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하 6장은 선비가 왜 제후에게 사사로이 의탁하지 않는지, 또 君子(군자)를 제대로 대우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를 묻는 장이다. 겉으로 보면 녹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 핵심은 예의 질서와 군자의 자립에 있다. 맹자는 구휼은 받을 수 있으나 직분 없는 사사로운 하사는 받을 수 없다고 선을 긋고, 더 나아가 군자를 봉양하는 올바른 방식이 무엇인지까지 설명한다.
이 장의 긴장은 매우 섬세하다. 제후가 나라를 잃고 다른 제후에게 의탁하는 것은 예이지만, 선비가 제후에게 기대어 녹을 받는 것은 예가 아니라는 첫 문장이 이미 관계의 위계를 드러낸다. 이어 구호곡은 받을 수 있으나 사사로운 녹은 받을 수 없다는 설명, 子思(자사)가 목공의 삶은 고기를 거절한 사례, 堯(요)가 舜(순)을 대우한 방식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군자를 높인다는 말이 단순한 후원이나 선심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장을 군신의 예와 빈객의 분수를 가리는 논변으로 읽는다. 군자가 직분 없이 제후의 하사를 받으면 그 스스로 예를 잃는다는 뜻이 강하게 부각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여기에 더해, 군자를 기른다는 것은 그 사람을 구걸하게 만들지 않고, 또한 번거로운 사례 절차로 모욕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읽는다. 그러므로 養君子道(양군자도)는 물질 제공의 기술이 아니라, 현자를 존중하는 질서의 이름이 된다.
이 장이 만장하에서 중요한 이유는, 군자와 권력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다루기 때문이다. 군자가 권력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공동체 속에서 굶지 않게 하는 길, 그리고 임금이 현자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가 함께 묶여 있다. 결국 맹자는 군자를 높이는 정치는 먼저 예를 바르게 세우는 정치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1절 — 만장왈사지불탁제후(萬章曰士之不託諸侯) — 선비는 왜 제후에게 의탁하지 않는가
원문
萬章이曰士之不託諸侯는何也잇고孟子曰不敢也니라諸侯失國而後에託於諸侯는禮也오士之託於諸侯는非禮也니라
국역
만장이 묻는다. 선비가 제후에게 의탁해 살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맹자는 감히 그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나라를 잃은 제후가 다른 제후에게 몸을 의탁하는 것은 예에 맞지만, 선비가 제후에게 기대어 사사로이 녹을 받는 일은 예가 아니라는 뜻이다.
축자 풀이
士之不託諸侯(사지불탁제후)는 선비가 제후에게 의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不敢也(불감야)는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예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諸侯失國(제후실국)은 제후가 나라를 잃은 상황으로, 예외적 궁핍의 경우를 가리킨다.託於諸侯(탁어제후)는 다른 제후에게 몸을 의탁한다는 말이다.非禮(비례)는 예의 질서에 맞지 않음을 뜻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신분과 직분에 따른 의탁의 경계를 밝히는 말로 본다. 나라를 잃은 제후는 여전히 공적 지위를 지닌 존재이므로 다른 제후에게 의탁할 수 있지만, 선비가 직분 없이 권력자에게 붙어 녹을 받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읽는다. 여기서 不敢은 도덕적 자존심 이전에 예를 어길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군자의 자립과 연결해 읽는다. 군자는 도를 지키는 존재이므로, 권력의 호의에 기대어 생계를 해결하려 들면 이미 마음의 주체를 잃기 쉽다는 것이다. 성리학은 이를 통해 군자의 독립성과 예의 질서가 함께 서야 함을 강조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전문성과 권력의 거리를 어떻게 둘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직책도 책임도 없이 단지 권력자와 가깝다는 이유로 혜택을 얻는 구조는 조직을 빠르게 망가뜨린다. 맹자의 첫 답은 공적 관계와 사적 의탁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읽힌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의 호의에 기대어 사는 일이 언제나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호의가 내 역할과 책임 없이 지속적 의존으로 바뀌면, 관계의 균형은 쉽게 무너진다. 이 절은 도움과 의탁, 예외와 상례를 구분하는 분별을 요구한다.
2절 — 군궤지속즉수지호(君餽之粟則受之乎) — 구휼은 왜 받을 수 있는가
원문
萬章이曰君이餽之粟則受之乎잇가曰受之니라受之는何義也잇고曰君之於氓也에固周之니라
국역
만장이 다시 묻는다. 임금이 구호곡을 보내 준다면 그것은 받는가. 맹자는 받는다고 답한다. 그 의리가 무엇이냐고 하자, 임금은 본래 백성을 널리 구휼하는 책임을 지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축자 풀이
餽之粟(궤지속)은 곡식을 보내 준다는 말로, 구휼 성격의 지원을 뜻한다.受之(수지)는 그것을 받는다는 뜻이다.何義也(하의야)는 그것이 어떤 의리에 근거하는지 묻는 말이다.氓(맹)은 일반 백성을 뜻한다.固周之(고주지)는 본래 널리 돌보고 구휼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1절의 엄격함을 보완하는 조항으로 읽는다. 선비가 제후에게 의탁할 수는 없지만, 군주가 백성을 구휼하는 공적 책임 안에서 제공하는 곡식은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핵심은 그 지원이 사사로운 총애가 아니라 군주의 공적 책무에 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君之於氓(군지어맹)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선비가 군자라 하더라도 굶주린 상황에서는 우선 백성으로서 구휼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으며, 이 지원은 인륜적 자비이자 정치의 기본 책임으로 읽힌다. 성리학은 그래서 자립과 구휼을 모순으로 보지 않고, 관계의 성격이 다를 뿐이라고 이해한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공적 복지와 사적 특혜를 혼동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힌다. 구성원 전체를 위한 안전망과 지원 제도는 정당하지만, 특정인에게만 비공식적으로 베푸는 시혜는 조직의 기준을 무너뜨린다. 맹자의 구분은 복지의 정당성과 특혜의 위험을 동시에 보여 준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도움을 받는 일이 모두 의존은 아니다. 공동체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돌봄과 구휼은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그 도움의 성격이 권력자의 선심인지, 공동체의 책임인지 구분하는 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절은 여전히 섬세하다.
3절 — 주지즉수사지즉불수(周之則受賜之則不受) — 구휼은 받고 하사는 받지 않는 까닭
원문
曰周之則受하고賜之則不受는何也잇고曰不敢也니라曰敢問其不敢은何也잇고曰抱關擊柝者皆有常職하여以食於上하나니無常職而賜於上者를以爲不恭也니라
국역
만장이 묻는다. 구휼하는 곡식은 받으면서도 사사로운 하사는 받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 맹자는 역시 감히 그렇게 못한다고 답한다. 왜 그런가를 더 묻자, 문지기와 순라꾼조차 다 정해진 직분이 있어서 위에서 녹을 먹는 것이니, 일정한 직무도 없이 위에서 내리는 녹을 받는 것은 공손하지 못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축자 풀이
周之則受 賜之則不受(주지즉수 사지즉불수)는 구휼은 받되 하사는 받지 않는다는 구분이다.抱關擊柝者(포관격탁자)는 문지기와 야경꾼 같은 말단 직임을 가리킨다.常職(상직)은 일정하고 공식적인 직책을 뜻한다.食於上(이식어상)은 위에서 녹을 받아 산다는 말이다.不恭(불공)은 예를 잃고 공손하지 못함을 뜻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직분과 급여의 상응 관계를 밝히는 구절로 읽는다. 낮은 직책이라도 공적 직분이 있으면 녹을 받는 것이 정당하지만, 아무 직분도 없이 하사를 받는 것은 군주의 사사로운 은혜에 기대는 셈이 되어 예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不恭은 단순 무례가 아니라, 자신의 분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태도를 뜻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절을 군자의 마음가짐과 연결한다. 군자는 자신의 도와 직분에 따라 먹고사는 질서를 지켜야 하므로, 아무 대가 없이 군주의 사적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먼저 굽어지기 쉽다고 본다. 그래서 성리학은 공적 직분과 사적 총애를 엄격히 가르는 이 절을 군자의 절의 문제로도 읽는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역할 없는 보상이 왜 조직을 해치는지 설명해 준다. 공식 책임과 평가 없이 권력자와의 친분만으로 혜택을 받는 구조는,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의 기준을 허물고 제도 전체를 불신하게 만든다. 맹자의 말은 보상이 정당하려면 반드시 공적 역할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읽힌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의 후원을 받을 때, 그것이 나의 실제 역할과 책임과 맞물려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관계가 깊다는 이유만으로 반복해서 받는 혜택은 어느 순간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이 절은 공짜의 위험을 예의 언어로 설명한다.
4절 — 군궤지즉수지불식가상계호(君餽之則受之不識可常繼乎) — 자사가 목공의 삶은 고기를 거절한 이유
원문
曰君이餽之則受之라하시니不識케이다可常繼乎잇가曰繆公之於子思也에亟問하시고亟餽鼎肉이어시늘子思不悅하사於卒也에摽使者하여出諸大門之外하시고北面稽首再拜而不受曰今而後에知君之犬馬畜伋이라하시니盖自是로臺無餽也하니悅賢不能擧오又不能養也면可謂悅賢乎아
국역
만장은 다시 묻는다. 임금이 보내는 것을 받는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그것을 늘 계속 받아도 되는가. 맹자는 노 목공과 자사의 일을 예로 든다. 목공이 자주 안부를 묻고 자주 삶은 고기를 보내자 자사는 기뻐하지 않았고, 마침내 사자를 문 밖으로 내보낸 뒤 북쪽을 향해 절하고도 그 물건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야 임금이 자신을 개나 말 기르듯 대한다는 것을 알겠다고 말한다. 이후 그런 전달은 끊겼다. 맹자는 현자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등용하지 못하고, 또 예에 맞게 봉양하지도 못한다면 어찌 현자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축자 풀이
可常繼乎(가상계호)는 늘 계속 이어 받아도 되는가를 묻는 말이다.繆公(목공)은 노나라 임금으로, 자사에게 자주 고기를 보냈던 인물이다.鼎肉(정육)은 삶은 고기를 뜻한다.犬馬畜伋(견마휵급)은 개나 말 기르듯 자신을 대한다는 뜻으로, 자사의 강한 거절 이유를 드러낸다.悅賢不能擧 又不能養(열현불능거 우불능양)은 현자를 좋아한다면서도 등용도, 올바른 봉양도 못하는 상태를 지적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자사의 사례를 군주가 예를 잃고 현자를 대우한 경우로 읽는다. 반복적으로 삶은 고기를 보내는 행위 자체보다, 그것이 빈객의 예나 등용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채 습관적 시혜로 흘렀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자사가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자신이 군자의 위치를 잃고 가축처럼 사육되는 존재로 격하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자사의 분노를 군자의 자존과 예의식으로 읽는다. 현자를 사랑한다면 마땅히 그를 등용해 도를 펴게 하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그 인격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대우해야 한다. 반복되는 시혜가 잦은 절과 굴종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봉양이 아니라 군자의 기개를 꺾는 일이 된다. 성리학은 바로 이 점을 養君子道(양군자도)의 반면교사로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재능 있는 사람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직책도 권한도 없이 작은 혜택만 반복 제공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대우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필요할 때만 챙기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모욕이 될 수 있다. 맹자는 존중이란 혜택의 빈도가 아니라 방식의 정당성이라고 말한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돕는다는 이름으로 상대의 자존을 해칠 수 있다. 상대를 동등한 인격으로 세우는 도움과, 반복적 시혜로 의존하게 만드는 도움은 전혀 다르다. 자사의 거절은 바로 그 차이를 예민하게 드러낸다.
5절 — 감문국군욕양군자(敢問國君欲養君子) — 군자를 기르는 올바른 방식은 무엇인가
원문
曰敢問國君이欲養君子인댄如何라야斯可謂養矣리잇고曰以君命將之어든再拜稽首而受하나니其後에廩人이繼粟하며庖人이繼肉하여不以君命將之니子思以爲鼎肉이使己僕僕爾亟拜也라非養君子之道也라하시니라
국역
만장이 묻는다. 임금이 군자를 봉양하고자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비로소 제대로 봉양한다고 할 수 있는가. 맹자는 처음에는 임금의 명을 받들어 정식으로 가져오게 하면 신하가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받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뒤 계속 곡식과 고기를 보낼 때는 다시 임금의 명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자사는 삶은 고기가 자주 자신을 번거롭게 절하게 만든다고 여겼고, 이것은 군자를 봉양하는 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축자 풀이
欲養君子(욕양군자)는 군자를 제대로 봉양하고자 한다는 뜻이다.以君命將之(이군명장지)는 임금의 명을 받들어 물건을 가져오게 한다는 말이다.再拜稽首(재배계수)는 정식 예를 갖추어 받는 절차를 뜻한다.廩人繼粟 庖人繼肉(늠인계속 포인계육)은 이후에는 창고지기와 부엌 담당자가 실무적으로 공급을 잇는다는 말이다.僕僕爾亟拜(복복이기배)는 자주 분주히 절하게 만든다는 뜻으로, 반복되는 굴곡을 비판한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예의 절차를 실무와 분리하는 방식으로 읽는다. 처음 한 번은 군주의 뜻이 공식적으로 전달되어 예를 성립시키고, 그 이후의 지속 공급은 실무 체계 안에 넣어 군자가 반복해서 사사로운 은혜에 허리를 굽히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군자를 기르는 도의 구체적 형식으로 이해된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이 구분을 더욱 중시한다. 군자를 기른다는 것은 먹을 것을 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의 기개와 존엄이 손상되지 않게 하는 방식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의 예와 이후의 지속적 공급을 구분하는 맹자의 설계는, 현자를 대우하는 정치가 어디까지 세심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장치로 읽힌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인재를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 때, 매번 최고 권력자에게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방식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굴욕적인지 돌아보게 한다. 처음의 공식 위임과 그 이후의 안정적 시스템을 분리해야, 지원이 시혜가 아니라 제도로 작동한다. 맹자의 말은 제도의 품격이 곧 사람의 존엄을 지킨다는 뜻으로 읽힌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오래 도우려면, 그 사람이 매번 나에게 감사와 복종을 표해야만 유지되는 구조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도움은 반복될수록 더 조용하고 안정된 체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상대를 기르는 도움이 된다.
6절 — 요지어순야(堯之於舜也) — 현자를 높이는 왕공의 방식
원문
堯之於舜也에使其子九男으로事之하며二女로女焉하시고百官牛羊倉廩을備하여以養舜於畎畝之中이러시니後에擧而加諸上位하시니故로曰王公之尊賢者也니라
국역
요는 순을 대할 때 자기 아홉 아들로 하여금 그를 섬기게 하고, 두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며, 백관과 소와 양, 창고까지 갖추어 밭 가운데 있는 순을 받들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를 들어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것이야말로 왕공이 현자를 높이는 방식이라고 맹자는 말한다.
축자 풀이
九男(구남)은 요의 아홉 아들을 뜻한다.二女 女焉(이녀 여언)은 두 딸을 시집보낸다는 뜻으로, 요가 순에게 깊은 신임을 보였음을 나타낸다.百官牛羊倉廩(백관우양창름)은 관원과 재물과 창고를 모두 갖추어 준다는 말이다.畎畝之中(견묘지중)은 밭고랑 사이, 곧 순이 있던 평민의 자리다.擧而加諸上位(거이가저상위)는 그를 들어 높은 자리에 올렸다는 뜻이다.
사상사 배경
한대 훈고 전통에서 조기의 『맹자장구』와 손석의 『맹자정의』 계열 독법은 이 절을 현자를 높이는 왕도의 모범으로 읽는다. 요는 단지 물품을 내려 보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식과 관료 조직, 물적 기반까지 동원해 순을 공적으로 받들었고, 끝내 최고 자리에까지 올렸다. 이 독법에서 尊賢(존현)은 사사로운 후대가 아니라, 현자를 질서 안으로 정당하게 끌어올리는 일이다.
송대 성리학에서 주희의 『맹자집주』와 정자 어록의 맥락은 요의 태도를 현자를 사랑하는 마음과 공적 절차가 합쳐진 사례로 읽는다. 순을 밭 가운데서 기르되 그를 낮은 자리에 묶어 두지 않고, 마침내 천하의 책임까지 맡겼다는 점에서, 진정한 존현은 기르기와 등용이 하나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리학은 이를 군자를 대우하는 정치의 최고 형식으로 본다.
현대적 해석·함의
리더십과 조직에서는 인재를 존중한다는 말이 결국 기회와 자원과 권한을 실제로 주는 일이어야 함을 보여 준다. 작은 혜택만 주고 핵심 의사결정에서는 배제하는 방식은 존현이 아니다. 요의 사례는 뛰어난 사람을 알아보았다면, 그가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구조 자체를 열어 주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읽힌다.
개인과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낀다면 단지 챙겨 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더 크게 자랄 수 있도록 길을 열고, 때가 되면 마땅한 자리에 세워 주는 것이 더 깊은 존중이다. 맹자가 말한 王公之尊賢者(왕공지존현자야)는 결국 사람을 높인다는 말의 가장 큰 뜻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만장하 6장은 군자가 권력에 붙어 사사로운 녹을 받지 않는 까닭과, 군자를 참으로 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설명한다. 한대 훈고 전통은 이를 예의 분수와 공적 직분의 질서를 밝히는 장으로 읽고, 송대 성리학은 군자의 존엄과 자립을 해치지 않는 봉양의 방식에 더 깊이 주목한다. 두 독법은 모두, 물질 제공 자체보다 그 제공이 어떤 예와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만난다.
이 장이 오늘에도 의미 있는 이유는, 사람을 존중한다는 말이 쉽게 시혜와 혼동되기 때문이다. 맹자는 구휼과 특혜를 구분하고, 후원과 굴욕을 구분하며, 결국 존현은 등용과 제도적 배려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養君子道(양군자도)는 군자를 먹여 살리는 방법이 아니라, 군자를 군자답게 대우하는 정치의 방식으로 남는다.
등장 인물
- 맹자: 전국시대 유가의 대표 사상가. 군자가 제후에게 의탁하지 않는 이유와 군자를 봉양하는 올바른 도를 설명한다.
- 만장: 맹자에게 사와 제후의 관계, 군자를 기르는 방식에 대해 묻는 제자다.
- 자사: 노 목공의 삶은 고기를 거절한 사례로 제시되는 인물이다.
- 노 목공: 자사에게 잦은 하사를 보냈으나, 올바른 방식으로 현자를 기르지 못한 임금의 사례로 등장한다.
- 요: 순을 밭 가운데서부터 공적으로 기르고 마침내 높은 자리에 세운 성왕이다.
- 순: 요에게 발탁되어 존현의 모범 사례가 된 인물이다.