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상(告子上(고자상)) 7장은 사람의 마음이 본래 무엇을 기뻐하도록 되어 있는가를 아주 치밀한 비유로 설명하는 장이다. 맹자는 먼저 풍년과 흉년의 차이를 들어, 사람의 성정이 본래부터 달라서가 아니라 환경이 마음을 빠뜨리고 흔들기 때문에 선과 폭의 차이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다음 곡식, 신발, 맛, 소리, 아름다움의 사례를 차례로 들어 인간에게는 공통된 기호와 판단의 구조가 있다고 논증한다.
이 긴 논증의 결론은 理義悅心(이의열심)이다. 입이 고기를 좋아하고 귀가 좋은 소리를 좋아하며 눈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듯, 마음 역시 理(리)와 義(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성인은 우리와 다른 종족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이 공통으로 옳다고 여기는 바를 먼저 분명히 얻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 장은 인간 본성의 선함과 도덕 감각의 보편성을 감각적 비유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사람의 기질 차이보다 환경과 습관이 마음을 흐리는 문제로 읽는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에 더해, 인간 마음의 본연지성이 理義(리의)를 향해 있다는 점을 중시한다. 두 흐름 모두 성인은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데서 만난다.
고자상 전체에서도 이 장은 중요하다. 고자가 성을 감각적 욕구로 보려는 쪽이라면, 맹자는 감각의 예시를 오히려 이용해 마음의 도덕적 보편성을 증명한다. 입과 귀와 눈의 공통성을 인정한다면, 마음의 공통성만 예외로 둘 이유가 없다는 반전이 이 장의 힘이다.
1절 — 맹자왈부세엔(孟子曰富歲엔) — 마음을 빠뜨리는 것은 타고난 성정이 아니라 환경이다
원문
孟子曰富歲엔子弟多賴하고凶歲엔子弟多暴하나니非天之降才爾殊也라其所以陷溺其心者然也니라
국역
맹자는 풍년에는 젊은이들이 대체로 너그러워지고 흉년에는 포악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하늘이 사람마다 전혀 다른 성정을 내려서가 아니라, 각자가 빠져드는 환경과 처지가 마음을 그렇게 몰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처음부터 둘로 갈라져 있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둘러싼 조건이 사람을 다르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축자 풀이
富歲(부세)는 풍년을 뜻하며, 삶이 비교적 안정된 환경을 가리킨다.子弟多賴(자제다뢰)는 젊은이들이 대체로 선하고 너그러워진다는 뜻이다.凶歲(흉세)는 흉년을 뜻하며, 결핍과 불안의 환경을 나타낸다.子弟多暴(자제다포)는 젊은이들이 대체로 포악해진다는 뜻이다.陷溺其心(함닉기심)은 마음이 빠져 허물어진다는 뜻으로, 환경이 마음을 압박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맹자가 성정의 차이를 천부적 본성에서 찾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읽는다. 사람의 선악 차이는 타고난 품종의 차이라기보다, 처지와 환경이 마음을 제대로 보존하게 했는지 무너뜨렸는지에 따라 갈린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특히 陷溺(함닉)을 외부 조건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고 묻히는 상태로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면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구분과 연결해 읽는다. 본래의 마음은 선하지만, 기질과 환경의 영향 때문에 그것이 드러나지 못하고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리학적 독법은 맹자가 이 절에서 본성의 동일성과 현실의 왜곡 가능성을 함께 보여 준다고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사람의 문제를 모두 개인 탓으로만 돌리는 태도를 경계하게 한다. 같은 사람도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너그러워지기도 하고 폭력적이 되기도 한다. 좋은 조직은 사람을 탓하기 전에, 그 마음을 어떤 환경이 잠식하고 있는지부터 살핀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스스로를 이해할 때 환경의 힘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마음이 쉽게 거칠어지고 냉소적으로 될 때, 그것이 곧 본성의 전부라고 단정하기보다 내가 어떤 결핍과 압박 속에 있는지 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2절 — 금부모맥을 파종이우지(今夫麰麥을播種而耰之) — 씨앗은 같아도 자람의 차이는 조건에서 생긴다
원문
今夫麰麥을播種而耰之하되其地同하며樹之時又同하면浡然而生하여至於日至之時하여皆熟矣나니雖有不同이나則地有肥磽하며雨露之養과人事之不齊也니라
국역
맹자는 보리를 같은 땅에 같은 시기에 심으면 비슷하게 자라 여름 무렵 함께 익는다고 말한다. 물론 실제 수확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지만, 그것은 씨앗의 본질이 달라서가 아니라 땅의 기름짐과 메마름, 비와 이슬의 혜택,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기본 바탕보다 그것을 둘러싼 조건이 차이를 크게 만든다는 논리다.
축자 풀이
麰麥(모맥)은 보리를 뜻하며, 맹자의 비유 대상이다.播種而耰之(파종이우지)는 씨를 뿌리고 덮어 가꾼다는 뜻이다.浡然而生(발연이생)은 쑥쑥 돋아난다는 뜻으로, 생장의 자연스러움을 보여 준다.地有肥磽(지유비요)는 땅의 비옥함과 척박함의 차이를 말한다.人事之不齊(인사지불제)는 사람의 돌봄과 손질이 고르지 않다는 뜻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1절의 논지를 농경 비유로 풀어낸 것이라 본다. 씨앗은 같은데 결과가 다른 이유는 외적 양육 조건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것이 곧 인간의 선악 차이를 설명하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이 독법은 사람과 곡식 모두 기르는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송대 성리학도 이 비유를 중시한다. 성리학적 독법에서는 본성의 동일성이 씨앗이고, 환경과 수양의 차이가 땅과 비, 사람의 손길에 해당한다. 결국 본성의 선함을 믿는다는 것은 동시에 그것을 길러 내는 조건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일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채용만 잘하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도 어떤 문화와 리더를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자란다. 성과의 차이는 개인 역량만큼이나 토양의 차이에서 생긴다.
개인에게도 이 비유는 위로이자 책임이다. 지금의 상태가 전부 타고난 한계라고 단정할 수 없고, 동시에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고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3절 — 고로 범동류자거상사야(故로凡同類者擧相似也) — 성인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원문
故로凡同類者擧相似也니何獨至於人而疑之리오聖人도與我同類者시니라
국역
맹자는 같은 종류의 존재들은 대체로 서로 비슷한데, 어째서 인간에게만 그것을 의심하느냐고 묻는다. 성인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무리에 속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성인을 초인적 별종으로 밀어내지 말고, 인간 안에 이미 있는 가능성의 완성으로 이해하라는 요청이다.
축자 풀이
同類者 擧相似(동류자 거상사)는 같은 부류는 대체로 서로 비슷하다는 뜻이다.何獨至於人而疑之(하독지어인이의지)는 어찌 인간에게만 이것을 의심하느냐는 반문이다.聖人 與我同類者(성인 여아동류자)는 성인도 우리와 같은 동류라는 뜻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맹자의 핵심 전제, 곧 성인과 범인의 종적 차이를 부정하는 말로 읽는다. 사람은 모두 인간이므로, 성인의 덕도 인간 바깥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 안의 가능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이를 통해 수양의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문장을 본연지성의 보편성 선언으로 읽는다. 성인은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누구나 지닌 본성을 가장 온전히 실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자기 안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확인하는 일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에서도 뛰어난 사람을 지나치게 신격화하면 오히려 배움이 끊긴다. “저 사람은 원래 다른 부류”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구체적 가능성을 놓친다. 맹자는 성인의 탁월함을 존경하되, 그것을 인간 가능성의 연장선 위에 놓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구절은 중요하다. 더 나은 사람을 볼 때 열등감이나 체념으로 물러서기보다, 나 역시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성장의 의지가 생긴다.
4절 — 고로 용자왈(故로龍子曰) — 발 치수를 몰라도 신발은 신발답게 만든다
원문
故로龍子曰不知足而爲屨라도我知其不爲蕢也라하니屨之相似는天下之足이同也일새니라
국역
맹자는 용자의 말을 인용해, 발의 정확한 치수를 모르고 신을 만들더라도 그것이 삼태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발이 대체로 서로 비슷한 까닭은 천하 사람들의 발이 기본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인간 사이의 공통성이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생활 세계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축자 풀이
不知足而爲屨(불지족이위구)는 발 치수를 모르고 신을 만든다는 뜻이다.不爲蕢(불위궤)는 그것이 삼태기가 되지는 않는다는 말로, 기본 형식이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뜻한다.屨之相似(구지상사)는 신발들이 서로 비슷하다는 뜻이다.天下之足 同也(천하지족 동야)는 천하 사람들의 발이 같다는 뜻으로, 인간의 공통 구조를 가리킨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유비 논증의 한 사례로 읽는다. 발이 같은 종류이기 때문에 신발 형식도 크게 다르지 않듯, 인간 역시 같은 종류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마음의 구조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용자의 말은 생활 비유를 통해 철학적 논변을 돕는 역할을 한다.
송대 성리학은 여기서 본체의 동일성과 현상의 차이를 함께 본다. 개개인의 발은 조금씩 다르지만 신발의 기본 형식은 유지되듯, 사람마다 기질의 차이는 있어도 마음의 근본 구조는 같다는 것이다. 성리학적 독법은 이를 보편성과 개별성의 조화로 읽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구성원 모두를 완전히 다른 종족처럼 취급하면 공통 기준을 세울 수 없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존중받고 성장하고 의미를 느끼고 싶어 하는 기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제도는 바로 그 공통 구조를 전제로 설계된다.
개인적으로도 타인을 이해할 때 차이만 보지 말고 공통 기반을 함께 봐야 한다. 공통성이 있어야 공감과 교육, 설득이 가능해진다.
5절 — 구지어미에 유동기야(口之於味에有同耆也) — 입이 좋아하는 맛은 대체로 같다
원문
口之於味에有同耆也하니易牙는先得我口之所耆者也라如使口之於味也에其性이與人殊若犬馬之與我不同類也면則天下何耆를皆從易牙之於味也리오至於味하여는天下期於易牙하나니是는天下之口相似也일새니라
국역
맹자는 입이 맛에 대해 공통으로 좋아하는 바가 있으며, 易牙(역아)는 바로 그 공통의 기호를 먼저 알아낸 사람이라고 말한다. 만약 사람마다 맛을 느끼는 성향이 완전히 달라 개나 말이 인간과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른 종류였다면, 천하 사람들이 음식 맛에 관해 모두 역아를 기준으로 삼을 리 없었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역아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인간의 입이 기본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축자 풀이
有同耆也(유동기야)는 공통으로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易牙(역아)는 뛰어난 미각과 조리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先得我口之所耆者(선득아구지소기자)는 우리 입이 좋아하는 바를 먼저 알아낸 사람이라는 뜻이다.天下期於易牙(천하기어역아)는 천하 사람들이 역아에게 기대를 건다는 뜻이다.天下之口相似(천하지구상사)는 천하 사람들의 입이 서로 비슷하다는 결론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감각 세계의 공통성을 통해 마음의 공통성을 증명하려는 단계로 읽는다. 사람들이 맛의 좋고 나쁨을 어느 정도 공유하기 때문에 역아 같은 기준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맹자의 논증이 경험적 관찰에 기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송대 성리학은 이 비유를 더 넓게 확장한다. 맛에 대한 공통 기호를 인정한다면, 마음이 옳고 그름을 기뻐하는 구조 또한 공통적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리학적 독법에서 역아의 사례는 본심의 보편성을 향한 예비 논증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좋은 일의 기준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태도는 종종 책임 회피에 가깝다. 사람마다 취향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좋은 일과 나쁜 일의 감각은 공유된다. 서비스나 제품도 바로 그 공통 감각 위에서 설계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말은 어느 정도까지만 맞다. 완전히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배우고 기준을 만들 수 있다.
6절 — 유이도역연하니(惟耳도亦然하니) — 귀가 좋은 소리를 알아보는 일도 같다
원문
惟耳도亦然하니至於聲하여는天下期於師曠하나니是는天下之耳相似也일새니라
국역
맹자는 귀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소리에 관한 한 천하 사람들이 師曠(사광)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사람들이 듣기 좋은 소리를 분별하는 감각 역시 기본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감각의 공통성은 맛에만 머무르지 않고 청각에도 이어진다.
축자 풀이
至於聲(지어성)은 소리에 관해서는이라는 뜻이다.天下期於師曠(천하기어사광)은 천하 사람들이 사광에게 기대를 건다는 뜻이다.天下之耳相似(천하지이상사)는 천하 사람들의 귀가 서로 비슷하다는 결론이다.師曠(사광)은 뛰어난 음악 감식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앞의 맛의 예를 청각으로 확대한 사례로 읽는다. 사람들이 소리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어느 정도 공유하므로 사광 같은 기준이 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 감각의 보편 구조를 더욱 넓게 보여 준다.
송대 성리학도 이 예시를 중요하게 본다. 성리학적 독법에서 청각의 공통성은 마음의 공통성으로 나아가는 다리다. 즉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과장해 도덕의 공통 기준을 무너뜨리려는 견해를 반박하는 재료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도 좋은 소통과 나쁜 소통의 감각은 완전히 임의적이지 않다. 무례함과 진정성, 조화와 불협화는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느낀다. 공통 감각이 있기에 문화도 세울 수 있다.
개인에게도 타인의 반응을 전부 제멋대로라고 치부하면 배우지 못한다. 사람들의 귀가 비슷하다는 말은, 내 말과 태도도 타인에게 일정한 방식으로 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7절 — 유목도역연하니(惟目도亦然하니) — 눈이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일도 같다
원문
惟目도亦然하니至於子都하여는天下莫不知其姣也하나니不知子都之姣者는無目者也니라
국역
맹자는 눈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子都(자도)의 아름다움을 천하 사람이 모두 안다고 한다. 만약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눈이 없는 것과 같다는 과장된 표현까지 쓴다. 시각적 아름다움 또한 개인 취향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정한 공통 분별 위에 서 있다는 뜻이다.
축자 풀이
至於子都(지어자도)는 자도에 이르러서는, 곧 아름다움의 대표 예를 드는 말이다.天下莫不知其姣也(천하막불지기교야)는 천하 사람이 그 아름다움을 모르는 이가 없다는 뜻이다.無目者也(무목자야)는 눈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분별의 부재를 강하게 말한다.姣(교)는 아름다움과 곱다는 뜻을 가진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시각 감각의 공통성까지 확인하는 부분으로 읽는다. 맛과 소리와 더불어 아름다움의 판단에도 공통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누적해, 결국 마음의 판단 역시 공통이라는 결론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은 이 예시가 단순한 미학 논변이 아니라 심성론의 준비라고 본다. 사람이 아름다움조차 공통되게 알아보면서, 왜 유독 마음의 옳고 그름만 제각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가 여기서 힘을 얻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도 좋은 디자인, 정돈된 질서, 보기 좋은 구조에 대한 감각은 전적으로 자의적이지 않다. 기본적인 아름다움과 균형감은 대체로 공유된다. 그래서 시각 경험도 공동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절은 취향의 상대성을 지나치게 절대화하지 말라고 한다. 모두가 같지는 않아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바닥은 존재한다.
8절 — 고로 왈구지어미야에(故로曰口之於味也에) — 마음이 공통으로 기뻐하는 것은 이와 의다
원문
故로曰口之於味也에有同耆焉하며耳之於聲也에有同聽焉하며目之於色也에有同美焉하니至於心하여獨無所同然乎아心之所同然者는何也오謂理也義也니聖人은先得我心之所同然耳시니故로理義之悅我心이猶芻豢之悅我口니라
국역
맹자는 입이 좋아하는 맛이 있고 귀가 좋아하는 소리가 있으며 눈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대상이 있듯, 마음에도 공통으로 옳다고 여기는 바가 없겠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 공통된 대상이 바로 理(리)와 義(의)라고 답한다. 성인은 우리 마음이 본래 함께 옳다고 여기는 그것을 먼저 분명히 얻은 사람일 뿐이며, 그래서 이와 의가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은 고기 맛이 입을 기쁘게 하는 일만큼 자연스럽고 직접적이라는 것이다.
축자 풀이
心之所同然者(심지소동연자)는 마음이 공통으로 그렇다고 여기는 바를 뜻한다.理也 義也(리야 의야)는 그 공통된 내용이 바로 이와 의라는 맹자의 답이다.聖人 先得我心之所同然耳(성인 선득아심지소동연이)는 성인은 우리 마음의 공통 감각을 먼저 얻은 사람이라는 뜻이다.理義之悅我心(이의지열아심)은 이와 의가 내 마음을 기쁘게 한다는 뜻이다.芻豢之悅我口(추환지열아구)는 맛있는 고기와 음식이 입을 기쁘게 한다는 비유로, 도덕적 기쁨의 자연성을 말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앞선 모든 비유의 결론으로 읽는다. 사람의 마음도 감각처럼 공통된 바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핵심이 理義(리의)라는 것이다. 이 독법은 따라서 성인을 특별한 종족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바른 감각을 먼저 밝힌 사람으로 이해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본연지성이 이와 의를 향해 있다는 강한 진술로 읽는다. 성리학적 독법에서 理義悅心(이의열심)은 도덕이 외부에서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마음이 본래 즐거워하는 바라는 뜻이다. 그래서 수양은 억지로 낯선 것을 들여오는 일이 아니라, 본래 좋아하는 것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사람은 단지 보상과 자극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공정함, 정당함, 의미 있는 기준은 실제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오래 움직이게 한다. 돈과 편의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 조직이 의외로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절은 도덕을 억지와 금욕으로만 보지 않게 만든다. 마음은 본래 옳은 것을 기뻐할 수 있으며, 그래서 바른 선택이 깊은 차원에서는 오히려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理義悅心(이의열심)은 도덕이 인간 본성과 적대하지 않는다는 맹자의 가장 강한 선언 가운데 하나다.
고자상 7장은 감각의 공통성을 하나씩 짚어 가며 마음의 공통성을 증명한다. 풍년과 흉년의 차이는 성정의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에서 생기고, 같은 종류의 존재들은 대체로 비슷하며, 맛과 소리와 아름다움에도 공통의 기준이 있다. 그렇다면 마음만 유독 공통의 기호가 없다고 볼 이유는 없고, 그 공통의 대상이 바로 理(리)와 義(의)라는 것이 맹자의 결론이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환경이 마음을 빠뜨리는 방식과 인간 공통성의 논변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여기에 본연지성과 理義悅心(의리열심)의 의미를 더욱 깊게 부각한다. 두 독법을 함께 보면, 맹자는 인간을 본래 도덕에 적대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옳음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존재이며, 성인은 그 점을 가장 먼저 온전히 실현한 사람이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사람은 단지 자극과 보상만을 좇는 기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올바름과 공정함과 의미는 실제로 마음을 기쁘게 한다. 맹자의 理義悅心(이의열심)은 인간의 도덕 감각을 가장 밝고 강하게 신뢰하는 말이다.
등장 인물
- 맹자: 인간 마음이 본래 이와 의를 기뻐한다는 점을 감각의 비유를 통해 논증하는 전국시대 유가 사상가다.
- 용자: 발과 신발의 비유를 통해 같은 종류의 존재가 기본적으로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 역아: 천하 사람들이 맛의 기준으로 삼는 요리의 상징적 인물이다.
- 사광: 소리의 좋고 나쁨을 분별하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뛰어난 악사다.
- 자도: 아름다움의 대표적 예로 소환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