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만장상 4장은 舜(순)임금과 堯(요)임금, 그리고 瞽瞍(고수)의 관계를 둘러싼 까다로운 질문에서 출발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盛德之士(성덕지사)는 임금도 신하로 삼지 못하고 아버지도 자식으로 삼지 못한다는 말의 진위를 따지는 장이지만, 실제로는 성덕의 의미, 효의 극치, 그리고 경전을 읽는 바른 방법까지 한꺼번에 다루는 장이다.
이 장이 중요한 까닭은 단순한 역사 해설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맹자는 함구몽의 질문을 받자마자 그 말이 齊東野人(제동야인)의 이야기라고 잘라 내고, 순이 이미 천자가 된 뒤 요를 위해 삼년상을 치렀다는 식의 해석이 왜 성립할 수 없는지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이어 普天之下(보천지하) 구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설명하면서, 說詩(설시)의 기본 원칙과 正名(정명)의 문제까지 제시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순의 효와 정치 질서가 동시에 보존되는 방식으로 읽는다. 순이 요를 신하로 삼지 않았고, 고수를 평범한 신하처럼 대하지 않았다는 말은 권위의 혼란이 아니라 지극한 효와 정명(正名)의 성립을 뜻한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에 더해, 경전을 글자에 매이지 않고 뜻으로 읽어야 한다는 원리를 강조한다. 성덕은 단순히 지위 질서를 뒤집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도리와 명분을 가장 정밀하게 바로 세우는 힘이라는 것이다.
만장상의 문답 가운데서도 이 장은 유난히 해석학적이다. 순의 효를 말하다가 시경과 서경의 해석 원리를 논하고, 결국 성인의 행적을 통해 부모를 높이는 도가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아래 네 절은 그 문제를 질문, 반박, 정리, 귀결의 순서로 차례로 풀어 간다.
1절 — 함구몽문왈어운성덕지사(咸丘蒙問曰語云盛德之士) — 성덕한 선비를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다
원문
咸丘蒙이問曰語에云盛德之士는君不得而臣하며父不得而子라舜이南面而立이어시늘堯帥諸侯하여北面而朝之하시고瞽瞍亦北面而朝之어늘舜이見瞽瞍하시고其容이有蹙이라하여늘孔子曰於斯時也에天下殆哉岌岌乎인저하시니不識케이다此語誠然乎哉잇가孟子曰否라此非君子之言이라齊東野人之語也라堯老而舜이攝也러시니堯典에曰二十有八載에放勳이乃徂落커시늘百姓은如喪考妣三年하고四海는遏密八音이라하며孔子曰天無二日이오民無二王이라하시니舜이旣爲天子矣오又帥天下諸侯하여以爲堯三年喪이면是는二天子矣니라
국역
제자 함구몽이 물었다. “옛말에 이르기를, ‘훌륭한 덕을 지닌 선비는 임금이 신하로 삼을 수 없고 아버지가 자식으로 삼을 수 없다. 舜 임금이 南面하고 서 계시자, 堯가 제후를 거느리고 北面하여 朝會하였고 고수 또한 북면하여 조회하였는데, 순 임금이 고수를 보고 불안해 하였다.’ 하였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때 천하가 위태로워 매우 불안하였다.’ 하셨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말이 사실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이것은 군자의 말이 아니고 齊 나라 동쪽 野人들의 말이다. 순이 천자가 된게 아니라 요 임금이 늙어 순이 섭정을 하신 것이니, 堯典에도 ‘순이 섭정한 지 28년만에 요 임금이 돌아가시자, 백성들은 부모를 잃은 듯이 삼년상을 치르고 천하에는 음악 소리가 그쳤다.’ 하였으며, 공자께서도 ‘하늘에는 두 태양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왕이 없는 법이다.’ 하였다. 순이 이미 천자가 되셨는데, 또 천하의 제후들을 거느리고 요 임금을 위하여 삼년상을 치렀다면, 이것은 천자가 둘인 것이다.”
축자 풀이
盛德之士(성덕지사)는 덕이 크게 성한 선비를 뜻하며, 이 장 전체의 문제를 여는 표현이다.君不得而臣(군불득이신)은 임금이 신하로 삼을 수 없다는 뜻으로, 성덕의 위상을 과장되게 말한 속설을 가리킨다.父不得而子(부불득이자)는 아버지가 자식으로 삼을 수 없다는 뜻으로, 효와 위계의 문제를 곧장 건드린다.齊東野人之語(제동야인지어)는 제나라 동쪽 변방 사람들의 말이라는 뜻으로, 맹자가 그 설을 정통한 말로 보지 않음을 드러낸다.天無二日(천무이일),民無二王(민무이왕)은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 두 임금이 없다는 말로, 정치 질서의 원칙을 분명히 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잘못 떠도는 전언을 정명으로 바로잡는 대목으로 본다. 순이 이미 천자가 된 뒤 요를 위해 제후를 이끌고 삼년상을 치렀다는 식의 설명은, 군신 질서와 천자의 유일성을 모두 어지럽히는 말이므로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攝(섭)은 순이 요를 대신해 정사를 맡은 상태를 가리키며, 그래서 요의 생전과 사후를 엄격히 나누어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성덕과 명분이 충돌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읽는다. 성인은 덕이 크다고 해서 질서를 무너뜨리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천하의 질서를 가장 분명하게 보존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盛德不臣(성덕불신)이라는 말도 임금을 부정하는 뜻이 아니라, 덕의 위대함을 속설처럼 비튼 말을 비판하는 문맥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뛰어난 사람을 설명할 때 생기기 쉬운 과장과 신화를 경계하게 만든다. 어떤 인물이 탁월하다고 해서 공식 질서나 역할 구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력이 클수록 자신의 권한과 타인의 자리를 더 정확히 구분해야 조직이 흔들리지 않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사람들은 종종 인물에 대한 인상이나 소문을 사실보다 앞세워 해석한다. 맹자는 그런 이야기 앞에서 감탄부터 하지 않고, 논리와 문헌으로 따져 묻는다. 덕을 존중하는 일과 사실을 정확히 보는 일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 절은 보여 준다.
2절 — 함구몽왈순지불신요즉(咸丘蒙曰舜之不臣堯則) — 시를 글자에만 매달려 읽지 말라
원문
咸丘蒙이曰舜之不臣堯則吾旣得聞命矣어니와詩云普天之下莫非王土며率土之濱이莫非王臣이라하니而舜이旣爲天子矣시니敢問瞽瞍之非臣은如何잇고曰是詩也는非是之謂也라勞於王事而不得養父母也하여曰此莫非王事어늘我獨賢勞也라하니故로說詩者不以文害辭하며不以辭害志오以意逆志라야是爲得之니如以辭而已矣인댄雲漢之詩에曰周餘黎民이靡有孑遺라하니信斯言也인댄是는周無遺民也니라
국역
함구몽이 말하였다. “순이 요를 신하로 삼지 않았다는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었습니다만, ≪시경≫에 ‘온 천하가 왕의 땅 아닌 곳이 없고 사해 안에 왕의 신하 아닌 자가 없네.’ 하였습니다. 순 임금이 이미 천자가 되었는데 고수를 신하로 삼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인지 감히 여쭙겠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이 詩는 이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어떤 大夫가 나랏일에 바빠 부모를 봉양할 수 없다 보니, ‘이 일이 모두 나랏일인데, 나만 유독 능력이 있다 하여 고생하는구나.’ 하며 탄식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해설하는 자는 한 글자에 얽매어 한 구절의 뜻을 왜곡해서도 안 되고, 한 구절에 얽매어 시 전체의 의미를 왜곡해서도 안 되며, 나의 마음으로 시인의 뜻을 헤아려 보아야만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한 구절의 말만 가지고 시를 해석한다면, ≪시경≫ 雲漢詩의 ‘주 나라의 남은 백성, 한 사람도 없구나.’라는 구절의 경우, 사실은 가뭄을 걱정하는 시인데, 진실로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주 나라에는 남은 백성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다.”
축자 풀이
普天之下(보천지하)는 온 천하 아래라는 뜻으로, 시 구절의 외연을 넓게 보이게 한다.莫非王臣(막비왕신)은 왕의 신하 아닌 자가 없다는 뜻으로, 함구몽의 질문 핵심이다.不以文害辭(불이문해사)는 글자 하나에 매여 구절의 뜻을 해치지 말라는 원칙이다.不以辭害志(불이사해지)는 구절에만 매여 시인의 전체 뜻을 훼손하지 말라는 원칙이다.以意逆志(이의역지)는 내 마음으로 시인의 뜻을 헤아려 마주해야 한다는 뜻으로, 맹자의 대표적 독법을 보여 준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시경 해석의 대표 규범으로 읽는다. 莫非王臣(막비왕신)은 천하 모든 사람이 법적으로 임금의 신하라는 조문식 선언이 아니라, 왕사에 시달리는 신하의 탄식을 담은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瞽瞍之非臣(고수지비신) 문제를 이 구절 하나로 단정하는 것은 시의 본뜻을 잃은 해석으로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경전 독해의 방법론으로 더욱 중시한다. 글자와 문장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뜻으로 꿰뚫어야 비로소 참된 해석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以意逆志(이의역지)는 억지 해석이 아니라, 시인의 처지와 의도를 바르게 헤아리는 도덕적 독서법으로 이해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문장 하나, 규정 하나만 떼어 내어 자기 주장에 유리하게 쓰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이 절은 맥락 없는 인용이 얼마나 쉽게 오독으로 이어지는지 보여 준다. 문서와 원칙을 읽을 때도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전체 목적이 무엇인지를 함께 보아야 판단이 정확해진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의 말을 일부만 듣고 단정하면 오해가 커진다. 맹자는 시를 읽는 법을 설명하지만, 사실은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법도 함께 가르친다. 전체 맥락을 보지 않는 해석은 대개 진실보다 내 선입견을 더 많이 반영한다.
3절 — 효자지지막대호존친(孝子之至莫大乎尊親) — 효의 극치는 천하로 부모를 봉양하는 데 있다
원문
孝子之至는莫大乎尊親이오尊親之至는莫大乎以天下養이니爲天子父하니尊之至也오以天下養하시니養之至也라詩曰永言孝思라孝思維則이라하니此之謂也니라
국역
효도의 극치는 부모를 높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부모를 높이는 것의 극치는 천하로써 봉양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고수는 천자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높임의 극치인 것이며, 순이 천하로써 봉양하였으니 봉양의 극치인 것이다. ≪시경≫에 ‘길이 효도하고 언제나 사모하라, 효도하고 사모함이 본받을 법도라네.’ 하였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축자 풀이
孝子之至(효자지지)는 효자의 지극한 경지를 뜻한다.尊親(존친)은 부모를 높인다는 뜻으로, 효의 첫째 자리를 차지한다.以天下養(이천하양)은 천하로써 부모를 봉양한다는 뜻으로, 순의 효를 설명하는 핵심 표현이다.爲天子父(위천자부)는 천자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말로, 고수가 누린 높임의 지극함을 드러낸다.永言孝思(영언효사),孝思維則(효사유측)은 길이 효를 생각하고 그것을 법도로 삼는다는 뜻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순과 고수의 관계를 정리하는 중심 문장으로 본다. 순이 고수를 신하처럼 부리지 않은 까닭은 예외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효의 지극한 도를 실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以天下養(이천하양)은 천하의 부와 권세를 사사롭게 쓴다는 뜻이 아니라, 천자의 지위가 허락하는 가장 큰 존양의 도를 다했다는 의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효와 정치가 어긋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완성하는 대목으로 읽는다. 순은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부모를 높이는 마음을 놓지 않았고, 바로 그 점에서 성인의 정치와 성인의 효가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尊親(존친)과 養親(양친)은 사적 정에 머무르지 않고 천하의 도리로 확장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높은 자리에 올랐을수록 자신을 길러 준 관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권한이 커졌다고 해서 과거의 연원을 지워 버리는 것이 성숙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책임 속에서 은혜와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 품격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以天下養(이천하양)은 꼭 물질 규모를 뜻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 가장 넓은 책임감, 가장 성실한 태도로 부모와 근본을 대하는 일이 오늘의 효가 될 수 있다. 맹자는 효를 좁은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 드러나는 존중의 방식으로 본다.
4절 — 서왈지재현고수(書曰祗載見瞽瞍) — 아버지가 자식으로 삼지 못한다는 말의 참뜻
원문
書에曰祗載見瞽瞍하시되夔夔齊栗하신대瞽瞍亦允若이라하니是爲父不得而子也니라
국역
≪서경≫에 ‘舜 임금은 자식의 직분을 공경히 행하면서 고수를 뵈었는데, 그때마다 항상 삼가고 두려워하셨다. 그러자 고수 역시 순을 믿고 따르게 되었다.’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훌륭한 덕을 지닌 선비는 아버지가 자식으로 삼을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축자 풀이
祗載見瞽瞍(지재현고수)는 공경히 고수를 뵙는다는 뜻으로, 순의 태도를 보여 준다.夔夔齊栗(기기재률)은 매우 삼가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뜻한다.允若(윤약)은 믿고 따르며 순하게 응하는 상태를 가리킨다.父不得而子(부불득이자)는 아버지가 함부로 자식처럼 부릴 수 없다는 뜻으로, 덕이 관계를 바꾸는 차원을 말한다.是爲(시위)는 이것이 곧 그러한 뜻이라는 말로, 맹자가 앞선 논의를 결론짓는 방식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父不得而子(부불득이자)의 정당한 풀이로 본다. 여기서 말하는 바는 부자가 끊긴다거나 아버지 위에 군림한다는 뜻이 아니라, 순의 지극한 효와 공경 앞에서 고수 또한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순의 덕이 부자 관계를 폐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바르게 완성했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夔夔齊栗(기기재률)과 允若(윤약)의 연결에 주목한다. 순이 끝까지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고수 역시 믿고 순하게 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父不得而子(부불득이자)는 성덕이 관계의 위계를 뒤집었다는 말이 아니라, 덕과 효가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억지 지배를 불필요하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이 오히려 더 공손할 때 주변의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억지 권위보다 깊은 실력과 겸손이 함께 갈 때, 사람들은 더 이상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이 절은 진짜 권위가 자기 과시가 아니라 공경에서 나온다는 점을 보여 준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바꾸는 가장 강한 힘은 소리 높인 요구보다 일관된 태도일 때가 많다. 순이 아버지를 대하는 방식은, 상처 있는 관계라 해도 내가 지킬 도리를 끝까지 지킬 때 관계의 결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모든 관계가 이렇게 회복되지는 않더라도, 맹자는 덕의 힘이 먼저 자신에게서 시작된다고 본다.
맹자 만장상 4장은 순의 효를 둘러싼 난해한 질문을 통해, 성덕이 질서를 허문다는 속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맹자는 天無二日(천무이일)과 民無二王(민무이왕)의 원칙으로 정치 질서를 바로 세우고, 不以文害辭(불이문해사), 不以辭害志(불이사해지), 以意逆志(이의역지)의 원리로 경전 독법까지 함께 정리한다. 그리고 마침내 以天下養(이천하양)과 夔夔齊栗(기기재률)의 모습으로, 순의 효가 얼마나 높고 깊은지 보여 준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에서 순의 효와 명분의 조화를 읽고, 송대 성리학은 그 조화를 해석 원리와 마음공부의 문제까지 확장해 읽는다. 두 흐름은 모두 성덕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힘이 아니라, 도리와 관계를 가장 정밀하게 바로 세우는 힘이라는 점에서 만난다.
오늘 이 장이 주는 인상도 선명하다. 뛰어남은 질서를 무너뜨리는 특권이 아니고, 경전은 문구 하나로 휘두를 도구가 아니다. 진짜 큰 덕은 역할과 명분을 더 정확히 세우고, 관계 속에서는 더 깊은 공경으로 드러난다. 맹자가 말한 盛德不臣(성덕불신)은 바로 그런 성숙의 이름이다.
등장 인물
- 맹자: 전국시대 유가의 대표 사상가. 이 장에서 순의 효와 경전 해석의 원칙을 함께 정리한다.
- 함구몽: 맹자의 제자. 순과 요, 고수의 관계를 둘러싼 의문을 제기한다.
- 순: 성인 군주. 천자의 자리에서도 부모를 지극히 높이고 공경한 인물로 제시된다.
- 요: 순에게 정사를 맡긴 선왕. 천자 지위와 섭정의 구분을 설명하는 핵심 인물이다.
- 고수: 순의 아버지. 순의 지극한 효를 통해 높임과 봉양의 극치를 보여 주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