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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상으로

맹자 진심상 29장 — 굴정구인(掘井九軔) — 구인(九軔)을 파도 샘에 닿지 못하면 기정(棄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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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진심상 29장 굴정구인(掘井九軔) 대표 이미지

맹자 진심상 29장은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사실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과 같다는 점을 아주 강한 비유로 말하는 장이다. 우물을 파는 일은 분명 힘들고 오래 걸리지만, 샘에 닿기 직전에서 멈춘다면 그 수고는 아직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이 장의 핵심 사자성어인 掘井九軔(굴정구인)은 노력의 양보다 완성의 여부를 묻는 말이 된다.

맹자는 이 비유를 통해 단순히 성실함을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이 했다는 자기 위안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속이는지 드러낸다. 아홉 길이나 팠다는 사실은 분명 큰 수고지만, 정작 물을 얻지 못했다면 우물의 목적은 아직 달성되지 않은 셈이다. 수고와 성취는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공부와 실천이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를 경계하는 말로 읽는다. 이미 깊이 들어갔다고 해도 목적지에 미치지 못하면 아직 이룬 것이 아니며, 중도에 그친 노력은 본래의 뜻을 잃기 쉽다는 것이다. 이 독법은 棄井(기정)을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거의 완성될 수 있었던 일을 스스로 버린 상태로 본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장을 지행 공부의 지속성과 끝맺음의 문제로 읽는다. 도를 향한 공부는 단번에 완성되지 않으므로, 거의 다 왔다고 느껴지는 지점에서 멈추지 않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리학적 독법은 여기서 특히 공부가 깊어질수록 마지막 한 걸음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고 본다.

오늘의 시선으로 읽어도 이 비유는 매우 현실적이다. 많은 사람이 프로젝트, 관계, 공부, 수양을 오래 끌고 가다가도 가장 중요한 마무리 직전에 힘을 잃는다. 그리고 종종 “거의 다 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맹자는 바로 그 거의라는 말이 실제 완성과는 다르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1절 — 맹자왈유위자(孟子曰有爲者) — 샘에 닿지 못하면 우물을 버린 것과 같다

원문

孟子曰有爲者辟若掘井하니掘井九軔而不及泉이면猶爲棄井也니라

국역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슨 일을 이루려는 것은 우물을 파는 일과 같아서, 비록 우물을 아홉 길이나 깊이 팠더라도 샘물에 이르지 못하고 멈춘다면 그것은 결국 우물을 버린 것과 같다는 뜻이다.

축자 풀이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공부와 실천의 미완성을 경계하는 말로 읽는다. 이미 많은 공력을 들였더라도 목적한 바에 미치지 못하면 그 일은 아직 성립되지 않은 것이며, 특히 마지막 고비에서 물러서는 태도가 가장 아깝고도 해롭다는 것이다. 이 독법에서 九軔(구인)은 많은 수고를, 不及泉(불급천)은 결정적인 미완성을 상징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비유를 성인의 도를 배우는 공부와 연결해 읽는다. 도를 닦는 길은 서둘러 끝낼 수 없는 만큼 끈기가 필수인데, 깊이 들어가 놓고도 마지막 완성에 이르지 못하면 오히려 그 오랜 공력이 헛되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성리학적 독법은 棄井(기정)을 단순한 실패보다, 끝맺음을 잃은 공부의 상징으로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이 절은 성과를 가르는 차이가 종종 마지막 마무리에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기획과 실행이 길게 이어졌더라도 출시, 정리, 책임 있는 종료가 빠지면 프로젝트는 실제 성과로 남지 않는다. “거의 다 했다”는 말은 과정의 위로가 될 수는 있어도 결과의 증거는 아니다. 맹자는 조직에서도 완성을 책임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읽힐 수 있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이 장은 깊이 와 닿는다. 공부를 오래 하다가 끝을 내지 못하고, 관계를 오래 이어 오다가 결정적 책임을 지지 못하고, 마음먹은 일을 거의 다 해 놓고 마지막에 놓치는 경우가 많다. 掘井九軔(굴정구인)의 비유는 바로 그 마지막 한 걸음의 무게를 일깨운다. 진짜 성취는 수고의 총량보다 목적에 닿았는가로 판단된다는 뜻이다.


맹자 진심상 29장은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단순히 오래 붙들고 애쓴다는 뜻이 아니라, 끝내 목적에 닿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우물을 깊이 팠더라도 샘에 닿지 못하면 아직 우물이 아니며, 그 상태에서 멈추는 것은 사실상 우물을 버린 것과 같다. 맹자는 바로 이 비유로 미완의 수고가 얼마나 허망할 수 있는지 드러낸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미완성의 공부와 실천을 경계하는 말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여기에 끝맺음의 공부와 지속의 중요성을 더 깊이 본다. 두 독법은 모두, 마지막까지 이르지 못하면 중도까지의 수고가 목적을 완성시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만난다. 그래서 掘井九軔(굴정구인)은 성실함의 칭찬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인내의 요청으로 읽혀야 한다.

오늘의 삶에서도 이 말은 여전히 아프게 정확하다. 많은 일은 시작보다 마무리가 더 어렵고, 사람은 거의 다 왔다는 이유로 더 쉽게 멈춘다. 맹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끝까지 이르지 못한 수고는 아직 목적을 이룬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등장 인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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