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글자 이상 입력하세요
고자하으로

맹자 고자하 10장 — 이십취일(二十取一) — 백규(白圭)의 이십취일(二十取一) 세제는 맥(貉)의 도(道)이지 중국(中國)의 도가 아니다

29 min 읽기
맹자 고자하 10장 이십취일(二十取一) 대표 이미지

고자하 10장은 세금 비율만 놓고 보면 단순한 경제 정책 논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제도와 인륜의 최소 조건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장이다. 白圭(백규)는 二十取一(이십취일), 곧 20분의 1만 거두는 가벼운 세제를 제안한다. 겉으로 보면 백성에게 부담을 덜어 주는 인자한 정책처럼 들리지만, 맹자는 곧장 그것을 貉道(맥도)라고 부르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맹자의 반박이 흥미로운 이유는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한다고 주장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세금이 너무 가벼워져도 문제라고 말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중국의 나라에는 성곽, 궁실, 종묘, 제사, 외교, 관료 조직이 있고, 이런 제도는 모두 인륜과 정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어떤 문명을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와 이어진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堯舜之道(요순지도)에 맞는 정제(正制)를 밝히는 글로 읽는다. 반면 송대 성리학은 제도와 인륜, 그리고 군자 정치의 기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더 주목한다. 전자가 적정 세제의 외형을 분명히 한다면, 후자는 세제가 단지 재정이 아니라 도의 실현 조건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고자하의 흐름 속에서 보면 이 장은 매우 실천적이다. 인간 본심과 도덕의 논의가 현실 정치로 내려와, 좋은 뜻만으로는 나라를 꾸릴 수 없고 제도는 그에 맞는 두께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선명하게 말한다. 그래서 二十取一(이십취일)은 단지 “가벼운 세금”의 표어가 아니라, 문명과 제도의 무게를 무시한 단순화가 왜 위험한지 묻는 기준이 된다.

1절 — 백규왈오욕(白圭曰吾欲) — 20분의 1 세금을 쓰고자 한다

원문

白圭曰吾欲二十而取一하노니何如하니잇고

국역

白圭가 말하였다. “나는 20분의 1의 세금을 취하는 정책을 쓰려 하는데, 어떻습니까?”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첫 절을 백규가 세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선한 정치처럼 제시한 장면으로 본다. 그러나 맹자의 답변은 세율의 경중만이 아니라, 어떤 사회 구조를 전제하고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즉, 숫자만 가볍다고 곧바로 선정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백규의 질문을 현실주의적 발상으로 읽는다. 백성의 부담을 덜겠다는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도를 세우는 제도적 토대까지 함께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독법에서 백규의 제안은 선의를 가장한 단순화의 사례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는 비용을 낮추자는 제안이 언제나 좋은 제안은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운영비를 줄이고 구조를 단순화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조직의 핵심 기능과 질서를 유지하는 기반까지 깎아내리면 오히려 더 큰 손실을 낳는다. 맹자는 바로 그 지점을 처음부터 겨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출을 줄이고 절약하는 것이 항상 덕은 아니다. 필요한 관계, 책임, 장기적 기반을 다 없애면서 가벼움만 추구한다면 삶의 골격도 함께 약해질 수 있다.

2절 — 맹자왈자지도(孟子曰子之道) — 그대의 방식은 맥국의 방식이다

원문

孟子曰子之道는貉道也로다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하려는 방식은 貉國(맥국)에서나 가능한 방식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짧은 판정을 강한 규정으로 읽는다. 貉道(맥도)란 단지 오랑캐의 방식이라는 욕설이 아니라, 중국의 예제와 관제를 전제로 하지 않는 단순한 정치 구조를 뜻한다. 따라서 맹자의 요점은 세금 숫자 그 자체보다, 그 숫자가 어떤 사회 형태에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송대 성리학에서는 이 구절을 문명 질서의 차이를 분별하는 말로 읽는다. 예와 악, 제사와 외교, 관료와 교육이 갖추어진 사회는 그 유지 비용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차이를 무시한 채 가벼움만 추구하면 도를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서 貉道(맥도)는 단순하고 싼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동경하는 태도에 대한 경계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다른 조직의 효율 모델을 그대로 들여오려는 유혹이 흔하다. 하지만 규모, 역할, 규제, 이해관계 구조가 전혀 다른 집단의 운영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면 오히려 혼란만 커진다. 맹자의 말은 “그 모델은 그 환경에서나 성립한다”는 현실 인식과 닿아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남의 방식이 내 삶에 바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에게는 맞는 단순화가, 다른 사람에게는 책임 회피가 될 수 있다. 貉道(맥도)라는 말은 그래서 맥락 없는 모방을 경계하게 한다.

3절 — 만실지국(萬室之國) — 한 사람이 그릇을 구워도 충분한가

원문

萬室之國에一人이陶則可乎아曰不可하니器不足用也니이다

국역

萬戶(만호)를 가진 나라에 한 사람이 질그릇을 굽는다면 되겠는가?” 백규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그릇이 쓰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이 비유는 국가 운영의 분업 원리를 설명하는 장치로 읽힌다. 큰 나라에는 다양한 기능과 직분이 필요하며, 하나의 단순한 구조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맹자는 여기서 세제 논의를 곧바로 생산과 행정의 현실 문제로 연결한다.

송대 성리학에서는 이 비유를 제도적 충분성의 문제로 읽는다. 좋은 뜻만으로는 나라가 돌아가지 않고, 필요한 기물과 역할, 직분이 충족되어야 질서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제를 말할 때도 먼저 국가가 감당해야 할 기능의 총량을 봐야 한다고 이해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소수 인력으로 모든 기능을 처리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쉽게 한계에 부딪히는지 보여 준다. 제품 개발, 운영, 재무, 고객 대응, 법무가 모두 필요한 조직에서 “최소 인원”만 강조하면 결국 품질과 지속성이 무너진다. 맹자의 비유는 충분성 없는 효율이 얼마나 공허한지 드러낸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한 사람이 모든 역할을 완벽히 해내려는 생각은 쉽게 소진으로 이어진다. 가정과 일, 돌봄과 관계에는 각각 필요한 자원과 시간이 있다. 그릇의 수가 모자라면 밥상을 차릴 수 없듯, 삶도 지나친 축소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4절 — 왈부맥(曰夫貉) — 맥국은 제도 비용이 적으니 가능하다

원문

曰夫貉은五穀이不生하고惟黍生之하나니無城郭宮室宗廟祭祀之禮하며無諸侯幣帛饔飧하며無百官有司라故로二十에取一而足也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저 맥국은 五穀(오곡)이 자라지 않고 오직 기장만 자라는 관계로, 성곽과 궁실과 종묘와 제사의 (예)가 없고, 제후들과 폐백을 교환하고 빈객에게 음식을 접대하는 일이 없으며, 百官(백관)과 有司(유사)가 없다. 따라서 20분의 1만 취해도 족한 것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맹자의 본격 설명으로 읽는다. (맥)의 사회는 생산, 의례, 외교, 관료 체계가 단순하거나 거의 없으므로 적은 세율로도 운영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세율의 절대값이 아니라 국가가 떠받치고 있는 제도 문명의 무게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송대 성리학에서는 특히 宗廟祭祀之禮(종묘제사지례)와 百官有司(백관유사)에 주목한다. 나라는 단지 치안과 생계만이 아니라 인륜과 예제, 공적 질서를 함께 책임지는 구조이며, 그것을 유지하려면 재정도 그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세제는 도를 구현하는 물적 조건이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지원 조직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필요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보안, 회계, 법무, 인사, 운영, 의례와 문화의 영역이 빠지면 조직은 당장은 가벼워 보여도 결국 기반을 잃는다. 二十取一(이십취일)이 가능한 곳과 불가능한 곳을 구분하라는 말은 비용 구조의 맥락을 보라는 뜻이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유지비가 드는 책임들이 있다. 집안의 제사와 돌봄, 인간관계의 예의, 공동체 참여는 즉각적 이익만으로 환산되지 않지만 삶의 품격을 만든다. 그런 층위를 모두 없애고 가벼움만 추구하면, 사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5절 — 금거중국(今居中國) — 중국에 살면서 인륜과 군자를 버릴 수 있는가

원문

今에居中國하여去人倫하며無君子면如之何其可也리오

국역

그러나 지금 중국에 거주하면서 인륜을 버리고 군자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去人倫(거인륜)은 단순히 예의범절이 줄어든다는 뜻이 아니라, 국가를 국가답게 만드는 관계망과 직분 체계를 허무는 일로 읽힌다. 따라서 중국에 살면서 맥국의 세제를 흉내 내는 것은 결국 인륜의 구조를 감당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고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는 君子(군자)를 더 넓게 읽는다. 단지 관직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도를 지키고 질서를 세우는 사람들의 층위 자체가 있어야 사회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서 세제를 지나치게 가볍게 하려는 시도는 곧 군자 정치의 토대를 없애는 일로 연결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조직에서는 문화와 규범, 리더십 층위를 다 없애고 운영만 남기려는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 준다. 일은 돌아가는 듯 보여도 책임과 기준을 세울 사람들이 사라지면 결국 혼란이 커진다. 맹자는 비용 절감이 곧 관계 구조 절감으로 이어질 때 무엇이 무너지는지 짚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효율만 추구하며 예의를 다 없애면 관계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가족과 이웃,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 할 도리의 층위가 있기 때문이다. 去人倫(거인륜)은 그래서 단순한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삶의 구조적 훼손으로 읽힌다.

6절 — 도이과(陶以寡) — 도공이 적어도 나라를 못 꾸리는데

원문

陶以寡라도且不可以爲國이온況無君子乎아

국역

陶工(도공)이 너무 적어도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데, 하물며 군자가 없는 경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절을 앞선 비유의 귀결로 읽는다. 물건을 만드는 장인조차 턱없이 부족하면 국가 운영이 불가능한데, 하물며 사람을 바로 세우고 공무를 담당하는 군자와 관리가 없다면 나라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물적 생산과 도덕 정치가 분리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송대 성리학에서는 君子(군자)를 국가의 정신적 기반으로 읽는다. 기물은 장인이 만들 수 있지만, 예와 법, 인륜과 공도를 세우는 일은 군자층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재정 논의가 결국 사람을 세우는 문제로 귀결됨을 보여 준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는 핵심 인력과 운영 인력을 함께 봐야 한다는 점을 말해 준다. 눈에 보이는 생산 인력만 남기고 기준과 시스템을 세우는 사람을 다 줄이면, 단기적으로 비용은 줄어도 조직은 방향을 잃는다. 맹자의 경고는 오늘의 구조조정 논의에도 그대로 통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실무만 있고 방향이 없으면 삶이 쉽게 흔들린다. 돈 버는 기술은 있는데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떤 관계를 지킬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결국 삶은 피곤해지고 거칠어진다. 無君子(무군자)는 사회만이 아니라 개인 안의 질서 상실로도 읽을 수 있다.

7절 — 욕경지어요순(欲輕之於堯舜) — 요순보다 가볍게 하면 대맥소맥이고 무겁게 하면 대걸소걸이다

원문

欲輕之於堯舜之道者는大貉에小貉也오欲重之於堯舜之道者는大桀에小桀也니라

국역

요순의 세금 제도보다 가볍게 하려는 자는 큰 맥국 아니면 작은 맥국이고, 요순의 세금 제도보다 무겁게 하려는 자는 큰 걸왕 아니면 작은 걸왕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와 손석 계열 독법은 이 마지막 절을 정제(正制)의 표준을 제시하는 결론으로 읽는다. 요순의 제도보다 지나치게 가벼우면 문명 질서를 감당하지 못하는 (맥)의 길이 되고, 지나치게 무거우면 백성을 수탈하는 (걸)의 길이 된다는 것이다. 핵심은 중간 평균이 아니라, 성왕의 도에 맞는 적정 기준이 따로 있다는 데 있다.

송대 성리학에서는 이 절을 과불급의 정치 원리로 읽는다. 너무 가벼워도 도를 무너뜨리고, 너무 무거워도 민생을 해친다는 점에서 정치는 언제나 중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堯舜之道(요순지도)는 단지 옛 제도의 복원이 아니라, 문명과 민생을 함께 살리는 적정한 질서의 이름이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지나친 긴축과 지나친 수탈이 모두 위험하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비용을 너무 줄이면 기능과 문화가 사라지고, 반대로 지나치게 짜내면 구성원이 탈진한다. 좋은 운영은 둘 중 하나의 극단이 아니라, 조직의 사명과 지속 가능성을 함께 지탱하는 적정선에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너무 느슨하면 삶의 구조가 무너지고, 너무 빡빡하면 자신과 주변을 소모시킨다. 맹자의 결론은 결국 가벼움 자체를 숭배하지도, 무거움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유지하기 위한 부담인가를 정확히 분별하는 일이다.


고자하 10장은 세율 하나를 놓고도 국가의 구조와 인륜, 문명의 유지 비용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 준다. 二十取一(이십취일)이 무조건 좋은 정책처럼 들릴 수 있지만, 맹자는 그 숫자가 어떤 사회를 전제하는지부터 묻는다. 성곽과 궁실, 종묘와 제사, 외교와 관료가 있는 나라라면 그에 맞는 재정 구조가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을 지나치게 벗어나면 한쪽은 (맥)이 되고 다른 한쪽은 (걸)이 된다.

한대 훈고는 이를 요순의 정제와 대비해 적정 세율의 기준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제도와 인륜, 군자 정치의 물적 토대를 함께 보게 한다. 두 독법을 함께 보면, 이 장은 세금 많이 걷기와 적게 걷기의 논쟁이 아니라, 어떤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를 묻는 정치 철학의 문장으로 보인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비용 절감과 효율화는 언제나 맥락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볍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제도가 되지 않고, 무겁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제도가 되는 것도 아니다. 맹자가 남기는 기준은 분명하다. 사람과 제도, 인륜과 질서를 함께 지탱하는 적정한 무게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등장 인물

참조


이전 글

맹자 진심상 10장 — 호걸지사(豪傑之士) — 문왕을 기다린 뒤에 흥하는 자는 범민(凡民)이요 호걸지사(豪傑之士)는 문왕이 없어도 일어난다

다음 글

맹자 고자상 10장 — 사생취의(捨生取義) — 삶도 의(義)도 함께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