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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상으로

맹자 만장상 3장 — 봉상유비(封象有庳) — 순이 동생 상(象)을 유비(有庳)에 봉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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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만장상 3장 봉상유비(封象有庳) 대표 이미지

맹자 만장상 3장은 (순)과 그의 동생 (상)을 둘러싼 난해한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상은 순을 해치려 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런 사람을 순이 천자가 된 뒤 有庳(유비)에 봉했다는 사실은 곧바로 의문을 낳는다. 封象有庳(봉상유비)는 그래서 단순한 친족 우대의 문제가 아니라, 성인이 친족을 사랑하는 방식과 공적 질서를 지키는 방식이 어떻게 함께 갈 수 있는가를 묻는 말이 된다.

이 장의 긴장은 매우 선명하다. 다른 불인한 자들은 유배하거나 죽였는데, 왜 상에게는 봉지를 주었는가. 백성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동생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는 길이 정말 가능한가. 만장은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묻고, 맹자는 親親(친친), 곧 친족을 친애하는 인의 자연스러움과, 정치를 직접 맡기지 않는 통제의 장치를 함께 제시하며 답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성인의 사사로운 편애가 아니라, 친친의 인과 정치적 방비가 함께 작동한 사례로 읽는다. 상을 부귀하게 한 것은 사랑의 표현이지만, 不得有爲於其國(부득유위어기국)이라 하여 그 나라에서 제멋대로 정사를 행하지 못하게 한 것은 백성을 위한 제한이었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천리와 인정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읽는다. 성인은 원망을 오래 품지 않고 친족이 귀하고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지만, 그렇다고 공의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이 독법에서 封象有庳(봉상유비)는 사사로운 용서가 아니라, 인(仁)의 마음과 공적 통제가 동시에 성립하는 정치적 배치로 이해된다.

만장상 전체에서 이 장은 성인의 행위가 겉으로 모순처럼 보일 때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 사례다. 아래 세 절은 만장의 문제 제기, 맹자의 친친 해설, 그리고 유배처럼 보인 까닭에 대한 최종 설명을 따라가며, 사랑과 제어가 함께 가는 성인의 정치가 어떤 것인지를 드러낸다.

1절 — 만장문왈상(萬章問曰象) — 상을 죽이지 않고 봉한 까닭

원문

萬章이問曰象이日以殺舜爲事어늘立爲天子則放之는何也잇고孟子曰封之也어시늘或曰放焉이라하니라

국역

만장이 물었다. 상(象)은 날마다 순(舜)을 죽이려는 일을 일삼았는데, 순이 천자가 된 뒤 그를 죽이지 않고 쫓아냈다고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는 그것이 추방이 아니라 상에게 땅을 봉해 준 일이며, 다만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잘못 알고 추방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답하셨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첫 절을 사실 판단부터 바로잡는 문답으로 읽는다. 만장은 상이 악인이므로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는 일반 상식을 앞세우지만, 맹자는 우선 사건의 성격이 (방)인지 (봉)인지부터 구별한다는 것이다. 이런 독법에서는 첫 절의 짧은 응답이 뒤 절의 세부 설명을 여는 문으로 기능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성인의 행동이 겉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 보여도, 곧바로 사사로운 인정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로 읽는다. 상의 불인이 명백하더라도, 순의 처사는 복수나 감정 해소가 아니라 더 큰 도리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封之也(봉지야)는 해명이라기보다 성인의 정치가 지닌 복합성을 예고하는 말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첫 절은 사건을 평가하기 전에 사실관계를 정확히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겉으로는 좌천이나 배제로 보이는 조치가 실제로는 다른 성격의 배치일 수 있고, 반대로 호의처럼 보이는 처분 안에도 통제가 담겨 있을 수 있다. 맹자는 판단보다 먼저 개념의 정확성을 요구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의 행동을 겉모습만 보고 성급히 해석하는 일은 흔하다. 특히 감정이 얽힌 관계일수록 우리는 한 단어로 상황을 규정하고 싶어 한다. 이 절은 바로 그 지점에서, 보이는 모양과 실제 의미가 다를 수 있음을 먼저 인정하라고 말한다.

2절 — 만장왈순류공공(萬章曰舜流共工) — 불인한 동생을 왜 부귀하게 했는가

원문

萬章이曰舜이流共工于幽州하시고放驩兜于崇山하시고殺三苗于三危하시고殛鯀于羽山하사四罪하신대而天下咸服은誅不仁也니象이至不仁이어늘封之有庳하시니有庳之人은奚罪焉고仁人도固如是乎잇가在他人則誅之하고在弟則封之온여曰仁人之於弟也에不藏怒焉하며不宿怨焉이오親愛之而已矣니親之란欲其貴也오愛之란欲其富也니封之有庳는富貴之也시니身爲天子오弟爲匹夫면可謂親愛之乎아

국역

만장이 다시 말하였다. 순 임금은 공공(共工)을 유주(幽州)로 유배 보내고, 환도(驩兜)를 숭산(崇山)으로 추방하고, 삼묘의 임금을 삼위(三危)에서 죽이고, 곤(鯀)을 우산(羽山)에서 죽이는 등 네 죄인을 처벌하였고, 천하가 모두 이에 복종한 것은 불인한 자를 바로 처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은 지극히 불인한데도 유비(有庳)에 봉해 주셨으니, 유비의 백성들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은 죽이면서 동생은 봉해 준다면 이것도 인자의 도리입니까. 맹자께서는 인자는 아우에게 노여움을 쌓아 두지 않고 원망도 묵혀 두지 않으며 다만 친애할 뿐이라고 답한다. 친하면 귀해지기를 바라며 사랑하면 부유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유비에 봉한 것은 그를 부귀하게 한 조처였고, 자신은 천자이면서 동생이 평민으로 남아 있다면 어찌 친애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만장의 공의 질문과 맹자의 친친 해명이 정면으로 맞서는 대목으로 본다. 만장은 四罪(사죄)의 사례를 들어 불인한 자라면 누구든 처벌해야 한다고 묻지만, 맹자는 형제 관계에서는 不藏怒焉(불장노언)과 不宿怨焉(불숙원언)의 인이 먼저 작동한다고 답한다. 이런 독법은 다만 그것이 무제한 면책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친애의 표현으로서의 부귀와 정치 권한의 문제는 뒤 절에서 다시 분리된다고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대목을 인정과 공의의 긴장을 풀어 내는 핵심으로 읽는다. 성인은 친족에 대해 인간적 사랑을 끊지 않지만, 그 사랑은 사욕에서 나온 편벽이 아니라 親親(친친)의 천리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身爲天子 弟爲匹夫(신위천자 제위필부)의 반문은, 친족을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냉정함이 오히려 인의 결핍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공정성과 관계 책임이 때로 충돌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모든 책임을 면제해 줄 수는 없지만,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아예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 역시 인간적 책임을 외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맹자의 답은 사랑과 특혜를 같게 보지 않으면서도, 관계 속 책임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어려운 균형을 제시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미워할 이유가 충분해도 끝내 원망을 평생 품지 않는 일이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모든 권한을 맡기거나 모든 결과를 감수해 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 절은 사랑이 무조건적인 허용과 같지 않으며, 원망을 내려놓는 일과 현실적 제한을 두는 일이 함께 갈 수 있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3절 — 감문혹왈방자(敢問或曰放者) — 봉하면서도 정사를 맡기지 않은 까닭

원문

敢問或曰放者는何謂也잇고曰象이不得有爲於其國하고天子使吏로治其國而納其貢稅焉하니故로謂之放이니豈得暴彼民哉리오雖然이나欲常常而見之故로源源而來하니不及貢하여以政接于有庳라하니此之謂也니라

국역

만장이 감히 여쭈었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그 일을 추방이라 부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맹자께서는 상이 그 봉해진 나라에서 제 마음대로 정사를 할 수 없었고, 천자가 관리를 보내 그 나라를 다스리게 한 뒤 상에게는 조세만 받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답하신다. 그러니 어찌 그 백성들을 상의 폭정 아래 내버려 둘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순은 늘 상을 보고 싶어 했으므로 그를 자주 오게 하였고, 조공 시기도 아닌데 정사를 구실로 유비의 임금을 접견했다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한 설명이라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앞 절의 긴장을 실제 제도 설명으로 푸는 대목으로 본다. 상은 (봉)을 받았지만 有爲(유위), 곧 실제 정치를 할 수는 없었고, 천자가 보낸 관리가 나라를 다스렸으므로 백성이 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독법에서 故謂之放(고위지방)은 봉건의 형식과 정치 통제의 실질이 겹쳐 있어, 겉으로는 추방처럼 보였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인정과 제도의 균형이 완성되는 장면으로 읽는다. 순은 동생을 보고 싶어 하는 친애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지만, 동시에 백성을 해치지 않도록 권력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源源而來(원원이래)는 지나친 사사로움이 아니라, 친족을 사랑하는 자연스러운 정이 공의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표현된 사례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사람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권한은 제한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신뢰하기 어려운 가까운 사람에게 관계의 자리는 남겨 두되, 공동체에 손해를 줄 수 있는 실권은 맡기지 않는 것이다. 이는 냉정한 배제와 무분별한 특혜 사이에서 현실적인 중간 지점을 찾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여전히 만나고 아끼지만, 예전처럼 모든 일을 함께하지는 않는 관계가 있다. 사랑이 남아 있다고 해서 경계가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경계를 세웠다고 해서 사랑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이 절은 바로 그 복잡한 진실을 고전의 언어로 아주 섬세하게 풀어낸다.


맹자 만장상 3장은 친족 사랑과 공적 정의가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이는 상황을 정면으로 다룬다. 만장은 상의 죄를 들어 왜 처벌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맹자는 인자는 아우에게 노여움을 묵혀 두지 않는다고 답한다. 하지만 그 답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상을 부귀하게 하되 정사를 직접 맡기지 않았다는 설명이 더해지면서, 사랑과 제어가 함께 가는 성인의 정치가 비로소 드러난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에서 봉건의 형식과 통치의 실질을 구분하며, 송대 성리학은 인정과 천리의 조화를 강조한다. 두 독법은 모두 순의 처사가 사사로운 편애가 아니라, 친친의 인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백성을 보호한 조처라고 본다. 封象有庳(봉상유비)는 바로 그 점에서 성인의 정치가 단순한 엄벌이나 단순한 용서로 환원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오늘의 독자에게도 이 장은 매우 현실적이다. 가까운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종종 둘 중 하나만 택하려 한다. 완전히 끊어 버리거나, 혹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지워 버리거나. 맹자의 대답은 그 사이에 더 어려운 길이 있음을 보여 준다. 사랑은 남기되 권한은 제한하고, 정은 지키되 공동체는 해치지 않는 길, 이 장은 바로 그 균형을 封象有庳(봉상유비)라는 말로 압축한다.

등장 인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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