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글자 이상 입력하세요
진심상으로

맹자 진심상 5장 — 행이부저(行而不著) — 행하되 환히 알지 못하고 익히되 살피지 못해 종신 걸어도 그 도(道)를 모르는 자

11 min 읽기
맹자 진심상 5장 행이부저(行而不著) 대표 이미지

맹자 진심상 5장은 사람이 평생 어떤 길을 따라 살면서도 정작 그 길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지적하는 장이다. 맹자는 사람들이 전혀 행동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하고 익히고 반복하면서도, 그 속의 원리와 뜻을 분명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그래서 이 장의 핵심 표현인 行而不著(행이부저)는 단순한 무지를 넘어, 익숙함 속에 숨어 버린 무각성을 겨눈다.

이 장은 매우 짧지만, 공부와 수양의 방향을 날카롭게 바로잡는다.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익숙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행위의 반복과 도의 자각은 다른 문제이며, 맹자는 바로 그 간극을 문제 삼는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대목을 일상 윤리의 습관화 속에서 뜻을 놓치는 현상으로 읽는다. 사람들은 부모를 섬기고 형제를 대하며 예를 따르기도 하지만, 왜 그렇게 하는지 그 도리의 근본을 분명히 살피지 않으면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익숙한 행위와 자각된 도리를 구별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을 지와 행의 통일이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읽는다. 몸은 이미 어떤 도를 따르고 있지만 마음의 밝음이 거기 미치지 못하면, 사람은 평생 그 길을 밟으면서도 끝내 그 도의 이름과 뜻을 알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리학적 독법에서 (저)와 (찰)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내면의 밝은 통찰을 뜻한다.

오늘의 시선으로 보아도 이 장은 매우 현실적이다. 사람은 관성적으로 일하고, 오래 해 왔다는 이유로 자기가 하는 일을 안다고 여긴다. 그러나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원리와 가치 위에서 움직이는지를 묻는 순간 쉽게 말문이 막히곤 한다. 맹자는 바로 그 익숙한 무지를 흔들어 깨운다.

1절 — 맹자왈행지이불저(孟子曰行之而不著) — 평생 행해도 그 길을 모를 수 있다

원문

孟子曰行之而不著焉하며習矣而不察焉이라終身由之而不知其道者衆也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을 행하면서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이미 익숙해졌으면서도 그 원리를 살피지 못하니, 평생 그 길을 따라 살면서도 그 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사람들이 이미 행하고 있는 예와 도리를 마음으로 환히 깨닫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읽는다. 부모를 섬기고 사람을 대하며 살아가면서도 왜 그것이 옳은지, 그 옳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살피지 않으면 결국 도를 따라 살면서도 도를 모르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생활 속 실천과 자각된 도리의 간격을 특히 중시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저)와 (찰)을 마음의 밝음과 성찰의 정도로 읽는다. 사람이 행위만으로는 도에 들어간 것 같아 보여도, 스스로의 마음을 비추어 그 원리를 밝히지 못하면 참된 앎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은 단순히 공부를 더 많이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익숙한 행위 속에 깃든 이치를 끝까지 자각하라는 요구가 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오래 일한 사람과 깊이 이해한 사람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어떤 조직은 오래된 관행과 루틴으로 굴러가지만, 정작 구성원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상태에서는 위기나 변화가 오면 쉽게 흔들린다. 맹자의 말은 실행만 반복하는 조직이 아니라, 실행의 원리를 이해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경계로 읽을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우리는 반복되는 습관을 삶의 기준으로 착각하기 쉽다. 매일 하는 일, 오래 지켜 온 관계, 늘 반복하는 선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정말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行而不著(행이부저)와 習而不察(습이불찰)은 익숙함이 곧 앎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래서 이 장은 삶을 멈추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시 비추어 보라는 요청으로 읽힌다.


맹자 진심상 5장은 사람이 평생 어떤 도를 따라 살면서도 그 도를 모를 수 있다는 역설을 짧고 날카롭게 드러낸다. 행하고 익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속의 뜻과 원리를 밝히고 살피는 일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여기서 실천과 자각이 함께 가지 않으면 삶은 쉽게 관성으로 굳어 버린다고 본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일상 윤리의 습관화 속에서 도리의 근본을 놓치는 상태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이를 지와 행의 밝은 통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로 해석한다. 두 독법은 모두, 도를 밟고 있으면서도 도를 모르는 삶이 실제로 많다는 점에서 만난다. 그래서 行而不著(행이부저)는 행위를 멈추게 하는 말이 아니라, 행위 속의 뜻을 끝까지 밝혀 내게 하는 말이 된다.

오늘의 삶에서도 이 경계는 그대로 유효하다. 반복은 숙련을 만들지만, 성찰이 빠진 반복은 무지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맹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익숙한 삶일수록 더 깊이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등장 인물

참조


이전 글

맹자 진심하 5장 — 규구사교(規矩使巧) — 장인은 법도는 줄 수 있어도 솜씨까지 대신 줄 수 없다

다음 글

맹자 고자하 5장 — 향의위중(享儀爲重) — 향(享)은 의(儀)가 중(重)하니 뜻이 물건에 미치지 못하면 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