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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상으로

맹자 만장상 1장 — 대효종신(大孝終身) — 순(舜)이 밭에서 민천(旻天)에 호곡(號哭)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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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만장상 1장 대효종신(大孝終身) 대표 이미지

만장상(萬章上) 1장은 (순)의 효를 묻는 문답으로 시작한다. 萬章(만장)은 순이 밭에서 하늘을 우러러 목놓아 울었다는 전승을 두고, 어째서 그렇게까지 울었는지를 묻는다. 맹자는 그 까닭을 怨慕(원모), 곧 부모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서러움과 그럼에도 끊을 수 없는 사모함에서 찾는다. 이 장은 효를 단순한 순종이나 감정의 절제로 설명하지 않고, 상처받아도 끝내 부모를 향해 돌아가는 마음의 깊이로 설명한다.

장 전체의 흐름은 매우 정교하다. 첫 절에서 怨慕(원모)라는 핵심 개념이 제시되고, 둘째 절에서는 이것이 부모를 탓하는 원망이 아니라 효자의 마음이 겪는 절박한 아픔임이 설명된다. 셋째와 넷째 절은 (요)가 순에게 천하와 지위를 맡기려 할 만큼 모든 것을 주었어도, 부모와 화목하지 못한 근심만은 풀 수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효의 무게를 더 크게 부각한다. 마지막 다섯째 절에서 맹자는 인간이 나이가 들수록 사모의 대상이 바뀌어 가지만, 大孝(대효)란 끝내 평생 부모를 사모하는 데 있다고 결론짓는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순(舜)의 효심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본문으로 읽는다. 여기서 (원)은 부모를 거슬러 미워하는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부모 뜻에 맞지 못함을 슬퍼하는 마음에 가깝다. 또한 如窮人無所歸(여궁인무소귀)는 세상 모든 영예를 얻고도 부모 곁에 마음 둘 곳이 없었던 순의 처지를 극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으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을 효의 본질을 드러내는 대목으로 본다. 효는 단지 부모의 명령을 따르는 외적 행위가 아니라, 부모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평생 꺼지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독법에서 大孝終身慕父母(대효종신모부모)는 도덕적 의무를 넘어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정을 붙드는 말이 된다.

만장상 첫머리에 이 장이 놓인 이유도 분명하다. 만장(萬章)은 순과 요(堯)와 제위 계승 문제를 여러 차례 묻는데, 맹자는 그 모든 역사와 정치의 바탕에 먼저 효의 깊이를 놓는다. 순이 천하를 얻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묻는다면, 맹자의 대답은 능력이나 업적보다 먼저 終身慕父母(종신모부모)의 마음이었다.

1절 — 만장이문왈순이(萬章이問曰舜이) — 순이 하늘에 목놓아 운 까닭

원문

萬章이問曰舜이往于田하사號泣于旻天하시니何爲其號泣也잇고孟子曰怨慕也시니라

국역

만장(萬章)이 묻기를, 순(舜)이 밭에 나가 하늘을 향해 목놓아 울었다는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울었느냐고 하자, 맹자(孟子)는 그것이 부모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서러움과, 그럼에도 끊지 못하는 사모함 때문이라고 답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怨慕(원모)를 부모를 거슬러 원망하는 뜻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효자가 부모의 사랑을 얻지 못할 때 느끼는 깊은 상심과 그리움이 함께 터져 나온 상태로 읽는다. 따라서 순(舜)의 울음은 반항의 울음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해도 사랑을 거둘 수 없는 효자의 울음이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효의 내면성으로 읽는다. 겉으로는 밭을 갈고 묵묵히 자식의 직분을 다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부모와의 관계가 풀리지 않는 아픔이 계속 타오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號泣于旻天(호읍우민천)은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라, 효심이 너무 깊어 하늘에까지 호소하는 장면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가장 성실한 사람도 인정받지 못할 때 깊은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책임을 다하는 사람일수록 평가와 신뢰의 결핍을 더 크게 겪을 수 있으며, 그 아픔은 겉으로 보이는 성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공동체는 누군가의 충실함을 당연한 것으로 소비하지 말고, 그 마음이 어디에서 상처받는지 살펴야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장면은 익숙하다. 사랑받고 싶은 대상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는 경험은, 미움보다 더 깊은 서러움으로 남는다. 맹자는 바로 그 자리에서 효를 본다. 상처를 받아도 마음의 방향이 부모를 향해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순(舜)의 怨慕(원모)다.

2절 — 부모애지(父母愛之어시든) — 효자의 마음에는 이런 서러움이 있다

원문

萬章이曰父母愛之어시든喜而不忘하고父母惡之어시든勞而不怨이니然則舜은怨乎잇가曰長息이問於公明高曰舜이往于田則吾旣得聞命矣어니와號泣于旻天과于父母則吾不知也로이다公明高曰是는非爾所知也라하니夫公明高는以孝子之心이爲不若是恝이라我는竭力耕田하여共爲子職而已矣니父母之不我愛는於我何哉오하니라

국역

만장(萬章)은 부모가 사랑하면 기뻐하고 잊지 말며, 부모가 미워하더라도 괴로울 뿐 원망하지 않는 것이 효라면 순(舜)의 마음을 어찌 원망이라 할 수 있느냐고 다시 묻는다. 이에 맹자(孟子)는 장식(長息)이 공명고(公明高)에게 이 일을 물었을 때, 공명고가 효자의 마음이란 “나는 힘을 다해 밭을 갈며 자식 된 직분을 다했을 뿐인데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내게 무슨 허물이 있어서인가” 하고 아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원)의 뜻을 바로잡는 문답으로 본다. 효자가 느끼는 서러움은 부모를 나무라는 원망이 아니라, 자기에게 부족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아프게 돌아보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공명고(公明高)의 설명은 효심이 감정을 억누르는 차가움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자책과 사모를 낳는다는 점을 드러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면을 효자의 마음이 지닌 미세한 결을 분석하는 대목으로 읽는다. 부모에게 미움받는 상황에서도 겉으로는 직분을 다하고, 안으로는 그 관계가 풀리지 않는 까닭을 자기 안에서 찾는 마음이야말로 효의 극치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효를 단순 복종보다 더 깊은 자기 성찰과 정(情)의 문제로 이해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가장 헌신적인 구성원일수록 인정받지 못할 때 먼저 조직을 탓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의 침묵은 무감각이 아니라 더 깊은 상처일 수 있다. 그래서 책임 있는 자리는 겉으로 불평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경험 앞에서 사람은 두 갈래로 갈린다. 분노로 관계를 끊어 버리거나, 스스로를 지나치게 탓하며 더 아파한다. 맹자는 순(舜)의 경우를 통해, 효란 단순히 감정을 눌러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 속에서도 부모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는 것임을 보여 준다.

3절 — 제사기자구남이녀(帝使其子九男二女로) — 천하를 얻고도 돌아갈 곳 없던 순

원문

帝使其子九男二女로百官牛羊倉廩을備하여以事舜於畎畝之中하시니天下之士多就之者어늘帝將胥天下而遷之焉이러시니爲不順於父母라如窮人無所歸러시다

국역

요(堯) 임금은 자기 자식 아홉 아들과 두 딸, 온갖 관원과 재산을 갖추어 순(舜)을 시골 밭 가운데서 섬기게 하였고, 천하의 선비들 또한 많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장차 천하의 마음을 살펴 제위를 순에게 넘기려 하였지만, 순은 부모와 뜻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궁한 사람이 돌아갈 곳이 없는 것처럼 여겼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순(舜)의 효심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는 대조로 본다. 천하의 영예와 권세가 이미 순에게 기울었는데도, 부모와 화목하지 못한 한 가지 근심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의지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如窮人無所歸(여궁인무소귀)는 외적 성취와 내적 결핍의 간극을 압축하는 비유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인간 욕망의 질서와 효의 우선순위를 보여 주는 장면으로 읽는다. 사람은 보통 부귀와 명예를 얻으면 만족할 법하지만, 순(舜)에게는 부모와의 온전한 관계가 그 모든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효를 사회적 성공보다 앞서는 존재의 중심 축으로 놓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최고 수준의 보상과 지위도 어떤 근본적 결핍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성과, 명예, 자원, 영향력을 다 얻어도 가장 가까운 관계와 존재의 뿌리가 흔들리면 사람은 깊은 공허를 느낄 수 있다. 공동체가 사람을 이해하려면 외적 성공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더 근본적인 결핍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대목은 뚜렷하다. 우리는 흔히 더 큰 성취를 이루면 오래된 상처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순(舜)의 이야기는 성공이 상처를 가려 줄 수는 있어도, 사랑받지 못한 마음의 자리까지 완전히 채워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4절 — 천하지사열지(天下之士悅之는) — 사람의 모든 욕망도 부모의 화목을 대신하지 못한다

원문

天下之士悅之는人之所欲也어늘而不足以解憂하시며好色은人之所欲이어늘妻帝之二女하시되而不足以解憂하시며富는人之所欲이어늘富有天下하시되而不足以解憂하시며貴는人之所欲이어늘貴爲天子하시되而不足以解憂하시니人悅之와好色과富貴에無足以解憂者오惟順於父母라야可以解憂러시다

국역

천하의 선비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일도,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는 일도, 천하를 소유하는 부도, 천자가 되는 귀함도 모두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순(舜)에게는 그 어느 것도 근심을 풀어 주지 못했다. 오직 부모와 원만하게 된 뒤에야 비로소 그 근심이 풀릴 수 있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네 가지 인간 욕망의 총목록처럼 읽는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 미색, 부, 귀함은 모두 세상 사람이 좇는 것이지만, 효자의 마음에는 그것들이 가장 큰 근심을 풀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순(舜)의 효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인간 욕망 전체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기준임을 강조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서 욕망과 도리의 위계를 읽는다. 부귀와 명예 자체가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부모와의 근본 관계보다 앞설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독법에서 解憂(해우)의 주체는 바깥 환경이 아니라, 도리에 맞는 관계 회복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를 보상과 인정만으로 설명하려는 태도의 한계를 드러낸다. 지위와 연봉, 명예가 중요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더 근원적인 관계와 정체성의 문제가 훨씬 크다. 좋은 리더는 구성원의 성과 동기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끝내 놓지 못하는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 볼 줄 알아야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절은 욕망의 순서를 다시 묻게 한다. 사람들의 인정, 사랑, 돈, 지위는 모두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마음의 가장 깊은 근심을 풀어 주지는 못할 수 있다. 맹자는 순(舜)을 통해 무엇이 내 삶의 최종적인 위안이 되는지를 차분히 돌아보게 만든다.

5절 — 인이소즉모부모(人이少則慕父母하다가) — 큰 효자는 평생 부모를 사모한다

원문

人이少則慕父母하다가知好色則慕少艾하고有妻子則慕妻子하고仕則慕君하고不得於君則熱中이니大孝는終身慕父母하나니五十而慕者를予於大舜에見之矣로라

국역

사람은 어릴 때는 부모를 사모하다가 자라면서 젊고 아름다운 사람을 사모하고, 처자가 생기면 처자를, 벼슬하면 임금을 더 마음에 두기 쉽다. 그러나 큰 효자는 평생 부모를 사모하니, 오십이 되어서도 부모를 사모한 사람을 나는 순(舜)에게서 보았다고 맹자(孟子)는 말한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마지막 절을 인간 욕망의 이동을 설명한 뒤, 순(舜)을 통해 효의 절정을 드러내는 결론으로 본다. 보통 사람은 성장하면서 사모의 중심이 부모에게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 가지만, 大孝(대효)는 그 변화 속에서도 부모를 향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五十而慕(오십이모)는 그 마음이 일시적 감상이 아니라 평생의 본심임을 증명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終身慕父母(종신모부모)를 효의 궁극적 정의로 읽는다. 효는 어릴 때의 의존적 애착이 아니라, 삶의 모든 관계와 욕망을 거친 뒤에도 부모를 향한 본래의 정을 잃지 않는 성숙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순(舜)은 나이가 들어도 어린아이 같은 의존에 머문 인물이 아니라, 가장 완성된 인간으로서 끝내 부모를 사모한 존재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사람이 성장할수록 충성의 대상과 욕망의 중심이 계속 바뀐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한다. 그래서 더 높은 자리에 갈수록 처음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맹자가 말한 大孝(대효)는 성공과 역할의 변화 속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관계를 잊지 않는 성숙의 모델로 읽을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결론은 크게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 생각을 덜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는 있지만, 맹자는 그 자연스러움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한다. 삶의 관심이 얼마나 넓어지든, 부모를 향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 관계의 무게를 끝내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바로 大孝終身(대효종신)의 길에 가깝다.


만장상 1장은 효를 단지 부모에게 순종하는 규범으로 말하지 않는다. 맹자는 순(舜)의 울음과 서러움, 그리고 천하의 부귀를 얻고도 풀리지 않았던 근심을 통해, 효가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자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끝내 부모를 사모하는 마음, 그것이 순(舜)의 위대함이자 이 장의 핵심이다.

한대 훈고 전통은 怨慕(원모)를 효자의 서러운 사모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終身慕父母(종신모부모)를 성숙한 인간의 가장 깊은 본심으로 읽는다. 두 독법은 모두 효를 억지 순응이 아니라, 상처와 욕망을 지나도 꺼지지 않는 정(情)의 지속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만난다.

오늘의 눈으로 읽어도 이 장은 여전히 묵직하다. 사람은 커 갈수록 사모하는 대상이 바뀌고, 더 큰 인정과 성공을 좇게 된다. 그러나 맹자는 가장 큰 효란 그 모든 변화를 지나서도 부모를 향한 마음을 잃지 않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大孝終身(대효종신)은 고전의 미덕을 넘어, 인간이 무엇을 끝까지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말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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