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글자 이상 입력하세요
만장상으로

맹자 만장상 7장 — 선각후각(先覺後覺) — 이윤은 할팽이 아니라 도로 탕을 깨우쳤다

41 min 읽기
맹자 만장상 7장 선각후각(先覺後覺) 대표 이미지

만장상(萬章上) 7장은 伊尹(이윤)을 둘러싼 세속적 소문을 반박하면서, 성인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기준이 무엇인지 길게 풀어내는 장이다. 출발은 매우 현실적이다. 만장은 이윤이 割烹(할팽), 곧 요리 솜씨를 발판으로 (탕)에게 접근했다는 말을 묻는다. 맹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하며, 이윤의 삶 전체가 (의)와 (도)를 기준으로 움직였다고 설명한다.

이 장의 중심은 단순한 인물 변호가 아니다. 맹자는 이윤이 왜 처음에는 초빙을 거절했고, 왜 나중에는 마음을 바꾸어 탕에게 나아갔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어떻게 先知後知(선지후지), 先覺後覺(선각후각)의 책임과 연결되는지를 보여 준다. 세상으로 나아감과 물러남, 벼슬함과 은거함이 모두 자기 욕심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책임에서 갈라진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이윤의 지조와 경세 의지를 동시에 드러내는 글로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에 더해, 먼저 깨달은 자가 뒤의 사람을 깨우치는 것이 곧 성인의 자임이라는 점을 중시한다. 두 흐름 모두 이윤이 명리로 움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만장상 전체에서도 이 장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만장이 성인과 군자의 행적을 사례 중심으로 묻는 자리에서, 맹자는 이윤을 통해 出處(출처)의 원칙, 성인의 사명, 그리고 정치 참여의 정당성을 함께 설명한다. 그래서 이 장은 유가 정치철학과 수양론이 만나는 지점으로 읽힌다.

1절 — 만장문왈인유언(萬章問曰人有言) — 이윤이 요리 솜씨로 등용되었는가

원문

萬章이問曰人이有言하되伊尹이以割烹要湯이라하니有諸잇가

국역

만장은 사람들이 이윤이 요리 솜씨를 수단으로 삼아 탕 임금에게 접근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한 사실 확인을 넘어, 성인이 세상에 나아가는 방식이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만장의 질문 자체를 후대에 성인의 출처를 오해하는 풍속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장면으로 읽는다. 이윤처럼 높은 인격도 세속의 눈에는 기술과 처세로 읽혔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맹자의 긴 답변이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한 정론의 제시라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질문을 성인의 행적을 외형만으로 해석하는 오류의 사례로 본다. 겉으로 탕에게 나아간 결과만 보면 누군가는 출세술처럼 볼 수 있지만, 성리학적 독법은 행위의 근원을 묻지 않으면 성인의 뜻을 오해하게 된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도 뛰어난 인물의 행적은 쉽게 얄팍한 처세술로 축소된다. 누군가 중요한 자리에 오르면 실력이나 원칙보다 인간관계 기술이나 이미지 관리 덕분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맹자는 이런 냉소를 경계하며, 행동의 외형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해 움직였는지를 먼저 보라고 말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선택을 가장 세속적인 동기로 곧장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그 행동이 어떤 가치와 책임에서 나왔는가다. 만장의 질문은 그래서 지금도 유효한 출발점이다.

2절 — 맹자왈부라불연(孟子曰否라不然) — 이윤의 삶은 의와 도를 기준으로 섰다

원문

孟子曰否라不然하니라伊尹이耕於有莘之野而樂堯舜之道焉하여非其義也며非其道也어든祿之以天下라도弗顧也하며繫馬千駟라도弗視也하고非其義也며非其道也어든一介를不以與人하며一介를不以取諸人하니라

국역

맹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윤은 유신의 들에서 농사짓고 살면서도 요순의 도를 즐겼고, 의롭지 않거나 도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천하를 녹으로 준다 해도 돌아보지 않았으며 수많은 말과 부귀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의와 도가 아니라면 지푸라기 하나도 남에게 주지 않았고 받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이윤의 지조를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부분으로 읽는다. 의와 도가 아니면 천하도 돌보지 않는다는 표현은, 그가 명리로 움직일 인물이 아님을 보여 주는 증거다. 따라서 할팽으로 탕에게 접근했다는 속설은 이 절에서 이미 무너진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윤의 태도를 외적 청빈보다 내적 정정함의 문제로 읽는다. 성리학적 독법에서 핵심은 가난하게 살았다는 사실보다, 마음의 기준이 의와 도에 완전히 매여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윤의 은거는 소극적 회피가 아니라 원칙의 확립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의 관점에서 보면, 이 절은 협상 가능하지 않은 기준이 있는가를 묻는다. 사람은 대개 큰 보상 앞에서 작은 원칙을 조정하려 하지만, 맹자는 진짜 큰 인물은 오히려 큰 보상 앞에서 더 분명해진다고 본다. 기준 없는 유능함은 쉽게 거래되지만, 기준 있는 유능함만이 신뢰를 만든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편의와 이익을 위해 기준을 조금씩 접는 습관은 결국 삶 전체를 흔든다. 이윤의 사례는 의와 도가 거창한 표어가 아니라, 작은 주고받음에서까지 시험되는 실제 기준임을 보여 준다.

3절 — 탕사인이폐빙지(湯使人以幣聘之) — 처음 초빙을 거절한 까닭

원문

湯이使人以幣聘之하신대囂囂然曰我何以湯之聘幣爲哉리오我豈若處畎畝之中하여由是以樂堯舜之道哉리오

국역

탕이 사람을 보내 폐백으로 초빙했을 때, 이윤은 욕심 없는 태도로 내가 어찌 그런 초빙을 받을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한다. 차라리 밭두렁 사이에 머물며 요순의 도를 즐기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윤에게 처음의 초빙은 자신의 뜻을 꺾으면서까지 받아들일 대상이 아니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성인이 가벼이 세상에 나아가지 않는다는 원칙의 표현으로 읽는다. 탕이 한번 불렀다고 곧바로 나아갔다면 오히려 경솔했을 것이고, 이윤은 먼저 부름의 정당성과 시대의 가능성을 살폈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그의 거절을 자존심이 아니라 의리의 점검으로 본다.

송대 성리학은 여기서 출처의 엄정함을 읽는다.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세상에 나아가는 일도 도를 위한 것이어야지, 부름 자체가 곧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이윤의 첫 거절은 은둔의 취향이 아니라 마음의 기준을 지키는 수양의 태도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모든 제안이 받아들여질 필요는 없다. 직책이 높거나 조건이 좋다고 해서 그 자리가 곧 정당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기준 없이 들어가면 나중에는 더 큰 타협을 하게 된다.

개인에게도 이 절은 중요하다. 좋은 기회처럼 보여도 그것이 내 기준과 맞는지, 내가 정말 그 자리에서 옳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따져 보지 않으면 기회는 곧 굴레가 될 수 있다. 이윤의 거절은 기회를 고르는 분별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4절 — 탕삼사왕빙지(湯三使往聘之) — 마음을 고쳐 나아간 이유

원문

湯이三使往聘之하신대旣而오幡然改曰與我處畎畝之中하여由是以樂堯舜之道로는吾豈若使是君으로爲堯舜之君哉며吾豈若使是民으로爲堯舜之民哉며吾豈若於吾身에親見之哉리오

국역

탕이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 초빙하자, 이윤은 마침내 생각을 바꾸었다. 들에서 홀로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보다, 이 임금을 요순 같은 임금으로 만들고 이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일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또한 자기 몸으로 그런 도가 실제 정치 속에서 실현되는 것을 직접 보는 것만큼 큰 일도 없다고 여겼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이윤의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구제할 가능성을 확인한 결과로 읽는다. 세 번의 초빙은 탕의 뜻이 가볍지 않음을 보여 주며, 이윤은 그제야 도를 정치로 구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송대 성리학은 이 장면을 성인의 공공성으로 읽는다. 혼자 수양하며 도를 즐기는 것보다, 군주와 백성을 함께 변화시키는 일이 더 큰 인의라는 것이다. 성리학적 독법에서 이윤의 출사는 자기 실현이 아니라 도의 확장, 곧 천하를 위한 실천의 선택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에서는 좋은 사람이 권력을 멀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때로는 기준 있는 사람이 공적 자리에 들어가야 더 큰 선이 가능하다. 이윤의 변화는 원칙을 버린 변절이 아니라, 원칙을 더 넓은 자리에서 실행하려는 이동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혼자 바르게 사는 것과 공동체를 바르게 만드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언제나 물러나 있는 것이 더 순결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다.

5절 — 천지생차민야(天之生此民也) — 먼저 깨달은 자의 책임

원문

天之生此民也는使先知로覺後知하며使先覺으로覺後覺也시니予는天民之先覺者也로니予將以斯道로覺斯民也니非予覺之오而誰也리오

국역

이윤은 하늘이 백성을 낼 때 먼저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뒤에 아는 사람을 깨우치고, 먼저 깨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뒤에 깨닫는 사람을 일깨우게 했다고 말한다. 자신은 그런 하늘의 백성 가운데 먼저 깨달은 사람이니, 이 도로 백성을 깨우치는 일을 맡아야 하며, 자신이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절에서 이윤의 출사는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선각자의 책임으로 바뀐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성인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가장 직접적인 명분으로 읽는다. 성인은 혼자 깨닫고 마는 존재가 아니라 남을 깨우치는 존재이며, 선지와 선각의 우위는 특권이 아니라 의무라는 것이다. 이윤의 출사는 바로 그 의무의 실천으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성인의 천직을 읽는다. 먼저 깨달은 사람의 책임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도가 실제 사회 속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先覺後覺(선각후각)은 교육의 말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사명의 말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도 먼저 본 사람이 나중 사람을 일깨우는 책임이 있다. 정보를 먼저 알고 구조를 먼저 이해한 사람이 침묵하면, 무지한 다수는 그대로 피해를 떠안는다. 전문성과 통찰은 종종 권한처럼 소비되지만, 맹자는 그것을 책임으로 돌려세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먼저 배운 사람, 먼저 상처를 통과한 사람, 먼저 구조를 이해한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을 돕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先覺後覺(선각후각)은 우월감의 말이 아니라, 더 많이 본 사람이 더 크게 져야 할 짐의 이름이다.

6절 — 사천하지민(思天下之民) — 백성 한 사람도 외면하지 않는 책임

원문

思天下之民이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어든若己推而內之溝中하니其自任以天下之重이如此라故로就湯而說之하여以伐夏救民하니라

국역

이윤은 천하의 백성 가운데 평범한 남녀 한 사람이라도 요순의 은택을 받지 못하면, 마치 자신이 그 사람을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것처럼 여겼다. 그만큼 천하의 무거운 책임을 스스로 짊어졌기 때문에, 탕에게 나아가 하를 정벌하고 백성을 구하자고 설득한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이윤의 경세 의식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보여 주는 부분으로 읽는다. 백성 한 사람의 고통도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탕을 움직여 폭정을 끝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성인은 천하를 사사로이 맡는 사람이 아니라, 천하의 고통을 자신의 책임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송대 성리학은 여기서 인의의 확장성을 본다. 가까운 도덕 감각이 천하 전체를 향한 책임으로 넓어질 때 성인의 정치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自任以天下之重(자임이천하지중)은 교만이 아니라,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인의의 극치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진짜 책임자는 문제가 자기 부서 밖에 있다고 해서 등을 돌리지 않는다. 시스템 때문에 누군가 계속 손해 보고 있다면, 그것을 “원래 그런 일”로 두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윤의 태도는 리더십이 권한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는 감각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개인에게도 이 절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직접 만든 고통이 아니라고 해서 완전히 무관한가. 맹자는 선각자의 책임을 바로 이 불편한 지점에서 묻는다.

7절 — 오미문왕기이정인자야(吾未聞枉己而正人者也) — 성인의 출처는 달라도 몸가짐은 하나다

원문

吾未聞枉己而正人者也로니況辱己以正天下者乎아聖人之行이不同也라或遠或近하며或去或不去나歸는潔其身而已矣니라

국역

맹자는 자기 자신을 굽혀 남을 바로잡았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으며, 하물며 자신을 욕되게 하면서 천하를 바로잡는 일은 더더욱 없다고 말한다. 성인의 행적은 모두 같지 않아서 멀리 물러나는 경우도 있고 가까이 나아가는 경우도 있으며, 떠나는 경우도 있고 머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길은 결국 자기 몸을 깨끗이 하는 데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성인의 다양한 처신을 하나의 기준으로 묶는 부분으로 읽는다. 은거와 출사가 서로 반대처럼 보여도,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다는 한 원칙 아래에서는 모두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윤의 출사 역시 몸을 굽힌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 여기서 다시 확인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부분을 군자의 권도 이해와 연결한다. 겉으로 다른 선택이 나오더라도 마음의 청정함과 도의 보존이라는 중심이 같다면 모두 정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리학적 독법은 형식의 동일성보다 내면 기준의 일치를 중시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에서도 좋은 사람은 늘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때로는 물러나고, 때로는 가까이 가며, 때로는 참여를 끊고 때로는 깊이 개입한다. 중요한 것은 방식의 일관성이 아니라 기준의 일관성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구절은 타인의 길을 쉽게 재단하지 말라고 한다. 어떤 이는 조직 안에서 바꾸고, 어떤 이는 밖에서 거리를 둔다. 서로 다른 선택을 평가하려면 먼저 그 사람이 자신을 굽혀 타협했는지, 아니면 깨끗함을 지키며 선택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8절 — 오(吾)는 문기이요순지도(聞其以堯舜之道)로 — 이윤이 탕에게 건넨 것은 도였다

원문

吾는聞其以堯舜之道로要湯이오未聞以割烹也케라

국역

맹자는 자신이 들은 것은 이윤이 요순의 도로 탕에게 요구하고 권면했다는 사실이지, 요리 솜씨로 출세의 길을 열었다는 말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장의 첫 질문에 대한 맹자의 결론이 여기서 가장 간명하게 드러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앞선 긴 설명의 결론으로 본다. 이윤은 기술자가 아니라 도를 가진 사람이며, 탕과의 관계도 군주와 재주꾼의 관계가 아니라 도를 권하는 현자와 군주의 관계라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도 이 문장을 성인의 정치 참여가 도의 전달과 교정에 있다는 점을 밝히는 말로 읽는다. 성리학적 독법에서 이윤은 탕의 부름에 응한 신하이기 전에, 탕을 요순의 길로 이끈 스승 같은 존재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진짜 영향력은 기술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재능은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는 힘이다. 맹자는 이윤의 가치를 바로 그 방향 제시 능력에서 찾는다.

개인적으로도 능력은 도구일 뿐 중심이 아니다. 무엇을 잘하는가보다, 그 재능을 어떤 기준 아래 쓰는가가 결국 사람의 무게를 가른다.

9절 — 이훈(伊訓)에 왈(曰) 천주조공(天誅造攻) — 서경 인용으로 맺는 역사적 증거

원문

伊訓에曰天誅造攻을自牧宮은朕載自亳이라하니라

국역

맹자는 끝으로 伊訓을 인용해, 하늘의 토벌이 걸의 목궁을 치는 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계획과 시작은 이미 박읍에서부터 있었다고 말한다. 이는 이윤이 우연히 궁정 안으로 스며든 인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탕과 함께 천하를 바로잡을 계획과 뜻을 세운 인물임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근거로 제시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이 인용은 맹자의 논변을 역사적 문헌으로 뒷받침하는 마무리로 읽힌다.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고전 기록 속 이윤의 실제 역할을 제시함으로써, 세속적 풍문을 정면으로 뒤집는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은 이 인용을 도와 역사, 의리와 사실이 결합되는 자리로 본다. 성인의 뜻은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실제 역사 행위 속에서 증명되어야 하며, 이윤의 경우 그 증거가 바로 伊訓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 논의에서도 마지막에는 평판이 아니라 기록과 실적이 중요하다. 누군가를 둘러싼 소문이 아무리 많아도, 실제로 무엇을 계획했고 무엇을 이루었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사람을 평가할 때 풍문보다 축적된 행적을 보아야 한다. 맹자가 서경을 끌어오는 이유는 결국 말보다 증거가 오래 남기 때문이다.


만장상 7장은 이윤이 어떻게 세속적 출세가가 아니라 선각자의 책임을 진 성인이었는지를 단계적으로 보여 준다. 처음에는 의와 도를 기준으로 초빙을 거절했고, 나중에는 탕을 요순의 군주로 만들고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출사했다. 그 전환의 중심에는 先覺後覺(선각후각), 곧 먼저 깨달은 사람이 뒤의 사람을 깨우쳐야 한다는 자임이 있었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에서 이윤의 높은 지조와 경세 의식을 읽고, 송대 성리학은 여기에 선각자의 사명과 출처의 원칙을 더 깊게 부각한다. 두 독법을 함께 보면, 유가 정치철학에서 출사는 출세가 아니라 교화와 구제의 책임일 때만 정당해진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더 많이 알고 더 먼저 본 사람이 자기 깨달음에만 머물 수 없다는 뜻이다. 공동체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먼저 본 사람이 침묵하지 않고 기준을 들고 나서는 것, 그것이 맹자가 이윤을 통해 말한 선각자의 윤리다.

등장 인물

참조


이전 글

맹자 만장하 7장 — 비초불왕(非招不往) — 현인을 보고자 하면서 그 도리로 부르지 않는다

다음 글

맹자 이루하 7장 — 중양부중(中養不中) — 중도 있는 자가 중도 없는 자를 기르고 재능 있는 자가 재능 없는 자를 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