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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상으로

맹자 진심상 25장 — 계명이기(鷄鳴而起) — 닭 울자 일어나 부지런히 선(善)을 행하는 자는 순(舜)의 무리요, 이(利)를 행하면 척(跖)의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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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진심상 25장 계명이기(鷄鳴而起) 대표 이미지

진심상(盡心上) 25장은 사람의 하루가 어디를 향해 시작되는가를 묻는 짧고 강한 장이다. 맹자는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 부지런히 선을 행하는 사람은 순의 무리이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좇는 사람은 도척의 무리라고 말한다. 출발은 비슷해 보여도 마음이 향하는 곳이 다르면 삶의 계열 전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장의 힘은 거창한 이론 대신 일상의 습관을 통해 성인과 도적의 갈림길을 드러낸다는 데 있다. 鷄鳴而起(계명이기)는 단지 부지런함을 칭찬하는 말이 아니다. 일찍 일어나는 근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근면이 선을 향하느냐 이익을 향하느냐가 핵심이다. 맹자는 가장 익숙한 일상 장면 속에서 인간 존재의 방향성을 묻는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사람의 행위 동기가 선과 이익 어디에 놓이는가를 밝히는 말로 읽는다. 겉으로 같은 근면과 성실도 그 속의 지향이 다르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를 더욱 내면화하여, 일상에서 무엇을 먼저 생각하고 무엇을 먼저 실천하는지가 곧 인격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본다.

진심상에서 이 장이 갖는 위치도 분명하다. 앞선 장들이 마음, 본성, 하늘, 수양의 원리를 풀어냈다면, 여기서는 그 원리가 하루의 첫 행동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 준다. 거대한 도덕 담론은 결국 아침에 무엇을 위해 몸을 일으키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1절 — 계명이기(鷄鳴而起) — 닭 울자 일어나 부지런히 선을 행하는 자는 순의 무리다

원문

孟子曰鷄鳴而起하여孶孶爲善者는舜之徒也오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선을 행하는 자는 순 임금의 무리이고,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孶孶(자자)를 게으르지 않고 힘쓰는 모습으로 읽으면서도, 그 힘씀의 대상이 (선)이라는 점을 핵심으로 본다. 사람의 부지런함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그것이 도덕적 실천을 향할 때 비로소 순의 계열에 선다는 것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절을 일상의 공부론으로 읽는다. 아침에 가장 먼저 움직이는 마음이 곧 그 사람의 본심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선을 향해 먼저 몸을 일으키는 사람은 억지 명령이 아니라 내면의 도리가 먼저 작동하는 사람이며, 그런 점에서 舜之徒(순지도)는 혈통이 아니라 정신의 계승을 뜻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근면함만으로는 좋은 조직을 만들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일찍 출근하고 오래 일하는 문화가 있어도, 그 에너지가 공동선과 올바른 기준을 향하지 않으면 조직은 쉽게 소모된다. 반대로 선한 목적을 향해 꾸준히 움직이는 조직은 겉으로 화려하지 않아도 신뢰를 쌓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말은 선명하다. 우리는 모두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지만, 무엇을 위해 서두르는지는 자주 묻지 않는다. 맹자는 부지런함의 미덕을 찬양하기보다, 그 부지런함이 선을 향하고 있는지 먼저 보라고 말한다.

2절 — 계명이기(鷄鳴而起) — 닭 울자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좇는 자는 도척의 무리다

원문

鷄鳴而起하여孶孶爲利者는蹠之徒也니

국역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도척의 무리이니,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첫 절과 정면으로 대응시키며 읽는다.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힘쓴다 해도 그 지향이 (리)라면 이미 도의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척)은 단순한 악인 한 사람을 넘어, 탐욕이 삶의 중심이 되었을 때 도달하는 극단을 상징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爲利(위리)를 더욱 경계한다. 이익 자체를 전면 부정하기보다, 마음의 첫 자리가 이익 계산에 점령될 때 도덕 판단 전체가 흔들린다고 본다. 그래서 같은 성실함도 爲善(위선)이면 수양이 되지만 爲利(위리)면 욕심의 기술로 변질될 수 있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성과 중심 문화는 쉽게 孶孶爲利(자자위리)의 상태로 기울 수 있다. 구성원이 모두 열심히 움직이지만, 그 열심이 숫자와 자기 이익만 향하면 조직은 빠르게 냉혹해진다. 단기 성과는 나올 수 있어도 공동체의 신뢰와 지속 가능성은 약해진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구절은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는 종종 성실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방향성을 묻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러나 맹자는 성실함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본다. 방향이 잘못되면, 부지런함은 더 빨리 잘못된 곳에 도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3절 — 욕지순여척지분(欲知舜與蹠之分) — 순과 도척의 차이는 선과 이익 사이에 있다

원문

欲知舜與蹠之分인댄無他라利與善之間也니라

국역

순 임금과 도척의 구분을 알고자 한다면, 다른 것이 없다. 이익과 선의 차이일 뿐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구절을 인물 평가의 기준을 단순하고도 엄정하게 세우는 말로 읽는다. 성인과 도적을 가르는 기준이 재능, 권력, 외적 성취가 아니라 마음이 추구하는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리)와 (선)의 구분은 행위의 표면보다 깊은 동기의 구분이 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를 수양론의 핵심 경계로 읽는다. 사람의 마음은 늘 선과 이익 사이에서 갈라질 수 있으며, 작은 선택이 반복되며 인격 전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無他(무타)라는 단정은 도덕의 길이 복잡한 이론보다 매 순간의 지향 정리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이 절은 의사결정의 기준을 묻는다. 좋은 조직과 나쁜 조직의 차이는 종종 시스템의 복잡함보다, 결정의 첫 기준이 공동의 선인지 당장의 이익인지에 달려 있다. 이익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익이 선을 압도하는 순간 조직은 방향을 잃는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利與善之間(이여선지간)은 매일 반복되는 문제다. 편한 쪽, 유리한 쪽, 당장 이득이 되는 쪽을 고를 수 있지만, 선한 쪽을 고르려는 마음을 놓치면 사람은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맹자는 거대한 성인론을 결국 이 단순한 분별 하나로 압축한다.


진심상 25장은 짧지만 인간 수양의 방향을 놀랄 만큼 선명하게 잘라 보여 준다. 닭 울자 일어나는 부지런함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는다. 선을 향하면 순의 무리가 되고, 이익만을 향하면 도척의 무리가 된다. 맹자는 성실과 노력조차 그 지향을 따져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 장을 행위 동기의 분별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그것을 일상 공부의 핵심 경계로 더 깊게 밀어붙인다. 두 독법은 모두, 성인과 도적의 차이가 거대한 재능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첫 방향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늘의 눈으로 읽어도 이 장은 매우 현실적이다. 사람은 대부분 악을 꿈꾸며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익만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질서가 바뀐다. 鷄鳴而起(계명이기)라는 일상의 장면 속에서, 맹자는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 부지런한가를 다시 묻게 한다.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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