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글자 이상 입력하세요
진심상으로

맹자 진심상 12장 — 일도생도(佚道生道) — 살리는 도리로 부리면 수고로워도 원망이 남지 않는다

11 min 읽기
맹자 진심상 12장 일도생도(佚道生道) 대표 이미지

맹자 진심상 12장은 통치의 정당성이 어디에서 생기는지를 아주 짧고 강하게 보여 주는 장이다. 백성을 부리는 일과 백성을 죽이는 일은 모두 권력이 행사되는 자리이지만, 맹자는 그 행위의 겉모습보다 그것이 어떤 (도)를 따라 이루어졌는지를 먼저 묻는다. 핵심은 佚道(일도)와 生道(생도)라는 두 표현에 있다.

佚道(일도)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마침내 살기 좋게 하려는 길을 뜻한다. 따라서 백성에게 일시적으로 수고로운 일을 시키더라도 그 목적이 그들의 삶을 편하게 하고 공동체를 안정시키는 데 있다면, 백성은 비록 힘들어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맹자는 말한다. 마찬가지로 生道(생도)는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보전하는 큰 원칙이다. 이 원칙 아래에서 죽을 죄를 지은 자를 형벌로 다스리는 일이라면, 그는 비록 죽더라도 죽이는 자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본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정사와 형벌의 본뜻을 밝히는 말로 읽는다. 백성을 쓰는 것과 벌하는 것이 모두 백성을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백성을 살리고 편안하게 하기 위한 큰 방향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백성이 감정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조처의 뜻과 공정성을 알 수 있을 만큼 정치가 바르다는 뜻에 가깝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인정을 바탕으로 한 정치의 기준으로 읽는다. 군주는 백성을 자기 권력의 수단으로 다루어서는 안 되며, 힘든 부역도 살리는 마음에서 나와야 하고, 형벌도 생명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은 엄정함과 자비가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같은 도리 안에서 만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진심상의 흐름 속에서 이 장은 특히 중요하다. 진심상이 마음의 본래성과 도덕적 판단을 다루는 편이라면, 12장은 그 논의를 정치 현실로 연결한다. 백성을 움직이는 권력의 행사가 결국 어떤 마음과 어떤 도를 바탕으로 하느냐에 따라 원망의 정치가 되기도 하고 신뢰의 정치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압축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1절 — 맹자왈이일도사민(孟子曰以佚道使民) — 살리는 뜻으로 부리면 고생해도 원망하지 않는다

원문

孟子曰以佚道使民이면雖勞나不怨하고以生道殺民이면雖死나不怨殺者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을 편히 살게 해 줄 목적으로 백성을 부리면 백성들은 비록 고생스러워도 원망하지 않으며, 백성을 살릴 목적으로 죽을 죄를 지은 백성을 죽이면 그는 비록 죽더라도 죽이는 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정치적 강제의 정당성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본다. 백성을 부리는 부역이나 형벌 집행은 겉으로 보면 모두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것이 佚道(일도)와 生道(생도) 안에 있으면 그 뜻이 백성을 해치는 데 있지 않고 마침내 편안하게 하고 살리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不怨(불원)은 고통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조처의 공정함과 본뜻이 백성에게 납득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을 인정의 정치가 어떻게 엄정함과 만나는지 보여 주는 말로 읽는다.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라면 마땅히 때로는 부역을 시켜 공동체를 지켜야 하고, 때로는 형벌을 집행해 더 큰 생명을 보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유무가 아니라, 그 고통이 사욕에서 나온 것인지 공공의 생명을 살리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힘든 결정이 언제 정당성을 얻는지를 잘 보여 준다. 조직 개편, 강도 높은 훈련, 엄격한 평가처럼 구성원에게 부담을 주는 조치라도 그것이 결국 사람을 살리고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향에서 나온다면, 당장은 힘들어도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같은 조치라도 리더의 체면이나 사익을 위한 것이라면 즉시 원망과 불신을 낳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장은 기준을 분명히 세워 준다. 누군가를 바로잡기 위해 엄한 말을 하거나,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해 힘든 길을 택할 때도 문제는 고통의 크기보다 그 동기와 방향이다. 진정으로 살리는 뜻에서 나온 엄정함은 잠시 아플 수 있어도 파괴로 흐르지 않지만, 사욕에서 나온 엄격함은 겉으로는 그럴듯해도 끝내 사람을 상하게 한다.


맹자 진심상 12장은 정치의 강제력이 언제 정당한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백성을 부리고 벌하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지만, 그 바탕이 佚道(일도)와 生道(생도), 곧 편안하게 하고 살리는 도리에 놓여 있다면 그 고통은 원망으로만 남지 않는다. 맹자는 바로 그 점에서 정사의 본뜻을 묻는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부역과 형벌의 정당한 방향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인정과 엄정함이 함께 서는 정치의 조건으로 읽는다. 두 해석은 모두, 권력의 정당성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그 힘을 쓰는 마음과 목적에서 나온다는 데서 만난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이 장은 힘든 결정을 내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기준이 된다. 이 조치가 정말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욕망을 포장한 것인가. 맹자의 짧은 문장은 그 질문을 끝까지 피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등장 인물

참조


이전 글

맹자 진심하 12장 — 불신인현(不信仁賢) — 인현(仁賢)을 믿지 않으면 나라가 공허(空虛)해지고 예의(禮義)가 없으면 상하(上下)가 어지럽다

다음 글

맹자 고자하 12장 — 군자불량(君子不亮) — 군자가 미덥지 못하면 어디에 잡을 곳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