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하(萬章下) 1장은 네 성인 伯夷(백이)·伊尹(이윤)·柳下惠(유하혜)·孔子(공자)를 한 자리에 세워, 성인의 서로 다른 덕목과 공자의 독보적 위치를 설명하는 장이다. 맹자는 먼저 백이의 맑음, 이윤의 자임, 유하혜의 조화로움을 각각 길게 묘사한 뒤, 공자가 때에 맞게 처신한 성인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공자를 集大成(집대성)이라 부르며, 그 뜻을 金聲玉振(금성옥진)이라는 음악의 비유로 풀어 낸다.
이 장의 긴장은 비교와 종합에 있다. 백이는 끝까지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청절의 극점을 보여 주고, 이윤은 천하를 자기 책임으로 떠맡는 적극성을 보여 준다. 유하혜는 사람과 세상을 품는 너그러움을 보여 주며, 공자는 그런 여러 성인의 덕을 때에 따라 두루 맞게 실현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곧 공자는 다른 성인을 부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장점들을 질서 있게 모아 완결하는 존재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성인의 여러 품격을 분별하는 본문으로 읽는다. 백이·이윤·유하혜는 각기 한 덕목을 빛나게 드러낸 성인이지만, 공자는 時(시)에 맞추어 나아가고 물러나고 머무르고 벼슬한 존재로서, 그 여러 덕의 큰 결을 하나로 모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金聲玉振(금성옥진)은 단지 찬미의 수사가 아니라, 시작과 끝이 모두 조리 있게 갖추어진 완결성을 뜻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을 성인의 도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지만, 공자에게서 가장 원만하게 종합된다고 읽는다. 특히 始條理(시조리)와 終條理(종조리)의 구분은 지혜로운 분별과 성인의 완성을 함께 가리키며, 공자는 단순히 재능이 많은 인물이 아니라 도의 시작과 끝을 모두 갖춘 존재로 이해된다.
만장하 첫 장에 이 대목이 놓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만장(萬章)이 역사와 인물을 묻는 자리에서 맹자는 단지 고사만 나열하지 않고, 성인을 어떻게 분류하고 어떤 기준으로 최고를 말할 수 있는지까지 보여 준다. 이 장은 결국 위대한 사람의 한 요소만 볼 것인가, 아니면 여러 덕목을 때에 맞게 완성하는 큰 구조를 볼 것인가를 묻는 본문이다.
1절 — 맹자왈백이는(孟子曰伯夷는) — 백이는 맑음으로 사람을 일으킨 성인이다
원문
孟子曰伯夷는目不視惡色하며耳不聽惡聲하고非其君不事하며非其民不使하여治則進하고亂則退하여橫政之所出과橫民之所止에不忍居也하며思與鄕人處하되如以朝衣朝冠으로坐於塗炭也러니當紂之時하여居北海之濱하여以待天下之淸也하니故로聞伯夷之風者는頑夫廉하며懦夫有立志하니라
국역
맹자(孟子)는 백이(伯夷)를 두고, 악한 모습과 소리를 가까이하지 않고 올바르지 않은 임금은 섬기지 않고 올바르지 않은 백성은 부리지 않았으며, 세상이 어지러우면 물러나 천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린 인물이라 설명한다. 그래서 그의 풍도를 들은 사람들은 완악한 자도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도 뜻을 세우게 되었다고 말한다.
축자 풀이
目不視惡色(목불시악색)은 눈으로 악한 모습을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非其君不事(비기군불사)는 마땅한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治則進亂則退(치즉진난즉퇴)는 세상이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물러난다는 뜻이다.以待天下之淸(이대천하지청)은 천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는 말이다.頑夫廉懦夫有立志(완부렴나부유입지)는 백이의 풍도가 사람의 기질까지 바꾼다는 뜻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백이(伯夷)를 淸(청)의 극점으로 본다. 부정한 정치와 타협하지 않고, 자기 몸과 마음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태도가 백이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백이의 영향력은 직접 세상을 다스린 데 있지 않고, 그의 풍도가 타인의 마음을 곧게 세우는 데 있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백이의 청결함을 도덕적 절개의 상징으로 읽는다. 그러나 이 청은 세상을 등진 냉소가 아니라, 더러운 질서에 스스로를 맡기지 않겠다는 엄정한 자기 보존이다. 그래서 백이의 淸(청)은 소극적 회피가 아니라 도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 분별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백이는 기준이 무너지면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물러나는 쪽을 택하는 사람의 상징으로 읽힌다. 모든 리더가 이런 방식으로 행동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무엇과는 타협하지 않을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조직의 기준을 세운다. 원칙 없는 유연성은 결국 기회주의로 흐르기 쉽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백이의 태도는 날카롭다. 사람은 누구나 적당히 눈감고 귀 막으며 편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그런 편안함이 자신을 조금씩 무너뜨린다. 맹자는 백이(伯夷)를 통해 지키기 위해 물러나는 용기와, 그 청결함이 주변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힘을 보여 준다.
2절 — 이윤이 왈하사비군이며(伊尹이曰何事非君이며) — 이윤은 천하를 자기 책임으로 떠맡은 성인이다
원문
伊尹이曰何事非君이며何使非民이리오하여治亦進하며亂亦進하여曰天之生斯民也는使先知로覺後知하며使先覺으로覺後覺이시니予는天民之先覺者也로니予將以此道로覺此民也라하며思天下之民이匹夫匹婦有不與被堯舜之澤者어든若己推而內之溝中하니其自任以天下之重也니라
국역
이윤(伊尹)은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며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겠느냐고 하며, 세상이 다스려지든 어지럽든 천하를 위해 나아갔다. 그는 자신을 먼저 깨달은 자로 보고, 아직 요순(堯舜)의 혜택을 받지 못한 백성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것처럼 여길 만큼 천하의 무거운 책임을 스스로 짊어진 인물로 묘사된다.
축자 풀이
何事非君(하사비군)은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느냐는 뜻이다.治亦進亂亦進(치역진난역진)은 세상이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어지러워도 나아간다는 말이다.先知覺後知(선지각후지)는 먼저 아는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친다는 뜻이다.先覺覺後覺(선각각후각)은 먼저 깨달은 자가 뒤에 깨닫는 자를 깨우친다는 뜻이다.自任以天下之重(자임이천하지중)은 천하의 무거운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다는 말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윤(伊尹)을 任(임)의 성인으로 읽는다. 여기서 任(임)은 벼슬을 맡는다는 뜻을 넘어, 천하의 질서를 자기 책임으로 삼는 적극적 자임을 뜻한다. 따라서 이윤의 나아감은 권력욕이 아니라, 요순의 도를 백성에게 미치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윤의 말을 성인의 공공성으로 읽는다. 백성이 아직 깨우침을 얻지 못했다면 먼저 깨달은 자가 마땅히 나서야 하며, 성인의 지식은 자기 수양에만 머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이윤은 세상을 짊어지는 실천의 상징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윤의 태도는 문제를 보고도 “내 일이 아니다”라고 물러서지 않는 책임의 모델로 읽힌다. 조직이 흔들릴수록 누군가는 더 어려운 자리로 들어가야 하고, 그때 진짜 책임자는 좋은 환경만 골라 일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자임은 권한 욕망과 구별되어야 하며, 공동체 전체를 향한 부담으로 드러나야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윤의 자세는 무겁다. 아는 사람이 모른 척할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기 쉽다. 맹자는 먼저 본 사람, 먼저 깨달은 사람이 그만큼 더 큰 책임을 지게 된다고 말하며, 성숙이란 결국 타인의 삶까지 마음에 품는 능력임을 보여 준다.
3절 — 유하혜는 불수오군하며(柳下惠는不羞汚君하며) — 유하혜는 더러움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성인이다
원문
柳下惠는不羞汚君하며不辭小官하며進不隱賢하여必以其道하며遺佚而不怨하며阨窮而不憫하며與鄕人處하되由由然不忍去也하여爾爲爾오我爲我니雖袒裼裸裎於我側인들爾焉能浼我哉리오하니故로聞柳下惠之風者는鄙夫寬하며薄夫敦하니라
국역
유하혜(柳下惠)는 더러운 임금 아래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작은 벼슬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나아가서는 자기 도리를 숨기지 않았다. 버려져도 원망하지 않고 궁해도 걱정하지 않았으며, 속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 때문에 자신이 더럽혀진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풍도를 들은 사람들은 속이 좁던 자는 너그러워지고 각박하던 자는 후덕해졌다고 맹자(孟子)는 말한다.
축자 풀이
不羞汚君(불수오군)은 더러운 임금을 섬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不辭小官(불사소관)은 작은 벼슬을 사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遺佚而不怨(유일이불원)은 버려져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由由然不忍去也(유유연불인거야)는 느긋하고 너그러워 차마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다.鄙夫寬薄夫敦(비부관박부돈)은 그의 풍도가 사람을 너그럽고 후덕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유하혜(柳下惠)를 和(화)의 성인으로 읽는다. 그는 더러운 환경 속에서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 작은 자리와 속된 사람들을 견디며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和(화)는 원칙 없는 타협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면서도 사람을 품는 넓은 도량을 뜻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유하혜의 조화를 덕의 유연성으로 읽는다. 백이처럼 물러나지 않고도 자기 본심을 보존할 수 있으며, 타인의 탁함이 곧바로 나를 더럽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하혜의 和(화)는 혼탁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내적 안정성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유하혜의 태도는 완벽하지 않은 조직 안에서도 기본을 잃지 않고 일하는 사람의 상징으로 읽힌다. 언제나 이상적인 환경만 기다릴 수는 없고, 작은 자리에서도 자기 도리를 지키며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할 때가 많다. 중요한 것은 환경의 혼탁함에 핑계 대지 않고 자기 기준을 유지하는 힘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덕목은 필요하다. 주변 사람이 거칠다고 나까지 거칠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고, 속된 분위기 속에서도 나의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맹자는 유하혜(柳下惠)를 통해, 사람을 떠나기보다 품되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는 넓은 성숙을 보여 준다.
4절 — 공자지거제에(孔子之去齊에) — 공자는 때에 맞게 빠르고 더디게 움직인 성인이다
원문
孔子之去齊에接淅而行하시고去魯에曰遲遲라吾行也여하시니去父母國之道也라可以速而速하며可以久而久하며可以處而處하며可以仕而仕는孔子也시니라
국역
공자(孔子)는 제(齊)를 떠날 때는 쌀을 건져 들고 곧장 떠날 만큼 빨랐고, 노(魯)를 떠날 때는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도리라 하며 더디게 걸음을 옮겼다. 맹자(孟子)는 바로 이런 점, 빨라야 할 때 빠르고 머물러야 할 때 머무르며, 숨어야 할 때 숨고 벼슬해야 할 때 벼슬하는 것이 공자의 특별함이라고 말한다.
축자 풀이
接淅而行(접석이행)은 쌀을 일다 말고 곧장 떠날 만큼 서둘러 떠난다는 뜻이다.遲遲吾行也(지지오행야)는 더디고 더디게 내 걸음을 옮긴다는 말이다.去父母國之道也(거부모국지도야)는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도리라는 뜻이다.可以速而速(가이속이속)은 빨라야 할 때 빠르다는 말이다.可以久而久(가이구이구),可以處而處(가이처이처),可以仕而仕(가이사이사)는 때에 맞는 체류, 은거, 출사를 뜻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공자(孔子)의 時(시)를 드러내는 핵심 사례로 본다. 제(齊)를 떠날 때는 신속함이 맞았고, 노(魯)를 떠날 때는 모국을 떠나는 정리와 애도가 맞았다는 것이다. 공자의 위대함은 고정된 한 태도를 밀어붙이는 데 있지 않고, 상황에 맞는 도리를 정확히 실현하는 데 있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時(시)를 성인의 가장 높은 분별로 읽는다. 원칙은 하나지만, 그 원칙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방식은 때와 자리에 따라 달라져야 하며, 공자는 그 변통을 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낸 존재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공자의 時(시)는 기회주의가 아니라, 도의 살아 있는 적용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공자의 태도는 같은 원칙을 갖고도 상황마다 다른 실행을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어떤 문제는 즉시 끊어야 하고, 어떤 관계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정리해야 한다. 늘 빠른 사람이 유능한 것도 아니고, 늘 버티는 사람이 충실한 것도 아니다. 핵심은 언제 무엇이 맞는지 아는 판단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절은 유용하다. 어떤 때는 미련 없이 결단해야 하고, 어떤 때는 천천히 떠나는 예가 필요하다. 맹자는 공자(孔子)를 통해 원칙 있는 유연성, 그리고 상황에 맞는 속도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5절 — 맹자왈백이는(孟子曰伯夷는) — 네 성인의 덕목은 서로 다르다
원문
孟子曰伯夷는聖之淸者也오伊尹은聖之任者也오柳下惠는聖之和者也오孔子는聖之時者也시니라
국역
맹자(孟子)는 앞서 말한 네 인물을 한마디로 정리하며, 백이(伯夷)는 성인 가운데 맑은 분이고, 이윤(伊尹)은 맡아 짊어진 분이며, 유하혜(柳下惠)는 조화로운 분이고, 공자(孔子)는 때에 맞게 하신 분이라고 규정한다.
축자 풀이
聖之淸者(성지청자)는 성인 가운데 맑음을 대표하는 이라는 뜻이다.聖之任者(성지임자)는 성인 가운데 책임과 자임을 대표하는 이라는 말이다.聖之和者(성지화자)는 성인 가운데 조화로움을 대표하는 이라는 뜻이다.聖之時者(성지시자)는 성인 가운데 때에 맞음을 대표하는 이라는 말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앞선 네 인물의 풍격을 개념적으로 요약하는 결절점으로 읽는다. 각 인물은 모두 성인이지만, 드러나는 덕목의 결이 다르며 그 차이를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분은 우열만을 가르는 단순 비교가 아니라, 성인의 여러 양상을 분류하는 작업이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淸(청)·任(임)·和(화)·時(시)를 성인의 도가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각기 다른 양태로 읽는다. 특히 공자의 時(시)는 다른 세 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상황에 맞게 포괄하는 가장 높은 차원의 분별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훌륭함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어떤 이는 원칙으로, 어떤 이는 책임감으로, 어떤 이는 조화 능력으로 빛난다. 그래서 좋은 팀은 한 가지 유형만 숭배하기보다 서로 다른 강점을 읽어 낼 줄 알아야 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사람의 성숙을 한 기준만으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 준다. 단호한 사람이 있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있고, 부드럽게 품는 사람이 있다. 맹자는 이런 차이를 인정한 뒤, 그 위에서 더 큰 종합의 가능성을 말하려 한다.
6절 — 공자지위집대성이시니(孔子之謂集大成이시니) — 공자는 여러 덕을 모아 완성한 존재다
원문
孔子之謂集大成이시니集大成也者는金聲而玉振之也라金聲也者는始條理也오玉振之也者는終條理也니始條理者는智之事也오終條理者는聖之事也니라
국역
그래서 공자(孔子)를 集大成(집대성)이라 부르는데, 이는 음악에서 쇠종으로 시작을 열고 옥경으로 마무리를 거두는 것과 같다고 맹자(孟子)는 설명한다. 시작이 조리 있는 것은 지혜의 일이고, 마침이 조리 있는 것은 성인의 일이라는 뜻이다.
축자 풀이
集大成(집대성)은 큰 것들을 모아 완성한다는 뜻이다.金聲玉振(금성옥진)은 쇠종 소리로 시작하고 옥경 소리로 마무리한다는 음악 비유다.始條理(시조리)는 시작부터 조리가 서 있다는 뜻이다.終條理(종조리)는 마침까지 조리가 완성된다는 뜻이다.智之事(지지사),聖之事(성지사)는 지혜의 기능과 성인의 완결을 각각 가리킨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集大成(집대성)을 공자(孔子)가 여러 성인의 장점을 통합해 완전한 조리를 이룬 상태로 읽는다. 金聲玉振(금성옥진)은 음악적 수사이지만, 실제로는 시작과 끝이 모두 갖추어진 질서의 비유다. 이 독법에서 공자는 각 덕목을 모아 흐트러짐 없이 완성한 존재가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始條理(시조리)와 終條理(종조리)의 구분에 특별한 무게를 둔다. 분별해서 시작하는 지혜만으로는 아직 충분치 않고, 끝까지 완결하는 성인의 경지가 있어야 진정한 집대성이 된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 두 층위를 함께 갖춘 존재로 해석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集大成(집대성)은 단순히 재능이 많은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시작을 잘 여는 사람은 많지만 끝을 책임 있게 마무리하는 사람은 드물고, 반대로 마무리는 해도 전체 구조를 읽으며 시작하는 사람도 드물다. 공자의 비유는 진짜 완성형 리더가 무엇인지, 곧 시작과 끝을 모두 조리 있게 붙드는 사람임을 말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절은 큰 통찰을 준다. 배움은 많이 모았지만 삶이 흐트러질 수 있고, 결심은 좋았지만 마무리가 없을 수 있다. 金聲玉振(금성옥진)은 결국 지식의 양보다 삶의 완결성을 묻는 말이다.
7절 — 지를 비즉교야오(智를譬則巧也오) — 과녁에 닿는 힘과 맞히는 완성은 다르다
원문
智를譬則巧也오聖을譬則力也니由射於百步之外也하니其至는爾力也어니와其中은非爾力也니라
국역
맹자(孟子)는 지혜를 기교에, 성을 힘에 비유하며, 백 보 밖에서 활을 쏠 때 화살이 과녁까지 도달하는 것은 힘이지만 과녁 한가운데에 맞히는 일은 단순한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공자의 集大成(집대성)은 바로 그 정교한 맞음과 완결의 차원에 놓여 있다.
축자 풀이
智譬則巧也(지비즉교야)는 지혜를 비유하면 기교라는 뜻이다.聖譬則力也(성비즉력야)는 성을 비유하면 힘이라는 뜻이다.射於百步之外(사어백보지외)는 백 보 밖에서 활을 쏜다는 뜻이다.其至爾力也(기지이력야)는 화살이 도달하는 것은 네 힘이라는 말이다.其中非爾力也(기중비이력야)는 과녁에 정확히 맞는 것은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마지막 절을 智(지)와 聖(성)의 차이를 비유로 설명하는 결론으로 읽는다. 단순한 도달과 참된 명중은 다르며, 힘과 기교만으로는 완전한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활쏘기 비유는 공자의 집대성이 왜 단순한 능력의 총합이 아닌지를 밝혀 준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비유를 지적 분별과 도덕적 완성의 차이로 읽는다. 아는 것과 끝내 이루는 것은 다르고, 도달하는 것과 정확히 맞히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성인의 경지는 기술이나 총명함을 넘어, 도가 완전히 몸에 배어 자연스레 맞아떨어지는 상태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성과를 내는 역량과 정확하게 옳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완성도가 다르다는 점을 말한다. 속도와 추진력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방향과 정밀함이 보장되지 않는다. 조직이 커질수록 단순히 닿는 것보다 제대로 맞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비유는 선명하다. 열심히만 산다고 해서 늘 중심을 맞히는 것은 아니다. 맹자는 힘과 재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위에 놓이는 더 높은 완성의 차원을 말한다. 金聲玉振(금성옥진)의 마침표는 결국 여기서 찍힌다.
만장하 1장은 성인을 비교하는 장이면서 동시에 성인의 완성을 설명하는 장이다. 백이(伯夷)의 청결함, 이윤(伊尹)의 책임, 유하혜(柳下惠)의 조화는 각각 빛나는 덕목이지만, 공자(孔子)는 그 덕목들을 때에 맞게 두루 실현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서 맹자는 공자를 聖之時者(성지시자)라고 부르고, 더 나아가 集大成(집대성)이라 부른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여러 성인의 장점을 모아 질서 있게 완성한 존재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시작과 끝의 조리를 모두 갖춘 도의 완결로 읽는다. 두 독법은 모두 金聲玉振(금성옥진)이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공자의 성인이 왜 가장 원만한 종합인지 설명하는 핵심 비유라는 점에서 만난다.
오늘의 눈으로 보아도 이 장은 깊다. 한 가지 강점만으로는 큰 사람이 되기 어렵고, 여러 덕목을 상황에 맞게 엮어 낼 때 비로소 완성도가 생긴다. 맹자가 공자를 통해 보여 주는 것은 바로 그런 종합의 힘, 곧 시작도 좋고 끝도 좋은 삶의 구조다.
등장 인물
- 맹자: 전국시대 유가의 대표 사상가. 이 장에서 여러 성인의 덕목을 비교하고 공자의
集大成(집대성)을 설명한다. - 백이: 부정함과 타협하지 않는 청절의 성인으로,
聖之淸者(성지청자)로 불린다. - 이윤: 천하의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자임의 성인으로,
聖之任者(성지임자)로 불린다. - 유하혜: 사람과 세상을 품되 자신을 잃지 않는 조화의 성인으로,
聖之和者(성지화자)로 불린다. - 공자: 때에 맞게 나아가고 물러나며 여러 성인의 장점을 완성한 존재로,
聖之時者(성지시자)이자集大成(집대성)으로 규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