養不中) 대표 이미지

이루하(離婁下) 7장은 사람 사이의 차이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매우 단단한 어조로 말하는 장이다. 맹자는 中養不中(중양부중), 곧 중도를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길러야 하고, 才養不才(재양불재), 곧 재능 있는 사람이 재능 없는 사람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한다. 뛰어난 이의 존재 이유가 자기 완성에만 있지 않고, 아직 미치지 못한 이를 붙들어 세우는 데 있다는 뜻이다.

이 문장이 놓인 맥락은 단순한 교육론보다 넓다. 맹자는 왜 사람들이 賢父兄(현부형), 곧 훌륭한 아버지와 형을 둔 것을 기뻐하는지 묻고, 그 이유를 보호나 후광이 아니라 양육과 교도의 책임에서 찾는다. 가까운 어른이 뒤를 잇는 사람을 버리지 않고 길러 줄 때, 인간과 공동체는 단절이 아니라 전승의 질서를 갖게 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孟子章句(맹자장구)와 손석의 孟子正義(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부형이 자제를 가르치고 재성 있는 자가 미숙한 자를 교도하는 인륜의 상도(常道)로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孟子集註(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를 선한 본성을 지닌 사람이 아직 그 가능성을 온전히 펼치지 못한 이를 성취로 이끄는 수양의 질서로 읽는다. 두 흐름 모두 훌륭함은 버림이 아니라 양육에서 증명된다고 본다.

그래서 이루하 7장은 능력의 우열을 자랑하는 장이 아니라, 우월한 위치에 선 사람의 책임을 묻는 장이다. 맹자는 현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본질적인 격차로 굳어지는 순간을 경계하며, 그 차이를 줄이는 일 자체가 이미 어른과 선배의 도리라고 말한다.

1절 — 맹자왈중야양부중(孟子曰中也養不中) — 훌륭한 사람은 덜 갖춘 사람을 길러야 한다

원문

孟子曰中也養不中하며才也養不才라故로人樂有賢父兄也니如中也棄不中하며才也棄不才면則賢不肖之相去其間이不能以寸이니라

국역

맹자는 중도를 갖춘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길러 주고, 재능 있는 사람이 재능 없는 사람을 이끌어 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훌륭한 아버지와 형이 있는 것을 기뻐한다. 만약 중도를 가진 이가 그렇지 못한 이를 버리고, 재능 있는 이가 재능 없는 이를 외면한다면, 훌륭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도 결국 한 치 남짓밖에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孟子章句(맹자장구)와 손석의 孟子正義(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부형의 교도 책임을 밝히는 말로 읽는다. (중)과 (재)는 이미 갖춘 덕성과 재능을 뜻하지만, 그 가치는 스스로 빛나는 데서 끝나지 않고 不中(부중)과 不才(불재)를 길러 내는 데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賢父兄(현부형)은 혈연적 권위자가 아니라 후진을 버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孟子集註(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사람의 본성은 서로 통하지만 기질과 배움의 차이로 현실적 격차가 생긴다고 보는 입장에서 읽는다. 그래서 이미 도를 체득한 사람은 아직 미치지 못한 사람을 성취로 이끌 책임이 있으며, 만일 이를 버리면 어진 사람과 불초한 사람의 차이는 본래부터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만 드러나게 된다고 본다. 성리학적 독법은 특히 양육과 교화를 인간 완성의 공동 작업으로 이해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실력 있는 사람이 성과만 내고 후배를 키우지 않을 때 조직 전체가 얕아진다는 경고로 읽힌다. 좋은 관리자와 선배가 있다는 사실이 반가운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유능해서가 아니라,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버리지 않고 성장의 경로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잘하는 사람이 자기 일만 챙기고 지식을 닫아 버리면 조직의 격차는 실력 차이보다 전승 실패에서 커진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장은 분명하다. 집안이든 학교든 공동체든, 먼저 배운 사람이 나중 온 사람을 거들어 주지 않으면 능력의 차이는 쉽게 낙인으로 굳어진다. 맹자는 뛰어난 사람의 존재 이유를 경쟁 우위가 아니라 양육 책임에서 찾으며, 그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훌륭함이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이루하 7장은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재능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숙명처럼 보지 않는다. 오히려 맹자는 그 차이가 얼마나 자주 교육과 양육의 성패에서 갈리는지를 보여 주며,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덜 나은 사람을 붙드는 일이 인륜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中養不中(중양부중)과 才養不才(재양불재)는 우월함의 자격이 아니라 책임의 형식이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부형이 자제를 교도하는 질서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이미 도를 체득한 사람이 아직 미치지 못한 사람을 완성으로 이끄는 수양의 질서로 읽는다. 두 전통은 모두 훌륭한 사람의 가치가 남을 버리지 않는 데 있다는 점에서 만난다. 그래서 賢父兄(현부형)은 단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차이를 메워 주는 사람이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이 장은 멘토십, 교육, 세대 전승의 원리를 간명하게 압축한다. 사람의 차이를 자연화하고 방치하는 공동체는 결국 누구도 충분히 훌륭해지지 못한다. 반대로 먼저 선 사람이 뒤의 사람을 기를 때, 개인의 장점은 공동의 자산이 된다. 맹자가 말한 기쁨은 바로 그런 어른과 선배가 곁에 있다는 안도감이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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