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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상으로

맹자 만장상 2장 — 불고이취(不告而娶) — 순이 부모에게 아뢰지 않고 장가든 까닭과 인지대륜(人之大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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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만장상 2장 불고이취(不告而娶) 대표 이미지

만장상 2장은 효와 혼인, 權道(권도)와 誠信(성신)이 한데 얽힌 난제를 다룬다. 표면의 질문은 단순하다. (시)에서는 혼인할 때 반드시 부모에게 아뢰어야 한다고 했는데, (순)은 왜 不告而娶(불고이취)했는가. 그러나 맹자의 답은 단순한 예외 조항이 아니라, 인간의 큰 윤리와 구체적 상황이 충돌할 때 무엇을 먼저 지켜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장의 핵심은 男女居室(남녀거실)이 人之大倫(인지대륜)이라는 판단에 있다. 순의 부모는 아뢰더라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그렇게 되면 인간의 큰 윤리가 막히게 된다. 맹자는 이 경우를 무조건적 불효가 아니라, 윤리를 보존하기 위한 權道(권도)의 판단으로 읽는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대목을 성왕 순의 특별한 처지에 대한 해명으로 본다.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순의 부모가 이미 常道(상도)를 무너뜨리고 있었기에, 형식적 고지가 오히려 큰 윤리를 해칠 수 있었다고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도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권도가 상도를 폐하는 일이 아니라, 상도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택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 이 장은 혼인의 문제에서 멈추지 않는다. 순이 상의 악의를 알면서도 왜 진심으로 받아들였는가, 왜 거짓으로 기쁜 척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까지 논의가 이어진다. 그래서 만장상 2장은 예의 규범만이 아니라, 성인의 마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함께 드러낸다.

1절 — 만장문왈시운(萬章問曰詩云) —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장가든 까닭

원문

萬章이問曰詩云娶妻如之何오必告父母라하니信斯言也인댄宜莫如舜이어시니舜之不告而娶는何也잇고孟子曰告則不得娶하시리니男女居室은人之大倫也니如告則廢人之大倫하여以懟父母라是以不告也시니라

국역

만장이 물었다. “≪시경≫에 ‘장가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반드시 부모에게 아뢰야 한다네.’ 하였으니, 진실로 이 말대로라면 순(舜)처럼 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순이 부모에게 아뢰지도 않고 장가를 간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에게 아뢰었다면 장가들 수 없었을 것이다. 남녀가 결혼하여 한집에 사는 것은 인간의 큰 윤리이니, 만일 부모에게 아뢰었다면 인간의 큰 윤리를 그르치게 되었을 것이고, 그 결과 부모를 원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아뢰지 않으신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상례와 변통의 문제로 읽는다. 평상시라면 必告父母(필고부모)가 당연하지만, 순의 부모는 그의 혼인을 가로막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형식대로 고하는 것이 오히려 人之大倫(인지대륜)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不告而娶(불고이취)는 예를 버린 행동이 아니라, 더 큰 윤리를 보전하기 위한 예외적 판단이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를 권도의 대표 사례로 읽는다. 권도는 상도와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도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취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순의 선택은 개인 욕망의 정당화가 아니라, 인륜의 근본을 잃지 않으려는 고통스러운 결단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는 규정과 목적이 충돌할 때 무엇이 진짜 원칙인지를 묻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다. 절차 자체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만, 절차 때문에 공동체의 핵심 가치가 무너진다면 지도자는 형식과 본질을 다시 저울질해야 한다. 맹자는 그 판단을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윤리를 지키는지 엄격히 따져 보라고 요구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문제는 낯설지 않다. 가족과 관계, 제도와 현실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 무엇을 따르는 것이 진짜 옳은지 판단하기 어렵다. 不告而娶(불고이취)는 무조건 반항하라는 말이 아니라, 형식이 본질을 꺾는 순간에 어떤 책임 있는 변통이 가능한지 묻는 사례로 읽을 수 있다.

2절 — 제지처순이불고(帝之妻舜而不告) — 요 임금도 알렸다면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문

萬章이曰舜之不告而娶則吾旣得聞命矣어니와帝之妻舜而不告는何也잇고曰帝亦知告焉則不得妻也시니라

국역

만장이 말하였다. “순이 아뢰지 않고 장가를 간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었습니다만, 요 임금께서 순에게 딸을 시집보내면서 순의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요 임금 역시, 그의 부모에게 알리면 딸을 시집보낼 수 없을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첫 절의 논리를 보강하는 대목으로 본다. 순만 임의로 예를 어긴 것이 아니라, 요 임금 역시 같은 사정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부모 고지를 생략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 전체가 개인의 편의가 아니라, 모두가 현실의 막힘을 인식한 가운데 이루어진 권도적 조처로 읽힌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부분에서 성왕의 판단 기준을 본다. 요 임금조차 형식만을 붙들지 않고 인륜의 성립을 우선했다는 점에서, 권도는 사사로운 요령이 아니라 도덕적 통찰의 실천으로 이해된다. 이 독법은 권도가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임의성으로 흐르지 않도록, 그 판단 주체의 덕성과 분별을 함께 요구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으로 옮기면, 한 사람만 예외를 택한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여러 주체가 같은 판단을 공유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외가 정당하려면 개인의 편의가 아니라, 구조적 막힘과 공동의 목적이 분명히 확인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도는 곧 특혜나 편법으로 변질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내가 옳다고 믿는 선택이 정말 권도인지, 아니면 단순한 자기합리화인지는 주변의 책임 있는 타자와 어떻게 판단을 나누는지에서 드러난다. 요 임금의 참여는 이 결정이 고립된 충동이 아니라 숙고된 판단이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3절 — 부모사순(父母使舜) — 순은 상의 악의를 알면서도 함께 근심하고 기뻐했다

원문

萬章이曰父母使舜으로完廩捐階하고瞽瞍焚廩하며使浚井하여出커시늘從而揜之하고象이曰謨蓋都君은咸我績이니牛羊父母오倉廩父母오干戈朕이오琴朕이오弤朕이오二嫂란使治朕棲호리라하고象이往入舜宮한대舜이在牀琴이어시늘象이曰鬱陶思君爾라하고忸怩한대舜이曰惟玆臣庶를汝其于予治라하시니不識케이다舜이不知象之將殺己與잇가曰奚而不知也시리오象憂亦憂하시고象喜亦喜하시니라

국역

만장이 말하였다.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순(舜)의 부모가 순에게 곳간을 수리하게 하였는데, 순이 곳간 위로 올라가자, 사다리를 치운 다음 고수(순의 아버지)가 곳간에 불을 지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순에게 우물을 파게 하고는, 순이 나올 때쯤 흙을 덮어 우물을 메워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상(象, 순의 이복동생)은 순이 죽은 줄 알고 말하기를, ‘도군(都君, 순의 별칭)을 파묻을 꾀를 낸 것은 모두 나의 공로이다. 소와 양은 부모님께 드리고, 곳간도 부모님께 드리고, 방패와 창은 내가 갖고, 금(琴)은 내가 갖고, 활은 내가 갖고, 두 형수는 나의 잠자리를 시중들게 하겠다.’ 하고는 상이 순의 집으로 들어갔는데, 순이 평상에 앉아 슬을 타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상이 ‘형님이 너무 생각나서 왔습니다.’ 하고 둘러대며 부끄러워하자, 순은 말하기를, ‘이 백관들을 내게 와서 네가 다스리라.’ 하였다고 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순은 상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몰랐겠는가마는, 상이 근심하면 자기도 근심하고, 상이 기뻐하면 자기도 기뻐했던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순의 효성과 인애의 극점으로 읽는다. 순은 상의 악의를 모른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형제의 도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리석은 무방비가 아니라, 악의 인식과 인륜의 지속이 동시에 성립한다는 점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부분을 성인의 마음이 사사로운 원한에 붙잡히지 않는 사례로 본다. 순은 사실 판단에서는 분명했지만, 정서와 관계에서는 사사로운 분노로 기울지 않았다. 이 독법에서 象憂亦憂(상우역우), 象喜亦喜(상희역희)는 무분별한 순진함이 아니라 인(仁)이 관계를 끝까지 붙드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아는 것과, 그 사람을 다루는 방식에서 곧바로 보복에 빠지지 않는 것은 다른 능력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순은 위험을 못 본 것이 아니라, 관계 전체를 사적인 감정 하나로 환원하지 않았다. 다만 이것은 아무 경계 없이 당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실 인식과 감정 통제를 함께 요구하는 높은 기준에 가깝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의 악의를 알아차렸을 때 곧장 같은 방식으로 되갚고 싶어질 때가 많다. 맹자는 순의 사례를 통해 상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마음을 원한 하나에 내주지 않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어려운 길이지만, 인간관계의 품격은 종종 바로 그 자리에서 갈린다.

4절 — 연즉순위희자여(然則舜僞喜者與) — 군자는 바른 도리의 모습으로는 속아도 거짓 길에는 잘 속지 않는다

원문

曰然則舜은僞喜者與잇가曰否라昔者에有饋生魚於鄭子産이어늘子産이使校人으로畜之池한대校人이烹之하고反命曰始舍之하니圉圉焉이러니少則洋洋焉하여攸然而逝하더이다子産이曰得其所哉인저得其所哉인저하여늘校人이出曰孰謂子産을智오予旣烹而食之하니曰得其所哉인저得其所哉인저코녀하니故로君子는可欺以其方이어니와難罔以非其道니彼以愛兄之道로來故로誠信而喜之시니奚僞焉이시리오

국역

만장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순은 거짓으로 기쁜 척 했던 것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옛날에 누가 정(鄭) 나라 자산(子産)에게 살아 있는 물고기를 선물하였는데, 자산이 그것을 연못 관리인에게 주면서 못에서 기르게 하였다. 그런데 연못 관리인이 그것을 삶아 먹고는 와서 보고하기를, ‘처음에 고기를 놓아주자 어릿어릿하더니, 조금 있다가는 팔팔해져서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하자, 자산은 ‘물고기가 이제 살 길을 찾았구나, 살 길을 찾았어.’ 하는 것이었다. 이에 연못 관리인이 나와서 말하기를, ‘누가 자산을 지혜롭다 하는 거지? 내가 이미 물고기를 삶아 먹어 버렸는데, 「물고기가 이제 살 길을 찾았구나, 살 길을 찾았어.」 하는 사람을 말이야.’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치에 닿는 방법(말)으로 속일 수는 있어도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속이기는 어려운 법이다. 저 상(象)이 형을 사랑하는 도리로써 찾아왔기에, 정말로 믿고 기뻐하신 것이지 어찌 거짓으로 기쁜 척 하였겠는가.”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자산의 물고기 일화를 군자의 신뢰 방식에 대한 비유로 읽는다. 군자는 사리에 맞는 모양과 말이 오면 그것을 먼저 믿고 받아들이지, 처음부터 악의만을 추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의 기쁨은 연극이 아니라, 愛兄之道(애형지도)의 형식으로 다가온 상의 태도를 성실하게 받아들인 진짜 반응으로 해석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에서 성신의 작동 방식을 본다. 군자는 억측으로 사람을 단죄하지 않기에 其方(기방)으로는 속을 수 있지만, 마음의 도리가 아닌 것으로 끝까지 오래 속지는 않는다고 본다. 이 독법에서 순의 기쁨은 무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의의 도리를 먼저 세우는 마음의 정직성에서 나온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타인을 의심으로만 대하면 빠르게 냉소에 빠지고, 반대로 아무 기준 없이 믿으면 쉽게 이용당한다. 맹자가 제시하는 군자의 태도는 그 중간이 아니다. 도리에 맞는 형식과 말이 오면 일단 성실하게 받되, 그것이 정말 도에 부합하는지는 결국 따져 본다는 더 까다로운 태도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의 사과나 접근을 받아들일 때, 완전히 닫힌 마음과 무방비한 낙관 사이에서 흔들리기 쉽다. 可欺以其方(가기이기방)과 難罔以非其道(난망이비기도)는 마음의 문을 닫지 않되, 터무니없는 길에는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 균형을 가르친다. 순의 기쁨은 가짜 감정이 아니라, 그렇게 균형 잡힌 신뢰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만장상 2장은 不告而娶(불고이취)라는 논란의 장면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큰 윤리와 권도, 그리고 성인의 성실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함께 드러낸다. 순은 부모에게 아뢰지 않은 것으로 예를 버린 것이 아니라, 人之大倫(인지대륜)을 지키기 위해 형식과 본질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웠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순의 특별한 처지와 권도적 판단의 사례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그 속에 담긴 성신과 인의의 마음을 더 깊이 본다. 두 갈래 모두 상도를 함부로 깨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도의 정신을 살리려는 선택이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오늘의 눈으로 읽어도 이 장은 쉽지 않다. 형식을 지키는 일이 곧 옳음이라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때로 더 큰 윤리를 위해 고통스러운 변통을 요구한다. 맹자는 그 판단이 아무 변명으로나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지키고 원망과 파탄을 줄이려는 책임 있는 결단이어야 함을 보여 준다.

등장 인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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